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망가뜨린 국정원
정치가 망가뜨린 국정원
  • 고성혁 역사안보포럼 대표
  • 승인 2018.01.2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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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을 개혁한다는 미명 아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데 초점을 둔 각종 법안 13건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정원법 전부 개정안(2건), 국정원법 일부 개정안(6건), 국정원 직원법 일부 개정안(5건)이다.  공통점은 국정원의 권한과 기능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은 수난을 겪었다. 특히 좌파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정원 내부 조직과 인원은 대폭 조정되거나 교체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 국정원은 또 다시 대폭 물갈이의 타깃이 되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비극이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명칭은 중앙정보부(1961~1980) → 국가안전기획부(1981~1998) → 국가정보원(1999~현재)으로 3번 개칭되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의 모토는 무려 4번 바뀌었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세운 국정원의 모토는 ‘정보는 국력이다’이다. 마치 IT 산업 기관의 표어 같은 느낌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의 모토를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바꿨다. 무슨 대학교의 교훈처럼 들린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또 다시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변경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의 모토는 지금까지 한결같다. ‘This is my secret - Alway and Forever’ 정보기관의 은밀성과 기밀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토가 변경되는 것도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비극의 하나다.

원세훈,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모두 구속되었다. 좌파 정권 시절의 신건, 임동원 국정원장도 구속된 바 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자해까지 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김형욱 중정부장은 파리에서 실종되었다.

그리고 김재규 중정부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고 결국 사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 수장은 하나같이 제 명에 못 살거나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다.

비극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업무와 대공수사권의 전면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미 날개가 꺾인 국정원도 2017년 11월 29일 자체 개혁안을 내놓았다. 골자는 ▶대공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옮기고 ▶국정원의 정치 관여 행위를 엄벌하고 이름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칭하며 ▶친 여권 성향 민간 위원이 포함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비밀 활동비(특활비 포함)의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해 전직 국정원 직원과 전화 통화를 했다. “간첩 잡는 일을 포기하면 국정원이 있을 이유가 무엇이냐”, “문제가 되는 것은 국내 정치 개입인데 왜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느냐?”며 분노를 토로했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장이었던 김승규 전 원장조차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공수사권 폐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창설 배경

국가정보원(국정원)의 홈페이지는 아직도 변경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전신(前身)은 육군 특무대(CIC)라 할 수 있다. 1949년 10월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대(CIC) 내에 군경(軍警)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됐다. 초대 본부장은 김창룡이었다.

군경합동수사본부는 1950년 1월 조선노동당 남반부 정치위원회 총책 성시백과 관련자 186명을 체포했다. 6·25 전쟁 직전인 1950년 3월에는 남로당의 거물 간첩 김삼룡과 이주하를 체포했다. 북한은 조만식 선생과 거물간첩 김삼룡 이주하 맞교환을 제안했다. ‘한국의 마타하리’라는 여간첩 김수임도 김창룡이 체포했다.

중앙정보부 창설 이전 남로당세력과 간첩 검거는 군의 특무대(CIC)가 주도하고 경찰은 보조 역할을 했다.  육군본부 정보국장이 특무부대장을 겸임했다. 김형일 대령(초대), 백인엽 준장(2대), 이한림 준장(3대), 이후락 대령(대리근무) 등이 정보국장으로 특무부대장을 겸했다. 특무부대는 1961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창설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보기관이었다.

중앙정보부는 검찰, 경찰, 군특무부대의 기능을 통합하여 대공(對共) 최일선에 섰다. 비록 정지권의 외압과 일부 불미스러운 사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공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일심회 사건, 왕재산 사건, 그리고 이석기와 관련된 국회의원 내란 선동 RO 사건은 모두 국정원이 검거한 간첩 및 대공사건이다.

안기부 및 국정원등 정보기관의 수사결과 대법원은 많은 좌익단체를 이적단체로 판결했다. 국정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법원 판결을 받은 이적단체 현황은 다음과 같다.

 - 민자통(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1990.8.28. 대법원)
- 주체사상 등 종북사조를 전파하고 국가보안법 철폐·미군 철수·연방제 통일과 같은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에 동조하며 과격투쟁을 선동
- 범청학련 남측본부(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1993.9.28. 대법원)
- 북한과 연계하여 ‘한총련’의 반미종북투쟁을 배후조종하고 조직적인무력선동을 위해 이적 표현물을 제작하고 물리력에 의한 폭력시위 주도
- 범민련 남측본부(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1997.5.16. 대법원)
- 북한 공작조직과 연계하여 공작금을 수수하면서 국내 정세를 수집하여 북한에 보고하는 간첩활동을 하고, 적화통일을 선동
-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1998.7.28. 대법원)
-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노선을 찬양·동조하고 미군 철수·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각종 반정부 폭력시위 자행
- 한청(한국청년단체협의회, 해산, 2009.1.30. 대법원)
-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노선에 입각한 연방제 통일을 목표로 각종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하고, 북한 ‘사회주의 청년동맹’과 회합하며 불순 활동
- 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2009.7.23. 대법원)
-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하면서 각 분야 운동권에 반미·종북 논리를 개발 보급하는 종북세력의 두뇌 역할을 수행
- 청주통일청년회(2011.12.8. 대법원)
-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동조, 민간통일운동을 빙자한 ‘통일전선체 구성·대중 의식화 교육·반미투쟁 활동’ 등을 전개
- 연방통추(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2012.1.27. 대법원)
- 북한과 연계, 강령·규약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국보법 철폐 후 고려연방제 통일 실현을 위한 실천 활동 전개
- 사노련(사회주의노동자연합, 해산, 2014.8.20. 대법원) - ‘자본가 정부타도, 미제축출, 사회주의건설’ 전략 아래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 선전 및 反 자본주의 과격폭력투쟁을 선동

국정원(안기부)의 수사결과 이적단체로 판결 받은 단체들은 직·간접적으로 운동권과 연계되어 있다. 운동권출신이 다수 포함된 현 정부 입장에서는 ‘국정원을 손 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댓글사건이나 특활비사건 등이 아니라도 말이다.

명목상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을 막고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가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정보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지 근원적 의문을 갖게 한다.

정치적 풍파로부터 국정원을 지키려면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다룬 법안은 2016년 12월 29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이 발의한 ‘일부 개정안’의 골자는 국정원장에 대한 임기제와 국회의 임명동의권을 도입하여, 야당도 동의할 수 있는 정치 중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인물이 국정원장으로 임명하자는 것이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결국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앙정보부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취임 후 국정원을 이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4억 달러 대북 불법송금 사건에 국정원이 개입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총체적으로 개혁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전적으로 정보기관장에 권한을 행사하는 한 결국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대안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것은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는 방법으로는 ▶첫 번째, 국회(정보위)가 추천하는 3배수 인물 중에 대통령이 정보기관장을 선택하고, 정보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독점적 권한을 예방하는 차원이다. ▶두 번째는 정보기관장의 5년 내지 7년의 임기 보장이다. 대통령의 임기와 중첩되지 않게 함으로써 정권과의 밀착을 방지할 수 있다. ▶정보기관장에 대한 해임(구속)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항 신설이다. 정보기관 임무의 연속성을 기하기 위해 정보기관장 자리의 안정은 필수불가결한 사항이다.

영국 정보기관 MI6(왼쪽)와 미국 CIA(오른쪽) 문양
영국 정보기관 MI6(왼쪽)와 미국 CIA(오른쪽) 문양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보기관의 방향은 일관되어야 한다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은 1924년 29세의 나이로 FBI 국장에 취임한 이후 1972년 5월 2일 죽을 때까지 무려 48년간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절대적인 권한을 휘둘렀다. 그는 1930년대에는 갱(gang) 소탕,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스 스파이 소탕, 대전 후 냉전기의 소련 스파이 검거 등에 절대적 활약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치 실세의 스캔들 정보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아성을 쌓는 등 ‘장막 뒤의 대통령’이라는 악평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FBI가 정치권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북한의 대남공작 부서인 통일전선부는 77년 신설된 이래 현재까지 그 조직과 방향이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김용순 통일전선부장은 1992년 1월 임명된 후 2003년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대남공작 지휘부 수장을 맡았다.

김양건도 2007년부터 2015년 사망 시까지 통일전선부장을 맡았다.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적 임무 수행 측면에서 한국의 국정원장은 북한 통전부장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보기관의 방향은 일관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임기보다 정보 수장의 임기는 길어야 정보기관의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다.

세계 정보기관의 원조격인 영국의 비밀정보부 MI-6의 모토는 ‘ALLWAYS SECRET’이라는 뜻으로 라틴어로  ‘Semper Occultus’다. 비밀 유지는 정보기관의 생명이라 할 수 있다.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정보기관은 이미 정보기관이라 할 수 없다. 그들에게 비밀 유출은 곧 죽음과 같다. 영국 MI-6나 이스라엘 모사드의 경우 내부 정보 유출자는 끝까지 추적하여 처단하는 정평이 나 있다.

미국 역시 내부 정보 유출자 색출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10년과 2012년 사이 중국내 CIA 협조자가 중국 정보당국에 하나씩 체포되기 시작했다. 불과 2년 사이에 약 20명의 CIA 정보원이 처형·투옥됐다. 미 정보기관은 비상이 걸렸다. 이 사건은 미국 CIA 역사상 최대 참사로 꼽히는 사건이 되었다.

2012년 FBI와 CIA 두 기관의 방첩 전문가들은 합동작전에 돌입했다. 작전명 ‘벌꿀오소리(Honey Badger)’ 작전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소리를 꿀로 유인하듯 거짓정보를 흘렸다. 여기 걸려든 것은 다름 아닌 귀화 미국인인 제리 천 싱 리(53) 씨였다. 1994~2007년 CIA에서 일했던 인물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지난 16일 뉴욕타임스가 상세하게 보도하였으며 국내 언론도 이 보도를 인용하였다.

민주당에 흘러들어간 국정원 내부문서

국내에는 ‘로버트 김’사건으로 알려진 김채곤(로버트 김) 씨는 미 해군정보국 컴퓨터분석관으로 근무하던 중, 1996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인 백동일 대령에게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돼 미 연방교도소에 9년간 수감 생활을 한 바 있다. 내부 정보 유출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엄격하게 다루는 것이 해외 정보기관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허술하다. 2013년 6월 19일 동아닷컴은 단독 기사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댓글 작성 의혹을 민주당에 제보한 국정원 전직 간부 김상욱 씨(50·불구속 기소)였으며,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 보좌관과 지속적으로 통화하며 심리전단 직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미행 사실도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김상욱 씨는 국정원에 근무하는 고향후배 ‘정모’ 씨를 통해 국정원 내부자료를 건네받아 민주당에 알려준 것으로 덧붙였다. 원세훈 원장의 지시사항이 담긴 내부 문건은 그대로 민주당 진선미 의원 손에 들어가기도 했다. 정보기관 내부자를 통한 정보 유출은 미국에서 스파이로 다루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법은 너무 허술하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9월 5일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공익 차원의 제보를 한 국정원 직원을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른 보호를 받도록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것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보다 더 심각한 내용이다.

세계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라도 내부고발자를 보호하지는 않는다. 설사 공익제보라 하더라도 말이다. 미국 NSA의 감청 사실을 폭로했던 스노든에 대해 미 정보당국은 끝까지 추적하여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스노든은 현재 러시아에 망명 신청을 한 상태다.

정치적 문제를 빌미삼아 대공수사권을 끝내 폐지한다면 그것은 전작권 전환-한미연합사 해체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주한미군 철수와 더불어 북한 통전부가 가장 바라던 바이기도 하다.

고성혁 역사안보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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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2018-01-30 19: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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