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사라진 MBC 기자들의 눈물
방송에서 사라진 MBC 기자들의 눈물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3.2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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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배현진 전 MBC 앵커가 직무에서 배제된 채 조명창고를 개조한 임시 사무실에서 대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면서 파업에 불참한 다른 경력직 기자들이 처한 현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승호 사장 체제에 들어와 이들 상당수도 유배에 가까운 부당전보 등 인사 불이익과 인격적 모독 및 압박으로 하루하루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MBC 관계자들과 전·현직 기자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접한 이들은 “회사에 출근하는 게 거의 감옥에 가는 기분”, “소련 치하, 김일성 치하에서 사는 것 같다.”, “경력직이라는 이유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등의 소감을 토로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길게는 수 년 간 병원 치료와 약물 복용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MBC에는 2012년 김재철 사장 시절 극렬했던 180일 최장기 파업을 계기로 일선 취재를 위해 입사한 경력직 기자들이 80여 명에 이른다. 이 중 절반 가량인 40여 명은 지난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부장 이상 특파원 등을 포함하면 파업 불참 보도국 소속 기자들은 약 8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 이하 경영진, 노조까지 언론노조가 장악한 현 체제에 찍힌(?) 대상은 이들 외에도 아나운서와 경영, 기술 파트 등을 합치면 140여 명에 달한다. 현재 MBC는 전임 사장 시절 간부들을 포함한 이들을 대상으로 감사국 조사, 정상화위원회 조사, 심의국 조사 등 각종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력직 기자들은 이런 조사를 한 두 개 많게는 세 개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을 위해 자리를 비웠던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조MBC본부 소속 기자들 대신 그 자리를 메우며 밤낮으로 땀 흘렸던 보도국 경력직 기자들에 대한 사측의 차별과 전보인사 등 보복성 조치는 특히 가혹했다.

이들에 따르면 조치 기준은 파업 참여 여부였다고 한다. MBC의 A 기자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업무에서 배제시켰다”며 “예전엔 각 부서에 공채든 경력이든 섞여 포진돼 있었는데, 이제는 파업에 참여 안 한 사람들만 징벌성으로 조치했다”고 했다.

지난 3월 14일 MBC노동조합이 운영하는 공정방송감시센터(공감터)는 <‘배현진 논란’과 MBC, 그리고 사라진 기자들>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은 속사정을 알린 바 있다.

차별, 업무 배제 근거는 파업 참여 여부

공감터는 “MBC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압은, ‘배현진 논란’의 미디어센터 6층 기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며 “최승호 사장은 취임 첫날인 작년 12월 8일 오후 보도국 국.부장단 전원을 보직 해임하고 민노총 언론노조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들로 그 자리를 속속 채웠다. 보도국에 입성한 새 간부진은 당일 뉴스데스크 리포트를 준비 중이던 일선 기자들에게도 즉시 업무에서 손을 떼게 했다”고 폭로했다.

공감터에 따르면 당시 보도국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뉴스데스크 정파적 보도를 막아오던 취재기자 약 80명이 뉴스를 제작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최 사장의 조치 이후 이들 기자 80명은 단 한 명도 MBC 뉴스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이후 크고 작은 인사 발령이 이어졌는데, 보도국장을 중계차PD로 보냈다 외부에 알려지자 다시 TV심의부로 보내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도 중계차 PD로, 전직 시경 캡(경찰팀장)도 사내 서버 관리부서로 보내졌다가 중계차 PD로 다시 발령됐으며, 보도국 간부 중 일부는 TV와 라디오 주조정실이나 스포츠국 사업부 등 비 취재부서로 발령이 났다.

파업에 불참한 기자들도 방송기자 업무가 아닌 곳들로 골라 배치했다. 취재기자들을 난데없이 영상편집부나 사내 서버 관리 부서 등으로 발령해, 그곳 책임자에게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게 했다는 것이다. MBC 기자들에 따르면, 파업 기간 일을 했던 40여 명의 일선 경력기자들은 보도국 소속 뉴미디어국과 NPS준비센터(뉴스영상 서버관리), 영상편집부(뉴스콘텐츠편집), 영상취재부(뉴스콘텐츠취재) 등으로 발령이 났다.

뉴미디어국으로 발령 난 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영상편집부로 옮긴 경력기자 가운데 일부는 영상 편집기 다루는 법을 배우라는 등 부당한 업무 지시도 받았다고 한다. 또 일부는 보도국 ‘뉴스투데이’ ‘뉴스데스크’ 편집부로 발령 났지만 편집PD나 취재기자 업무에서는 배제돼 있다고 한다. 이들은 기사 스크립트 작성 및 CG 제작 등 기존에 작가나 AD가 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MBC를 나온 후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배현진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이 3월 21일 서울 송파구 당협 사무실에서 당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
MBC를 나온 후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배현진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이 3월 21일 서울 송파구 당협 사무실에서 당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

아침뉴스 편집부 소속 경력기자들은 현장 취재 및 기사 작성 후 ‘납품’하는 형식의 일을 한다. 납품된 기사 원고는 아나운서나 리포터가 대신 읽는다. 이런 업무를 맡겨 경력기자들의 이름이 방송에 나가거나 얼굴이 화면에 비쳐지는 일이 없도록 사실상 막는다는 것이다.

3월 초엔 영상편집부에 남아 있던 파업 불참 기자들 전원이 NPS준비센터로 이동하는 인사도 있었다. MBC의 B 기자는 “(사측이) 부당업무 지시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NPS센터에서도 뉴스 영상 관리 등 취재업무와는 무관한 업무 지시를 받고 있다”고 했다. B 기자는 “경력기자들이 뉴스콘텐츠취재부(카메라부)에도 배치됐는데, 취재기자가 카메라 부서에 배치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취재기자들을 카메라 부서의 한 차장이 관리한다”고 전했다.

그는 “파업 기간에 언론노조 쪽에서 파업불참 기자들을 오디오맨 시켜 굴욕을 줘서 회사를 나가게 한다는 비아냥을 하기도 했다”며 “사실상 그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MBC 기자들에 따르면, 언론노조 측이 과거 대표적 ‘유배지’ 중 하나로 지목했던 TV 주조정실 등에도 파업 불참 기자들과 전임 경영직 간부가 배치됐다고 한다.

다만, 논란이 일 것을 의식해 이번엔 ‘지원’하는 방식으로 주조정실 MD(Master Director) 근무자를 차출하는 꼼수를 뒀다. 한직으로 발령 난 일부 기자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울며겨자먹기로 주조정실에 지원하거나, 담당 부서장이 주조정실 근무의사를 본인에게 타진해 승낙할 경우 이메일로 해당 부서에 지원 의사를 밝히도록 했다는 것이다.

MBC의 C 기자는 “강제적인 전보가 아니라는 기록을 남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라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파업에 불참한 부장급 기자와 일부 차장급 기자를 중계차 팀으로 배치해 새벽부터 중계차를 타고 지방을 오가는 업무를 시키거나 수도권 지역으로 발령하고, 라디오뉴스팀 담당 PD로 전보시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C 기자는 “최승호 사장과 경영진은 과거 부당 노동행위와 보복인사 등에 반발해 공정방송을 외치던 세력이었다.

하지만 MBC 장악 후 똑같은 보복인사를 단행한 것”이라며 “과거엔 언론노조 소속 기자 일부가 노골적으로 업무를 거부하거나 방해한 행위로 사측에서 인사조치한 전례가 있긴 하지만, 이번엔 단지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취재업무에서 배제하고 보복인사를 단행했다. 사실상 언론노조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셈”이라고 했다.

실제로 정형일 보도본부장은 지난 1월 MBC 사보 인터뷰를 통해 보도국엔 “같이 갈 수 없는 경력기자들이 있다”는 취지로 말해, 일부 기자들의 업무 배제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이 같은 사실도 파업 불참이 업무 배제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업무 배제 등 차별과 각종 유무형의 왕따, 인간적 모멸감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MBC 감사국과 정상화위원회, 심의부 등의 조사 등 삼중 압박으로 이들을 조이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출범한 정상화위원회는 법적 근거가 허약해 위법 시비에 걸릴 소지마저 있다. 노사 동수로 구성된 정상화위원회는 산하에 전담 부서와 인력을 두고 향후 최소 1년 동안 활동하게 되는데, 지난 2008년 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일어났던 △방송 독립성 침해 △사실의 은폐·왜곡 △부당한 업무지시 혹은 청탁 △방송강령·윤리강령·MBC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등의 사규 위반 행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사 동수라고 하나 노조위원장 출신의 최승호 사장 및 언론노조 출신 핵심 인사들로 구성된 경영진과 노조는 사실상 한 몸이라고 봐도 무방해, 노사 간 견제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A 기자는 “감사국에서 경력직 기자들 대상으로 입사 경위 감사를 벌이고 있다. 마치 강원랜드 채용비리와 같은 비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심을 하는 것 같다.

국장급이나 부국장급을 대상으로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조사하는 것도 있다”며 “정상화위원회라는 곳에서는 강성 노조 사람 다 집어넣어 조사를 하고 있다. 나 역시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실에는 두 명이 앉아 있었고, 마치 검찰의 취조처럼 과거 기사에 관해 시시콜콜하게 따졌다. 어떻게든 엮으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당시 조사를 받았던 소감을 털어놨다.

그는 “무조건 트집을 잡아 해고시킨다, 너희들이 제 발로 나갈래, 아니면...이런 식”이라고 했다. MBC의 D 기자는 “내 경우는 아직 위원회 조사를 받지 않았다”며 “사내에 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사위원들이 ‘이런 기사는 왜 썼느냐’ 그런 이야기를 물어보면서 세 시간씩 네 시간씩 조사를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D 기자는 “정상화위원회라는 기구는 우리로서는 부당하고 이상하다”면서 “그런데 제가 지금 당한 일은 아니라서 상황 설명을 구체적으로 드리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스트레스로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고 있다. 인간적 대우를 못 받으니까. 언론노조 그들도 과거 그랬다고 하니까 뭐...똑같이 되돌려준다고 보면 된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관두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당장 옮길 수 있는 방법도 없다보니 참고 지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경력 기자들끼리도 뭉치고 단합해야 하는데, 현재 그것도 안 된다.

그래서 더 힘든 것”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MBC 정상화위원회와 관련해 E 기자는 이런 지적을 했다. “정상화위는 외부적으로는 노사 동수로 공정방송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민노총 위주의 특정 정파에 의한 일방적인 재판이다. 조사관들은 모두 과거 언론노조 출신이고, 조사는 상당히 강압적으로 이뤄지며, 사실 일방적 조사 속에 반론권 보장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더욱이 공정방송은 기존 사측의 경영진에 대한 책임 소재가 다뤄져야 하지만, 오히려 일반 평사원들을 중심으로 혹독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정상화위는 당시 보도의 중추적 자리에 있던 언론노조 출신을 더욱 적극 조사해야 하지만 막판에 파업에 귀화한 이들을 얼마나 조사할지도 의문이다.” 사측이나 공채 동료들로부터 인간적 대우를 못 받으며 괴롭힘을 당한다는 이야기는 경력기자들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MBC의 F 기자는 “보도국 기자 시절, 기사를 송고하면 늘상 구박을 받고 데스킹 과정에서 기사를 난도질당했다”며 “출입처에서 매년 같은 때 나오는 똑같은 보도자료를 가지고 올해도 여지없이 제작을 하게 됐는데, 찾아보니 몇 년 전에 똑같은 내용으로 똑같은 장소에서 스탠드업을 한 아이템이 있었다. 데스크의 갈굼이 두려워 예전 기사를 그대로 복붙(복사해서 붙이기)했다”고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F 기자는 이어 “과연 오늘은 데스크가 시비할지 안할지 정말 궁금했다. 복붙한 건 그가 그토록 칭송하는 기자의 리포트였기 때문”이라며 “아니나 다를까 크게 깨졌다. 이유는 ‘이게 기사냐’였다. ‘기사를 이 따위로 쓰면 재미있냐’ ‘누가 보냐’ ‘머리를 써라’ 팩트가 틀렸거나 철자가 틀렸거나가 아니라 머리를 써라가 가장 큰 이유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때) 확실히 알았다.

기사 데스킹의 판단 기준은 경력의 글인지 공채의 것인지였던 것”이라며 “(그 후로) 더 이상 내가 기자 자질이 부족한가보다 라는 자책은 최소한 안 하게 되더라”고 했다. 기자들이 더 고통스러워하는 건 이와 같은 차별과 보복이 끝난다는 기약이 없다는 현실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이들은 퇴사와 이직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C 기자는 “이미 그만 둔 경력기자들이 있다.

현재 정치적 분위기나 환경을 봐선 비전이 없는 상태”라며 “저희 입장에선 MBC가 정상화돼 본업을 할 수 있을지, 아마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지막으로 언론장악 현실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환기시켰다. 그는 “저도 이 일을 하지만 지상파가 이렇게 장악된 것이, 이 정도로 심각하구나 생각한다.

국내 정치는 물론 국제 정세를 제대로 전할 수 없기에 대부분 유권자들은 잘 모르고 있다. 방송이 눈을 감게 하고 모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MBC 보도는 기계적 중립조차 갖추지 못한 게 많다. 정도가 너무 심해서 국민 여론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기능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진짜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시청률 하락과 광고판매 부진속에 적폐청산에 올인하는 최승호 사장의 MBC는 현재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흔들리던 MBC를 단단히 부여잡았던 경력기자들의 피눈물은 MBC의 뿌리를 드러낼 치명적 독소로 작용할지 모른다. 안팎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최승호 사장의 MBC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한 이유다.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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