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땅의 예찬...정원으로의 여행
[신간] 땅의 예찬...정원으로의 여행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3.29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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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병철은 1959년 출생. 베를린예술대학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고, 브라이스가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과 뮌헨대학에서 철학, 독일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독일과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피로사회》를 비롯하여 《투명사회》 《심리정치》 《타자의 추방》 《시간의 향기》 《에로스의 종말》 《아름다움의 구원》 《선불교의 철학》 《권력이란 무엇인가》 《죽음과 타자성》 《폭력의 위상학》 《하이데거 입문》 《헤겔과 권력》 등 예리하고 독창적인 사회 비평서와 철학책을 썼다.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한병철의 신작 《땅의 예찬》이 2018년 새봄, 독일과 한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노라 결심한 저자는 3년 동안 땅을 일구며 비밀의 정원을 가꾸었다. 그렇게 베를린의 정원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을 겪는 동안, 디지털 세계에서 잃어가던 현실감, 몸의 느낌이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했다. 

정원 일을 하면서 그는, 변화된 공간감각과 시간감각에 대해, 기다림, 인내와 희망에 대해, 색채와 빛과 향기에 대해, 수국과 옥잠화에 대해,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와 낭만주의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명상한다. 그리하여 결실한 것이 때 아닌 ‘땅의 예찬’이다. 정원의 철학자가 건네는 이 책은 오늘의 디지털 사회에 대한 확고한 반대기획이며, 끔찍한 자연재해에 직면한 세계에 보내는 경고인 동시에 약속이다. 땅의 질서, 다가오는 땅에 대한 갈망과 사랑의 노래다. 

자기착취의 세계, 긍정성이 넘쳐나는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평으로 유명한 이 철학자는 왜 정원사로 변신했을까? 혹독하다 못해 파괴적인 베를린의 겨울, 영원히 계속되는 축축하고 어두운 추위, 빛이 꺼져버린 것만 같은 잿빛 속에 머물다 보니 “겨울 한가운데서 밝게 꽃피는 정원을 바라는 형이상학적 소망”이 깨어났다. 땅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날카로운 욕구를 느꼈고, 그래서 매일 정원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온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정원 일을 하는 그에게 땅은 많은 것을 돌려주었다. 고된 정원 일은 도리어 ‘고요함 속에 머무는 일’이었으며, 시간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계절을 훨씬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고, 겨울이 다가오면서는 점차 스러져가는 빛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정원은 땅의 리듬에 따라 일이 이루어지는 곳, 불확실한 기다림, 꼭 필요한 참을성, 느린 성장이 특별한 시간감각을 불러오는 곳이었다. 식물들을 향한 사랑 어린 인식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는 곳, 바로 정원은 구원의 장소였다. 

거기서 그는 자기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아네모네, 미선나무, 동백, 영춘화, 겨울바람꽃, 풍년화, 옥잠화, 나무수국, 밀짚꽃, 노루귀, 부겐빌레아... 수많은 나무와 화초, 꽃들의 생김새에서부터, 이들이 뿜어내는 향기, 이들이 등장하는 문학/철학 텍스트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이 살아 있는 존재들과 맺어가는 관계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의 후반부 ‘정원사의 일기’에는 저자의 전작들에서 볼 수 없었던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 내밀한 고백들이 담겨 있다.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화가인 이사벨라 그레서가 그린 24컷의 일러스트도 인상적이다. 꽃의 생장 과정을 오랜 시간 지켜본 끝에 탄생한 이 그림들은 신비로운 느낌을 전하는데, 본문의 예리하고 시적인 언어, 그에 담긴 저자의 ‘형이상학적 욕망’과도 잘 어울린다. 

“땅을 보호하라는 명령, 곧 땅을 아름답게 대하라는 명령이 땅에서 나온다. ‘보호하다(sch?nen)’라는 낱말은 어원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dem Sch?nen)’이라는 말과 친척이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호할 의무, 아니 명령을 내린다. 아름다운 것은 보호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 옳다. 땅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의 절박한 과제이자 의무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 뛰어난 것이니 말이다.”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에서 새로운 생명이 깨어나는 봄에 출간된 이 책은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한병철은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기착취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 비판했고, 이러한 그의 진단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왔다. 《땅의 예찬》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산성을 높이려는 자기착취는 자기착취에 그치지 않고 자연을 착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땅을 잔인하게 착취하고 마모시키면서 그를 통해 완전히 파괴하는 중이다.”

 우리는 우리만 착취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착취하고 있다. 성과를 내기 위한 자기착취가 당사자를 소진시켜 쓰러지게 하듯이, 자연착취는 필연적으로 땅의 소진을 불러온다. 오늘날 지구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는 바로 이러한 자연착취의 결과다. 그런데 땅이 몰락하면 인간도 몰락한다. 인간(human)은 후무스(humus), 곧 땅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기착취, 자연착취, 땅의 파괴, 인간 파괴로 이어지는 이 악순환, 몰락의 고리를 끊고, 땅과 다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다. 책에서 횔덜린의 《휘페리온》, 노발리스의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슈만의 〈아침의 노래〉 등 독일 낭만주의 작품들을 다수 거론하는 것도 다른 이유가 있지 않다. 바로 이들 작품들에서는 자연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세상의 디지털화란 완벽한 인간화 및 주체화라는 것과 같은 뜻으로, 땅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망막으로 온 땅을 뒤덮는다. 그를 통해 우리는 타자에 대해 눈멀게 된다. ... 세상에서 온갖 비밀, 온갖 낯섦을 없애고, 모든 것을 알려진 것, 진부한 것, 친숙한 것, 내 마음에 드는 것,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 세상의 디지털화에 직면하여 세상을 다시 낭만화하고, 땅을, 땅의 시를 다시 찾아내고, 땅에 신비로움, 아름다움, 고귀함의 품격을 되찾아주어야 할 것이다.” 

세계의 디지털화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인터넷에서는 검색만 하면 필요한 정보가 튀어나오고, SNS에는 친구들의 소식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디지털 기기와 그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감각과 세계가 확장되었다고 믿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디기투스(digitus)’가 암시하듯, 디지털 문화는 인간을 헤아리기만 할 뿐인 작은 손가락 존재로 축소시킨다. 디지털 문화는 헤아릴 뿐,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트윗이나 정보는 서로 합쳐봐야 이야기가 되지 않”고, “타임라인(timeline)도 삶의 이야기, 또는 전기(傳記)를 들려주지 않”으며, “페이스북 친구들은 무엇보다도 헤아려진다.”

이러한 디지털 세계에 비해 정원은 감각성과 물질성이 넉넉하고 “모니터보다 훨씬 더 많이 세계를 포함”한 곳이다. 그에겐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주는 고통조차 “오늘날 잘 조율된 디지털 세계에서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현실감, 몸의 느낌”을 되돌려주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원에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타자, 저마다의 시간을 지닌 존재들이 있었다. “생명을 살리고 행복하게 하는 힘”, 오늘날 ‘모니터 크기로 축소된’ 힘을 땅에서 얻을 수 있었다. 땅에서 유리되어 디지털 세계를 떠도는 스마트한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땅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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