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악의 범죄자 법정에 세운다”
“세계 최악의 범죄자 법정에 세운다”
  •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
  • 승인 2018.01.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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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오곤 국제형사재판소(ICC) 의장
국제법치의 시험대 ICC의 한국인 수장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끈 사건이 여럿 있었다. ICC는 한때 ‘세르비아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다 알바니아계 국민을 대량 학살해 ‘발칸의 도살자’가 된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로비아연방 대통령을 기소했고 아프리카 수단의 현직 대통령을 제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ICC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을 기소해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총회(Assembly of States Parties)는 지난달 2017년 12월 한국인 권오곤 전 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미래한국>은 국제재판소 판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당사국총회 의장에 선출된 그를 만나 국제형사재판소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권오곤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권오곤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 지난달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일반 국민에게는 ICC가 어떤 곳인지 아직 생소합니다. 우선 ICC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ICC는 최초의 상설 국제 범죄재판소로 2002년 7월 1일 설립됐고 본부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습니다. 집단살해죄(genocide), 전쟁범죄(war crimes),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저지른 개인을 형사 처벌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법정이고 최근엔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를 관할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설립 배경은 인류에 중대한 죄를 지은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재판소가 과거 몇 차례 설립되긴 했어도 임시에 그쳤고 그나마 강대국에서 원하는 재판만 가능할 뿐 강대국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사건은 재판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상설 재판소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20년 전인 1998년 7월 17일 로마조약이 체결되면서 국제형사재판소라는 상설 법원이 만들어진 겁니다.

‘손과 발이 없는 거인’ ICC, 그 실효성은?

- 국가가 아닌 개개인의 범죄를 대상으로 재판하고 처벌하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국가간의 책임과 분쟁을 다루는 곳으로는 국제사법재판소(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가 있습니다. ICJ가 이를테면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는 문제와 같이 국가 간의 책임과 분쟁을 다루는 데 비해 ICC는 국가 책임이나 국민의 집단적 책임과 관계없이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루는 재판소입니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유고 내전에서 ‘인종청소’를 저지른 밀로셰비치의 공범인 스르프스카공화국의 라도반 카라지치 전 대통령과 세르비아계 군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와 같은 전범을 재판한 경우가 있었지요. ICC 최초의 사건은 국제관습법상 금지된 소년병 문제가 다뤄진 콩고민주공화국 루방가 재판 소추였습니다. 2003년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발생한 유혈분쟁 사태를 유엔 안보리가 회부해서 현직 수단 대통령을 기소해 구속영장을 발부해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 ICC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그 이후 진행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떤 구속력이나 실행능력이 있는 건지요.

국제형사재판소를 두고 ‘손과 발이 없는 거인’이라는 말도 합니다. 국내 형사권은 그 나라 주권에 속하기 때문에 군대와 경찰 등 이른바 손발이 있지만 국제형사재판소는 자체 병력이 없기 때문에 유엔이나 각 국가가 협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유엔재판소는 유엔 안보리가 만들었기 때문에 유엔 회원국은 무조건 협조해야 하는 의무, 강제력과 같은 우월적 지위(supremacy)가 있는데 ICC는 그렇지 않아요. 어떤 국가형벌권의 보충적 역할(complementarity)을 하는 기능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ICC는 해당국가에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의사가 없거나 능력이 없을 때 개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효율적이기 위해선 당사국의 협조가 절대적입니다. 수단 대통령인 오마르 알바시르라는 영장이 발부됐음에도 ‘그건 무효다’ 하면서 아프리카 유니온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무시하고 있지요. 아프리카 국가들이 협조하지 않는 바람에 전범을 잡기 위한 ICC의 노력이 난관에 부닥쳐 있습니다. 이럴 때 ICC 총회 의장이 개입해 협상하고 해결하는 그런 정치적 역할을 해야 되는 겁니다.

- 국제형사재판소는 어떻게 구성돼 있고 의장은 어떤 권한과 책임을 갖습니까?

상설 재판소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소재하고 있는데 소장단(Presidency), 전심부(Pre-Trial Division), 1심재판부(Trial Division), 상소재판부(Appeals Division), 소추부(Office of the Prosecutor) 및 사무국(Registry)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8명의 상설 판사들에 소추관 한 명 밑에 검사들이 많이 있지요.

유엔 재판소는 유엔 총회에서 뽑지만 ICC는 찬성하는 국가끼리 모여 만든 다자조약 기구이기 때문에 다자조약에 근거한 회원국 총회가 있어요. 번역을 당사국이라고 하는데 당사국 총회 의장이니까 재판소를 지원하고 감독하는 정치적 기구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기는 3년입니다. 각 대륙별로 3년씩 돌아가면서 해요. 이번엔 아시아 차례였는데, 외교부에서 저를 후보로 냈고 마침 다른 후보가 없었어요. 일본에서 후보를 내려고 하다 제가 나온다는 걸 알고는 철회를 해서 유일한 후보로 당선이 됐습니다.

- 유엔 사무총장처럼 ICC 의장을 뽑는 데도 대륙별, 정치적 배려가 작용하는군요.

5년 임기의 유엔 사무총장은 사무국 직원의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사재판소 당사국총회 의장은 이사회 의장도 겸하므로 유엔과 비교를 하자면 유엔 총회 의장과 사무총장을 합친 비슷한 중간정도랄까요. 재판소의 일은 재판소가 하는 거고 의장은 당사국총회에서 정치적 기능을 행사하는 겁니다.

유엔총회의장 Miroslav Lajcak과 ICC 당사국총회 의장단의 모습
유엔총회의장 Miroslav Lajcak과 ICC 당사국총회 의장단
세계 123개국 가입, 미국은 ‘공공의 적’?

- 임기 3년간 의장으로서 어떤 목표나 비전을 갖고 계신가요.

우선은 재판소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해야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15년 동안 5명의 ICC 역대 의장들은 모두 현직 유엔 대사라든지 외교관 출신이었어요. 판사출신 특히 국제재판소 판사를 한 사람이 의장이 된 건 처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대를 해요. 재판소는 ‘재판소 경험이 있으니 우리를 잘 도와줄 거다’ 생각하고, 각 국가들은 ‘아, 이 사람이 재판소를 속속들이 잘 아니까 예산도 잘 깎을 수 있고, 재판소를 유효적절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란 상반된 기대를 하는 것이지요. 이런 기대를 잘 조화시켜 운영하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두 번째로 ICC는 아프리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일부 편향된 인식을 해소하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ICC는 서방 국가가 아프리카를 길들이기 위한 편향된 재판소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의도적으로 아프리카를 타깃으로 삼은 게 아닙니다. 우선 아프리카 국가에서 스스로 사건을 회부(referral) 하거나 또는 유엔의 안보리가 회부한 사건이 대부분이고 ICC 먼저 제기한 사건은 몇 개 안 됩니다. 이러한 오해를 풀고 ICC가 누구보다 공정한 기관이라는 걸 설득시켜야 합니다. 또한 ICC에서 탈퇴하려는 나라를 설득하고 아직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을 가입시키는 노력의 급선무가 있습니다.

- ICC에 가입한 나라가 얼마나 되나요?

현재 세계 123개국이 가입해 있는데 유엔의 3분의 2가 되니 굉장히 발전했다고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아직도 유엔의 3분의 1이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보다 더 발전할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 국가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도 의장으로서 저의 목표입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은 53개국 가운데 19개국 밖에 가입이 돼 있지 않아요. 중국도 가입이 안 돼 있고 필리핀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중요한 나라 대부분이 가입이 안 돼 있는 상황입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등 큰 나라들이 가입하도록, 특히 아시아 출신 의장인 제가 있는 동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 노력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외교를 통해 인권선진국으로서 세계 평화와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정부에 ICC와 함께 발맞춰가자고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 미국은 ICC 회원국이 아니지요. ICC 내에서는 미국이 일종의 ‘공공의 적’이라는 분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미국은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자국 군인들이 혹시라도 전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국제형사재판소에 반대하고 있지요. 최근 미국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군인들이 테러리스트 혐의자들을 소위 고문한 것에 대한 사건입니다. 미국은 ICC 회원국이 아니지만 회원국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해서는 ICC가 관할권이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미국민을 ICC에 인도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양자협정, 이른바 불처벌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 협정을 거부했지요. 미국 시민이 ICC에 의해 구속되는 경우 미군 피고인을 구해 오겠다는 법안도 만들었는데, 세계 비정부기구(NGO)들은 이를 ‘헤이그 침공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얼핏 보면 미국은 ICC의 ‘공적’처럼도 보이지만 사실은 미국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동안 도망다니는 피고인을 잡는데 미군의 도움이 굉장히 컸고요. 미국은 ICC에 적대적이면서도 예를 들어 수단 대통령 회부와 같은 경우는 찬성하고 적극 도왔습니다. 미국은 세계 질서에서 우월적 지위 정도가 아니라 지배적이지요. ICTY 재판에서도 증거가 없어 애를 먹고 곤란할 때 미국이 찍은 위성사진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돕지 않으면 ICC 운영에도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권오곤 의장과 김범수 본지 발행인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인터뷰 중인 권오곤 ICC 의장과 김범수 본지 발행인
국제 분쟁과 사법적 해결, 아직은 미완

- ICC의 취지를 긍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이상적 접근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과연 국제분쟁을 사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그동안 어떠한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는지, 그 실효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를 만든 이유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오히려 영웅 취급을 받거나 처벌을 받지 않고 끝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에 미치는 영향이나 트라우마를 없애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지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뉘른베르크 재판소를 만들려고 하던 당시 처음에는 처칠, 루스벨트와 같은 사람들은 회의적이었어요. 전범들에게 변명의 자리만 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곧 마음이 바뀌어서 공정한 재판을 통해 처벌하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역사에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시작했습니다. ICC 재판이 진행 중에도 시리아 사태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 당장 억지효력이 크게 있다고 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분쟁 지역에서 대통령이나 지도자들이 가령 ‘이런 일을 해서 ICC에 기소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려들을 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만으로도 효과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재판하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전쟁에서 엄청난 민간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요. 국제형사재판소의 역사가 이제 25년이 될까 말까 짧은 역사이기 때문에 발전하는 단계라서 한 번에 완벽을 요구할 순 없지요.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처벌, 당장은 어려워. 지금은 증거를 모을 단계

- ICC 재판 판결이 피해자들에 대한 정신적, 정서적 위로라든가 역사적 교훈에만 그친다면 여전히 아쉬울 것 같은데요.

ICC는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피해보상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를 위한 신탁 기금(The Trust Fund for Victims)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분담금이 10만 달러 정도에 불과한데 다른 선진국들이 내는 기금은 수백만 달러에 달하지요. 콩고 반군 소년병과 같은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줍니다.

희생자들을 어루만지는 그런 제도를 처음 도입해 운영하고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절차가 비효율적이고 늘어진다고 비판하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며 피해 보상도 해 주는 등 형사재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고 행각합니다. 또 저와 같은 사람은 그런 피해자들을 만나 세계가 당신에게 관심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 국제적 범죄를 얘기할 때 북한의 인권 상황과 독재자 김정은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얼마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에서 김정은을 ICC에 제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었지요.

정확히 말하면 COI가 아직은 확정적인 증거조사를 해서 기소를 하자고 한 것은 아닙니다. 광범위하고 집중적인 여러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인권 탄압 정도가 심하고 국제법상 이야기하는 ‘인도에 반하는 죄’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입니다. ICC가 조사를 시작하여 범죄 책임자가 있다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지, 당장 제소 한다 안 한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증거의 정도가 유죄를 입증할 정도는 아니지만 수사를 시작할 정도는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회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은 ICC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관할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유엔 안보리가 회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회부하든지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획기적인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ICC가 권한을 행사하려면 안보리의 회부가 있어야 하지요. 그 다음 수사를 하고 진행이 되는 겁니다.

- 북핵 사태를 계기로 한반도 변화가 예상되기도 합니다. 통일준비가 필요할 텐데,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준비가 되고 있습니까. 현재 법무부에서 북한인권 법률자문단 위원장도 맡고 계시지요.

통일 이후의 관련 연구는 여기저기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조절이 좀 필요할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관마다 하고 있고, 중복적이기도 하고요. 특히 북한인권 같은 경우 당장 김정은을 제소하자는 말도 있지만 그건 정치적 주장이나 압력으로만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꼼짝할 수 없는 증거가 나와야 제소가 가능하지요.

기소해봤자 잡아올 방법도 없고요. 또 하나, 김정은을 기소하면 남북 정상회담을 할 수도 없게 된다는 점이 있습니다. 우린 ICC 회원국으로 김정은을 잡아와야 할 의무를 가졌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ICC 위반이 되는 겁니다. 지금은 차곡차곡 증거를 모을 단계라고 봅니다.

- 개인적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ICC 의장이 되신 것은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가적으로도 영예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의장님은 1979년부터 22년 동안 국내 형사 부장판사로 재직하다 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으로 가셨지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지금은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 대법원 형사사법발전위원장, 한국법학원장 등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지요.
젊은 판사 시절 초기에 외교관 선배로부터 ‘당신은 한국의 대법관 뿐 아니라 세계 대법관이 되는 꿈을 꿔봐라’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대해 처음 생각해보게 됐지요.

그때는 ‘그런 곳이 있구나’ 정도의 잔상이 머리에 남아 있었는데 대구에서 판사로 있는 동안 ICTY(유고슬로비아국제형사재판소)에서 판사 선거를 하는데 지원할 사람이 있느냐는 공문을 접하게 됐습니다. 이전에 생각해본 바 있는 ICJ 판사와 동일한 대우라는 얘기를 듣고 지원했습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운 좋게 당선이 됐습니다.

- 세계 사법계에서 우리나라 위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소수의 탁월한 인재 개개인이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것으로 그칠게 아니라 시스템적인 지원이 마련돼야 우리나라 법조인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세계로 뻗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기엔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국제재판소에 처음으로 진출하신 분은 돌아가신 박춘호 교수님이 함부르크에 있는 해양법재판소에 가신 경우였습니다. 사법시험을 친 법조인으로서 국제재판소에 진출한 건 제가 처음입니다. 그 이후 국제형사재판소 분야에서는 한국이 판사를 제일 많이 배출했을 정도로 활발합니다.

송상현 교수님이 국제형사재판소 판사에, 박선기 재판관이 르완다 전범재판소에, 정창호 재판관이 크메르 루주 재판관이 되기도 했고요. 임시 재판소 재판마다 판사들이 있고, 소장, 부소장, 제가 의장까지 하니까 많은 겁니다. 때문에 ‘왜 한국인이 국제형사재판소 진출이 활발한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국력이 커진 결과라고 볼 수 있지요.

2017년 11월 말 유로머니가 발간하는 아시아지역 유력 법률 전문매체 ASIALAW에서 선정한‘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권오곤 의장. ASIALAW에서 개인 변호사에게 시상하기 시작한 후 첫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안 았 다. ASIALAW는 권 의장의 UN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 근무 업적을 주요 선정 사유로 밝혔다.
2017년 11월 말 유로머니가 발간하는 아시아지역 유력 법률 전문매체 ASIALAW에서 선정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권오곤 의장. ASIALAW에서 개인 변호사에게 시상하기 시작한 후 첫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안 았 다. ASIALAW는 권 의장의 UN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 근무 업적을 주요 선정 사유로 밝혔다.
‘창조적 절충형’ 한국이 국제형사재판에 강한 이유

-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활동하면 우리나라 사법체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생각보다 굉장히 선진적입니다. 한국에 있는 사람만 몰라요. 특히 형사재판의 경우, 국제형사재판은 국가간에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영미법이나 대륙법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절충형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데, 절충형을 만들었다는 것은 선례가 많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법 자체가 영미법과 대륙법을 절충한 절충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적인 해결책을 낼 수 있고, 그런 면에서 굉장한 장점이 있습니다. 효과적이면서도 공정한 결론을 내는데 한국 법조인이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법조인의 교육, 사법연수원의 2년간 법률 교육 이런 것들이 굉장히 좋고요. 어학만 받쳐주면 더 좋겠지요.

두 번째로는 지나치게 국내적 시각으로만 보다보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국가들이 우리나라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했으면 합니다. 어떤 나라의 발전 정도와 선진 수준의 척도는 그 나라 사법제도와 법률제도, 더 나가서 법치(rule of law)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느냐로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세계 사람들이 모두 우리나라를 쳐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화하는 데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사진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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