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에 매년 64조 원에 달하는 수입 관세를 부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여기에 보복관세로 미국의 농산물에 고관세를 매긴다는 소식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신(新)냉전질서와 함께 보호무역질서로 회귀하는 조짐이 역력하다.
이러한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있다. 미국우선주의는 원래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고립주의를 의미하는 보수주의 외교노선이었다. 다른 국가들의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미국 스스로 자국의 문제를 우선한다는 입장이었던 것.
그런데 이 미국우선주의는 트럼프 행정부를 통해 ‘강력한 미국’ ‘1:1 대응주의’로 바뀌어 해석되고 있다. 2018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혼자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해임된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의 2017년 설명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는 독특한 세계관에 바탕을 둔다. 즉 세계는 ‘글로벌 공동체(global community)’가 아니라 국가와 비정부 행위자들 그리고 기업들이 이익을 위해 서로 관여하고 경쟁하는 무대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국제관계의 본질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과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은 미국을 든든한 우방으로 갖게 될 것이고, 반대로 미국의 이익을 거스르는 국가들은 강력한 저항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입장이다”(2018.5 세종정책브리핑) 이상현 본부장이 2017년 발간된 백악관의 ‘안보전략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전략의 가장 두드러진 기본 인식은 현재의 국제질서가 ‘경쟁적(competitive)’이라고 보는 점이다.
즉 역사의 변치 않는 연속성은 ‘힘의 대결(contest for power)’이며, 오늘날 미국은 세 종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데, 첫째는 중국, 러시아 등 현상타파 세력, 둘째는 이란, 북한 같은 불량국가들, 셋째는 지하드 테러조직 같은 초국가적 위협 등이 그것이다.
이들 세력이 글로벌 혹은 지역 차원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세력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 경쟁 중에 있다고 트럼프 행정부는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대결의 본질은 인간 존엄성 및 자유를 중시하는 측과 개인을 억압하고 획일성을 강요하는 측과의 대결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현 국제질서의 경쟁적 속성은 미국의 과거 정책을 재고하는 계기를 제공하는데 경쟁자들을 국제체제 속으로 끌어들여 통상 교류를 하게 되면 이들을 협력자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는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
따라서 미국의 경쟁자들은 정치적 선동과 기타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으며 반서구적 시각을 확산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기술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쟁자들이 재래식 군사력 및 핵전력을 현대화하면서 미국의 우위는 점차 소멸하고 있으며 정보전 분야의 각축 역시 정치, 경제, 군사적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과거의 역사에서 미국이 얻은 교훈은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조만간 적대세력이 그 공백을 차지해서 결국 미국의 불이익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고서는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하 NSS) 보고서는 백악관이 발간하는 최상위 전략서로서 이에 근거하여 국방전략(NDS), 군사전략(NMS), 핵태세 검토(NPR) 그리고 4년 주기 국방태세 검토(QDR) 보고서 등 국가안보에 관련된 다양한 하위 보고서들이 일관성을 지니고 발간된다.
이를 종합해보면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는 기존 다자간 협력질서의 세계로부터 미국이 분리되어 각국과 1:1대응을 추구한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체결된 한미 FTA에 대한 전면적 거부와 수정, 그리고 유엔과 국제사회가 합의로 도출한 이란 핵협상을 뒤엎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우선주의 시대에 우려되는 것은 무엇보다 제로섬적인 국제관계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이상현 본부장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트럼프 국가안보전략이 상정하는 국제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투쟁을 당연시하는 다분히 홉스적(Hobbesian) 시각에 입각해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에 대한 경쟁자로 보는 시각이 대표적인 예인데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현 국제 상황을 중국과 러시아의 미국 리더십에 대한 도전이라고 명확히 규정하며 미국은 정치·군사·경제 모든 영역에서 우위를 확고히 지켜 가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미·중·러 간에 냉전 2.0이 시작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2018년 제2차 세종연구소 정세토론회(1.23))
결국 미국우선주의를 경제 분야에 적용해보면, 이는 21세기형 중상주의(Mercantilism) 부활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중상주의의 기본 철학은 국력의 모든 도구를 총동원해 무역과 산업을 확대함으로써 외국의 경쟁국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축적하는 데 중점을 둔다.
트럼프 행정부가 3월 22일 중국을 대상으로 연간 500억 달러, 우리 돈 64조 원의 수입관세를 결정한 배경은 이러한 미국우선주의에 입각한 신중상주의적 발상임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이러한 보호무역주의의 발로는 상대국의 무역보복을 불러오게 된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폭탄에 즉각 미국 농산물 수입에 대한 보복관세를 천명했다. 문제는 우리 한국의 경우 상황이 매우 불리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중국을 통해 미국에 수출하는 비중이 해마다 높아져 왔다.
무역진흥공사(KOTRA)의 2017년 한중무역 분석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해외 수출과 한국의 중국 수출은 뚜렷한 동조 현상을 보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에 의해 수입관세 폭탄을 맞은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율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KOTRA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1992년 3.5%에 불과하던 것이 2016년에는 25.1%로 급증했다. 2000년 이후 수출의존도가 급격히 상승했으며 2013년 26.1%로 최고치 기록 후 감소세에 있다.
특히 200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선진국 경기 부진 속에 중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면서 대중 수출 의존도가 크게 상승했는데 우리의 대중 수출의존도(2016년)는 대만(26.1%)에 이어 두 번째인 25.1%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일본(17.7%), 미국(8.0%)의 순이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이 미국에 관세폭탄으로 수출 타격을 입을 경우 우리 경제에도 그 충격은 피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 점과 관련해서 아시아 국가들의 미국시장 점유 상황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에서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의 세계전략은 경제를 중요한 한 축으로 삼아왔다. 미국은 1930년대 자신의 보호주의무역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경험을 반성하고 자유무역을 국가 이익으로 지지하게 되었고, 그의 연장선상에서 1947년 자유무역에 관한 국제 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나중에는 WTO)’의 체결을 주도했다.
다른 한편 미국은 동맹국들의 국내 상황을 안정시키고 동맹을 유지하는 데 있어 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동맹국들의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원조뿐만 아니라 미국을 거대한 수출시장으로도 제공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일본(30%), 한국(22%), 대만(26%), 말레이시아(21%), 태국(21%) 등에게 가장 큰 수출시장이었다. 1990년대부터는 중국 또한 미국 수출시장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는 미국이 대규모 무역적자를 고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주목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1990년에 중국을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부터 대(對)미 공산품 수출의 비중은 47.1%이었고, 2016년에도 46.8%로 거의 변화가 없다. 다만 수출국가가 변화된 것이다.
1990년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부터 공산품 수입에서 중국은 7.6%에 불과했으나 2016년에는 54.2%로 증가했다. 달리 말하면 1990~2016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부터 미국에 공산품 공급처로서 중국의 역할이 급격히 증가한 반면 다른 국가들의 상대적 중요성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중국으로 생산시설이 이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일본, 한국, 대만, 홍콩 등의 지역에서 생산된 재화들이 미국으로 수출되던 다양한 최종재가 현재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부터 대(對)미 공산품 수출의 비중이다. 생산 이동의 상당 부분에는 일본이 연관되어 있다. 1990년 일본은 미국의 공산품 수입의 23.8%를 차지했으나 2016년에는 6.7% 수준으로 하락했다.
대신 미국의 공산품 수입에서 중국의 비중은 3.8%에서 23.6%로 증가하였다. 수 년 동안 미국의 양자 제조업 무역에서 일본이 단일 최대 경상수지 적자 국가였는데 2000년에는 중국으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 미국 수출시장의 존재는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상호 의존을 성립시킨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이전까지는 개별적으로 미국 수출시장에 접근했지만 중국이 개혁 개방으로 나아간 후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은 최종재를 미국에 수출하는 아시아 생산 네트워크가 수립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경제적 패권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움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비록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수출시장에 의존하고 있지만 경제력이 쇠퇴하는 미국은 급속히 성장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역협력이 미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입장은 동아시아 경제협력에 미국이 적극 개입한다는 원칙이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적극 개입보다는 오히려 1:1 협상주의로 변화했다. 바로 ‘미국우선주의’와 함께 등장한 보호무역질서로의 회귀 필요성 때문이었다.
따라서 향후 외교안보 분야의 리스크는 물론 강대국간 무역전쟁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상호확증 경제파괴(mutually assured economic destruction)에도 대비가 시급해졌다. 한편 신북방, 신남방정책으로 우리의 지경학적 경계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러한 전략은 다자주의 및 국제주의 퇴조에 대비해 국제적 규범과 룰의 확립, 국제사회의 공동가치를 지향하는 외교를 강화해야 함을 뜻하기도 하는데 생각과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이 가치와 규범, 룰과 표준을 세우려는 중견국 네트워킹, 小다자주의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강선주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 교수가 제시하는 우리의 대응 전략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2017년 발간된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협력 정책 분석: 경제 전략과 국내 통상정치의 관점’이라는 제하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문하고 있다.
첫째, 미국의 보호주의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중대한 시기에 미국이 후퇴하는 신호를 이 지역 국가들에 보내고, 장기적으로 미국의 경제와 전략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의 보호주의는 이 지역에서 중국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갖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중국의 잠재적 전략적 우위가 지역협력에서 지도력으로 발전할 것인가는 중국이 안고 있는 능력과 정당성 격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당분간 동아시아 지역협력은 유동적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고, 한국이 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보호주의가 동아시아에 공백을 남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공백을 일본이 채울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동안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능력과 정당성 격차를 겪어 왔는데 최근에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남기는 공백을 적극적으로 메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은 미국이 탈퇴한 TPP를 일본이 주도해 나머지 11개 국가와 함께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살려 놓은 것에서 나타난다. CPTPP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조율을 통해서 가능해진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러한 경우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일본(CPTPP)과 중국(RCEP)의 경쟁이 진행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준비할 필요가 있다. 셋째, 미국의 TPP 탈퇴 이후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 자유화협상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RCEP 협상에 참여해왔으므로 RCEP과 FTAAP의 가속화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이 RCEP과 FTAAP에서 고려할 사항은 무역 자유화의 수준이다. RCEP은 무역과 경제 성장을 자극할 수 있는 수준의 무역 자유화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의 확산과 국가간섭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전 세계적인 경제규범과 조화될 수 있는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노력을 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TPP에서 탈퇴한 미국이 TPP를 변형시키거나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FTA를 추진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TPP 탈퇴 후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무역 자유화의 리더’라는 인식을 지우기 위해 경제적 레버리지를 갖춘 이니셔티브를 제시하려 할 수 있다.
경제 및 지정학적 가치를 이유로 TPP를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미국 내에 존재하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TPP를 소다자(minilateral) 형태로 변형시키거나 ▲회원국 규모를 유지하면서 내용을 수정해 다른 명칭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FTA를 추진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이 TPP를 변형시키든 또는 부활시키든 간에 이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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