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만여행법’ 중국을 흔들다
트럼프의 ‘대만여행법’ 중국을 흔들다
  • 이주천 이승만포럼 공동대표·전 원광대 교수
  • 승인 2018.04.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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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3월 16일 미국과 대만의 고위 관리들의 왕래를 법적으로 뒷받침해줄 ‘대만여행법안’에 서명했다. 동 법안의 대통령 서명은 미중관계의 갈등 국면의 신호탄이자 대만과 중국 양안관계의 긴장을 높인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여행법의 비준은 대만 방문의 제한 조치를 해제한 것인 바, 미 고위직의 대만 방문이 실제 실시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으며, 향후 유사한 제한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그간 미국의 장성급 및 차관보급 이상의 대만 방문이 제한되어 왔으며, 대만도 고위급 인사의 미국 방문이 자제되어왔다.

중국의 외교부는 대만여행법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간주해 여행의 중단을 촉구하는 즉각적인 반발을 보이고 있지만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중국의 반발을 간단히 무시했다. 트럼프는 당선되자마자 대만 총통 차이잉원(蔡英文,Tsai Ing wen)과 10분간의 전화 통화를 해서 반공 스탠스를 보이면서 중국의 비위를 거스른 바가 있었다.

또한 작년 6월 미 국무부가 대만에 14억 달러어치가 넘는 무기 판매 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대만에 대한 첫 무기 판매다. 이렇게 해서 미중 관계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이는 북핵 문제에서 중국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누적된 불만의 표출이다.

트럼프의 대만여행법 서명으로 인해 동북아에서 대만에 대한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대만은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点)의 제국주의시대에 우리나라의 운명과 흡사한 비운의 식민지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1895 4월 17일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 섬과 펑후 제도는 일제에 할양되었다.

일제는 대만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50년간 대만 주민들을 식민지로 지배했다. 식민지배 초기에 대만 주민들은 일본 제국에 맞서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했으나 1915년 이후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항일 무장투쟁은 약화되었다.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1945년 10월 25일에 대만 섬과 펑후 제도는 50년 만에 다시 장제스(蔣介石) 정부의 중화민국으로 반환되었다.

장제스는 종전 직후부터 대만 수복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대만을 일제로부터 수복하고 통치하기 위해 중화민국 정부의 수많은 관료와 군인들을 파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만 원주민들의 기대와 충돌했고 일부는 부패하고 폭력적인 통치 행태를 보이면서 이들에 대한 주민들의 실망은 무척 컸다.

대만 주민의 이러한 불만은 1947년 2월 28일의 항거(2·28 사건)를 통해 폭발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5·18광주항쟁과 대비되는 유사한 사건이었다. 3월 8일 본토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하자 대대적인 유혈 진압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본성인 3만여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대만 ‘본성인’(本省人)과 1945년 이후 대만으로 이주한 ‘외성인’(外省人) 사이에 깊은 앙금으로 남아 있다. 또한 이 사건은 장기간 계속된 계엄령의 원인이 되었다.

하나의 중국인가, 독립 된 대만인가

1949년 12월 장제스의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에 밀려 중국 대륙에서 쫓겨나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로 이전했고(國府遷臺), 이후 중화민국의 실효 통치 지역은 대만으로 축소되었다. 그후 장제스는 초대 총통으로 1975년까지 장기 집권했으며 한국전쟁으로 미국의 대만 원조가 증액되었다.

@ 대만민보
@ 대만민보

장제스는 대륙 수복의 꿈을 포기하고 경제와 교육의 부흥, 그리고 농촌의 진흥에 노력해 한국보다 일찍 50년대 이미 강권통치하에 발전국가로서의 경제성장의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그의 사후 장남 장징궈(蔣經國)가 총통직을 계승했다. 1996년 3월 23일 국민의 직접선거로 총통을 선출하도록 정치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대만은 중국 국민당 일당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2000년 총통 선거에서는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에 선출되어 처음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2008년에는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가 총통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2016년에는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이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중화민국 총통에 당선되었다. 대만과 중국 간의 관계는 ‘두 국가의 외교’가 아닌 ‘특수한 상태의 관계’로 규정, 남북 관계와 유사한 개념으로 ‘양안(兩岸) 관계’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양안이란 자연적인 군사분계선의 역할을 하게 된 대만 해협을 두고 서안(대륙)과 동안(대만)으로 마주보는 관계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70년대 미·중간의 데탕트 시대에 오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엔에서 중화민국이 누리던 상임이사국의 지위와 권한을 모두 승계하며 강대국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고, 중화민국은 1971년 유엔 탈퇴 이후 국제사회에서 급속히 소외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외정책을 추진하면서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현재 중화민국의 정치 판도는 크게 중국대륙파와 탈중국파로 나뉜다. 대체적으로 중국 국민당의 세가 큰 북부에서는 전자 지지자가 많고, 남부에서는 후자 지지자가 많다. 또한, 같은 중화권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상이한 정치체제를 가진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이후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처럼 오랫동안 교류가 부진해 사회 및 문화적으로도 매우 이질화되었으며 이 때문에 대만 명의의 자주국가를 건설하자는 세력도 존재하는 등 복잡한 양상이다.

이렇게 대만인들은 한편으로는 중국대륙과 문화적으로 한 뿌리이니 결국은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통일을 염원하는 본토에서 온 세력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대만이 대륙과 영원히 독립해야 한다는 원주민 중심의 독립파로 심하게 분열되어 있다. 그동안 미국은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 이후 데탕트 무드에 편승해 중국과 화해하여 월남전을 종식시켰으며 1979년 1월 1일 카터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중국과 수교 이후 미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정부의 원칙에 동조해서 대만과의 관계를 자제해왔다. 그런데 트럼프가 기존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고 대만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국의 북핵 문제 해결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다.

올해 봄 북한 김정은이 갑자기 베이징을 방문했고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의 기대에 걸맞게 환대했으며 김정은은 북폭시 중국의 무력 지원을 보증하는 북중우호관계를 재확인하는 등 외교적 성과를 얻었다. 물론 그 대신에 대가도 컸다. 시진핑은 김정은을 “야 너”식으로 마구 불렀지만 북폭 가능성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김정은으로서는 항의도 못한 채 시진핑을 ‘형님’으로 인정해야만 했으며 심지어 김정은은 시진핑이 발언할 때마다 얌전히 부지런히 받아쓰는 모습을 연출하는 수모를 겪었고 이제 중국은 명실상부하게 북한의 ‘상전’(上典)이란 점을 대내외에 한껏 과시했다.

태평양 넘어 이 모습을 바라본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철저하게 배신감을 느꼈다. 시진핑-김정은 회담은 트럼프로 하여금 기존의 대중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강구하도록 하게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과거 클린턴 이후 역대 미 대통령들은 북핵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중국 고위층과 회담해 중국 측에게 북핵 문제를 신신당부하곤 했었다.

그러기를 20여년, 아무런 성과 없이 세월만 흘러갔고 북한 핵개발은 소형화 단계에 들어섰으며 장거리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두게 되었다. 북한은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어섰고, 미국은 시간에 쫓기게 되었다.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배신으로 인해 중국을 통한 북핵 폐기 전략은 물 건너간 것이다.

이제 트럼프는 북한을 손보기 전에 배후의 걸림돌로 등장한 중국을 손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중간의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아니 이미 미중간의 무역전쟁을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내친 김에 오만해진 중국을 해체하려는 대중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다.

걸핏하면 중국은 G-2 행세를 하면서 완장 차고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해 미국의 동맹국들을 위협하는 등 오만방자한 행태를 보였기에 트럼프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에 장애물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차제에 중국이 더 크기 전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가해 중국의 대외 영향력을 약화시키자는 것이다.

기존의 데탕트 이후의 대중정책은 아시아에서 대륙 주변에 걸친 초승달 국가들(인도, 태국, 파키스탄, 터키, 미얀마, 필리핀, 베트남, 한국)과 동맹이나 우호적 협력관계를 맺어서 중국을 포위하는 현상 유지에 그쳤었다. 그러나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의 대만과의 무력통일을 방해하고 내분을 부추겨 중국을 분할해 미국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물리치려는 그란드 대중정책이 미국의 세계전략의 구도 속에 실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1년 4월 12일 훈련중인 F-16B 대만공군 전투기가 고속도로에 착륙하고 있다. / VOA
지난 2011년 4월 12일 훈련중인 F-16B 대만공군 전투기가 고속도로에 착륙하고 있다. / VOA

80년대 레이건 행정부는 군사적 경제적 경쟁을 통해 소련 즉,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을 압박, 해체를 유도했다. 그 결과 미국과의 군비 경쟁과 경제 장벽 및 내부의 모순에 의해 소련은 체제 위기에 봉착했으며 소련의 동독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이 차단됨으로써 동독이 고립되었고 동독 주민들은 서독에게 달려가 자발적 통일을 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트럼프의 대만 카드, 중국 해체 유도

독일은 통일되었고 소련 연방은 해체되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가들로 하여금 중국 문제에서 자신감을 갖게 하는 점이다. 그리하여 대만은 트럼프의 대중 견제책의 훌륭한 카드로 활용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만 카드로 인해 대만의 위상이 점차 상승하고 있다.

우리는 해방 직후부터 반공의 맹방으로서 대만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했으나 미중수교의 국제적 분위기에 편승해 기업체의 중국 대륙 진출과 더불어 중국 러시가 불이 붙으면서 통상과  국익을 고려해 1992년 대만에 대해 일방적 국교 단절의 통고로 대만인들에게 아픈 상처를 안겨줬다.

그 이후 우리에게 버림받은 대만은 우리의 뇌리에서 장시간 잊혀졌으며 우리에게 인접한 해외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제공받지는 못했다. 대만은 대중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대륙에 관한 정보의 일류 보고(寶庫)라는 점을 새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만은 본토인들이 정복하는 과정에서 중국 본토에 관한 수많은 귀중한 정보와 자료, 인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장점과 약점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포착했던 국공내전의 오랜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를 잘 활용해서 중국을 올바로 이해하여 한반도의 통일에 중국과 적절하게 협상하는 점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50년대의 미국의 대중정책은 대만에서 유학한 미국 신진학자들에 의해 양성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대만이 다시 더 높아진 국제적 위상과 새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의 대만여행법안은 우리에게 잊혀져버린 대만에 대한 전략적 의문점을 던지고 있다. 이런 긴박한 동북아의 국제 정세에 직면해 변화하는 대만의 위상은 과연 자유민주적 방식의 한반도 통일을 달성할 과제가 부여된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함의를 던지고 있는 것인가?

첫째, 우리는 트럼프의 대만 카드를 강 건너 불구경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의 대만정책을 활용해 대만인들과 정보 및 학술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대만과 정부 차원의 교류를 북한의 김정은과 ‘더불어’ 가겠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게 기대할 것이 아니라 학자와 언론인들이 민간 차원에서 학술 및 정보 교류를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가 과연 트럼프의 대만 카드가 만든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가이다. 미국의 대만 카드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이 미칠 것인지 예의주시해 자칫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우리에게 안겨질 이해득실을 면밀히 검토하는 한편, 자칫 불똥이 튀지 않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셋째, 트럼프는 김정은 정권을 몰래 지원하는 외세에 대해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심지어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대응, 보복한다는 점이 이번 트럼프의 ‘대만여행법’ 서명으로 여실히 증명되었다. 그러하길래 4월 27일 전개될 남북 정상회담이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부디 김정은의 인질이나 대변인 노릇을 자처하거나 실속 없는 맹목적 대북 지원을 약속하는 등 지키지도 못할 남북협상이나 막연한 약속 등으로 인해 한미동맹에 균열이 가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트럼프의 대만 카드는 장기적으로 중국을 소련 연방의 경우처럼 해체를 유도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럽방식의 아시아판 버전의 출발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과연 미국의 공세를 어떻게 버틸 것인가? 이제 중국의 대응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주천 이승만포럼 공동대표·전 원광대 교수
이주천 이승만포럼 공동대표·전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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