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국정원 해체를 원하는가
그들은 왜 국정원 해체를 원하는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01.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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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

국정원의 대공수사 업무가 폐지되고 해당 업무가 경찰로 이관되는 방향으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닥을 잡으면서 국정원 내부는 짙은 그림자로 뒤덮였다.

국정원 내부 소식에 밝은 전직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국정원은 사실상 해체된 것”이라는 평가에 이의가 없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 출신의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도 국정원 대공수사 업무 폐지에 대해 “북한 간첩들에게 고속도로를 내 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30년간 국정원에서 대공수사 업무를 해왔던 송봉선 양지회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부분은 잘못이 있다고 해도, 대공 방첩 업무는 국정원이 잘해왔습니다. 예산이나 활동면에서 국정원은 상당히 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왔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정부와 여당이 국내와 국외 경계선이 없는 간첩을 잡아야 하는 문제를 지나치게 호도시켜 마치 국정원이 큰 잘못이라도 한 듯, 국민들을 현혹시켰는데 전직자로서 좀 야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 지금 국정원이 문제가 되는 내용은 국내 정치 개입 부분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직원과 민간 팀이 합작으로 행했다는 댓글부대 사건, 그리고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문제로 국정원이 비난을 받고는 있지만 민주당 스스로 ‘종북’임을 인정한 통합진보당 이석기와 RO 조직을 잡아낸 것이 다름 아닌 국정원이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대공수사와 방첩 업무의 문제로 지적받는 사건은 2013년 탈북 중국인 유우성 씨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유일하다. 당시 이 사건의 원인 제공은 유우성 씨에게 있었다.

그는 중국 국적의 재북 화교였으나 탈북자 신분으로 국정원을 속여 입국한 후, 서울시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국내 탈북자 명단을 작성해 중국을 거쳐 북에 무단 입국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망에 걸려들었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재판과정에서 제시된 유우성 씨의 중국과 북한 출입내역이 중국 정부가 발급해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국정원 담당자가 재판에 쫓겨 중국내 조선족 에이전트에게 증거 확보를 맡겼다가 에이전트의 과욕으로 일이 그릇된 케이스였다. 하지만 당시 좌파 시민단체들과 민주당은 이를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규명해, 국정원 해체마저 요구하며 나서는 비이성적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중국 국적인 유우성 씨는 마치 진짜 탈북자라도 된 듯이 언론에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좌파 시민단체들과 야당 정치인들이 쇼를 하는 것이죠. 과거 그들이 연루 되었던 국정원의 대공사건과 간첩 사건들을 호도하고 향후에도 이들과 교류를 하기 위해 국정원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로 이해됩니다.”

국정원에서 대공수사를 담당해 왔던 다른 국정원 관계자의 말이다.

청와대 주사파와 일심회 간첩사건

실제로 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과거 북한 지령에 따라 체제 전복을 꾀한 세력들과 정치적 교류를 하거나 심지어 명백한 간첩행위에 연루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1994년 북한 지령에 의해 지하당 조직으로 결성된 ‘구국전위’를 비롯해 주사파 종북 이적단체로 판결된 한총련, 그리고 북한군과 협력해 내란을 기도했던 이석기 RO사건과 일심회 간첩 사건이 있다.

따라서 재야 정치활동을 하던 과정에서 종북세력과 함께 대남 고첩들의 위장 포섭 등에 연루되기 쉬웠던 현 여당과 386 청와대 관계자들로서는 어떻게든 국정원의 대공수사가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들로서는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 국가정보원은 마이클 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업가(장민호)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동시에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회합통신 등)로 민주노동당 전 중앙위원 이정훈도 체포 검거했다.

이른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심회 간첩사건’이었다. 사건의 주모자 장민호는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반체제 활동을 하다가 북한을 드나들며 간첩교육을 받았고 지령에 따라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다가 노무현 정부의 386인사들과 교분을 트며 IT와 방송사업을 해나갔다. 일심회 관련자들은 모두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일심회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대공수사국장과 국정원 2차장 간에 불화설이 불거졌다. 원인은 일심회 총책인 마이클 장(장민호)의 집을 국정원이 압수 수색했을 때 그의 메모지에서 나온 청와대 P 비서관의 이름과 함께 수차례 통화 내역이 확인되면서 이 비서관을 수사해야 한다는 대공수사팀과 청와대 386 출신들과 코드를 맞춘 국정원 차장 간에 충돌이 빚어졌던 것.

당시 이 사건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국정원내 갈등은 회의 중에 탁자가 뒤집어지고 의자가 날아다닐 정도로 치열했다. 결국 김승규 국정원장이 결단을 내려 수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한 후 김승규 원장은 일심회 수사 중에 국정원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후임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김만복 국정원장이 수습에 나섰고, 사건은 ‘메모는 없었다’는 입장으로 정리됐다. 이후 P비서관은 재판을 통해 의혹을 보도했던 국내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다. 재판부는 ‘보도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국정원내 상처는 앙금으로 남게 됐다.

우리는 당시 국정원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국정원의 대공수사 업무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뤄지고, 국정원 조직은 대통령의 지시를 100% 따라야 하는 직속기구여서 군대처럼 항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직 국정원의 한 간부는 이러한 국정원의 입장에 대해 “대통령이 ‘저 자를 간첩으로 만들라’고 하면 국정원은 만들어야 하고, 똑같이 간첩활동을 한 자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수사를 중지하라, 자료를 삭제하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정보원이‘국가’와‘원’을 빼고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2017년 11월 23일 KBS가 보도했다./ KBS 뉴스영상캡처
국가정보원이‘국가’와‘원’을 빼고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2017년 11월 23일 KBS가 보도했다./ KBS 뉴스영상캡처
경찰이 대공수사를 할 수 없는 이유

군인이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처럼 국정원도 그러한 조직이라는 사실은 청와대 386 일심회 연루 의혹 사건을 수습 정리했던 김만복 전 원장이 언론에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김 원장은 당시 언론에 ‘국정원은 군대와 같아서 하극상이나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대공수사 업무를 폐지하고 이를 경찰에 이관하는 것에 문제는 없을까. 본지 <미래한국>이 주최했던 좌담회에서 제기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사실상 국정원 해체’로 모아진다. 그 주장들을 직접 들어보자.

- 우리나라는 국정원, 기무사가 방첩 기능을 하는데 이 가운데 국정원이 약 80%를 수행한다. 대공수사는 방첩 업무와 뗄 수 없는데 고도의 보안과 전문성, 그리고 공작을 포함한다. 이런 방첩 업무를 이삿짐 옮기듯이 경찰에 이관하는 것은 방첩 업무를 모르는 발상이다. 방첩기관이 4개 정도면 하나 정도를 이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 소장, 전 국군기무사 참모장)
- 대공수사에는 공작 여건이라는 것이 있다. 대북관계 에이전트들을 활용해서 그들이 일본, 중국과 같은 제3국을 통해 작업을 한다. 그런 면에서 해외 공작 네트워크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망을 통해서 공작 여건이 마련된다. 국정원은 전 세계에 다 있다. 경찰은 그런 거미줄 같은 해외 공작망이 없기에 새로 만들어야 한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다. 또 국정원은 기업으로 위장한 블랙요원들이 활동한다. 그런 구조들이 서로 긴밀하게 협업을 해야 공작 여건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해외공작망은 대공수사에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조직을 경찰이 구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송봉선 전 국정원 북한단장)
- 과거 경찰이 안보수사를 하게 되면 야당들로부터 난리가 나곤 했다. 온갖 정치적 압력이 들어왔다. 경찰이 대공수사 업무를 하기 어려운 점은 대공수사가 합법과 비합법을 넘나든다는 점에도 있다. 초기 대공수사는 도청, 교란, 기만과 같은 공작을 통해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합법과 비합법의 영역을 넘나들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초기 정보활동 수사단계를 경찰이 할 경우 경찰법에 의해 그런 비합법의 활동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유동열 현 경찰대 안보대책실 선임연구관)

이처럼 대공수사와 방첩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는 그 업무를 아무리 경찰로 이관한다고 해도 간첩을 잡기 위한 공작(Intelligence)의 필요성 때문에 치안이 목적인 경찰로서는 업무에 한계가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과 같은 조직이 왜 헌법에 규명되어 있지 않는가 라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게 된다. 국정원과 같이 헌법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기관은 합법과 비합법(불법을 포함해서)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대상으로 방첩 수사하는 독일 헌법수호청

2012년 2월 독일은 좌파 정치인 대규모 사찰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우리 국정원에 해당하는 독일의 헌법수호청이 ‘좌파당’의 당수 게지네 뤼치와 그레고어 기지 원내대표, 그리고 페트라 파우 연방하원 부의장 등 굵직한 정치인들을 사찰해 왔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지는 이 사건을 특집으로 다뤘다. 당사자들의 항의는 격렬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 사찰은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해 여당인 그뢰에 기민당 사무총장은 “체제 변경을 요구하는 자가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더 놀랄 만한 것은 헌법수호청장의 태도였다. 니더작센 헌법수호청의 바르겔 청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놓고 “좌파당 의원들에 대해 비밀정보기관적 감시를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던 것. 독일 집권 여당과 헌법수호청이 당당할 수 있는 데는 배경이 있다.

라이프치히 소재 연방행정재판소는 2010년 7월 좌파당의 원내대표인 보도 라멜로 의원에 대한 감시가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핵심은 ‘자유의 한계’였다. “체제 변경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고 연방법원은 판결문에 명시했다.

그러한 독일의 헌법수호청은 설립된 해인 1950년부터 1993년까지 377개의 반체제 단체와 이적단체, 극렬분자 단체를 찾아내 이들 조직을 해체하고 그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또 1986년까지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 350여만 명에 대해 ‘헌법 충성도’를 심사, 그 중 2250명을 탈락시켰다.

현직 공무원과 교사에 대해서도 ‘헌법 충성도’를 조사해 2000여 명을 중징계하고 256명을 파면시켰다. 독일이 이렇게 반체제 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이유는 이들이 사회적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의 적’들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우리 국정원이 지난 김대중 정권 시절 그 기능이 거의 무너졌다는 사실에 있다.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前 국정원 제1차장)은 “600여 명의 베테랑들이 해임돼 큰 타격을 입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월 14일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월 14일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
국정원 대공수사가 공작을 포함하는 이유

국정원의 대공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정보기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은 ‘기묘한 기관’이다. 직원들은 공개된 장소에서는 하나 같이 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낀다. 국회에 출석해서는 가림막과 부채로 얼굴을 가린다.

이 모두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정작 국정원이 기묘한 까닭은 국가 기구를 명시하는 헌법 어디에도 ‘국가정보기구를 둔다’라는 조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나라든 국가정보기관은 그 나라의 법집행 기관과 보이지 않는 갈등을 빚는다.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은 정치학자, 법학자들의 두통거리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국정원의 영문표기는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다. 한자로는 國家情報院이라고 쓴다. 국민들은 국정원의 이 명칭에 대해 궁금함을 갖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정원’의 명칭은 전 세계 석학들 사이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쟁점의 상징이다. 인텔리전스(Intelligence)가 정보(information)냐는 문제 때문이다.

별것 아닌 주제인 것 같지만, 이 문제는 현재 우리 국정원이 처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적에 대한 공작(Ninja, 忍者)과 밀정(Spy, 間者)의 ‘Intelligence’개념이 1999년 김대중 정권 시절, 속칭 민주화(?)돼 ‘지식’(學者)의 information의 개념으로 퇴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역할이 과거 ‘국가안전기획부’와 같은 대공, 방첩의 ‘인텔리전스’ 기능이 아니라 ‘정보분석’이라는 인포메이션에 국한된다고 착각하게 만든 국정원 ‘改惡’에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 문제를 연구한 정준표 영남대 교수는 ‘미국의 Intelligence 개념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intelligence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정준표 교수에 의하면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을 ‘인텔리전스’로 받아들인 국가들은 자국의 정보기관에 적을 제거하는 은밀한 공작의 ‘닌자’와 적의 정보를 은밀히 캐내는 밀정으로서 ‘간자’(間者)의 역할을 부여했다. 반면에 Intelligence를 공개된 정보와 지식으로 받아들인 국가들은 정보기관에 이를 분석하는 학자(學者)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해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이길규 前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는 “정보(intelligence)는 지식인가, 활동인가, 조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정보는 지식인 동시에 활동이고 조직이라는 말이 타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며 이를 단순히 지식으로 파악하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를 비롯, 국내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이길규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과거 김대중 정부가 국제정치에서 국가간에 힘의 논리를 중시하는 ‘현실주의’ 관점을 버리고, 평화질서라는 ‘이상주의’ 관점을 ‘국가안전기획부’에도 적용시켜 그 이름을 지금의 ‘국가정보원’으로 만들었던 것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대공, 대간첩 작전은 유명무실하다 할 정도로 약화됐고 현재 ‘국정원 사태’처럼 국정원은 정쟁의 대상이 돼 버렸다. 도대체 국정원이 뭐길래 ‘공작 댓글’을 다느냐는 것이 지금 야당과 일부 국민들의 주장인 것이다.

인텔리전스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는 적으로부터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사전에 적을 제압하기도 했다. 인텔리전스를 단순히 정보 분석으로만 여겼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인텔리전스와 인포메이션은 다르다

미국의 그러한 ‘학자적 정보기관’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어 2000년 9·11테러 때 FBI가 입수한 테러첩보를 CIA 정보분석관들이 무시하는 상황을 낳기도 했다. 반면 이스라엘 모사드는 2011년 11월 12일 이란 테헤란 인근 미사일 기지를 폭파해 이란 혁명수비대원 17명을 제거했다. 이란 핵무기 개발에 관여한 핵물리학자를 포함해 과학자 다수가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2008년 2월 12일 헤즈볼라 지도자 이마드 무그니예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모사드에 의해 암살됐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2인자이자 ‘검은 9월단’의 전략가 알리 하센 살라메, 검은 9월단 지도자 아부 유세푸, 이라크 초장거리포 개발자 제럴드 폴 등 테러리스트와 과학자가 모사드에 의해 제거됐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바로 국가정보기구 이론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학자, 로웬썰(Mark M.Lowenthal)의 ‘인텔리전스’론에 가장 충실한 경우다.

로웬썰은 ‘인텔리전스란 최종정보(finished intelligence)인 분석물 뿐만 아니라 특정 비밀공작 및 방첩활동 그 자체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국가정보기관론은 정설(定說)로 여겨지며 국가정보기관을 ‘정보 수집 및 분석기관’으로 보는 램덤(A. Ramdom)의 주장은 소수 이설(異說)에 불과하다. 문제는 오늘 북한을 주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정원이 그러한 소수 이설에 의해 개편돼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본연의 임무인 대공과 방첩 임무는 오늘날 사이버 공간으로 대폭 이동했다. 그 이유는 바로 김정일의 2000년 지시 사항에 있다.

1997년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는 ‘컴퓨터 바이러스’ 침투가 원자탄보다 효율적이라는 개념 아래 1997년 6월 100여 명 규모의 컴퓨터 바이러스 부대를 창설했고 2000년에는 사이버 공격과 정보 교란의 모의 훈련을 임무로 하는 ‘넷 포스(Net Force)’부대를 만들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이 밝힌 바 있다.

당시 북한은 중국 사이버부대의 지원 하에 본격적인 대남 사이버전을 준비하면서 정찰총국 지휘의 대남 선전전을 김정일의 명령 하에 수행해 왔다. 김정일이 2000년대 초부터 인터넷을 ‘남한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사실상 ‘국가보안법 해방구’로 삼아 대남 심리전에 적극 이용해 왔던 사실은 여러 차례 확인된 바도 있다.

국정원이 파악한 北 사이버 댓글부대는 누가 막나

실제로 지난 2011년 검거된 ‘왕재산’ 지하당이나, 이적단체인 ‘실천연대’는 2007년 1월 ‘온라인 실천단’을 조직,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댓글 달기와 비밀 카페 운영 등을 통해 사이버 상 여론을 호도해 온 것이 국정원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북한의 인터넷 선동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북한 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은 ▲대북정책 비난 ▲4대강·제주해군기지 등 국책사업 반대 ▲천안함 폭침 부정 ▲특정 정당 비난/옹호 ▲총선·대선 개입 등 내정간섭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이러한 대남 루머와 선동 공세에 대응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북한의 사이버 공간을 통한 대남 심리전은 천안함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본지 <미래한국>은 이 문제를 면밀히 추적해 천안함 괴담의 배후에 김정일의 대변인이라는 조선신보 주간 김명일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이 있었음을 특종으로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모두 대남 통일전선을 해외공작 차원에서 진행하는 ‘통전부 26호’가 관리하는 대남선전 팀이었다. 이들은 홍콩의 영문지 아시아타임스와 같은 매체에 미국의 핵잠수함이 훈련 중에 천안함을 오폭하거나 충돌했다는 주장을 제일 먼저 제기한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주장을 국내 좌파매체들이 가감 없이 보도했고 그 기사가 네이버, 다음, 네이트와 같은 포털과 블로그, SNS를 통해 확산됐다. 당시 국정원에서 이 문제를 다뤘던 한 관계자의 증언은 이렇다.

“국내에서 천안함 루머를 조직적으로 퍼트리는 상당수 종북성향의 게시자들을 파악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 인터넷 여론에 면죄부를 주다시피한 사법부의 판결 동향이 내부에서 문제로 제기됐죠. 당시 적극적으로 천안함 흑색선전 유포자들을 검거해서 기소하지 못했던 점에는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국정원의 인터넷 사이버 활동에는 사실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려는 사법부의 의지가 반체제 종북들의 제거를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정원은 검거나 조사보다는 반론과 댓글로 그러한 심리전에 맞서는 쪽으로 대공팀을 운영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 개인의 주견이 담긴 글들이 하나도 없으리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국정원의 그러한 활동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 점에서 국정원의 사이버 대공활동은 피할 수 없이 이념이 서로 다른 국내 정치세력들 사이에 찬·반 논쟁을 불러올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국정원 업무의 핵심인 대공수사를 폐지하고 치안이 본연의 업무인 경찰에게 그 기능을 넘긴다는 것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게 되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반길 사람들은 대남작전을 수행하는 북한 공작부서와 국내 간첩들 뿐이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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