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공화국 대한민국 ‘될 것은 되게 하자’
규제 공화국 대한민국 ‘될 것은 되게 하자’
  •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 승인 2018.03.2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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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진단]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대한민국에는 실패하는 정책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부동산 정책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규제해소 정책이다. 관료들은 규제를 풀면 자신들의 조직과 예산에 손해가 온다는 피해 의식이 만연하고 정치권 역시 규제입법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기는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비전이 있을 수 없다. 이는 규제에 대한 국민의식의 저변이 바뀌지 않으면 어려운 문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규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담긴 칼럼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지난 12월 백악관에는 서류 더미들이 등장했다. 하나는 ‘1960년’, 다른 하나는 ‘오늘(today)’이라는 표지를 달았고, 그 둘을 연결하는 빨간색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1960년대에 약 2만 쪽에 불과하였으나 오늘날은 18만 쪽으로 증가한 연방 규제 법규의 부피감과 무게감을 종이로 시각화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규제가 1960년대 수준으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고 자신하며, 커다란 황금빛 가위를 들어 빨간색 테이프를 자르는 의식으로 규제개혁 의지를 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과감한 경제정책 중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한 통상정책과 법인세 인하로 대표되는 조세정책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규제개혁 역시도 연일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 에너지를 비롯한 전 산업에 걸쳐 규제개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작년 1월, 규제 1건이 시행되면 기존 규제 2건을 삭제해야 한다는 ‘Two for One’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2017년 한 해 동안 635개의 규제를 폐지하고 244개를 효력 정지시켰으며 700개는 시행이 연기되었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1월 발표한 조사에서 미국 최고경영자들은 6년 만에 처음으로 규제 관련 비용을 ‘기업이 마주한 최대 걱정거리’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 없는 규제개혁

개선된 심리는 실제 투자로도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투자 확대, 공장 건설, 기록적인 주가 외에도 기업의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당선 이후 첫해 M&A 거래 규모는 1조 2000억 달러(1337조 4000억 원), 건수 면으로도 약 1만 2700건에 달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 첫해 M&A에서 거래 금액과 건수 모두 가장 높은 수치다. 100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M&A 역시 13건으로 최대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에서도 규제개혁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으며, 구호 역시 규제완화에 이어 규제혁신, 규제혁파로 차례로 수위를 높여오고 있다.

새로운 용어도 지속적으로 도입되어 지난 정부에서는 단두대를 의미하는 규제기요틴, 이번 정부는 관련 담당자들의 마라톤회의를 본 딴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규제개혁의 중요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간의 성과가 지지부진했음을 드러낸다.

이번 정부의 규제정책도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규제샌드박스는 작년 7월 ‘100대 국정운영 과제’, 9월 ‘새 정부 규제개혁 추진방향’에 포함되었지만 올해 1월에서야 구체화되었고 언제 법제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3월 2일 서울시 강동구 재건축공동대책위원회 소속회원들이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강화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
지난 3월 2일 서울시 강동구 재건축공동대책위원회 소속회원들이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강화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

현재의 규제개혁은 새로움에 중점을 두고 신산업·신기술과 벤처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기존의 틀에 맞출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혁신은 당연하고 또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블록체인, 드론, 자율주행과 같은 눈부신 기술 발전에 가려져 있는 구 산업들 또한 관심이 필요하다. 너무나 많이 지적되어 이제 식상하기까지 한 서비스업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혁신의 가능성은 기업의 분야나 업력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정책자금과 같은 지원 정책에서 벤처기업이 우선될 수 있지만, 규제개혁은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사업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역량을 갖춘 인력을 보유한 대기업의 사내 스타트업이 새로운 활력이 되어 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국경에 관계없이 규제개혁에 대한 끝없는 노력의 이유는 새로운 기술 변화에 적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과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책이 우선되는 통화·재정·조세·규제의 4대 분야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문은 규제개혁이다.

특히 기업의 체감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시기이기에 더 시급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업 경기 전망은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간인 21개월 연속 부정적 응답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3%, 최대 수출을 달성했음에도 비관주의가 만연해 있음은 놀랍기만 하다. 기업 활동의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는 규제혁신의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 규제혁신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내세우는 주요 국정과제 중의 하나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 출범 초기에는 ‘소득주도 성장’을 화두로 삼았지만 올해부터는 ‘혁신성장’을 화두로 삼아 규제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1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 대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체계 전환을 강조했다.

대통령은 또한 신산업의 경우 우선은 사업을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는 방식으로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도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규제 체계 전환을 추진했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정부 초기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면서 “정부는 현존하는 모든 규제를 원점(zero-base)에서 검토한 뒤, 경제규제 위주로 최대한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신기술·신시장·신산업 및 투자 저해 규제는 원칙적으로 네거티브 규제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라고 천명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과 거의 동일한 입장이다. 이렇듯 정부는 바뀌어도 규제혁신의 방향은 같았지만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 

=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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