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차로 대표이사 황필상
수원교차로 대표이사 황필상
  • 미래한국
  • 승인 200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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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가장 중요” 215억 모교에 기증
늦깎이 공부로 KAIST 교수까지현실 안주않고 새로운 도전 추구 “나는 자신이 배고파 하며 남을 돕는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분수를 아는 사람일 뿐입니다.” 본지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며 황필상 사장이 처음 한 말이다. 그렇다면 ‘분수를 아는 평범한 사람에 대해 취재하여 혹 있었던 오해를 풀어주어야겠다’는 본지의 제안과 ‘이미 다른 매체의 보도에 응한 바 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평등철학에 기인하여 시작된 인터뷰는 다섯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지난 달 그의 215억 재산 기증을 놓고 시끄러워진 그의 주변은 그에게 있어서는 ‘대나무숲에 불다가 곧 고요해질 바람일 뿐’이었기에 그가 굳이 외면할 필요도 없었다. “세상이 알아주던 카이스트 교수를 그만두고 직원 3명을 데리고 회사를 시작하는 자살행위 같은 도전이 더 의미 있는 일이지, 안 쓰는 물질을 준 것을 보고 왜 이렇게 야단들인지….” 자신이 필요 없는 안 쓰는 물질 215억원을 모교에 기증한 황필상 사장의 목소리에는 그 어디에도 과장이나 엄살의 기미가 없었다. 기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오십육년의 생을 살아오면서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간직해온 비장한 전사의 눈빛만이 있을 뿐이었다. 황필상 사장은 27살에 대학에 입학하여 아주대학 기계공학과를졸업하고 프랑스에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그 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1984년부터 8년 반 동안 교수 생활을 했다. 청계천 빈민촌 출신으로 집안 환경 때문에 제 때에 공부를 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이 박사가 되고 카이스트 교수까지 했으면 그것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성취가 아닌가. 그는 교수일에 “온몸이 닳도록, 미련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만난 교수 중에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젠틀하고 명석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황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한풀이였다고 말했다. 못 배운 한이 있었기 때문에 배운 한을 푼 것이고, 못 먹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돈을 벌게 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한 말로,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인데 그렇게 되면 자식들도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들어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명보험을 들었다는 그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한풀이일 뿐, 상식 이상의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면 다음 단계는 돈을 벌기 위한 창의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처음부터 기계공학을 이용해서 돈 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부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지 그것으로 돈 벌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람이 머리가 좋다는 것은 기억력이 좋다는 것만이 아니라 집착력과 응용력이 있어야 한다. 황 교수는 기계공학에서 터득한 응용력을 이용해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한 친구와 인연이 되어 생각해 낸 것이 ‘교차로’라는 생활정보 신문이었다. 어쩌면 그 당시엔 합법적이고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을지도 모른다. 1991년에 설립하여 1995년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수원교차로는 현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6일 매회 240면을 발행하는 광고 신문이다. 이것은 일간지 배판으로 120면에 해당되는 분량이다. 작년 경영 실적은 순익 29억원에 세금 9억원을 냈다. 100퍼센트 세금을 내어 국세청으로부터 상까지 받은 모범 기업이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교수 생활을 접었던 황 교수가 200억원짜리 사업에는 만족했을까? “돈 더 벌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기부를 했겠습니까? 전 제 나름대로 ‘인생은 실험’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실험이 끝났다고 생각되면 깨끗이 접고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합니다. 그래서 내 이력서에는 반복되는 일이 없는 겁니다.” 황 사장, 아니 현재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몰두하고 있는 황 칼럼니스트는 지금 행복하다. “3년 전에 기부했으면 50억원이었을 테고 한번도 꺾이지 않고 상승곡선을 이어온 회사 주식이 내년이나 후년엔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어차피 나를 떠나갈 돈을 이제 넘겨 주었을 뿐입니다. 저한테는 이미 실험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실험을 준비할 때입니다.” 그는 교육이 제일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는 배운 사람이 많아야 가능성 또한 크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그는 돈을 넘겨 준 아주대가 그것을 어떻게 쓸 지에 대하여도 걱정하지 않는다. 돈을 줬을 땐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적으로 소말리아나 비아프라의 어려운 사람까지 모두 품을 수는 없지만, 지역 사회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면 어디에나 관심이 있다. 그것은 유학 시절에 다른 나라 말로 어렵게 공부하면 절실히 깨달았던 철학이다. 그런데도 모교인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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