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의 독일통일 이야기 - 사민당 '제3의 길' 문건 유출
권영세의 독일통일 이야기 - 사민당 '제3의 길' 문건 유출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3.08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2년 봄 무렵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사민당정부는 유가파동에 따른 경기침체, 미소간 군비경쟁, 소련의 아프간 침공등에 따른 '신냉전'의 시작 등 외부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경제, 안보위기에 더해 국내정치적으로도 연정 파트너 자민당(FDP)과의 노선갈등으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한 해법으로 사민당의 소위 '브레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이무렵 총리실 내부 참모들이 작성한 문서가 유출, 공개되어 서독 정가에 파장을 일으킵니다. 이 '문서'는 물론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선거, 연정과 관련된 정치적 이유에서 외교정책과 관련하여 '논쟁적'인 새로운 역점이슈를 던질 것을 제안하는데 여기서 그들이 의도하는 '논쟁'의 상대는 동구가 아닌 서구진영, 즉, 미국과 영국의 새로운 보수정부들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논쟁적'이었습니다.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지요...(Timothy Garton Ash, "In Europe's Name : Germany and the Devided Continent", kindle ed. Loc 2233 이하 참조)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사민당과 자민당 지지자들은 데탕트의 연속, 소련과의 계속적인 경제협력, 그리고 유럽과 서독의 미소간 '중재자'역할을 지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도 감수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럽과 서독이 더 큰 자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레이건-대처 정부 및 그들의 신보수주의와 충돌하는 것은 어쩌면 여론의 관심을 국내문제로부터 외교문제로 돌릴 수 있고 자민당을 연정 틀 속에 묶어들 수 있을 것이다.  

논쟁적 이슈의 예로서는, '미국과 영국이 서구의 공통가치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거나, 공산주의자들과의 경쟁에서 서구의 강점들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들이 데탕트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소련과 관련해서는 그들의 관료주의와 더불어 지나친 군비확장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같은 제국주의적 요소에 대해서는 분명히 거리를 두어야 하며, 동유럽 상황과 관련해서는 폴란드 위기에 대하여 '신중하게' 대처하면서 그들과 정치, 경제적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등거리 외교'의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지만 '제3의 길'이라는 인상은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점점 더 좌경화하고 있던 집권여당 사민당의 모습, 따라서 미-서독간 동맹관계가 어려움을 겪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소련에 대해서도 일정정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온건한 제안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안이 채택되었다면 미-서독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7년 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과연 미국이 영국, 프랑스의 노골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독 주도의 통일을 지원했을까요?  

이 부분도 우리로 하여금 약간의 데자뷰를 느끼게 하지요...그러나 어쨌든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참모들의 이 제안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