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북한, 현실 안의 북한
영화 속의 북한, 현실 안의 북한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8.03.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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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그리는 인권은, 인권이 사라진 곳이나 인권이 넘쳐나는 듯하지만 이면에 가린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빈민가나 작업 여건이 나쁜 생산 현장, 감옥, 집단수용소 등을 배경으로 삼는 경향은, 그런 곳에서 인권 유린 사례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 <스팔타카스>(1960)의 주인공인 노예 스파르타쿠스가 채석장 감시병에게 대드는 것은 ‘노예는 사람이 아니냐’는 반감 때문이다. 스파르타쿠스가 다른 노예들을 규합, 로마 정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는 이유도 ‘노예라 하더라도 최소한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소망 때문이다.

관습적이든 제도적이든 억압과 탄압이 존재하는 곳이어야 인권에 대한 문제가 생기고 영화의 주장도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영화는 구조적으로 ‘인권’을 다루기가 어렵다.

북한 사회가 실제로는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수용소 사회’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차별이 없는 천국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영화 제작은 당이 통제하는 국책사업으로 이뤄진다. 오직 당과 인민을 위해 필요한 영화만을 제작하는 것이 목적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크로싱(2008)', '꽃파는 처녀(1972)', '김정일리아(2008)', 좌로부터 / 자료:조희문
'크로싱(2008)', '꽃파는 처녀(1972)', '김정일리아(2008)', 좌로부터 / 자료:조희문

북한영화가 바라보는 극심한 고난의 시대는 일제시기다. 주민들은 끝없는 억압과 수탈에 시달리며 집과 재산을 빼앗긴 채 정처 없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다. 일제의 고위계급, 그들의 비호를 받는 지주나 부자들은 소작 농민으로 상징되는 가난한 서민들을 착취하는 ‘악귀’들로 묘사된다.

돈이나 쌀을 빌려주고는 제때 갚지 못하면 그 집의 소나 가재도구를 뺏어가기도 하고, 심하면 부인이나 딸을 빚 대신 팔아버리기도 한다. 북한영화 <성황당>이나 <꽃파는 처녀> <피바다> 등에서는 착취당하는 ‘인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영화들에서 드러나는 주제는 인민이 착취당하는 것은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거나 현실에 무지했던 인민이 고난의 사건을 겪으면서 새로운 인식과 의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로 결론 짓는다.

결국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을 찬양하거나 목숨을 걸고 당과 수령님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겠다는 인민의 다짐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북한 사회는 ‘위대한 수령님’이 약속했던 ‘아름다운 공화국’을 만들지 못했다.

모든 인민이 ‘쌀밥과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당 간부들이나 그럴 수 있을 뿐 일반 인민은 굶주림과 억압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탈북민들은 북한 사회가 인권 유린으로 흔들리는 수용소 사회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증인들이다.

북한인권에 주목한 영화 <김정일리아>

북한인권은 미국이나 한국 영화를 통해 조명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주목한 경우는 미국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N.C 헤이킨이 연출한 <김정일리아>(2008). 강철환, 김철용, 변옥선, 신동혁 등 12명의 탈북민들은 인터뷰를 통해 각자가 탈북하게 된 이유를 진술한다.

12명은 각각 기아, 폭행, 수용소 생활, 자유로의 갈망 등의 이유로 탈북을 감행했고, 고난스런 과정을 거쳐 결국 탈북에 성공한 인물들이다.

이들 중에는 북한군 장교로 있다가 탈출한 인물도 있고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피아노 곡을 연주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러시아 유학파 피아니스트, 부모가 왜 수용소에 감금된지 모른 채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 사춘기에 가족 3대가 모두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탈출한 사람, 자신을 살리기 위해 형제자매가 함께 탈출했다가 결국 뿔뿔이 흩어진 사람, 중국으로 탈출해 몇 년을 매춘으로 살아온 여성, 죽마고우가 김정일의 첩이 되어 배우자와 자식 그리고 손주들까지 북한 체제의 희생양이 되었다가 홀로 살아남은 북한 무용수 출신 할머니까지 절절한 사연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중국에서 겪은 비인간적인 생활, 북한에서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일상과 최악의 비극적인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남한사회운동단체가 탈북민을 구조하는 장면이 담겨 있어 긴박감을 더한다.

구조 실패로 중국 감옥에서 복역한 실제 인물의 인터뷰를 통해 탈북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중국 정부의 정책까지 보여준다. 이 영화는 국내외에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사회 내부 실상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계기가 되었고, 탈북민들의 발언이 공개되는 효과를 발휘했다.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어 호응과 지지를 받기도 했다.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나왔다. 비참한 삶을 견디다 못해 자유를 찾아 탈북하기로 한 가족이 험난한 여정을 거치면서 겪는 또 다른 비극을 묘사한 <크로싱>(2008)은 국내에서 ‘탈북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함경도 탄광마을에 살던 열한 살 준이의 가족은 아버지와 엄마 등 세 식구. 가난하긴 해도 가족끼리 살 수 있어 다행스러웠지만, 엄마가 폐결핵으로 쓰러지면서 상황이 급작스럽게 어려워진다.

약을 쓰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지만, 간단한 감기약조차 구할 수 없는 북한의 형편에 귀한 치료약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혹시 약이 있다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가족이 빠듯하게 먹고 살기에도 벅찬 형편으로서는 약을 구하는 일도, 돈을 마련하는 일도 아득하기만 하다. 결국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중국에 밀입국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 끝에 중국에 도착한 아버지 용수는 벌목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지만, 불법 현장이 발각되면서 모든 일은 파탄난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아버지를 기다리던 엄마 용화의 병세는 점점 나빠진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은 아들 준이는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그 사이 아버지 용수는 천신만고 끝에 한국땅을 밟게 되지만 아들 준이는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는다.

북한의 비참한 현실이 한 가족을 죽음과 생이별의 막장으로 내모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민백두 감독이 연출한 <48m>(2013)는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압록강 어느 지점을 배경삼아 그곳을 건너야 하는 사람들과 감시하며 지켜야 하는 경비군인들의 각기 다른 사연들을 보여준다.

그 곳을 건너가려다 군인들에게 사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어느 자매, 어떻게든 북한 땅을 벗어 나려는 젊은 연인들, 굶어 죽어가는 자식을 살려야 하는 부모, 아픈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강을 건너야 하는 딸, 그들을 감시하며 때로는 죽여야 하는 군인 등 탈북을 사이에 둔 북한 주민들(군인을 포함한)의 이야기가 비장하게 드러난다. 48m 짧은 거리 사이에 놓인 삶과 죽음의 현실이 북한 사회의 실상을 대신한다.

탈북민 감독이 만든 <겨울나비>

앞의 두 영화가 북한 사회를 벗어나려는 탈북민들의 절박한 처지를 보여주는 데 무게를 싣는 데 비해 북한 생활의 처참한 일화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탈북민 출신인 김규민 감독이 북한에서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겨울나비>(2011)는 주민 생활의 비참한 현실을 증언한다. 나무를 해다 팔며 병든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11살 소년 가장 진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엄마가 죽어 자신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다.

어느 날 혼자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길까지 잃어버린다. 엄마는 진호를 찾아 백방으로 알아보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부상당한 채 산속을 헤매던 진호는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지만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

오직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진호를 지켜준 힘이었다. 하지만 지난 며칠 사이에 집안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엄마의 건강이 크게 나빠져 스스로를 돌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진호 역시 다친 몸을 추스를 형편이 되지 않았다.

집에 먹을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엄마와 아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며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처참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이와는 달리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과 소외를 다룬 경우도 있다. 박정범 감독 연출로 만든 <무산일기>(2010)는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일이 오히려 탈북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다큐멘터리처럼 치열하게 끌고 간다.

125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는 북한에서 온 사람에게 붙여주는 숫자다. 탈북민 전승철은 전단지를 돌리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숙영을 좋아하지만, 비루한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처지다.

승철과 같이 사는 탈북민인 경철은 탈북민들의 돈을 모아 몰래 북한 가족에게 보내주는 브로커 일을 하다가 삼촌에게 사기를 당하게 되어 다급한 지경에 빠진다. 승철에게 자신이 숨겨놓은 돈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승철은 돈봉투를 가슴에 품은 채 경철이 기다리는 곳을 못본 척 지나버린다.

승철과 경철에게 한국 사회는 북한보다 더 살기 어려운 또 다른 유배지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최근 작품으로는 진모영 감독의 <올드마린보이>(2017)가 눈길을 끈다. 탈북을 거쳐 강원도 고성에 정착한 박명호 씨는 머구리 일로 가족을 부양한다.

60kg잠수복을 입고 30m 바다 속을 뒤지는 잠수부 머구리는 극한 직업으로 분류될 만큼 힘든 일이다. 그래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자유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보람에 힘들다는 생각 않고 바다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자유와 희망이 살아 있는 낙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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