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정권의 개헌안 자유시장경제 포기하나
무소불위 정권의 개헌안 자유시장경제 포기하나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승인 2018.04.0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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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국가와 정부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인-대리인(principle-agent)’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정권이 정부조직을 꾸리고 국정을 운영한다. 정권이 국가의 ‘대리인’인 셈이다. 정권은 선거를 통해 대리인의 지위를 국민으로부터 일정기간 위임 받는다.

하지만 대리인은 대리인일 뿐이다. 정권이 국가 그리고 국민 위에 위치할 수는 없다. 한국의 후진적 정치의식과 문화로 국가는 종종 정권과 호환된다. 정권이 국가이고 국가가 정권이다.

따라서 정권을 잡으면 자기 책임 하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문재인 정권은 대한민국이란 역사적 구조물을 헐고 다시 지을 요량이다. 그들 눈에 과거는 모두 적폐로 인식된다.

그 같은 논리대로라면 현재는 늘 미래의 청산 대상일 뿐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보자. 그는 1992년에 미국 4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0년 공화당 출신 레이건 대통령을 기준으로 하면 ‘12년만의 정권 교체’이다.

절치부심했을 터이지만 그는 미국을 뜯어고치겠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의 전통과 가치를 존중하고 미국에 봉사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지지로 백악관에 들어가지만 4년 임기 동안의 ‘백악관 임차인’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그는 재선됐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집권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만은 헌법을 오독(誤讀)해서이다. 우리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고 있다.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뜻을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뜻이 정치적 편의에 따라 ‘우상화’ 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단화’될 수도 있다.

프랑스 헌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프랑스 헌법 제3조 1항은 “국가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은 대표자나 국민투표를 통해서 국가주권을 행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권재민을 선언하면서 그 행사 방식을 구체적으로 ‘대표자와 국민투표’로 한정하고 있다.

2항은 “국민의 일부나 특정 개인이 주권의 행사를 특수하게 부여받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헌법적 안전장치를 갖췄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다양한 위원회를 설치했다.

정부의 공식 기구도 아닌 ‘자문위’에 자문형식을 빌려 개정헌법의 골격을 제시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았지,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을 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문위의 역할은 자문이기 때문에 단지 참고할 뿐이라고 넘어가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헌법개정은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다. 국민대의기구가 아닌 임의 위원회에서 헌법개정 초안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임의 위원회는 해산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해산된 위원회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프랑스 헌법 기준에 따르면 국체(國體)를 흔들 수 있는 각종 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은 그 자체가 위헌이다. 국민의 일부나 특정 개인에게 주권 행사를 특수하게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헌으로 제헌헌법 무너트리기?

개헌을 한다고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을 새로 짓는 것과 집을 보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집을 수리할 때 최소한 집의 골격은 건드리지 않는다. 기둥과 기초를 건드리면 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개헌을 하더라도 일종의 ‘내재적 금선(禁線)’은 넘지 말아야 한다. 국가 체제의 본질적인 부분은 고칠 수 없다.

예컨대 공화정을 왕정으로 바꿀 수는 없다. 국민의 기본권을 축소하는 개헌은 불가능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개헌도 마찬가지다. 최근 공개된 국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 헌법개정안은 체제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헌법개정안의 경제조항에 정리해고를 막는 파업권을 보장하겠단다. 현행 헌법 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목적으로만 인정한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현행 헌법대로라면 임금 인상을 위한 단체행동권은 문제가 없지만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단체행동은 판례에 따라 불법화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정리해고는 근로자 입장에선 생존의 근본을 흔드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권익보호 차원에서 파업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으로 정리해고 파업 보장하겠다니

해고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이 아닌 ‘권익’에 속하는 만큼 사용자의 해고 조치를 뒤집으려면 개별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현행 헌법정신에 따라 권익 보호를 위한 파업을 불법으로 판단해 왔다는 것이다. 법원은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의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불법으로 판결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안에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행사 범위에 ‘권익 보호’를 추가했다”는 것이다.

배가 가라앉으면 모든 사람이 다 죽는다. 배가 가라앉기 전에 배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정리해고’인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기본원칙 하에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회피 노력”을 조건으로 걸어 고용을 최대한 보호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그것도 모자라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노조 파업을 헌법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은 너무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
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헌법에서 인정하면 어떤 구조조정도 불가능해진다. 반대 시각에서 보면 ‘조기구조조정에 의한 경영정상화’를 사실상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주의 권익은 어디에서 보호 받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리고 해고파업이 인정되면 누구도 기업을 설립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창업의 자유는 말살 된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유린되는 것이다. 공무원의 노동 3권을 인정하겠다고 밝힌 점도 논란이 예상된다.

현행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만 보장하고 단체행동권은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개헌안에선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신분이 보장된 ‘철밥통 공무원’에게 파업권까지 주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헌법에 공무원의 노동 3권을 원칙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이 담기면 헌법재판소에서 개정 헌법을 근거로 공무원의 단체행동권 제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개헌안에 따르면, “국가가 동일가치 노동에 동일수준 임금을 지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담겠다는 것이다. 현재 ‘동일가치 노동의 동일 임금’은 남녀고용평등법(제8조 1항)에 담겨 있다.

이를 헌법으로 보장하면 동일노동의 기준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임금은 사적자치로서의 근로계약의 결과이다. 생산과정에서의 기여분을 임금의 형태로 찾아가는 것이 기본구조이다.

기본적으로 임금은 생산성을 반영한다. 생산성에 기초해 시장에서 결정된 임금이기에 노사 모두 이를 수용하는 것이다. 시장 이외 누구도 임금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그런 권리를 위임한 주체는 없다.

동일노동 여부를 판단할 수 주체는 시장뿐이다. 오리지널 가수(조용필)와 모창가수(주용필)의 출연료를 차등하는 것도 시장이다. 시장이 개입하지 않으면 오리지널 가수와 모창 가수의 노동은 같이 취급되어야 한다.

노동의 대가도 같아야 한다. 이 세상에 동일가치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가치 동일임금’ 원칙은 동일가치 노동으로 판명되었을 때 동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절이 붙은 명제’인 것이다.

시장 테스트를 통해서만 동질성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개별 법률도 아닌 헌법에 ‘동일가치 동일임금조항’을 삽입한다는 것은 현실 경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이 밖에 대통령 개헌안은 ‘근로(勤勞)’라는 용어를 ‘노동(勞動)’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 헌법의 ‘근로’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며 사용자 관점만 강조한 용어라는 것이다. 헌법개정에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대 얘기가 왜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 노동하면 채찍이 연상된다. 그래서 ‘노예’와 ‘노동’은 잘 어울린다. 모든 국민을 노예노동에 투입시킬 것이 아니라면, 용어라도 순화시키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토지공개념과 경제민주화

시장경제를 떠받치는 2개의 기둥은 ‘사유재산제도와 계약의 자유’이다. 만약 토지공개념과 경제민주화가 깊숙이 들어오면 시장경제질서는 붕괴된다. 청와대의 설명은 이렇다. “한정된 자원인 토지 투기로 말미암은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토지공개념 내용을 헌법에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한정되지 않은 것’이 존재하는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선택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희소성은 경제활동의 전제인 것이다. 토지가 희소하기 때문에 당국에 의해 규제돼야 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그렇다면 모든 경제 선택은 당국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만약 토지공개념이 시공을 초월하는 지향해야 할 가치라면 많은 나라가 명시적으로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들어간 사례는 사회주의 국가를 빼고 전 세계적으로 한 군데도 없다.

과거 6공화국 시절에 헌법재판소는 토지공개념에 기반 한 ‘택지 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과 ‘토지 초과 이득세법’ 등에 대해 각각 위헌과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토지공개념을 다시 꺼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현행 헌법에서도 토지공개념을 유추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헌법 122조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23조 2항도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지 않아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부동산가격 상승은 토지공개념과 무관하다. 그렇다면 중국에 이는 ‘부동산광풍’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조세정책으로 부동산 경기를 조절할 수 있다.

‘중국식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토지공개념 헌법 명시는 오해만 살 뿐이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도 현행 헌법 119조 2항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약 경제민주화 조항을 강화하게 되면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헌법 119조 1항과 충돌한다.

에필로그

87체제 헌법이라 낡았다는 것이 개헌 명분 중의 하나다. 87체제는 1880년대를 의미하는가.  1987년이라면 이제 경우 30년이 경과한 것이다. 미국의 헌법을 보자. 미국 헌법은 건국 당시 국부(founding fathers)들이 기초한 제헌 헌법이 지금도 유효하다. 필요에 따라 ‘수정 형식’을 빌려 조문을 추가한 것이 전부다.

영국은 불문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헌법은 법률집이 아니다. 더욱이 매뉴얼일 수 없다. 헌법 속에 체제가 존속하는 것이다. 체제를 허물 수도 있는 잡동사니들로 헌법이 채워져야 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2018년 3월에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격상시키는 지방분권형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정상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여러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라도 된다는 말인가. 헌법 논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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