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비타민C, 퀴닌, 모르핀, 마취약, 소독약, 살바르산, 설파제, 페니실린, 아스피린, 에이즈 치료제
[신간]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비타민C, 퀴닌, 모르핀, 마취약, 소독약, 살바르산, 설파제, 페니실린, 아스피린, 에이즈 치료제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5.01 10: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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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토 겐타로는 1970년 5월 8일 효고현에서 태어나 도쿄대 이과대학교 이학부 응용화학과를 졸업했으며, 도쿄공업대학교 대학원에서 유기합성화학을 공부했다. 1995년부터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의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당시의 경험은 유기화학 세계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게 한 계기가 되었다. 1998년부터 인터넷에 CG로 분자 이미지를 제작하고 유기화학 관련 기사를 집필하여 올렸는데, 그 글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이자 스타 저자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말,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에 사직서를 냈으며 퇴직 후 과학 전문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주로 화학 관련 잡지에 칼럼을 연재한다. <이메일매거진 유기화학>을 집필 제작하여 발송하며,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한다. 

2010년 『의약품 크라이시스』로 과학 저널리스트 상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화학 커뮤니케이션 상도 받았다. 주요 저서로 『탄소 문명론』 『의약품 크라이시스』 『제로 리스크 사회의 덫』 등이 있다.

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에서 출간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인류 역사를 '질병'이라는 창과 '약'이라는 방패의 투쟁 역사로 파악한다. 

이 책은 많은 국가와 사회를 치명적 위기에 빠뜨렸던 10가지 질병과 결정적 고비마다 인류를 무서운 질병의 위협에서 구한 10가지 약에 관한 흥미진진하고도 유익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저자의 관점대로, 인류 역사는 질병과 약의 투쟁 역사다. 괴혈병, 말라리아, 매독,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 날카로운 창처럼 인류를 위협하면 비타민C, 퀴닌, 살바르산, AZT 같은 약이 기적적으로 등장하여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라고들 말하지만, '그때 만약 이랬더라면?' 하는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면 역사는 좀 더 흥미진진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인류 역사의 몇 가지 장면에 '만약'을 대입해보자. 

만약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바스쿠 다 가마와 마젤란이 비타민C를 알았다면? 

바스쿠 다 가마와 마젤란은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더 많은 신천지를 발견했을지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의 고국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향신료 무역에서 막대한 부를 얻어 세계를 제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약 그랬다면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18세기 후반, 괴혈병이 만든 비극을 영원히 끝낸 영웅이 등장했다. 영국 해군 소속 군의관 제임스 린드가 바로 그다. 린드는 집념과 끈기로 오렌지, 사과, 레몬 등을 사용하여 실험에 실험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괴혈병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린드의 괴혈병 치료제란 다름 아닌 다량의 비타민C가 함유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이었다. 이후 제임스 쿡 선장은 린드가 개발한 '비타민C를 포함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지혜롭게 활용하여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그 시대의 뱃사람들은 거센 풍랑이나 해적의 습격보다 괴혈병을 더 두려워했는데, 쿡 선장은 '비타민C 예방법'으로 단 한 명의 선원도 잃지 않고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위대한 항해는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만약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강희제의 주치의 손에 '예수회의 가루' 퀴닌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강희대제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역시 명군으로 인정받는 옹정제, 건륭제 역시 역사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며, 청나라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 판도도 달라졌을 것이다. 

강희제는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61년간이나 제위에 있으면서 많은 위대한 업적을 세워 중국 역사상 최고 명군 중 한 명으로 남았다. 300년 가까이 이어진 청 왕조의 기반이 거의 전적으로 그에 의해 닦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 강희제가 제대로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종말을 맞이할 뻔한 치명적인 위기를 만났다. 마흔 살에 떠난 원정길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탓이었다. 그 바람에 한때 그는 위독한 상태에 빠졌는데, 운 좋게도 예수회 선교사가 진상한 특효약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예수회의 가루'라 불리는 약 퀴닌이 바로 그것이다. 여담이지만,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는 부왕에게 병문안 온 황태자는 황제의 건강을 염려하기는커녕 이제 곧 자신이 황위에 오른다는 생각에 희색이 만면했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병에서 회복한 강희제는 인간적인 서운함에 더해 황태자의 작은 그릇에 실망하여 황위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강희제에게 황위를 물려받은 이가 또 한 명의 명군인 옹정제이며, 그 뒤를 이은 황제가 역시 명군의 반열에 오른 건륭제다. 

퀴닌은 왜 '예수회의 가루'라는 이름으로 불렸을까? 대항해 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포교를 떠난 선교사들에 의해 퀴닌이 유럽과 아시아 등 여러 대륙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 세계로 전파된 퀴닌은 영국 왕 찰스 2세, 청나라 황제 강희제 등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이 기적의 가루 덕분에 1655년 교황을 선출하는 회의인 콘클라베는 장장 석 달을 끌었음에도 말라리아로 인한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무사히 마쳤다. 

그로부터 30여 년 전인 1623년 콘클라베에서 선거를 위해 모인 추기경 중 10명이 말라리아에 걸렸고, 그중 8명이 사망했으며, 교황에 최종 선발된 우르바누스 8세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뻔했던 걸 고려하면 예수회의 가루, 퀴닌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실감이 난다. 

만약 에를리히 연구팀이 매독 치료제 개발을 위한 605번째 화합물 실험에서 실패한 뒤 좌절하여 연구를 중단했다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한때 인류를 치명적 위기에 빠뜨렸던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인 매독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을지 모른다. 또한 '수은 요법'이라는 황당한 치료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었던 중세인들처럼 현대인들은 여전히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을까. 

매독은 무서운 병이다. 프랑스 왕 샤를 8세, 프란시스 1세, 잉글랜드 왕 헨리 8세 등 널리 이름이 알려진 쟁쟁한 왕들이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한때 파리 시민의 3분의 1이 이 병에 걸릴 정도로 심각했다. 

유럽 전역을 강타한 매독은 바스쿠 다 가마의 함대에 매독 환자가 섞여 들어가는 바람에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와 말레이반도를 거쳐 중국에 진출했다. 그리고 다시 16세기 초반 무렵 일본에 상륙하여 수많은 이들에게 공포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이 시대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 내려오는데, 전국시대의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고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관한 이야기다. 희대의 영웅 이에야스는 매독이 두려워 윤락 여성들 근처에도 가지 않는 등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렸다고 한다. 

인류는 이 위험천만한 질병 매독 치료법을 찾기 위해 수백 년간 분투했다. 한때 중앙아메리카 원산인 유창목 나뭇진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귀한 대접을 받았다. 또한 수은이 매독 치료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은 요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심부전과 탈수, 질식 등으로 목숨을 잃거나 운 좋게 살아남아도 간과 신장에 장애를 입은 채 빈혈 등의 부작용을 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위험천만한 치료법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그중에는 오스트리아 의사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가 개발한 '매독환자를 말라리아에 걸리게 하는' 기상천외한 치료법까지 등장했다. 

에를리히 연구팀은 획기적인 매독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감염병에 관한 많은 업적을 세워 이미 전 세계적 명성을 얻은 에를리히 연구팀에는 일본인 유학생 하타 사하치로가 참가하고 있었다. 에를리히는 해박한 의학 지식과 탁월한 실험 기술, 경이로운 끈기를 갖춘 이 제자를 깊이 신뢰했다. 

하타가 에를리히 연구팀에 참가하기 얼마 전 매독 병원체가 발견되어 배양법이 학계에 보고되었다. 에를리히 연구팀은 수백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이 병에 초점을 맞추었다. 에를리히는 하타에게 지금까지 만든 화합물을 매독에 시험해보라는 임무를 주었다. 

끈질기게 실험을 거듭한 하타는 606번째 화합물 실험에서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비소를 포함한 이 화합물 한 방울만으로 실험용 토끼의 혈액에서 매독 병원체를 말끔히 몰아냈다. 한 달가량 시간이 지나자 매독으로 생겼던 종기가 완치되었고, 토끼는 건강을 회복했다. 

임상시험이 진행되었으며, 인체에 대한 효과도 입증되었다. 무서운 질병 매독이 마침내 정복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하타 사하치로의 집념과 끈기에 힘입은 에를리히 연구팀이 개발한 606번째 비소화합물은 '살바르산'으로 명명되었는데, '구세주'를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살바토르(Salvator)'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약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약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다양한 기록과 연구 자료, 정황들을 근거로 추정할 수 있을 뿐 정확히 언제, 어떻게 약이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한 것은, 약의 발견과 활용이 인류가 탄생하기도 전인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인류가 탄생하기도 전에 약이 존재했다면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도 약을 사용했다는 건가?'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약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약을 '발견'하고 '활용'한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의 사례를 들어보자. 남미에 서식하는 꼬리 감는 원숭이(카푸친 원숭이)가 대표적이다. 이 원숭이들은 노래기를 발견하면 잽싸게 잡아서 자기 몸 여기저기에 문지른다. 

노래기가 방출하는 화학물질 벤조퀴논(Benzoquinone)을 몸에 바르면 뱀이나 해충 등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을 '발견'하고 '활용'할 줄 아는 똑똑이는 곤충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불나방 유충이 그런 똑똑이 중 하나다. 녀석은 어떻게 약을 '발견'하고 '활용'할까? 가생파리라는 곤충은 애벌레에 알을 낳고, 부화한 유충은 애벌레 몸속에서 성장한다. 이윽고 애벌레가 번데기가 될 무렵, 기생파리 유충은 숙주의 외피를 아귀아귀 뜯어먹고 바깥세계로 나온다. 이처럼 녀석은 <에일리언> 같은 SF 영화나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기생 당하는 쪽, 즉 숙주인 불나방 유충도 기생파리 유충에게 아무 대책 없이 무기력하게 잡아먹히지는 않는다. 
불나방 유충은 기생파리가 제 몸에 알을 낳으면,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나도독미나리속의 독당근(Conium) 같은 독성식물을 찾아 먹는다. 이렇게 독성식물을 뜯어 먹은 불나방 유충은 독초를 먹지 않은 녀석들보다 생존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즉, 불나방 유충은 제 몸속에 둥지를 튼 기생충을 퇴치하기 위해 '약초'를 이용하는 셈이다. 야생동물이 본능적으로 자연계에서 약을 찾아 이용하는 사례는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초기 인류는 원인(原人)이나 원인(猿人, Australopithecine)이라 불리던 시대부터 이른바 '약'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참혹한 '쓰레기 약'의 시대 

“인류는 독과 약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와 점토, 종이 등의 기록 수단을 발명한 것처럼 보인다.” 『독과 약의 세계사』의 저자이자 일본 약과대학 교수인 후나야마 신지의 말이다. 실제로 초기 문명인들은 파피루스, 점토판 등의 필기구에 다양한 약이나 독약 등에 관한 특징과 사용법 등을 문자로 남겼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먹으면 병에 걸리는지, 또 무슨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지에 관한 정보는 어쩌면 왕의 이름이나 전쟁의 승패를 기록하는 일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초기 인류는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들을 약으로 사용했을까? 놀랍게도, '도대체 누가 이런 걸 약으로 사용할 엄두를 냈을까' 싶은 황당한 사례로 넘쳐난다. 예를 들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BC 4000년경부터 3000년경 기간 동안 점토판에 550종이나 되는 의약품 목록을 기록해놓았는데 소똥과 말똥, 썩은 고기와 기름, 불에 태운 양털, 돼지 귀지 같은 것들이다. 오늘날 상식으로는 약은커녕 쓰레기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물질들이다.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고대 이집트도 예외는 아니어서 동물 피나 똥, 빵이나 나무에 핀 곰팡이 등 이상한 물질을 환자의 몸속에 투여했다는 기록이 공식 문헌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인들과 고대 이집트인들은 왜 '쓰레기 약'을 사용하고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했을까? 이는 당대를 산 사람들의 신념 및 종교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은 질병이라는 악마가 몸속에 침투하여 만들어내는 나쁜 현상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몸속 악마를 쫓아내려면 악취를 풍기는 동물 똥이나 오줌, 썩은 고기, 심지어 돼지 귀지 같은 악마가 싫어하는 더러운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쓰레기 약'이라는 악습이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질병이 악마의 소행이 아닌 자연현상의 하나임을 깨달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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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2018-08-15 09:37:35
퀴닌은 선교사가 아닌 독일의 탐험가 알렉산더 본 훔볼트가 처음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