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생전 증언 “기독교만이 북한 살릴 수 있다”
황장엽 생전 증언 “기독교만이 북한 살릴 수 있다”
  • 김민정·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4.02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기독여성계의 거목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곁에서 바라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주체사상과 기독교 신앙'

4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 미북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한반도 정세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북한 김정은에 대한 호감도가 아베 일 총리에 비해 2배가량 높다는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북한과 김일성 3대 세습체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미래한국은 북한 김일성의 통치 원리가 된 주체사상 창시자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친남매 이상의 친분을 유지했던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93)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황장엽 선생은 북한 권력의 핵심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다 1997년 돌연 한국으로 망명해 북한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2010년 10월 10일 사망했다.

흥미로운 것은 유물·인본주의 주체사상의 상징적 존재인 황장엽 선생은 생전에 그의 사상과는 반대쪽에 위치한 기독교에 귀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목이다.

주선애 교수는 “황장엽 선생님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증언했다. 주선애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교육학 박사로서 장신대 교수를 24년 동안 역임하며 고 하용조 목사 등의 교회지도자를 양성했다.

사진 : 홍정석 미래한국 객원기자
사진 : 홍정석 미래한국 객원기자

- 황장엽 선생과는 어떤 계기로 친분을 쌓게 되셨나요?

2001년일 거예요. 평양 정의여학교 동창회를 마치고 몇 사람이 모여 동향인 황 선생님을 처음 찾아 뵀어요. 본인은 평양상업학교에 다녔다면서 제가 다닌 정의여학교를 잘 알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어요. 식사도 국정원 직원이 주면 먹고 내놓는 식이었거든요. 그때부터 토요일마다 황 선생님이 탈북자 모임에서 강연을 하러 갈 때 제가 일행이랑 북한 만두 같은 음식을 만들어 갔어요. 그렇게 몇 년을 만나면서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됐죠.

- 왜 그렇게 황장엽 선생에게 정성을 쏟게 되셨나요?

하나님께서 북한을 복음화 해야 하는데, 이 분을 통해 하시려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이 분이 주체사상을 버리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북한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크게 공헌하겠다는 생각이었죠.

- 두 분이 깊은 우정을 쌓으신 것 같습니다. 두 분의 일화를 좀 소개해 주세요.

언젠가 황 선생님이 갑자기 ‘주 선생 나하고 형제 합시다’ 하시는 거예요. 놀라서 대답도 못했어요. 선생님이 우리나라에 참 의지할 데가 없으셨던 것 같아요. 언젠가 측근들이 생신 상을 차리려고 하는데 한사코 거절하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주 선생 집에서 하면 내가 가지’라고 하셔서 그 때부터 돌아가시는 해까지 우리 집에서 쭉 생신상을 봤어요.

그리고 2006년인가,  황 선생님이 국정원 외부 안가로 나오시면서 핸드폰이 생겼어요. 그리고 ‘아침에 전화해도 괜찮겠습니까?’ 하시더니 그 때부터 오전 8시나 8시 반에 매일 전화하셨어요. 안부 인사나 오늘 무슨 강의, 모임이 있다는 일상적인 내용이었죠. 그러기를 한 5년 했을 거예요. 전 주일날 오후에 전화했어요. 하루 종일 말씀을 못 하시니 말벗이라도 해드리려고요. 어느 날은 ‘지금 뭐 하세요’ 했더니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서 먹는데 맛있구만’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함께 먹자고 농담을 했더니 정말 만들어 온 적도 있어요.

- 황장엽 선생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북한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입니다. 교수님은 어떤 식으로 전도하셨는지요?

황 선생님은 사실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대해 익숙했어요. 10여년 손위인 누님이 계신데 독실한 신자셨대요. 그 누님이 황 선생님이 책을 보고 있으면 왜 성경책을 안 보고 그런 책을 보냐고 야단도 치셨다고 합니다. 저한테 ‘주 선생은 예수 믿지 않는다고 우리 누님처럼 야단은 안 쳐’라고 하시면서 웃기도 하셨죠. 전 믿어야 한다고 억지로 압박하지 않고 그냥 다른 교인을 대하듯이 평범하게 대했습니다.

황 선생님이 기독교인을 만나는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거였죠. 그분은 세계를 다니면서 소위 주체사상을 전파했잖아요. 평생의 신념으로 붙들고 있던 것을 버리는 것이니 밖으로는 나타내려 하지 않았어요.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황 선생이 기독교에 귀의했나요? 만약 사실이라면 북한 선교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전 사도바울이 기독교를 핍박하다가 선교사가 된 것처럼 황 선생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어요. 표현은 안 했지만 전 황 선생님이 신앙을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식사할 때 기도하고, 하용조 목사님이 입원했을 때 황 선생님께 기도를 부탁했더니, 제대로 하더라고요.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로 마치셨어요. 자기 책상에 성경책을 놓아두기도 했죠.

“황장엽 선생이 사도바울처럼 되길 바랐습니다”

- 황장엽 선생은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혹시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까요?

통일 돼서 북한에 올라가면 기독교밖에 북한 주민의 마음에 들어갈 게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북한 사람들의 빈 마음에요. 기독교가 이 땅의 소망이라는 거죠. 그리고 종북주의자들을 몰아내는 것도 기독교 지도자에 달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전 개화기에는 기독교가 나라를 살렸는데, 남한에서 지금 이렇게 기독교가 변해서 어떡하냐고 심각하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국가는 누가 지키느냐는 거죠. 그래서 황 선생은 기독교가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분의 마음속에는 기독교가 소망이었던 것 같아요.

- 황 선생은 종북세력에 대해 경고하고 일반 여론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이 좌경화되는 것에 걱정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까지 좌경화되고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지방 순회하면서 기도회와 강연을 했어요. 제주도, 대구, 부산 같은 곳에 다녔죠. 저와 목사님들이 기도하고 황 선생님이 강연을 해주셨어요.

주체사상에 물든 학생 내게 보내라던 황장엽 선생

- 이석기의 내란음모 사건을 보면 황 선생의 걱정이 맞았군요.

전 이들이 잡힌 게 너무 감사해요. 그들에게는 맹목적인 유토피아 건설의 소망이 있잖아요. 사회주의 사상을 통해 평화 세상을 만든다는 헛된 꿈을 꾸고 그것을 진짜로 믿어요. 우리도 반성해야 해요. 개화시대에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만든다는, 세상 구원의 꿈을 줬는데, 지금은 그게 없어요. 그냥 물질주의와 개인 행복이 목사들의 강연 내용이죠. 기독교적 민주주의라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것이에요.

- 황장엽 선생은 혹시 주체사상을 공부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요?

본래 과학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내가 그때 과학을 했으면 좋은데’라고 하셨어요. 일정시대에 시멘트 회사에서 일하던 중에 해방이 됐다고 해요. 그때 서울로 왔어야 했는데 부모가 계신 고향을 찾아서 북한에 갔대요. 황 선생님은 ‘그게 시작이야. 그게 잘못됐어. 여기 왔으면 그렇게 안 살았을 텐데’라고 하셨어요.

- 황장엽 선생은 결국 주체사상을 결국 버리지 못했다, 또 하나는 처음부터 주체사상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즉 주체사상은 좋은 사상인데 김정일이 제대로 구현 못해 탈북 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어요. 선생님께선 이런 평가를 어떻게 보세요?

제가 볼 때 황 선생님이 남한으로 온 목적은 이거에요. 북한의 수백만 명이 죽었는데 남한은 돈이 있으니까 한민족으로서 도와달라고 얘기하려고 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상황이 안 좋았어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니까 그 이야기를 못하고 답답해하신 것이죠. 그리고 당시에 주체사상을 공부하겠다고 찾아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황 선생님은 주체사상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있다고 하니 ‘그 사람들더러 오라고 해라. 내가 그 사람들을 변화시키겠다’고 해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주체사상의 부정적 측면을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 같아요. 주체사상을 인간 중심에서 나라 중심으로 보고, 기독교적 측면도 보면서 기독교라야 나라가 바로 서겠다는 생각을 갖고 본인이 (배우겠다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황 선생님은 ‘학생들을, 주체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나한테 많이 보내라’고 말씀하셨어요. 대학생들이 주체사상을 잘못 알고 있어서 제대로 알려주려고, 유화시킬 수 있는 자신이 있으니까 오라고 하신 것 같아요.

- 그러니까 황장엽 선생은 주체사상이 잘못됐다고 교수님께 잘라 말씀하신 적은 없는 거군요?

네,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어요.

- 황 선생이 이렇게 속 깊은 얘기를 할 정도면 주 교수님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이런 말을 했어요. ‘난 주 선생이 나보다 한 해 아래지만 누님처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자기 나름으로는 마음의 의지가 됐나 봐요. 황 선생님 돌아가시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오라 해서 간 적이 있어요. 그분이 저한테 황 선생과 연애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대로 생각하세요’라고 하고 말았죠. 황 선생님이 남자로서야 뭐 볼 게 있나요? 그분도 여자가 아니라 신앙으로 마음의 위로가 됐을 거예요. 제가 의지가 됐던 것 같아요.

- 사실 북한은 기독교의 중심이었는데 왜 저렇게 변질됐다고 보세요?

공산주의가 본래 그렇잖아요. 지금도 보세요. 그 사람들 머릿속엔 혁명밖에 없어요. 국가의 목표도 혁명이고 교육의 목표도 혁명이잖아요. 독재하면서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사람도 안 보여요. 인권이란 게 없으니까요.

- 주 교수님은 탈북민 문제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전 북한 선교와 기독교 교육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탈북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통일이 되려면 먼저 남북한 사람들이 통합돼야 하잖아요. 그리고 북한 선교를 위해서는 탈북자부터 선교해야 해요. ‘탈북자 종합회관’이라는 사업이자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남북통일 하려면 교회가 살아야  

- 요즘 많은 단체들이 탈북민 지원 활동을 하는데 교수님이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탈북자를 대하는 것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과 만나는 것에 대한 준비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탈북자를 끌어안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순수 봉사를 믿지 않아요. 거기선 그런 게 없거든요. 이걸 해결하려면 저 사람이 나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구나를 알게 해 줘야 해요. 사랑하고 친구가 돼야 해요. 이벤트로 밥 나눠주고 선물 주는 행사, 돈 주는 지원은 필요 없어요. 교육하고, 탈북자 애들 봐주는 식의 손으로 봉사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 진정한 통일을 위해선 남북한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말로는 통일 운운하지만 정말 통일 하려면 너와 내가 가까워져야 하잖아요. 정이 생겨야 가까워지고 말도 되고, 신뢰가 생기는 것이지요. 근데 남북한 서로에 이것이 없어요. 딴 나라 사람들이죠. 서로 적대심을 가지고 봐요. 북한 사람들은 사랑을 못 받아봐서 사랑할 줄 몰라요. 사랑이 없는 곳에서 산 사람들이 우리와 만났을 때 그 사람들더러 “예수님 믿으세요” 그러면 무슨 말인 줄 몰라요.

“당신은 예수 만나봤냐” 이런 식으로 반항만 해요. 그러니까 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탈북자들과 사귀어야 해요. 어떻게 해서든지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사회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고 정이 들어야 통일이 되고 하나가 될 수 있지 정치적으로 결합한다고 해서 “잘 왔어” 하고 서로 안고 기쁘다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려면 교회가 살아야 해요.

- 그렇군요. 교수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들려주세요.

탈북자들은 밥이라도 먹어보고 죽겠다 해서 중국으로 와요. 그러면 중국 사람이 배고파 온 이 사람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붙잡아 윤락가에 몇 천 원에 팔아요. 팔려 가서 중국 사람의 애기를 낳고 ‘잘못하면 너 북한으로 보낸다’ 협박 속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삽니다. 북한으로 잡혀가게 되면 고문이 이루 말할 수가 없대요.

저에게 이 얘기를 해줬던 아주머니 하는 말이, 임신부를 엎드리라 해서 몽둥이로 배를 때린답니다. ‘중국 놈의 애기를 배었으니 싸라’ 해서 배를 때리면 변소에 가서 피투성이로 애를 버리게 되는데 종이 한장, 헝겊 한조각 안 준대요. 자기 치마로 건사해서 질질 끌고 다닌다고 해요. 그런 악한 대접을 받는 여성들이 몇 십만이라고 합니다.

그 분들은 잡혀갈까봐 늘 걱정한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 한국 사람들이 나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외면하면 되겠어요? 우리 양심의 문제예요. 우리는 그런 북한 사람을 생각해서 물건 하나 살 때도 ‘이렇게 낭비하면 되나’, ‘하나님과 민족 앞에 미안하지’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없어요.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다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기를 우리에게 주셨어요. 남북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주선애 교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기도로 인터뷰를 끝냈다. “북한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자주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2000만 명이면 어디예요. 북한 주민들의 육신도 불쌍하지만 영혼을 생각하면 더 불쌍하죠.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복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