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의 솥단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이종혁의 솥단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 이종혁 정치평론가
  • 승인 2018.01.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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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지혜로부터 배우자!

이종혁 정치평론가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나는 어릴 적 시골 초가 토담집에서 거주했고, 전기가 없는 산골에서 등잔호롱불로 책을 읽고, 산에서 해온 솔가지 나무로 음식을 익혀 먹는 5,6천 년에 걸쳐 흘러온 인류 첫 번째 물결의 삶을 몸소 체험한 세대이다.

또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 년 전의 선조들은 상상도 못했을 인류 두 번째 물결의 문명 이기(利器), ‘텔레비전·전화·자동차·비행기’ 등의 산업화 문명을 누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정말 운 좋게도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한 인류 세 번째 물결인 지식기반 산업혁명 시대를 또다시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명의 발전을 서구의 과학과 이성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칭기즈칸과 같은 인물의 세계 통합으로 인류가 거대한 문명적 진화를 이룰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칭기즈칸은 우리에게 통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칭기즈칸의 세계 정복 동기는 파괴와 약탈이 아니었다. 그는 정당성 없는 권력들이 자의성을 행사하는 폐쇄적인 체제를 붕괴시키고, 민중들을 보다 넓고 풍요롭고 자유로운 세계로 해방시키기를 원했다. 칭기즈칸은 가족을 깡패 같은 부족집단들에게 잃었고, 살아남은 자신도 활을 맞으며 쫓겨 다녀야 했다. ‘성(城)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징기스칸의 명언은 그가 무엇을 꿈꿨는지를 말해준다.

중세에 1차 세계화를 이끈 칭기즈칸

칭기즈칸은 1995년 워싱턴포스트지의 ‘지난 1천년 중 인류사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인물’로 선정됐다. 그는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통합이란 거대한 일을 최초로 해낸 사람이다.

동서문명의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통해 사람과 기술을 이동시켜 동서양 문명의 교류를 강화했던 사람이 바로 칭기즈칸이었다. 그의 위대한 정복사가 기존의 실크로드를 보다 확연히 만들고, 그의 정복사가 필연적으로 시공을 초월한 동서문명의 교류를 가져왔다.

예부터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다민족간 전쟁으로 점철된 비극적 숙명을 안고 있었다. 칭기즈칸은 유라시아 대륙, 그 곳에 광대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관세무역장벽을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오늘날의 WTO와 흡사한 체제를 구축해 이미 중세에 1차 세계화를 현실화시켰다.

아마도 그가 아니었다면, 인류 문명은 지금보다 몇 백 년 정도 낙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칭기즈칸은 불과 1~2백만에 불과한 몽골 인구를 가지고, 무려 1~2억에 이르는 중국, 이슬람, 유럽을 150년 동안 통치했다.
칭기즈칸이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러, 알렉산더 대왕의 348만, 나폴레옹의 115만, 히틀러의 219만 평방킬로미터를 합친 것보다도 더 넓다.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 우리는 칭기즈칸을 위대한 정복자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정복사는 인류문명사의 두 번째 전환, 즉 산업혁명의 도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우리는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덧붙여 강조하거니와, 우리는 흔히 칭기즈칸을 세계사의 정복의 영웅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복사는 동양과 서양의 문명과 문화의 소통을 가져와, 그대로 이어졌으면 수백 년은 족히 더 걸렸을 인류문명사의 발전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증진시켰고, 이 발전을 기반으로 중세 르네상스 문명을 태동시키고, 이 문명은 인류문명사의 두 번째 물결을 이루는 모태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에 우연이란 없다. 나는 간혹 역사란 참으로 그 어떤 오묘한 법칙과 원리로 만들어지는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의 출현으로 유라시아 대륙은 하나의 교역권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서의 두 대륙을 연결하는 육로와 해로의 통과 시간은 크게 단축되었고, 오가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원(元)제국을 건설한 세조 쿠빌라이(재위 1260~1294년)는 몽골제국의 중심지를 몽골 본토로부터 원나라 수도인 대도(현재의 베이징 북부)로 옮겼다. 그리고 독립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던 서쪽의 한국(汗國)들을 묶어 세계 제국 구축을 시도했다.

칭기즈칸은 불과 1~2백만의 몽골인구로 무려 1~2억에 이르는 중국, 이슬람, 유럽을 150년 동안 통치했다. 몽골의 테를지 국립공원에 세워진 칭기즈칸 동상
칭기즈칸은 불과 1~2백만의 몽골인구로 무려 1~2억에 이르는 중국, 이슬람, 유럽을 150년 동안 통치했다. 몽골의 테를지 국립공원에 세워진 칭기즈칸 동상

城이 아니라 길을 냈던 쿠빌라이

쿠빌라이가 선택한 방안은 세계 제국이 자신의 명령에 일률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전 몽골제국을 경제와 유통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노력으로 각 한국(汗國)이 독립적인 길을 걸으면서 유라시아 대륙은 정치적으로는 다극화되었지만, 경제만큼은 원 제국을 축으로 하나의 영역으로 통합되어 갔다.

몽골 세계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게 된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역참제’였다. 역참망으로 연결된 몽골 세계제국의 영토는 옛 실크로드와 일치하는 지역이었다. 당나라 이후 단절되다시피했던, 이 교역로를 통해 동아시아 물품이 직접 유럽에 실려가 판매되었고, 소아시아나 유럽의 물품이 베이징으로 들어왔다.

쿠빌라이는 역참들이 이어주는 육로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남송을 정복한 뒤에는 남송의 해상함대를 고스란히 인수했고, 거기에서 얻은 나침반, 조선술, 항해술 등의 지식과 정보를 통해 동서를 이어주는 해상교통로, 즉 해상실크로드를 열었다.

이 해상교통로를 따라 도자기, 비단, 차(茶)들이 동쪽의 광주를 떠나, 동남아시아의 팔렘방, 브루나이, 인도 남쪽의 여러 항구를 거쳐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물품들은 그 곳으로부터 다시 북쪽 흑해와 지중해의 베네치아, 제노바 등으로 운반되었다.

쿠빌라이는 몽골의 군사력에다 유라시아 최대의 중국 경제력을 합하고, 이슬람 상인들을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팍스 몽골리아’ 세계 경제 체제를 이룩했다. 쿠빌라이는 이슬람 상인들이 가지고 있던, 오르톡(동료 조합)이라는 기업조직을 국가 경영에 끌어들였다.

그 결과 그들의 경험과 정치, 문화, 정보의 능력,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가 유라시아 전역에서 효과적으로 발휘되었다.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에 의해 몽골 고원으로 쫓겨날 때까지 약 100년간 원 제국은 이렇듯 동서양을 정치, 경제적으로 한데 어우르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1차 세계화’라고도 일컬어지는 몽골 세계제국의 유산은 유·무형으로 오늘날까지도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것이 중세 르네상스 문명 태동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칭기즈칸은 오늘 혁신이 필요한 우리 시대에 통치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그러한 통치력은 탁월한 지도자 한 사람이 가진 용기와 덕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자주 봐왔다. 시대가 인물을 낳는다지만, 결국 그 시대의 부름에 부응하는 올바른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 내는 일은 역시 탁월한 지도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역사의 순리일 것이다. 변화에는 그 시대에 맞는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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