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앞에서 멈추는 인권 의식으론 통일 어렵다"
“38선 앞에서 멈추는 인권 의식으론 통일 어렵다"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3.19 10: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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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북한인권 인터뷰-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북한인권법 통과되니 민간 활동 위축되는 아이러니” 인터뷰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사진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대표적인 북한인권단체 가운데 한 곳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이사장 이재춘) 부설기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2007년 개소 이후 자료수집 및 분류, 북한인권 출판물 발간, 대북 라디오 방송 등의 북한인권 관련 업무를 해 오고 있다. 매년 ‘북한인권백서’를 발간해왔다. 작년 펴낸 ‘2017 북한인권백서’에는 인권 침해 사례 6만8940건이 생명권, 생존권, 건강권 등 16개 항목으로 분류·기록돼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북한인권백서’ 발간 목적을 ‘북한의 인권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분석하고 객관적인 북한인권 실태 자료를 국내외에 제공해 북한인권의 실제적 개선과 향후 과거사 청산에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본격적인 화두로 제기한 지금, 국내 북한인권 관련 단체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왜일까.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은 근본적인 원인을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 의식 부재’로 꼽는다. 미래한국은 북핵 위기가 절정인 최근 미래한국 사무실에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 사진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 사진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 궁금합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2003년 5월 설립한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기관입니다. 북한이나 해외에서 북한 사람이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고 기록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게 정보센터의 목적이에요. 1999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개원 뒤로 전수조사를 통해 자료를 축적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2007년 6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개소하고, 관련 자료를 왜 축적하는지, 어떤 자료가 있는지, 어디에 쓸 건지 등에 대해 축적된 자료와 함께 북한인권백서라는 형식으로 발표했습니다. 백서를 발행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으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만든 겁니다. 그 작업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어요.

- 실무를 보는 직원은 얼마나 됩니까.

북한인권정보센터를 처음 설립했을 때 제가 정보센터 소장직도 하고, 또 기록보존소 개소하면서 소장직도 맡았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미국에 몇 년 나가 있으면서 기록보존소장직은 그대로 맡았는데, 정보센터 소장직은 김웅기 변호사가 맡아 이끌고 계십니다. 지금은 상근자가 16~20명이 있어요.

-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북한인권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탈북자를 초청해서 만나는 등 북한인권을 강조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을 만든 이후 대통령이 여럿 바뀌었죠. 북한에 대해 인권과 핵미사일 두 가지 문제로 여러 작업을 해왔습니다. 핵미사일 카드가 중요하게 다뤄질 때는 인권 카드가 낮아지고, 반대로 핵미사일 카드가 밋밋할 때는 인권 카드를 올리는 식입니다.

오바마 정부 때는 전략적 인내라는 형식으로 인권 문제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어요. 트럼프 행정부 들어와선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핵미사일 카드와 인권카드를 동시에 쓰는 병행 전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인권 카드를 강도 높게 쓰고 있는 것이죠. 그건 틀림없어요.

- 말씀하신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제재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인권카드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제 북한 주민 인권 개선에도 영향을 줄까요?

대북제재는 유엔에서 하는 게 있고 개별 국가가 하는 제재가 있습니다. 미국, 한국, 일본도 개별 제재를 하고 있는데요, 대북제재 그 자체는 북한 주민 일상적인 삶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유엔의 가이드라인이에요.

하지만 북한 당국에 압박을 주는 조치인데, 북한 당국에는 압박이 되고 주민은 영향을 안 받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이죠. 어떤 제재이든 주민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권으로 인한 압박과 핵과 미사일에 대한 경제 제재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인권에 대한 제재는 책임이 있는 가해자, 인물에 대한 제재입니다. 해외에 나올 수 없다는 등의 문제지 주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없어요. 그런데 일반 대북제재는 경제 제재가 핵심이기 때문에 일반 주민에 타격이 되겠죠.

장마당의 경우, 지난해까진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올해 1~3월 들어서 많은 영향을 주는 걸로 확인이 됩니다. 제재 초기에는 버텼지만 계속되니까 아무래도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는 겁니다.

북한인권은 여전히 제자리

-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인권 문제가 조금이라도 개선됐다든지 하는 변화가 있습니까.

본질적으로 이전과 상황이 다를 수 없습니다. 북한 3대 세습과 독재체제 양면에서 체제 모순이 인권 문제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회경제적 권리에 해당하는 교육, 건강, 식량 등의 권리 부분, 이런 문제는 김정일 시절 최고로 열악했는데 김정은 들어와서 회복된 건 사실이에요.

아사자가 거의 없고, 학생들 교육도 정상적으로 회복이 됐고, 보건의료도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 상으로는 그 부분의 문제는 현저히 줄었습니다.

-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에 대한 주민 반감이나 불만은 줄었다고 봐야 하는 건가요?

그건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어요. 보통 인권이라면 시민적 정치적 권리라고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북한 수용소든 불법 구금시설이든 고문, 강제 노동은 거의 그대로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거의 차이가 없고, 다만 사회경제적 권리 부분이 나아졌다는 것이죠. 데이터 상으로 보면 (정권에 대한) 주민 의식이 90년대보다 훨씬 나아진 것 아니냐, 더 좋아졌다 볼 수 있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비교라는 건 과거와 현재도 비교하지만, 현재 다른 지역과도 비교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과거에는 인권을 통제하고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다른 곳과 자신이 있는 곳의 동시적 비교는 불가능했어요. 다만 과거와 비교했던 것이죠. 1990년대 어려웠던 건, 김일성 시절엔 배급이 잘 나왔는데 (김정일 시대) 지금은 왜 안 되느냐는 게 큰 불만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단 말이에요. 그럼 ‘괜찮아졌다’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외부로부터 정보 유입과 이동 문제가 상당 부분 개선됐기 때문에 동시적 비교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평양은 배급 주는데, 청진은 어떻고 우리는 어떻고 한다는 겁니다. 해외 정보나 남한 정보가 북한에도 확산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체제에 대한 우호도가 높아졌다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인권 앞에 북한만 붙으면 돌변하는 사람들, 레드콤플렉스 탓

- 지금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 인권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특히 북한 주민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2014년 2월에 처음으로 나왔죠. 유엔이 공식적으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1년 동안 파견해 조사한 내용을 총회에 보고한 것입니다. 유엔이 그런 식으로 파견 조사한 것은 북한 외에도 20건이 넘게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수단처럼 일시적인 내전이나 전쟁 등 이런 경우로 짧은 시간에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입니다.

2월 28일 서울시 중구 북한인권정보센터 남북사회통합교육원에서 북한군 인권실태 조사결과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연합
2월 28일 서울시 중구 북한인권정보센터 남북사회통합교육원에서 북한군 인권실태 조사결과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연합

그런데 북한은 그런 경우가 아니죠. 독재정권 아래에서 70여 년 동안 꾸준히 지속적으로 발생한 인권 문제 아닙니까. 이런 경우에 조사위원단을 파견한 사례는 북한인권 문제가 처음이거든요. 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지금까지 북한인권 상황은 일시적으로 인권 문제가 발생한 국가와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그 정도로 막대합니다. 또 인권 침해가 장기화돼 왔는데, 통제되고 폐쇄된 체제였기 때문에 그 정보가 외부에 제공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따라서 외부세계가 볼 때 북한은 인권의 청정지역처럼 비춰질 수 있었던 것이죠. 일본에서 재일동포 북송될 때 그들에게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속였을 정도였죠. 우리 사회에도 그런 인식이 꽤 있었잖아요. 북한에 대한 정보가 외부로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들어와서 탈북자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오고, 북한인권 정보가 세계에 알려지면서 유엔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죠.

유엔 보고서에는 북한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심각하고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반인도적 범죄 수준으로 발생한다고 나와 있어요. 반인도적 범죄라는 건 국제형사재판소(ICC)에도 제소할 수 있을 만큼 최악의 범죄이기 때문에 북한의 그런 현실이 정확하게 국제사회에 오픈돼 있기 때문에 세계가 더 집중하는 겁니다.

- 정치권이나 시민사회 등 일각에서 북한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은 여전히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해 인권은 지극히 정치적인 겁니다. 정치의 핵심적인 부분이 인권이에요. 다만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이나 해결하려는 수단을 정치적 환경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보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죠. 인권이 정치적 상황이 아니라고 하는 건 존재할 수 없어요. 인권은 정치적 작용의 핵심이죠. 북한인권에 대해선 유독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요.

이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게 학습돼 왔고, 고정관념으로 박혀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국민은 세계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난민캠프에 가서 봉사하고 지원하는 등 인권 의식 수준이 높습니다. 그런데 인권 앞에 북한이란 단어만 붙으면 사람이 180도로 딴판으로 바뀐다는 게 문제에요. 정상적인 사고를 하던 사람들도 북한만 붙이면 획 돌아버리는 시각이 있어요. 이건 굉장히 아이러니해요.

이건 결국 레드콤플렉스에서 우리나라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요. 대학졸업 이상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80%가 넘는 사회에서 레드콤플렉스가 망령처럼 휩쓸고 있습니다. 이것을 걷어내기 전에는 통일은 커녕 선진국 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 북한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거 독재정권 부역자들이란 비난도 있죠.

물론 일부에서는 북한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거 독재정권 시기에 인권 문제에 대해 도외시하고 자기 편익을 누리던 사람들이고, 이제 와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북한인권을 말하면 정치적이고 보편적이지 않다면서 소위 진보진영 일부 사람이 말하고 있죠. 하지만 실제로 북한인권 운동하는 분 중에 그런 분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제가 볼 때 일부 아스팔트 사람 중에 있지만 비율이 높지도 않을 뿐더러, 과거에 어떤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북한인권 운동 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도 비인권적인 사고에요. 이런 상황을 초래한 건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인권에 대해 사명을 갖고 활동했던 분들이 북한인권에 대해 유독 외면하고 방관하고 무관심한 것이 더 큰 원인이었던 것이거든요. 인권은 세계 보편적이라고 얘기하면서 북한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가장 편향적인 인식을 보이는 분들이 대한민국 진보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인권 문제를 얘기할 때 북한 쪽으로만 가면 38선에서 딱 멈춰요. 왜 인권이 38선에서 멈춰야 합니까. 한반도 통일을 이야기하고 인권의 보편성을 주장한다면 어떤 이유라도 타협하면 안 되는 것이죠. 본인들도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하고, 또 북한이라고 해서 예외가 돼선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인권이 정치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도 인권운동가들의 책임인 것이죠.

- 과거 인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에 많은데, 이들이 오히려 인권을 무시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인권 문제 뿐 아니라 경찰, 검찰 등 국내 정치에서도 인권 침해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그 사람들은 인권 운동을 한 게 아니었어요. 정치활동을 한 것이죠. 인권 변호사, 인권 운동을 했다지만, 진짜 인권 운동을 한 사람이 없어요. 지금 기준으로 그분들 행동을 보면 정치활동을 한 겁니다. 그래서 전 그분들이 386세대로서 정치활동을 했다고 해야지 인권 운동을 했다고 말하는 데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주민 인권 개선에 있어서 진전된 면이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보통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현 정부에 북한인권 개선을 기대하지 않을 겁니다. 기대하지 않을 것이고,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아마도 지금 정부는 북한인권이란 단어가 이슈화되거나 주요 논쟁이 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한다는 게 핵심적인 내부적 목표일 겁니다. 지금 정부가 북한인권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관련 부처 장관이 북한인권 지지 세력에 대한 약간의 언급을 할 뿐이죠. 그렇다고 그 언급이 실질적인 정책적 지향이나 입장이라고 보는 공무원은 없을 거예요. 공무원들은 장관이 당위적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입안해서 실제 개선되도록 추진하겠다고 생각하는 눈치 없는 공무원은 없을 겁니다.

-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부 지원은 좀 나아졌는지요.

본래부터 지원이란 건 없었습니다. 과거 보수 정권이라고 불리는 정부에서는 그럼 지원이 활발했느냐, 그것도 아니었어요. 사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보수 정권이 ‘조금 더’의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이죠. 이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라기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북한인권이나 인권 자체에 대한 철학과 감수성이 없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북한인권에 대한 진정성을 담은 정부는 저는 없었다고 봅니다.

- 북한인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국민이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가장 나쁘게 보면, 정치인에게는 북한인권이 표가 되지 않고, 활동가에는 돈이 되지 않고, 언론에게는 지면 확보가 안 되기 때문이죠. 우리의 통일은 소원이라고 하지만, 나의 소원은 통일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통일이 안 되는 겁니다. 북한인권은 공동의 가치로 붕 떠올려 놓고, 개인의 가치를 추구하죠. 보편적 이익이나 인류 공동의 선 등 이런 면에서 한국은 후진국이에요.

- 그렇다면 우리 국민의 인권 의식이 과거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봐야 할까요.

과거보단 나아졌지만, 그것이 군사분계선 앞에만 가면 멈춘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한국 인권 의식이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소말리아까지 전 세계로 가는데, 군사분계선 앞에만 오면 멈춘다는 거예요. 저는 이걸 이해할 수 없어요. 모순이에요. 북쪽에도 가야 한다는 것이죠.

- 북한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인식 탓일까요.

차라리 이용하는 측면이라도 있으면 낫겠어요. 그 자체를 하지 않아요. 논쟁이든 갈등이든 그런 단어라도 존재하는 영역이 있으면 다행인데 북한인권은 그 대상도 되지 못하는 거예요.

3월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2주년 기념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은 축사하는 시나 폴슨 서울유엔인권사무소 소장 / 연합
3월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2주년 기념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은 축사하는 시나 폴슨 서울유엔인권사무소 소장 / 연합

- 국내 상황이 그런 반면, 미국 대통령이 오히려 북한인권 문제를 더 많이 언급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북한인권을 절절히 강조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없었어요. 저는 우리 정부나 국민이 북한에 사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어요.

- 짐으로 느낀다는 건가요?

짐으로 느끼기도 하지만, 나와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조선족을 2등 국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불가촉천민이라고, 접촉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북한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선 존재하지 않는 대상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권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인권이란 단어 자체를 생각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2등 국민’ ‘불가촉천민’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이 문제

- 만일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남북 통일해도 문제가 되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 의식 수준이 이 정도인데 통일이 되겠습니까. 통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혼란과 갈등이 당연히 발생하겠죠. 하지만 우리 민족은 독특한 점이 있어서 소소한 갈등은 해결할 겁니다. IMF를 극복한 것이나, 2002년 월드컵 때 뭉치는 모습 보세요. 통일 때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 저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사람을 바라보는 지금 인식이라면 어렵다고 봐요.

- 인권 교육이 필요할까요.

저는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교육시킬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80% 이상이 대학을 진학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어디 있습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국민인데, 교육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이미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에 효도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시켜야 한다면 이미 안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죠. 인권 의식은 별도의 교육이 필요 없는 겁니다.

인권이란 유치원 때부터 사람의 기본 권리, 가치를 공유해서 갖춰지는 것이지, 성인이 돼서 인권을 교육시킨다는 건 이미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뿐입니다. 부당하게 매를 맞고 감금당하고 굶고 있다면, 같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통일을 반대하고 따로 살겠다는 게 아니라면 인권이 군사분계선 앞에서 멈춘다는 건 이율배반인 겁니다.

- 예전에는 국회에서도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등 그나마 활동이 보였는데 요새는 그런 활동들도 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고 난 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것이 실제 북한인권 활동에는 상당히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봐요. 북한인권법 최고 수혜자는 통일부예요. 국회와 많은 시민사회가 북한인권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항상 답변은 “인권법이 통과되지 않아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면” 이런 논리로 방어해왔거든요.

하지만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지 않아도 대한민국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많은 정책을 할 수 있었어요. 지금 인권법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을 보면, 인권법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의지의 문제이지 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인권법이 통과되고 난 후에 통일부나 법무부는 세금 써서 공무원 자리 늘리는 것만 했습니다. 기존 민간에서 활동하던 재단 대부분의 활동을 정부 세금으로 대체한 거 밖에 없어요. 민간 활동을 위축시키고 정부 활동만 강화시켰죠. 인권 개선을 위해 실질적으로 작동한 건 아니거든요.

- 그럼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보려면 민간 지원으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까.

그건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인권을 개선한다는 사례는 없습니다. 인권의 문제는 시민사회와 언론에서 제기됐을 때, 정부가 그 문제들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이런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맞아요. 국가가 특정한 다른 곳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전담 부처를 두는 식의 시스템은 전 세계를 찾아봐도 없어요.

인권은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와 민간단체의 활동이고 정부는 그런 활동을 받아 정책적으로 일정 부분 서포트하는 것이죠. 지금은 오히려 민간 베이스에서 어려운 조건으로 해오던 북한인권 활동을 정부가 독점하면서, 결과적으로 정부 통제 하에 이뤄지는 것으로 돼 버렸어요. 북한인권법 통과 후 민간단체들이 거의 사라지고 일부만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것도 전보다 훨씬 열악해졌습니다. 역설이죠. 인권 문제는 원래 정부 통제 밖에 있는 것인데, 북한인권법 때문에 지금 북한인권은 정부 통제 정책 속에 들어가 있어요.

- 만일 북한 급변 사태를 맞는다면 인권 문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를 것 같은데, 이 역시 적폐청산이 필요할 듯싶은데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들은 뭐가 있을까요.

분단은 일제 식민지에서 우리 자체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이어진 겁니다. 통일도 외세의 힘에 의해 과정이 진행된다면, 일제 식민 지배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분단을 맞이한 또 다른 연장선으로 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진정한 통일, 통합과는 거리가 먼 것이죠.

제 말은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사람을 똑같은 사람으로 인권적 관점으로 보고 함께 살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외세의 힘이든 내부의 힘이든 주체적 통일 과정을 통해 갈등을 수습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것 없이 남북한이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북한 사람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이 통일의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려고 하겠어요? (북한 주민)을 2등 국민으로 간주하고 불가촉천민처럼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데 제도적으로 하나가 됐다고 진짜 하나가 되겠느냐는 것이죠. 통일이 되더라도 5~10년 지나서 얼마든지 다시 예전처럼 별개 국가로 살자고 갈등할 수 있고, 설령 별개 국가로 나눠지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북한 사람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어야 급변 상황이 오더라도 능동적으로 넘길 수 있지,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엄청난 부작용이 있을 겁니다. 결국 우리 국민이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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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2018-04-11 00:30:15
명쾌한 설명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식이 이 정도인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