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지대(地代) 추구, 이대로는 안된다
노조의 지대(地代) 추구, 이대로는 안된다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승인 2018.03.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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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의 철수 문제가 우리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각종 지대추구행위(노력 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만연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2월 21일 바른사회시민회의의 ‘지대추구집단 개혁에 일자리 달려 있다’라는 토론에서 발표된 발제문 중, 노동 관련 부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대(rent)는 원래 토지나 건물의 사용대가, 즉 임차료나 임대료를 뜻하는 말이다. 토지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대표적인 재화다.

공급은 곤란한데 수요가 늘어나면 소유자는 아무런 생산적인 노동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이득을 얻는다. 토지라는 재화의 이런 ‘공급 비탄력성’에 착안해 경제학자들은 ‘어떤 생산요소든 그 공급이 고정돼 있는 것에 대한 보수’ ‘생산요소의 공급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추가로 지급되는 보수’ ‘자원의 기회 비용 이상으로 지불된 금액’ 등으로 지대를 정의했다.

다시 말해 지대는 수요와 공급이 자유롭고, 경쟁과 거래가 공정한 ‘이상적인 시장의 가격’과 ‘현실의 시장 가격’의 차이다. 이를 초과이득 혹은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라 부른다.

따라서 사회가 과도하게(불필요하게) 지불하는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부동산, 국가, 시장이 결합해 부와 권리가 특정 지점에 집중되게 만들어 놓았다. 씨를 뿌리기만 하면 별 노력 없이도 높은 소출을 거두는 비옥한 토지 같은 곳이 너무 많다.

이 토지는 (공공)부문일 수도 있고, (규제)산업일 수도 있고, 면허직업일 수도 있고,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갑일 수도 있다. 또한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고용임금사상일 수도 있고, 연공임금체계일 수도 있다.

이 토지들의 소출은 자연과 땀과 지혜의 산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소출을 약탈한 것이다. 국가의 인위적 가치 할당 또는 국가의 약탈 억압 방조로 인해 사실상 거저 주어진 것이다.

별 노력 없이도 높은 소출을 거두는 비옥한 토지 같은 곳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땀 흘려 자신의 토지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토지를 갖기 위해 노력하거나, 좋은 토지를 가진 집안의 식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이것이 한국의 교육시험 경쟁이나 취업경쟁의 본질이다.

노력 없이 기득권만 추구하는 지대행위

지대(렌트)가 과잉이거나 합리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시장에서는 경제 주체들은 생산적 활동 보다는 좋은 땅=자리를 확보하거나, 좋은 위치=소속=지위를 확보해 지대(렌트) 추구에 매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창의와 열정이 질식하고, 시장생태계가 황폐화 되기 마련이다. 경쟁과 갈등의 핵심은 지대추구가 가능한 좋은 위치 차지하기가 되기 때문이다.

유럽, 미국, 일본, 중국, 인도와 지리, 인구, 역사, 시장, 산업 구조가 확연히 다른 한국에서는 지대 문제를 빼 놓고 빈부격차나 일자리 문제를 얘기할 수 없다.

지대는 소속과 위치(위계와 서열)에 따라 우대와 차별이 극심한 한국 사회의 모순 부조리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정말로 중요한 개념이다. 사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하는 훌륭한 안경이다. 그 어떤 문명국도 자연, 국가, 시장이 만든 지대는 있다.

문제는 한국은 권력의 무한확장과 독특한 차별배제 사상을 내장한 조선 성리학의 유산, 지리·지형적 조건(고립된 섬나라의 작은 시장과 엄청난 토지이용 규제), 국가주도 지대할당 방식의 산업화와 급격한 도시화(인구집중)와 독특한 고용임금 사상 등으로 인해 지대들이 과잉이 될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 지대, 끼리끼리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한국의 부문, 산업, 기업, 근속연수별 임금 수준은 생산성 격차와 더불어 노동 지대의 수준과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문명국에서 빈부격차의 중심에는 개인 또는 가계간 소득격차가 있다.

이 대부분은 임금격차에서 연유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소득격차의 핵심인 개인 간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이 평가하는 개인의 능력(노동의 양과 질)이 아니라 소속 직장의 능력에 달려 있다. 이는 무임승차가 널리 용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월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에서 열린‘한국지엠 군산공장 정상화 촉구 범도민 궐기대회’에서 군산시민들과 군산공장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
지난 3월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에서 열린‘한국지엠 군산공장 정상화 촉구 범도민 궐기대회’에서 군산시민들과 군산공장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

임금에 지대 요소가 크다는 얘기다. 바로 이 점이 한국과 선진국이 확연하게 다른 점이다. 사실 어느 나라나 산업, 기업, 지역별 이윤과 임금격차는 있다.

그런데 개인의 능력(공헌)과 소속 생산집단(부문, 산업, 기업)의 능력이 한국처럼 따로 노는 나라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문명국에서 개인(노동)의 임금은 산업·지역·직무별 노동시장에서 형성된 임금(가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특정 산업, 기업, 지역의 특정 근로자가 고임금이라면, 그는 고임금에 상응하는 고생산성을 발휘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고임금이라 해서 고생산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청년 구직자들이 선망하는 직장은 있다. 당연히 그런 직장의 임금 수준은 높다. 유럽은 산별 교섭을 통해 그 가격이 정해진 직무가 주요한 변수다. 반면에 미국은 산별 교섭은 적지만, 자유로운 해고 관행을 통하여, 시장원리가 작동한다.

따라서 직무성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기업(경영인)의 평가에 의해 임금 수준이 결정된다. 미국과 유럽은 구직자(노동)도 구인자(자본)도 일단 정직원으로 채용했다고 해서, 밥값 못하는 사람의 정년을 보장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유럽과 미국에서 청년 구직자들이 선망하는 직장은 개인의 창의, 열정을 최대한 발양시키는 직장이다. 한국처럼 일단 정규직 채용이라는 관문만 통과하면 정년까지 무임승차가 허용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무슨 일 하는지’를 중시하고, 한국에서는 ‘어디 다니는지’를 중시한다. 한국이 직무가 아니라 직장을 중시하는 것은 학력, 숙련, 기술, 태도(열정)의 총화인 직무성과(생산성) 보다 소속 직장이 사람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의 속지주의적 사고방식의 역사적, 문화적 뿌리는 깊다. 이는 개체성 보다는 (집단과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

한국의 속지주의는 부자집 자식이라면, 응당 그 부모가 축적한 부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동서양의 보편적인 관념이, 한국의 오랜 가족주의적 문화를 도약대로 하여, 자유로운 계약사회인 직장의 담을 훨쩍 넘어들어 온 것과 관련이 깊다.

이는 한국에서 직장 자체가 유럽,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부자와 외부자를 가르는 담벼락이 매우 높은 폐쇄적인 공동체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가족 구성원의 무임승차는 당연하게 여긴다.

문제는 사랑이나 호혜적 연대로 맺어진 공동체가 아니면서, 큰 멤버십 이득=무임승차를 허용하거나 주장하는 집단이 한국에서 유달리 많다는 것이다. 이는 가족 내에서만 머물러야 할 무임승차주의가 직장의 담벼락을 넘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연공임금지대와 지대추구적 고용임금사상

기업으로 넘어 들어온 가족주의적 고용임금 문화와 체계는 내부자(정규직)와 외부자(비정규직, 협력업체)를 ‘우리 식구’와 ‘남의 식구’처럼,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처럼, 정실 부인의 자식과 첩의 자식(서자, 얼자)처럼 차별한다.

제조업 1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1년 미만 근속자 임금을 100으로 보면, 한국은 20~30년 미만이 313, 일본 241.6, 독일 191.2, 프랑스 146.3, 영국 156.7이고, 임금을 철저하게 생산성과 연동시킨 스웨덴은 10~15년 미만이 피크인 116.1이고, 20~30년 미만은 오히려 줄어 110.8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장년 장기근속자 1명이 청년 신참자 3명 몫을 가져간다. 물론 전자의 생산성 내지 숙련도가 다소 높겠지만, 후자의 3배는 아닐 것이다.

철저한 생산성 임금제를 취하고 있는 스웨덴의 임금체계로 볼 때 10~15년 근속자가 생산성이 가장 높은지도 모른다. 연공임금체계로 인해 단기근속자나 신참 청년 근로자나 출산에 따라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하는 일(생산한 가치)에 비해 적게 받을 수밖에 없고, 장기근속자나 고참 중장년이나 경력단절이 없는 남성은 그 반대다.

지난 3월 15일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임단협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지난 3월 15일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임단협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주된 수혜자가 중장년 남성 근로자인 연공임금체계는 기업으로 하여금, 중장년 장기근속 근로자에 대해 강력한 밀어내기(인력사업 구조조정) 충동을 일으킨다. 반면에 구조조정 대상자에게는 정리해고는 살인적 충격으로 다가오면서 결사항전 의지를 다지게 한다.

한국의 중장년 근로자가 고용 안정에 집착하는 이유는 얇은 사회안전망 탓도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생산성에 비해 월등한 임금을 보장하는 연공임금체계로 인해, 다니던 곳을 나와서는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절대로 찾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은 유사시 정리해고가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기에, 잘 나갈 때라도 청년 직고용을 기피하게 되어 있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과 직급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한국식 연공임금체계는 한국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강고하게 남아 있다.

박병원 한국경총 회장에 따르면(2016.2.18)  한국의 300인 이상 기업의 79.7%는 능력이나 성과와 무관하게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연공임금, 연공서열 체계는 예외나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으로 간주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연공임금체계를 적용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열해감과 박탈감에 빠뜨린다. 이것이 중소기업의 구인난과 대기업 취직난의 뿌리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남성-여성 간, 공공-민간 간에는 근속 기간의 격차가 크다.

당연히 근속 기간에 따라 임금이 크게 차가 나는 연공임금체계로 인해 양자간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지게 되어 있다. 한국에서 청년일자리 문제를 엄청나게 악화시킴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잘 거론하지 않는 것이 바로 연공임금 지대, 한마디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호봉제다.

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지대를 노동의 지대(초과 임금)로 전환하는 것이 가족주의, 연공주의와 약탈(쟁취)주의다. 약탈주의는 고용임금을 생산성(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원리)의 함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섭력(투쟁력)의 함수로 보는 사상이다. 이들 ‘주의’는 고용임금 관련 기업의 전략, 고용문화, 노사역관계와 국가 규제 및 정책의 산물이다.

특히 노동관계법과 노조의 조직 형태가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엄격한 해고 규제(철밥통 당연시)와 파업시 대체 인력 투입 금지 및 사업장 점거 파업 허용 등으로 인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노조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다.

이 곳의 임금 수준 및 체계와 단체협약은 노조 갑질=지대추구의 증거다. 요컨대 한국 특유의 지대의 원천은 자본 또는 집단이 획득한 지대를 개인이 누리는 것을 당연시 하는 가족주의(내외 차별주의와 무임승차주의)와 기업별 노조의 고용임금 사상이다.

노조 운동의 본령이 기업횡단적인 직무에 따른 근로조건의 표준(공정가격)을 형성한다는 개념 자체가 실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공임금체계는 1960~80년대는 발전의 촉진제였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되었다.

속지주의적이고, 약탈주의 내지 지대추구적 고용임금 사상과 연공임금 지대를 결사적으로 지지 옹호하는 주력부대는 공공부문 임직원과 대기업 노조이다. 산업별로는 규제산업과 공기업 주도 산업이다. 세대별로는 중장년 세대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전 국회미래전략자문위원회 위원전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위원전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차장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전 국회미래전략자문위원회 위원
전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위원
전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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