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 - 독일통일이 국제문제였던 이유
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 - 독일통일이 국제문제였던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8.03.21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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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이 단지 동서독의 합의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는 독일의 패전에 따른 이유입니다.

즉, 1945년 2차대전이 제3제국 독일의 패배로 막을 내리면서 독일은 전승 4대국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소위 전승 4대국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됩니다. 이후 서독과 동독이 각각 건국되지만 위 4대국이 계속해서 동서독의 주권 일부를 대리행사하였습니다. 점차 양 독일 모두 안정을 찾아감에 따라, 그리고 냉전시기 각 진영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시차를 두고 각각의 독일에게 대부분의 주권을 반환하지만 통일문제만은 여전히 전승 4대국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또한 1945년 8월 포츠담회의에서 독일의 동쪽 국경을 오데르-나이쎄 강으로 정함에 따라 독일은 위 강동편에 있던 구 프러시아 영토를 모두 잃게 되었는데 동독은 소련의 압력에 따라 1950년에 이미 이 결정을 수용하지만 이 구 독일 영토로부터 탈주한 소위 '탈주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서독은 1970 이후에나, 그것도 일정한 유보하에 인정합니다. 따라서 양 독일의 통일은 우선 전승 4대국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통일독일의 영토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려면 주변국과 협의가 더 필요하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국제적 이슈일 수 밖에 없었지요.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둘째는 일반적인 국제관계에서의 세력균형과 관련된 이유였습니다.  

유렵 역사상 독일지역은 동유럽과 서유럽이 마주치는 중간지대, 소위 중유럽(Middle Europe ; Mitteleuropa)으로서 유럽전체의 힘의 균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 중유럽에 강력한 민족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와 모리악의 '나는 독일을 너무 좋아하기에 그 독일이 두개 있기를 바란다'는 풍자적인 말이 모든 것을 말해 주지요. 심지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영국의 대처 수상은 미국의 부쉬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독일 통일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프랑스의 미테랑은 모스크바로 날아가 고르바쵸프에게 독일 통일의 부당성을 주장했을 정도였습니다. 20세기 들어 국제적 힘의 지형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될 경우 자신의 힘만으로 주변의 세력균형을 만들어 내기에는 너무 작지만, 그렇다고 거기에서 아무 역할도 안하기에는 너무 컸'으므로(서독 전 총리 키싱어) 주변국들은 여전히 독일의 통일을 바라지 않았고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독 스스로 국제문제화시킨 측면도 있었습니다. 통일과정에서 내독부(inter-Germany ministry)가 아닌 겐셔의 외교부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그 이유지요. 최종적으로 독일 통일은 소위 2+4(동서독 + 미, 소, 불, 영)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첫번째 이유는 분명히 우리와 상관이 없겠지요. 그러나 통일된 대한민국은 7500만 가량의 인구에 경제규모로도 세계 10위 이내에 들게 될 것입니다(독일은 인구 8100만, GDP기준 경제규모 세계4위). 역시 아무 역할도 않기에는 너무 큰 통일 대한민국입니다.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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