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정보기관은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
‘유능한 정보기관은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8.01.2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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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정보기관은 국가 수호의 영웅

007 제임스 본드의 등장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었다. 2015년에 24편 째 영화 <스펙터>를 내놓으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007 시리즈는 1962년에 첫 작품 <살인번호>(Dr.No)가 나왔다. 새로 등장한 스파이에 세계 영화 관객들은 열광했다. ‘007 신드롬’의 시작이었다. 이어 <위기일발> <골드핑거> <선더볼 작전> 같은 후속작이 잇따라 나왔다.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으니 제임스 본드의 에너지는 세계 최강이라 할 만하다.

007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인물은 소설가 아이언 플레밍(Ian fleming). 그는 1952년 스파이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카지노로얄>을 발표했다. ‘007’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는 스파이의 첫 등장이었는데, 당시로서는 선풍적이라 할 만큼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고,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공산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을 때였다. 이념 대립을 의미하는 ‘냉전시대’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영화 <살인번호>는 소설의 인기를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경우였다.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는 큰 키와 건장한 체격, 유머를 갖춘 말솜씨와 세련된 매너, 무기와 각종 장비에 대한 탁월한 지식, 술과 도박에도 남다른 재능을 갖춘 만능 스파이. 비밀 업무를 하는 덕분에 돈을 쓰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었고, 그가 만나는 여자들마다 매력에 홀렸다. 당시 영국의 젊은 신인 배우였던 숀 코너리는 소설이 묘사하고 독자들이 상상했던 제임스 본드 이미지를 완벽하게 스크린으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007 제임스 본드는 냉전시대의 슈퍼 영웅

이전의 영화들에 등장한 적은 주로 인디언, 건달, 살인자, 독일군 등이었다. 인디언은 서부 영화에 아이콘처럼 등장했고, 시골 마을이나 도시의 적은 법을 우습게 알며 범죄적 행동을 하는 불량배들이거나 폭력 조직에 속한 건달들이었다. 전쟁 영화에서는 독일군이 악당 역할을 도맡다시피 했다.

모두 현실에서 경험했거나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악당들을 제압하는 것은 보안관, 기병대, 경찰, 직책은 없더라도 정의감에 불타는 용감한 청년 같은 영웅들이었다. 악당과 영웅의 모습은 각각 다르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커뮤니티의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면 악당, 그것을 지키려 하면 영웅으로 이원화 한다. 단순하게 보아 좋은 놈, 나쁜 놈의 대결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본다면 천사와 악마, 선과 악의 대결 구도다. 대부분 결론은 해피엔딩. 선은 언제나 마지막 승리를 얻는다. 악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은 독자나 관객의 보편적 정의감에 어긋나는 일일 뿐 아니라 세상의 종말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007 제임스 본드는 그가 활동하는 무대와 상대를 확 바꿨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지역’이 아니라 ‘나라’ 또는 ‘세계’로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적도 예전처럼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 있다. 비밀스러운 조직을 갖춘 경우도 있고 내가 일하는 조직 속에서 암약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해야 하고, 내가 속한 조직이나 동료 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활동해야 하는 상황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열전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제임스 본드는 그런 불확실과 두려움 가득한 세상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자유세계를 지키는 영웅 역할을 한 것이다.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밀 범죄조직 ‘스펙터’는 한동안 소련의 KGB와 연계된 것처럼 움직이지만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변모한다.

소련의 붕괴는 영화속 007 제임스 본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이 확실한 적이었지만 동서 화해(데탕트)와 소련 붕괴로 옮겨가는 시기에는 상대할 적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시리즈 10편인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에서는 제임스 본드 소련 정보기관 요원과 공동 작전을 벌이는 내용이 등장한다.

결국 <스카이폴>(2012)에 와서는 MI-6의 작전 실패로 조직의 책임자가 살해 위협의 대상이 되고, 조직은 폐기될 지경에 이른다. 작전 수행 능력을 잃어버린 정보조직은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는 여론이 정부 최고위층에서 제기된다. 제임스 본드의 활약은 상황을 반전시킨다. 조직이 치명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조직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작용한다.

안보를 포기하려는 나라는 없다

미국영화 <미션임파서블-로그네이션>(2015)에도 왜 비밀 정보조직을 유지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미국 정부는 공식 조직에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비밀 첩보기관 IMF (Impossible Mission Force)를 해체하려 한다.

알란 헌리 CIA 국장은 IMF의 해체를 논의하는 상원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IMF가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탓에 관리가 불가능하고, 오히려 미국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진술한다. 결국 에단 헌트를 포함한 팀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정체불명의 테러조직 ‘신디케이트’는 IMF 전멸 작전을 펼친다.

그 상황에 맞서 에단 헌트는 신디케이트 조직이 영국 정부의 최상층부까지 침투해 세계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적을 분쇄함으로써 비밀 정보 조직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증명한다. IMF 조직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헌리 국장 조차 상황이 안전하게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입장을 바꾼다.

미국 영화 <긴급명령>(1994)에는 CIA 조직을 권력에 동원하려는 대통령과 맞서는 정보 전문가의 치열한 투쟁이 펼쳐진다. 콜롬비아 마약 조직 소탕을 위한 진압작전이 교묘하게 왜곡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잭 라이언은 미국 내 정보 라인이 정치 권력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정점은 대통령과 일부 참모들. 정보 조직을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정의와 자유를 지키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비밀 정보조직은 더러 작전에 실패하기도 하고, 부당한 업무에 연루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정보 업무 자체를 부정하거나 조직을 폐지하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영화들이 다루는 방향은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을 바로 잡는 것이지 조직은 살려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된다. 지금 한국 정부가 국정원을 해체 수준으로 조직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언젠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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