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 이기는 北, 싸우지 않고 지려는 南
싸우지 않고 이기는 北, 싸우지 않고 지려는 南
  • 고성혁 역사안보포럼 대표
  • 승인 2018.03.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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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582년 6월 4일 장마철이었다.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 도요토미로 개명전의 이름)는 강둑에 올라 물에 잠긴 비추 다카마스성(備中高松城)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작은 배 한 척이 히데요시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히데요시는 벌떡 일어났다.

작은 배에는 모리 데루모토 휘하의 맹장이자 다카마쓰 성주인 시미즈 무네하루(淸水宗治)가 타고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히데요시가 보는 앞에서 할복을 했다. 이로써 다카마스 성의 주민들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히데요시는 햇수로 무려 3년간의 다카마쓰 성 포위공략을 마무리지었다.

히데요시 앞에서 할복하는 다카마스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
히데요시 앞에서 할복하는 다카마스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

어찌 보면 싸우지 않고 승리한 셈이다. 1580년 오다 노부나가는 지금의 야마구치에 기반을 둔 모리 데루모토만 제압하면 일본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3개의 강줄기 한 가운데 있는 비추 다카마성은 난공불락이었다. 다카마스 성 공략에 실패한 미츠히데는 오다 노부나가의 눈 밖에 났다. 여러 번 실패 끝에 1580년 오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다카마스 성 공략을 명했다.

히데요시는 병력 3만을 동원하여 다카마스 성을 완전 포위했다. 그러나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식량까지 풍부하고 배후에는 모리 데루토모의 지원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와중에 오다 노부나가의 독촉은 더해갔다. 고민에 빠진 히데요시에게 구로다 요시타카는 묘책을 냈다.

강줄기를 돌려 다카마스 성을 수공으로 공략하자는 제안이었다. 토목공사라면 히데요시는 일가견이 있었다. 히데요시는 즉각 강줄기를 돌리는 토목공사를 시작했다. 성 주변으로 물을 막을 수 있는 둑을 쌓았다. 12일 만에 길이 4㎞, 폭 21.7m, 높이 7.2m의 제방이 완성했다. 모리 데루모토의 지원군도 물길이 막히면서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다카마스 성안에는  굶주림으로 아사자가 속출했다. 결국 1582년 장마철인 음력 6월 4일, 히데요시의 제안을 받아들인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는 자결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했다. 이를 비추 다카마쓰 성 전투라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사루(猿:원숭이)라고 불렀다. 꽤가 많고 재빠른 히데요시에게는 딱 맞는 별명이었다.

비추 다카마스 성 전투 그림
비추 다카마스 성 전투 그림

히데요시가 거둔 결정적 승리의 상당 부분은 피를 흘리는 돌격전투보다는 모략과 계략, 그리고 기습과 포위로 승리를 거뒀다. 오다 휘하의 다른 장수보다 병력 손실을 그만큼 줄일 수 있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말을 히데요시는 실현시켰다.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을 이룬 마지막 전투인 오다와라성 전투 때도 그랬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남은 것은 이제 단 하나, 지금의 이즈반도에 위치한 호조(北條) 씨만 토벌하면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 시절부터 내려오던 호조(北條) 씨는 오다 노부나가의 이시가루(말단 보병) 출신의 히데요시에게 굴복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히데요시는 대군을 이끌고 호조 씨가 있는 오다와라(小田原) 성 공략길에 올랐다.

좌파의 선동 대상으로 변한 손자병법

히데요시는 전 병력을 동원했다. 오다와라 성 공략길에는 다데 마사무네, 우에스기와 나오에 가네츠구 병력까지 참가했다. 바다에 면한 오다와라 성을 완전히 포위하기 위해 모리 측 병력은 수군으로 해로를 차단했다. 심지어는 오다와라 성 인근의 쌀까지 모두 사들여서 경제적 봉쇄까지 했다. 결국 호조는 자결하고 큰 피해 없이 오다와라 성은 히데요시 수중에 떨어졌다.  

손자병법을 한마디로 정리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구절일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 귤화위지(橘化爲枳)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해석된다. 마치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왜곡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 술 더 떠서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라고 말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완용은 아무리 나쁜 평화(한일병합)도 전쟁(조일전쟁)보다는 낫다는 것을 보여준 평화주의 실천자가 된다. 그렇다면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다는 본래의 뜻은 무엇일까?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손자의 말은 손자병법 모공(謨功)편에 나온다.

모략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손자가 말하는 모공(謨功)은 단순한 모략이 아니다. 압도적 위세로 적을 굴복시키거나, 고도의 심리전과 이간책 그리고 정치적 술수가 모두 포함된다. 그럼 역사적으로 그런 병법을 실현시킨 예가 있는가? 있다. 4가지 유형이다.

첫번째 유형 - 중국의 이이제이(夷以制夷) 방법

전통적으로 중국이 주변국을 다스리고 정복했던 방법이다. 이이제이(夷以制夷). 싸우지 않고 이기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중국은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기본적으로 이이제이 전법이다. 북한을 이용해 한국을 제압하는 것이 중국의 정책이다. 더 나아가서는 친중노선을 따르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노선을 이용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무너트리는 데도 이용하고 있다. 중국의 이이제이 전술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이요, 외교의 기본 방향이기도 하다.

두번째 유형 - 몽골 칭기즈칸의 방법

칭기즈칸이 페르시아를 휩쓸 때 그야말로 무자비했다. 호라즘을 정복해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고 생명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폐허 상태다. 서하를 정복해선 마차 바퀴보다 큰 남자는 다 죽였다. 이런 몽골의 전법은 소문으로 퍼져나가서 결국 몽골군이 근처에만 오면 성문을 열고 항복하게 되었다. 이른바 충격과 공포로써 적을 제압하는 방법이다. 위세와 공포를 이용한 심리전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의 핵심이다.

세번째 유형 - 김유신 장군의 모공(謨功)

우리나라 역사상 심리전의 대가를 꼽는다면 단연코 신라 김유신 장군이다. ‘비담의 난’ 때 김유신은 불덩이를 연에 매달아 띄워 올려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나당 연합군으로 백제를 공략하기 전에 이미 김유신은 백제의 중신(重臣)을 신라의 첩자로 매수해 놓았다. 김유신은 백제를 안으로부터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모략 중에 최고의 모략은 바로 적의 수장(首長)을 세작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손자병법의 손자(孫子)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모공(謨功)이다.

네번째 유형 -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방법(경제전쟁)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린 레이건은 경제적 압박과 군사비 경쟁을 통해 소련을 경제적으로 무너트렸다. 경제전쟁을 통해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적을 굴복시킨 케이스다. 굳건한 대통령의 리더십과 탄탄한 경제력과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섯번째 유형 - 구한말 조선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방법으로 역사상 매우 특이한 방법이었다. 당시 조선의 위정자는 국제 정세에 무지몽매하고 국방은 무방비 그 자체였다.

조선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였다. 조선은 단순한 전리품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일본은 조선을 병합했다. 조선과는 전쟁도 없이 말이다. 일본은 불과 헌병 3천의 병력으로 조선의 치안을 완전히 장악했다.

싸우지 않고 이기고 있는 김정은의 북한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탄핵’이라는 한국의 급변사태가 오고 말았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완전히 변했다. 북한 김정은이 모략을 펼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올림픽을 핑계로 무기 연기된 한미 연합훈련은 사실상 미아(迷兒)가 되었다.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적의 동맹 관계를 분단시켜 고립시키는 일’을 예로 들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선 저자세로 일관한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미국의 통상 압박에는 정면 대응하겠다고 20일 밝혔다. 한미 연합훈련을 촉구한 아베 일본 총리를 향해 문재인 대통령은 내정간섭이라고 대꾸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국의 내정 문제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부 부장관은 지난 16일 BS후지에 출연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북한은 일본·아시아·미국 등 전 세계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한미 연합훈련은 결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미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우파 일각에서는 올림픽 이후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코피 전략(Bloody nose)을 잔뜩 기대한 듯하다. 일부 언론에선 트럼프의 북한 선제타격을 기정사실화 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독일 뮌헨 안보회의에 동행한 상원의원들에게 “북한에 대한 코피 전략은 없으며, 과거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19일(현지시간) 민주당 소속 셸던 화이트하우스(로드 아일랜드) 상원의원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중국 근해에서  유류 환적하는 북한

트럼프가 김정은을 한방 때려주기(?)를 기대하던 많은 우파 시민들에겐 맥 빠지는 뉴스였다. 반대로 해석해 본다면 트럼프의 코피 전략은 김정은이 아닌 문재인 정부를 향한 듯하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통상 압박은 분명 한국 경제를 코피 나게 할 테니 말이다. 트럼프는 레이건 대통령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힘에 의한 평화’와 ‘위대한 미국 재건’을 내세운 외교전략은 거의 동일하다.

레이건이 소련을 경제, 군사적 압박으로 무너뜨린 것처럼 트럼프도 대북 압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잘 견디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과 중국이라는 든든한 후견인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일본의 NHK 방송은 북한 선적 유조선이 지난 13일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외국 선적의 배에 정박한 모습을 일본 정부가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13일 새벽 중국 상해 동쪽 250km 앞바다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북한 선적의 유조선이 베리스 선적의 유조선에 정박하는 것을 해상자위대의 P3-C 해상초계기가 확인하고 촬영했다. 일본 정부는 이 북한 선적의 유조선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금지된 물자를 해상에서 몰래 환적한 것으로 보고 유엔 안보리 북한제재위원회에 통보했다.

일본 NHN 방송이 지난 2월 15일 일본 정부가 2월 13일 촬영한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북한 선적 유조선이 외국선적의 배에 정박한 모습을 보도했다.
일본 NHN 방송이 지난 2월 15일 일본 정부가 2월 13일 촬영한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북한 선적 유조선이 외국선적의 배에 정박한 모습을 보도했다.

예성강 1호로 추정되는 이 북한 유조선은 지난해 10월에도 해상에서 정유제품으로 추정되는 화물을 환적하다 적발된 바 있다. 이번에도 유류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NHK는 보도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해상 봉쇄가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영해 내지는 근해에서 중국 선적 화물선을 통해 환적할 경우 사실상 제재가 불가능하다.

어차피 이들 화물선은 중국 근해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주요 항구 입항 거부라는 국제적 제재(制裁)도 먹혀들지 않는다. 더욱이 당사자인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한 문재인 정부의 다음 수순은 필시 주한미군 철수 협상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미국의 통상 압력을 핑계삼아 반미선동은 더 고조될 것이다. 이와 같은 현 상황을 종합해 본다면 북한과 중국은 문재인 정부로 하여금 분명 한국을 미국의 동맹에서 이탈시키는 데 거의 성공한 듯하다. 이쯤 되면 북한 김정은이 싸우지 않고 대한민국을 이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트럼프의 코피 전략은 어쩌면 대한민국에 적용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고성혁 역사안보포럼 대표
고성혁 역사안보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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