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기억 - 프랑스와 한국
배신의 기억 - 프랑스와 한국
  • 미래한국
  • 승인 2018.03.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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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복거일 칼럼

1944년 여름 미군 170만, 영연방군 100만에 8개 망명 정부군 30만이 합세한 300만 병력이 프랑스 침공작전에 참가했다. 작전 첫날 16만 병력이 항공기 1,200대와 함정 5000척으로 영불해협을 건너 노르망디에 상륙했다. 전무후무한 대규모 상륙작전이었다. 

석 달 동안 이어진 싸움 끝에 연합군은 독일군을 프랑스에서 밀어냈다. 연합군 병력 손실은 20만을 넘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연합원정군 최고사령관은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 군대가 파리에 먼저 입성하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내 미국을 배신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세력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 사이에 냉전이 한창일 때, 프랑스는 자유주의 대열에서 걸핏하면 이탈했다. 동남아조약기구(SEATO)에서 탈퇴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지휘부에서 빠졌다. 심지어 드골은 프랑스의 핵무기가 ‘전방위’ 타격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까지도 잠재적 목표라는 얘기였다. 

이런 배신은 프랑스가 미국으로부터 입은 큰 은혜에서 부분적으로 비롯했다. 프랑스는 1930년대엔 나치 독일에 줄곧 굴복했고 2차대전에선 독일군에게 일패도지해서 비시 정권으로 연명하며 독일을 도왔다. 인기 높은 여류 연예인들은 독일군 장교들의 노리개들이 되었고, 유태계 시민들은 비시 정권에 의해 죽음의 수용소들로 보내졌다. 미국이 아니었다면, 프랑스는 오랫동안 독일의 압제적 지배를 받았을 터이다. 미국은 프랑스에 그런 수치스러운 역사를 일깨워주는 나라다. 개인이든 국가든, 큰 은혜는 견디기 어려운 짐이다. 

자신의 배신을 프랑스는 편리하게 잊었다. 미국은 잊지 않았다. 1966년 드골이 외국인 군사 요원들은 1년 안에 프랑스를 떠나라고 하자, 딘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은 “프랑스 묘역들에 묻힌 미군 전사자들 5만도 포함되는가” 하고 물었다. 프랑스의 배은망덕을 점잖게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신랄하게 꾸짖은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도와 냉전에서 러시아를 꺾는 데 공을 세운 역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가 회고록에서 가장 큰 분노와 혐오를 드러낸 것은 러시아의 사악함이 아니라 프랑스의 배신이었다. 당연하다. 배신은 치명적 위험이므로, 누구나 배신을 증오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를 특히 증오한다. “브루투스, 너도?”보다 더 비통한 절규는 없다. 

감정은 사람의 판단을 결정하는 원초적 힘이다. 이성은 감정이 내린 판단을 합리화하고 실행할 따름이다. 그래서 배신이 부른 증오의 감정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미국 덕분에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났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원리로 삼은 것도 미국 덕분이다. 러시아가 점령한 북한의 끔찍한 역사가 그 점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어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처럼 대한민국의 수립과 성장과 번영에서 미국의 공헌은 절대적이었다. 프랑스가 미국에 진 빚의 몇 백 곱절 되는 빚을 우리는 미국에 졌다. 

프랑스처럼, 우리는 미국에 진 빚을 편리하게 잊었고, 근년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북한 핵무기에 대한 정밀 타격을 미국이 시도했을 때, 김영삼 정권은 막무가내로 막아서 화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남중국해 분쟁에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을 따르라고 미국과 일본이 중국에 요구했을 때, 박근혜 정권은 동참하라는 요청을 외면하고 끝내 중국 편을 들었다. 좌파 정권들의 행태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배신이 필연적으로 부른 미국의 부정적 감정이 어느새 한미관계의 근본적 조건이 되어버렸다. 요즈음 미국이 우리에게 하는 경제적 냉대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그런 부정적 감정을 줄이려 애쓰는 것이 합리적 대응이다. 안타깝게도, 현 정권은 그런 근본적 처방은 외면한다. 미국의 경제적 냉대에 대한 방책은 ‘안보와 경제의 분리’다. 무슨 일이건 경제적 측면이 있다. 안보는 경제적 측면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안보와 경제의 분리’는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다. 

1953년 한국과 미국이 동맹에 관해 협상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적 보장과 경제 원조를 함께 요구했다. 경제가 발전해야 국방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군사와 경제를 아울렀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겠다는 현 정권의 태도는 이치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한미동맹을 근본적 수준에서 약화시킨다. 

프랑스와 우리는 배은망덕에선 같지만 처지에선 사뭇 다르다. 프랑스는 강대국이고 위협하는 적국이 없다. 미국의 지속적 도움이 없으면, 우리는 당장 생존이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공산주의 중국에 점점 깊이 예속될 수밖에 없다. 하긴 미국에 대해선 담대한 정권이 무지막지한 중국의 행패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못한다. 우리 대통령 경호원과 기자들이 중국 요원들에게 폭행당한 일을 아직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다. 현 정권은 잊은 듯하다. 그런 모욕도, 중국에 따지겠다고 국민들에게 한 약속도. 

복거일 소설가 

중앙Sunday 중앙시평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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