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의 솥단지] ‘탈원전’이 날려버린 대한민국 성장판
[이종혁의 솥단지] ‘탈원전’이 날려버린 대한민국 성장판
  • 이종혁 정치평론가
  • 승인 2018.02.1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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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정치평론가

프랑스의 <르 피가로>지(誌)는 한국의 산업화 기적을 일찍이 ‘우주적 척도로나 가늠해야 할 엄청난 것’이라고 극찬했다. 한국의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디에 기반을 둔 것일까? 바로 ‘과학기술’이었다. 과학기술부문이 한국 근대화를 주도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산업화 성공의 조명에 묻혀 비교적 주목을 덜 받아왔다.

하지만 당시 지도자들은 ‘근대화’에 있어 과학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KIST의 한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근대화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참다운 근대화는 우선 과학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학입국’의 기치를 내건 대통령의 기술 발전 인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27조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밑바탕에는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이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었다. 이때에 과학기술진흥법이 제정되고, 과학기술처의 탄생과 과학기금이 설치되는 등 과학기술정책이 제도화되었다. 과학기술의 메카 대덕연구단지가 만들어졌고 이즈음에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두뇌 인큐베이터로서 KAIST, KIST가 설립되었다.

우수 해외과학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였고 이들이 일종의 ‘마중물’ 효과를 일으켜 과학 인재의 폭발적 수급을 가능케 했다. 과학기술은 국가지도자의 관심과 고집을 먹고 자란다. 국가의 의지가 작동하지 않고는 과학기술은 발전할 수 없다. 가난의 나라를 벗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기반을 닦은 것도 지도자의 과학기술을 향한 장기적 안목과 집념 그리고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꿰뚫어 본 박정희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발전이 산업화로 그 결실을 거둔 저력에는 다른 무엇보다 원자력이 있었다. 박정희는 누구보다 원자력의 산업적 측면을 꿰뚫어 봤다. 1971년 3월 19일 당시 정부 1년 예산의 4배 가까운 비용이 투입된 첫 상업용 원전 고리1호기 기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손수 작성한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몇 년 전 진해항에 미국의 원자력잠수함이 들어와 타본 일이 있습니다. 그 잠수함은 기름 없이 궤짝만 한 원자력 연료로 1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답니다. 오늘 착공하는 이 원전도 다른 화력발전소처럼 기름이나 석탄 등을 쓰지 않고 원자력 연료 하나로 1년 이상 쓸 수 있습니다. 건설비용은 60만kwh에 1억7000만 달러가 들어 화력발전(1억2000만 달러)보다 비쌉니다만 갈수록 값싼 전력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국의 원자력은 ‘산업의 혈액’이라는 전기 생산단가를 크게 낮추면서 철강, 자동차, 조선, 화학 등 산업 전반에 혁명을 가져왔다. 원자력이 만든 전기는 농어촌과 산간 오지에도 공급되어 국민의 삶의 질을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기름 냄새로 머리가 아픈 남포등 아래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됐다. 거리는 가로등으로 밝아져 치안이 높아졌고 상점들은 밤늦게까지 문을 열 수 있었다.

원자력 발전이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상징이자 원동력의 역사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석탄은 땅에서 캐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두뇌에서 캔다’는 말처럼 원자력은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혀줄 중요한 신성장 산업으로 자리 매겨 갔다. 2000년 초까지 세계 원전 시장은 미국과 프랑스가 양대 강국이었으나 이후 양국은 탈 원전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 자국 내 추가적인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그 결과 선진국에서는 원전 기술 인력의 이탈과 원전 부품산업 생태계 전반이 붕괴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은 원자력 산업에서 이미 세계 최고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인정받은 대한민국에 원전 수출이라는 기막힌 호기(好機)를 부여했다. 그 솥단지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현재 세계적으로 운전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442기이고 건설 중인 발전소는 67기로 아시아, 중동, 중부 및 동부 유럽을 중심으로 건설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세계 원전시장은 불안정성이 있긴 하지만 원자력 산업계의 추산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2020년까지 약 82GW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이 예상된다. 금액으로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약 6410억 달러(한화 약 700조)정도. 이는 석탄 3260억 달러, 가스 3640억 달러보다 큰 시장이다. 대한민국 원자로는 이미 UAE 수출로 그 안정성과 효율성에서 세계 최고임을 인정받았고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도 한국형 원자로를 유력한 표준 모델로 삼고 우리의 참여를 손짓하고 있다.

더구나 0.1메가와트 이하의 한국형 소형 원자로(SMART)는 대형 원자로를 짓기 어려운 국가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과 수요를 확보했다. 2018년 과기정통부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사우디에 한국형 소형 원자로 스마트 하나가 수출되어 완공될 경우 약 2조 원의 경제적 효과와 최대 1만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블루오션, 미래 한국의 솥단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탈원전은 시대착오정책

문재인 대통령은 어처구니없게도 탈원전으로 대한민국의 블루오션, 미래 먹거리 솥단지를 자기 손으로 깨어버리는 정책적 우(愚)를 저질렀다. 자기 나라에서는 원자력이 위험하다면서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나라의 원자로를 살 나라가 과연 있을까.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과 함께 원자력 수출도 하겠다는 앞뒤 안 맞는 정책을 내놨다.

여전히 계속되는 탈원전 후유증.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 연합
여전히 계속되는 탈원전 후유증.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 연합

비유하자면 자신은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광고한 식당의 음식을 손님에게 팔겠다는 식당 주인이 되어 버린 셈이다. 부산 주변에는 이미 고리 원자력발전소 1, 2, 3, 4호기가 건설되어 있고, 새롭게 신고리 5, 6호기 추가 건설을 앞두고 있다. 이 원자로들은 그 수명이 최소 60년 이상이어서 탈원전을 선언하면 원자력 부품과 기술들이 흩어지고 정체와 퇴보가 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한국 원자로는 그 운용에 있어서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이를 막으려면 앞으로 건설할 원자로들을 원안대로 회복하고 무엇보다 한국형 원자로 수출에 국가적 역량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원자로는 더 안전하게 된다. 시장이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예방하는 기술들을 해외 수요에 부응해 상품으로 계속 개발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미국의 첨단 무기들이 해외 시장을 통해 더 성능과 안전성이 높아져 미국의 안보력도 더 높아지는 이치와 같다. 이러한 원자력 수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500만 개에 달하는 원자로 부품산업들의 집약적인 R&D센터와 전문 인력개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동시에 해외 바이어들을 위한 국제 박람회가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장(場)을 통해 국내 원자력 부품 회사들이 해외에 그 기술을 선보이고 인정받게 되면서 한국 원자력 산업에 대한 신뢰와 매력도 높아진다. 동시에 은퇴한 원자력 과학기술자들의 노하우가 보존되고 전수되는 교육의 장도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500만 개 부품을 생산하는 원전 부품 기업들을 위한 원자력 연수원과 원전 산업 대학도 설립을 검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대한민국이 그 동안 축적해 온 원전건설 기술은 역으로 원전해체 시장에서도 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국가에너지위원회가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를 권고함에 따라, 고리 1호기는 가동 40년 만인 2017년 6월 폐쇄된다. 세계 원자로들 중에서도 수명이 다한 원자로들에 대한 해체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원자로 건설에 경쟁력을 가진 우리나라가 이 기술을 선점한다면 일거양득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1기당 해체 비용은 6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2030년까지 수명을 다하는 원전이 10기가 넘을 것을 감안할 때 원전 해체기술 확보시 그에 따른 경제효과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원전 건설 수출과 해체 기술은 고도로 집적화된 R&D센터와 교육·연수 인프라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원전과 항구도시 부산은 원전 수출과 해체 산업에 시설적, 지리적 경쟁력을 가진 곳이다. 부산이 전 세계 원전기술의 메카가 되는 비전을 현실로 구현한다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는 셈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가지도자의 비전과 리더십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운이 있다면 필자는 다음 세대를 위해 역사상 최고의 과학대통령이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란 희망을 가져 본다. 

이종혁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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