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의 독일통일 이야기 - '브레즈네프 독트린'에서 '프랭크 시나트라 독트린'으로...
권영세의 독일통일 이야기 - '브레즈네프 독트린'에서 '프랭크 시나트라 독트린'으로...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3.09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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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8월 소련과 동독을 포함한 바르샤바조약기구 5개 동맹국은 20여만의 병력을 동원해 체코를 침공합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실천하려던 체코 공산당 제1서기 두브체크와 그를 지지하던 개혁세력의 꿈은 소련 등 소위 동맹군의 탱크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결국 두브체크를 포함한 50여만 명의 당원들이 제명 또는 숙청을 당하는 비극으로 끝나게 되지요.

같은 해 11월 폴란드 공산당 5차대회에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드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는 "사회주의 진영의 어느 나라든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경우 사회주의 진영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다른 사회주의 국가는 이에 개입할 권리를 가진다"는 소위 '제한주권론'에 입각한 '브레즈네프 독트린(Brezhnev Doctrine)'을 발표합니다.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사실 소련은 1953년 6월 동독민중봉기, 그리고 1956년 10월 헝가리혁명 당시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함으로써 그들의 이러한 군사적 개입정책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어 있었지만  위의 체코사태를 계기로 공식적인 '독트린'으로 선언된 것일 뿐이었지요. 

1982년 11월 브레즈네프가 사망한 이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등의 짧은 통치기를 거쳐 1985년 3월 고르바쵸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합니다.  소련은 공산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에 더해 80년대 초 유가하락, 아프가니스탄 내전 개입, 미국과의 군비경쟁 등으로 인해 이미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해 있었고, 고르바쵸프는 그 해결책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었지요. Glasnost(개방)와 perestroika(개혁)로 대표되는 고르바쵸프의 개혁정책은 외교부문에서는 소위 "신사고(New Thinking)"정책으로 나타나는데 그 핵심적 내용 중 하나가 위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포기였습니다.

고르바쵸프는 1988년 12월 UN에서의 연설을 통해 앞으로 동유럽국가들이 "자신들의 내부문제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으며 소련은 그에 대해 무력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 즉  위 독트린의 포기를 선언합니다.

이듬해인 1989년 초만해도 과연 이 정책이 실제로 집행될지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 했으나 같은 해 6월 소련의 방관 아래 폴란드에서 자유선거에 의해 공산주의정권이 무너지고 자유연대노조(Solidarity)가 이끄는 민주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1989년 10월 소련 외교부 대변인 겐나디 게라시모프(Genndy Gerasimov)는 미국의 한 TV방송에 출연하여 이렇게 얘기합니다 : "지금 우리 정책은 '프랭크 시나트라 독트린(Frank Sinatra Doctrine)'이다. 그가 '내 식대로 한다'라는 노래(My way)를 부르지 않았나. 이제부터 모든 나라는 어느 길을 택할지 스스로 결정한다..." 

1989년 11월 동독 공산당의 신출내기 공보담당 정치국원이던 귄터 샤보프스키가 당의 여행 자유화조치를 잘못 이해하고 한 답변을 들은 수많은 동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서 국경수비요원들과 대치할 당시 동독지역에는 30만이 넘는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고르바쵸프의 소련은 역시 '프랭크 시나트라 독트린'을 유지했고, 베를린 장벽은 바로 무너지고 말지요.

동서독의 통일은 '신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샤보프스키의 우연한 실수가 있었을 당시 때마침 '프랭크 시나트라 독트린'같은 우호적인 외부환경이 조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유혈극 없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결국 통일에 이르게 된 점을 보면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서독의 국민과 지도자들의 쏟은 노력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신이 아무에게나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란 사실도 바로 알 수 있겠지요.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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