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대통령 / (Carter, Jimmy, 1924.10.1~)
지미 카터 대통령 / (Carter, Jimmy, 1924.10.1~)
  • 미래한국
  • 승인 2002.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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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세계를 위해 일하는 봉사자
이동원 李東元1979년 6월 29일 국회 외무위원장이던 나는 김포공항에서 한미정상회담차 방문한 카터를 만났다. 첫 모습은 예상외로 평범했다. 케네디처럼 잘생긴 외모도 아니었으며, 존슨대통령처럼 거구도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한국의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회담내용도 인권문제에 대한 상호 의견조율이었다.한국방문 전 카터대통령은 밴스 미 국무장관을 통해 한국의 인권문제를 꼬투리 잡았다. 그래서 나는 박대통령에게 인권문제에 대해 자주 건의를 했다. 정관가엔 한·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고, 책임자들은 해법을 찾으러 동분서주 발걸음을 옮겨 다녔다. 그러나 실속은 없었다. 고쳐야 할 인권문제는 손도 안 대면서, 말로만 풀려 하니 어려울 수밖에…그런데 석 달 뒤 ‘카터대통령의 6월 중순경 일본방문’이라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이 기회를 잡아야지’ 나와 외교관계자들은 카터의 한국방문을 추진한 결과, 이 한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회담 전 날 캄캄한 늦은 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카터는 확실히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이례적으로 공항까지 마중 나간 박대통령과 간단히 악수만 끝낸 채, 그는 곧장 숙소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박대통령은 울분을 삼키는 모습이었다.다음날, 첫날의 암담했던 둘의 관계는 눈처럼 녹아버렸다. 정상회담을 마친 박대통령은 ‘허! 선교사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난 저렇게 진지하고 솔직한 사람, 처음대하는 것 같아…’라고 혼자 말을 했다. 그 후 한미관계가 다시 냉각되어 미국대사를 소환하며, 카터는 한국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서너 번 만났다. 만날 때마다 ‘세계적인 선교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어렵고 힘든 세계를 위해서 순교자 정신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1980년 대통령 직을 퇴임하고 봉사생활이 빛을 발한다. 퇴임하자마자 미 애틀랜타(Atlanta)에 카터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냉전 후 지구상에서 야기되는 중대사건의 분쟁해결사로서의 조정역할을 하고 있다.1994년 6월에는 개인자격으로 북한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갖고 교착상태이던 핵 문제를 논의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데 공헌했다. 우리 정부가 요청한 것도 아니다. 본인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늘 다짐하던 그는 현재까지도 국제문제 중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그래서 현재까지 국제 해비타트(Habitat)에서 펼치는 ‘사랑의 집짓기’운동의 일환인 지미카터 특별건축사업(JCWP:Jimmy Carter Work Project)을 19년 동안 해오고 있다. 이 사업으로 가난한 자들이 삶의 터전을 갖게 됐다. 2001년에는 카터가 한국을 방문해 사랑의 집짓기 자원봉사에 참여, 174세대의 집을 아산, 파주, 진주, 대구경산, 군산, 태백에 지어 주었다. 카터도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 오히려 사회를 위해 더 헌신하는 모습이 큰 귀감이 된다. 고위직을 물러나 그 권세를 유지하려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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