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 - 사민당 동방정책의 두번째 국면
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 - 사민당 동방정책의 두번째 국면
  • 미래한국
  • 승인 2018.03.28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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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소간 냉전의 서방측 최전선은 서독, 그중에서도 서베를린이었습니다. 특히, 서베를린은 서독과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동독지역 속의 '섬'으로서 소련측의 베를린 봉쇄와 그에 대항한 미국의 공수작전, 동독의 베를린 장벽 건설과 그에 따른 미소갈등 등 수많은 일촉즉발의 위기들이 전개된 현장이었습니다. 동독주민들의 정당한 항의가 소련과 동독 당국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고, 베를린 장벽을 넘던 동독 젊은이들이 처참하게 스러지는 모습 등 그들의 비통한 삶의 생생한 목격자였습니다. 

이런 서베를린의 환경에서 정치를 시작한 빌리 브란트가 동서독간 평화, 즉 긴장완화와, 단지 동쪽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당하는 동쪽 동포들의 인권신장, 이 두가지를 지상의 목표로 하는 동방정책을 입안, 실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서독 사민당은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등 두 총리를 통해 이 동방정책을 꾸준히 집행하면서  동서독-나아가 동서진영-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동독주민들의 고통을 줄여주는데 일정부분 기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헬무트 슈미트 총리시절 중기 이후부터 사민당내 중도파와 좌파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슈미트 총리를 비롯한 중도파들은 초기 동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려는데 반해 조금 더 좌파적 성향을 가진 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르, 허버트 붸너, 오스카 라퐁텐 등은 기존의 동방정책 해석에서 미묘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민당 의원이던 카르스텐 포이그트는 이런 변화에 대해 '동방정책의 두번째 국면'이라 부르기도 했지요. 

그 변화의 첫번째는, 동방정책의 두 목표중 첫번째, 즉 평화유지, 긴장완화에 보다 큰 비중을 두면서 두번째인 인권신장 목표가 사실상 희생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민당계열의 학자인 칼 카이저는 이런 변화에 대해 사민당이 '인권 논의에서 동유럽을 제외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에곤 바르는 카이저가 '이념'에다가 평화유지와 같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우를 범하였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함으로써 '평화'를 위하여는 다른 모든 것이 희생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두번째 변화는 평화유지, 긴장완화의 과정 내지 방법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얘기했듯이 동방정책은 아데나워의 서방정책의 기초하에 동쪽에 '접근'하여 그들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는데 그 기초가 조금씩 무너지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소간, 동서진영간의 갈등을 '다원적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정당독재'라는 이념, 가치의 차이에 따른 갈등임을 부인하고, 단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헤게모니 싸움으로 치부하면서 서독은 미소 양 강대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해야한다는 '유럽의 유럽화' 주장 등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라퐁텐 같은 이는 NATO의 이중결정에 대한 반대를 넘어 민주적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예 NATO에서 탈퇴하여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서독내 진보성향 역사학자인 하인리히 빈클러는 '사민당이 종종 전쟁의 가능성을 잊어버리고 현실을 선택적으로만 받아들이면서 스스로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한마디로 망상속에 있었던 결과였다'고 평가하였습니다. 

헬무트 콜의 기민/기사당과 자민당은 NATO, 즉 서방에 대한 확고한 지지와 NATO 이중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서독 주민들은 현명했고 따라서 콜 정부는 이후 10년 넘게 집권하며 우연히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현실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Bush의 미국은 영, 불 등 주변국의 반대를 막아내며 독일 통일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됩니다.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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