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립하는‘진상조사위원회’
난립하는‘진상조사위원회’
  •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 승인 2018.03.2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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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문재인 정권 들어 적폐청산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진상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활동하고 있지만, 설치의 근거 및 활동 범위에 대한 논란이 있다. 행정기관의 자문기구로서 설치된 위원회의 조사 권한의 범위와 관련해 진상조사활동으로서의 출석 및 진술 요구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지 등 조사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최초로 구성된 문체부의 소위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는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서 이를 취합하여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백서를 발간하여 제도 개선을 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각종 위원회에 조사 권한을 부여함에 있어 행정 권한에 근거해 누구라도 소환해서 조사를 하고 누구에게라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으로 광범위한 강제 조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행정부 산하 진상조사위원회로서 현재 규정이 확인되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교육부 산하의 역사교과서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 그리고 경찰청 산하의 경찰청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의 세 가지다. 이들 위원회는 모두 각 해당 행정부서의 자문기구로서, 대외적 효력이 없는 행정청 내부를 규율하는 행정 규칙인 훈령으로 설치되었다.

자문기구로서의 행정기관 소속의 행정위원회는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하여 설치된다. 위원회는 행정기관의 자문기관이므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음은 위 법 제2조에서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자문기구로서 훈령으로 설치된 행정위원회는 행정청 내부에서 행정업무에 대한 자문을 위한 기관이지 대외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행정행위를 행할 수는 없다.

자문기구 행정위원회는 조사 권한 없다

자문기구로서의 행정위원회가 당해 행정기관이 행할 수 있는 행정조사를 행하려면 그에 대한 법령상의 위임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진상조사란 명목의 행정조사를 할 권한을 구체적으로 부여받은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의 경우에만 해당 규정에서 위원회 산하 진상조사팀이 공공감사법상 조사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행정청 내부 규정인 훈령에 의해 상위 법률상의 권한을 위임할 수는 없다.

하위 법규에 의해서 상위 법규의 권한을 부여할 수는 없으므로 행정기관 산하 위원회가 행정기관을 대신해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편 행정조사는 법령에 근거해야 한다. 행정기관의 행정조사로서 조사 대상자에 대한 출석과 진술 요구, 자료제출 요구, 현장 조사 등의 행위는 행정조사기본법을 준수해야 한다. 행정조사기본법 제5조에 의하면 법령의 근거가 없는 한 강제조사를 할 수 없으며 조사 대상자가 동의하는 경우의 임의조사만이 가능하다.

행정조사기본법 제20조는 자발적인 조사 협조에 의한 임의조사의 경우에도 조사 대상자가 조사를 거부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행정조사가 행정기관이 정책 결정이나 직무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부수적 활동이라는 점과 조사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조사에 거부할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헌법 제12조 제2항 후단의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는 진술거부권 규정은 자기에게 불리한 내용을 말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자기부죄금지원칙(自己負罪禁止原則)을 천명하고 있는데 이는 형사재판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법률관계에서 적용되는 헌법상 원칙이므로 행정 조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경찰청 산하 진상조사위원회의 규정에만 출석 및 진술 거부권을 두고 있지만, 모든 진상조사에 대해 출석 및 진술 거부권이 인정된다고 볼 것이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규정으로 진상조사의 권한을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거부권을 부정할 수 없다.

행정부 훈령에 근거한 현재의 각종 진상조사위원회는 행정기관의 자문기구에 불과하며, 규정에서 조사의 권한을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조사의 실시는 상위 법규인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라야 하므로 조사 대상자가 조사에 응하는 경우의 임의조사만이 가능하다. 조사 대상자가 출석이나 진술을 거부하거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어떠한 제재를 할 수 없다.

법의 근거 없이 마구잡이 조사

진상조사위원회가 설치된 이후에 그 권한 범위에 대해 국회에서 논란이 있어 왔다. 작년 국회 행안위에서 경찰청 산하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법적 근거가 논란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법제처는 경찰청 산하 진상조사위원회는 자문기구이고 조사 내용이 임의조사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행정기관 산하 행정위원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국회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앞으로도 국회 차원에서의 감독이 요망된다. 조사 대상자에 대한 출석과 진술 요구는 법에 근거해 이뤄져야 하며 출석 및 진술 거부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적폐청산 명목으로 행해지는 행정조사를 행정부 산하 행정위원회를 통해서 하는 것은 법절차를 회피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직 구성에 있어서 외부 인사를 포함시킴으로써 대외적으로 행정조사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

행정조사라는 형식이 주는 심리적인 압력으로 인해 차마 이를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이 우려되므로 조사에 있어 출석 및 진술 거부권과 그로 인한 불이익이 없다는 사실이 사전에 고지되어야 한다. 한편 진상조사의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발간하는 경우에 있어 불충분한 사실조사로 인해 확정되지 아니한 사실을 공표함으로 인한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위원회의 권한이 이와 같이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진상 조사를 할 광범위한 권한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곤란하며 자칫 권한 남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 이러한 각종 위원회의 활동을 모방해 행정부 산하 하위 기관들에서 동일한 취지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경우에도 위와 같이 조사 권한이 제한적임은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년 말 사장이 교체된 MBC에서 정상화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보도 내용과 관련해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조직을 발족시켜 활동 중인데, 사기업인 주식회사에서 행정부의 진상조사위원회 규정을 흉내 내서 진상조사를 행할 권한은 없다. 권한이 없음에도 권한이 있는 양 외양을 만들어 내서 법에 근거하지 아니한 조사행위를 시도하려고 한다면 이는 불법이며, 인권 침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적폐청산의 기치가 정권의 유일한 과제인양 되어버린 상황에서 국민은  분열되고 화합의 정치가 실종됨으로써 국가공동체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를 무조건 적폐로 재단하는 방식의 진상조사는 재고되어야 한다.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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