기사 (117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나의 제자, 그는 선각자였다 김상철 회장은 서울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임관됐다. 재직... 의리 있던 큰 일꾼 김상철 변호사와는 서울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우리는 키 크기가 달라서 자리가 떨어져 있... '거룩한 분노'의 巨人 내가 아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있던 2002년 3월초 나의 고등학교 동기생이자 공군사관학교 출... 그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 김상철.나는 그 분의 이름 석 자를 몰랐다. 92년부터 KBS에서 교양PD로 10여 년간 일하면서도... 시간을 가장 아끼던 사람과의 10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의 남북협력위원장직... “나라를 지키는 신문이 필요합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쯤이었다. 김상철 회장이 좀 만나자고 해서 프레스센터에서 차를 같이 했... 현대 한국사에 큰 족적을 남긴 ‘Larger than Life’ 인물 김상철 회장님을 알게 된 것은 내가 1980년대 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던 유학 시... 누군가는 따라가야 할 거인의 발자취 김상철 회장님과 저의 만남은 역설적이게도 2012년 12월의 천국 환송예배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회... 미래한국 미주판이 나오기까지 작년 말 김 회장님의 서거 소식을 접한 우리 뉴욕 식구(미래한국 뉴욕지사)들, 김남수 목사님을 비롯... 나의 인생을 바꿔주신 분 2005년 1월 13일 저녁. 저는 임신 8개월 된 만삭의 아내와 함께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에 ... '미래한국' 이름 뒤에 숨은 뜻 제가 이곳 미국에 온 지도 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 동안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서울 생활을 되새겨보... 미래한국의 소임과 역할 돌이켜 보건대 2002년 이라는 신문이 창간됐을 때 저는 이 신문이 치열한 경쟁의 이 나라 언론계에...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910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