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에서 만난 아이들
경계선에서 만난 아이들
  •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
  • 승인 2018.05.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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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북중 국경을 가다

지난 1월 3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작은 기사가 실렸다. <“한국에서 행복하게 자라길” 온정 나눈 탈북 2세들>이라는 제목이 잠시 눈을 멈추게 했다. 탈북여성이 하나원 퇴소 후 아이를 낳았으나 엄마는 탈북 과정에서 생기게 된 아이를 키우기 원치 않았고 결국 다른 탈북여성의 가정에서 이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탈북민 대안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용돈을 모아 아기에게 전달하고 축복하며 놀아주었다는 미담이었다. 이 짧은 기사가 세이브NK에서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왜냐하면 탈북여성들은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 중국 등 제3국에 체류하다 입국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이러한 탈북여성이 낳은 중국 출생 중도입국 청소년의 숫자가 북한 출신 청소년들의 숫자를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출신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과 한국이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경험하면서 정체성의 혼란과 탈북 과정의 트라우마, 외로움, 교육 과정의 어려움 등을 겪는다.

제3국 출신 중도입국 탈북 청소년의 경우 이들의 아버지는 주로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조선족이거나 한족이며 일상적인 결혼 생활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이들은 주로 중국에서 출생해 생활하고 탈북여성인 엄마가 한국으로 입국하는 경우 함께 입국하는 수는 극히 적으며 대부분의 경우 엄마가 먼저 한국으로 입국해 한국 정착 후 선별적으로 데려 오고 있다.

결국 제3국 출신 중도입국 탈북 청소년의 경우 북한 출신 탈북 청소년들과 다른 트라우마와 가정의 붕괴에서 오는 갈등과 외로움, 한국어의 어려움, 중국인도 북한인도 남한인도 아닌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한국 내에서도 대학 진학에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도입국 탈북청소년의 경계선을 따라서

세이브NK는 이러한 경계선에 놓인 제3국 출신의 중도입국 탈북 청소년의 어려움과 문제를 알리고자 2018년 4월 17일부터 24일까지 중국 동북3성 지역을 다녀왔다.

북중국경지역에 설치된 탈북방지 철조망은 탈북민들의 마음까지도 찢어놓았다.
북중국경지역에 설치된 탈북방지 철조망은 탈북민들의 마음까지도 찢어놓았다.

어린 아기를 후원했던 두 학생의 출신 지역을 찾아 그들의 어려움과 생생한 상황들을 영상에 담고자 했다. A학생은 길림성 반석 시에서 태어났고 북한 출신 어머니와 한족 아버지의 나이차는 17년이며 아버지는 두 다리를 쓰지 못했다.

A의 어머니는 아이가 자라 학령기에 접어들자 아이를 데리고 탈북민의 검거가 뜸한 대련으로 거처를 옮겨 10년간 어렵게 생활하다가 심양의 한국 대사관을 통해 한국 입국 후 곧 A학생을 데리고 왔다.

B학생은 연길 근처 왕청에서 탈북여성과 조선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2번의 북송과 재탈북하는 과정을 거쳐 혼자 한국으로 입국했다. B학생은 4년 뒤 한국으로 입국했고 현재는 조선족 아버지도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두 학생의 경우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의 탈북민 대안학교에서 고교 과정을 이수하며 대학 준비를 하고 있다. A의 경우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왔고 주로 조선족이 많은 지역에 거주했으므로 한국어는 가능하나 학업에 많은 어려움과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트라우마와 함께 대학 진학이 탈북민 전형에 해당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B의 경우 초등학교 교육부터 한국에서 이수했으나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지 못해 한국어의 어려움이 많았고 이런 문제는 한국의 일반 학교에서 극심한 왕따로 적응의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탈북민 대안학교로 전학하고부터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찾아 가고 있지만 이 학생도 탈북민 전형에는 해당되지 못하므로 일반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A학생이 자랐던 대련으로 가서 A학생이 공부했던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대련은 중국 요녕성 요동반도 남단에 위치해 아름다운 해변 도시로 알려져 있다. 35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민족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A학생이 한국어가 가능했으며 바닷가 추억도 남은 곳이었다.

B학생이 자란 왕청은 용정시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현재는 도시 재정비로 어느 정도의 모습은 갖췄으나 당시는 초가집에 주로 옥수수 경작으로 살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가 B학생의 마을을 찾아 그 당시의 B와 그 어머니인 탈북여성의 이야기를 현재까지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10년 전쯤 고난의 행군 이후 많은 탈북여성이 굶주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넜고 왕청 지역에도 도강 이후 팔려온 북한 여성들이 2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 여성임이 밝혀지면 공안에 의해 검거되고 결국 북송되어 강제수용소로 이감될 것을 두려워해 집안에만 갇혀 지내거나 주변의 이목이 무서워 자신의 아이와도 조선말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대련에서 고속철도를 이용해 단동으로 이동했다. 단동은 중국의 요녕성과 북한을 연결하는 국경지대이다.

압록강 너머 북한 지역이 훤히 보이는 끊어진 두 다리 중 한 다리만을 연결해 수시로 물자를 싣고 달리는 트럭과 평양과 북경을 연결하는 열차를 볼 수 있었다. 끊어진 다리에서 바라보는 신의주 땅은 너무도 가깝게 다가왔다.

북한을 바라보며  

여기서 주로 탈북민 구출 사역을 하는 X맨을 통해서 들은 탈북여성의 기막힌 사연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상황을 더 현실감 있게 했다. 작은 보트를 이용해 압록강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며 만났던 북한 군인들은 단둥 시내에서 쉽게 만나는 순진한 청년들이었다.

물고기를 잡고 있는 북한 동네 사람들도 우리가 건네는 얼마 되지 않는 중국 돈에 엷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유경식당 종업원들은 마치 훈련된 로봇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중국 도문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남양교두.많은 탈북민들이 이 다리로 북송되고 있다.
중국 도문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남양교두.많은 탈북민들이 이 다리로 북송되고 있다.

다음날, 다시 고속철도를 타고 연길로 출발했다. 몇 년 전에 탔던 밤기차에 비하면 고속철도는 우리나라의 KTX 이상의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다. 우리는 연길을 베이스로 도문과 방천, 장춘, 용정, 왕청 등지로 옮겨 다녔다.

도문으로 출발해 동북 3성 지역에서 검거되는 탈북민들을 북송 전에 감금하는 ‘북송 탈북민 수용소’를 카메라에 담고자 수용소 뒤쪽 길에 내려 촬영하던 중 갑자기 다가와 내리는 군인들을 보고 안내자는 차량을 급히 풀숲에 숨겼다.

우리는 혼자 촬영 중인 PD를 어떻게 데리고 올까 가슴 졸이기도 했다. 많은 북송 경험을 이야기하던 탈북민들의 마음이 전해 오는 듯이 그 분위기가 살벌하게 느껴졌다.

바로 두만강 넘어 보이는 북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유난히 거친 철조망 덩어리가 우리의 마음을 깊이 찔러 오는 듯 모두가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여기서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국경이 맞닿은 방천으로 이동해 바라본 모습은 바로 손끝에 잡힐 것 같은 오늘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시 연길로 돌아와 탈북여성이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살고 있는 M의 집을 방문했다.

간첩 접선하듯 돌고 돌아 만난 M은 카메라에 무척 예민해 하면서 연길에서 탈북민을 도와주다 추방되고 검거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중국에서 만난 탈북여성의 모습

다음날 새벽 장춘으로 가서 다시 3시간 정도 시골 F지역으로 이동했다. 장춘역에 우리를 마중 온 사람도 탈북여성이었는데 암호를 사용해 만나면서도 혹시 중국 공안에게 발각될까 무척 조심하는 모습이 처음엔 생경했다.

우리가 도착한 F지역에는 현재 20여 명 정도의 탈북여성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많을 때는 120명 정도의 탈북여성이 팔려와 한족이나 조선족과 살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북한을 탈출한 여성들은 대부분 아주 작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주로 배가 고파서, 아사의 갈림길에서 어쩔 수 없어서, 강 건너 중국에서 한 달만 음식점 주방 일을 해도 북한에서 1년은 먹고 살 수 있다 해서 특별한 계획도 없이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강을 건넜다고들 했다.

그러나 강을 건넌 후부터의 시간은 머리에서 지우고 싶은 무서운 기억뿐이라 했다. 거의 대부분이 셀 수없이 많은 성폭행과 감금, 구타 등을 거쳐 팔리게 되었다고 했다.

강제 결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탈북여성은 중국으로 넘어 온 것 자체가 중국의 입장에서는 불법에 해당돼 주변의 신고나 공안에게 발각되면 우리가 도문에서 영상에 담았던 ‘북송 탈북민 수용소’로 끌려가고 곧이어 북한으로 강제 추방되며 이후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문과 인간으로서 치욕적인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이란다.

북한 여성이 팔려간 중국 동북 F지역 시골집
북한 여성이 팔려간 중국 동북 F지역 시골집

이들의 결혼 상대는 나이가 상대적으로 20세 정도 많거나 장애자이거나 집이 몹시 가난해 일반적으로 결혼이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가 찾아간 F지역은 주로 옥수수 농사가 전부인 농촌 지역으로 조선족 목사가 세운 교회가 이러한 탈북여성들의 구심점이 되어 있었다.

탈북 후 팔려서 강제 결혼해 중국에 정착하는 탈북여성의 가장 큰 문제는 언어 불통이라고 이야기한다. 주로 조선족이 많은 지역에서 벗어나 살게 되는 탈북여성은 중국말을 이해 못해 더 많은 오해와 고통을 당했다고 한다.

아이가 생기게 되어도 아이와 조선말을 할 수 없는 것은 혹시라도 자신들의 신분이 주변에 드러나면 공안에게 추방당하는 것이 두려워 시댁에서도 조선말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탈북여성들은 집안에 갇혀 지내다시피하며 극심한 불안감과 우울감, 분노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강제 결혼 후 자녀가 생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들려오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은 또 다른 갈등을 낳기도 한다.

먼저 한국으로 떠났던 지인들에게서 전해오는 소식은 어떻게 해서든 중국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서의 새 생활을 꿈꾸지만 실제 그 길은 또 다른 선택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중국 체류 탈북여성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많은 고난 속에서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남편에 대한 미움과 증오도 있지만 자기가 낳은 아이에 대한 모성은 어디서나 똑같은 것인가 보다.

한국으로 가는 브로커가 마련한 차량에까지 올랐다가 두고 온 아이가 눈에 밟혀 돌아왔다는 어떤 탈북여성은 울면서 당시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여기가 호구(주민등록)가 없어서 운신의 자유가 제약되어도, 너무 가난해서 아이의 교육이 힘들어도 내가 낳은 아이를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여기서는 북한처럼 굶주리지는 않으니까요”라고 말하는 탈북여성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새벽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함께 방문한 탈북여성들의 가정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워 보였다.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는 가정은 어려운 중에서도 쓸고 닦고, 정리가 되어 있었고 아이들도 공부에 열의를 갖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한국으로 떠난 가정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었다.

아이들은 밖으로 떠돌고 그 또래에 품게 되는 희망도 기대도 없어 보였다. 이처럼 아버지라도 아이를 돌보는 경우는 어느 정도 가정 내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어머니의 한국행 이후 그대로 버려져 제2의 꽃제비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중국 내에서 자녀를 낳고 살고 있는 탈북여성들의 기대는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 후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은 이곳에서 희생하더라도 아이만큼은 한국에서의 교육 기회를 얻어 공부 시키기를 원했다.

중국에서 탈북여성을 어머니로 태어난 이들에게 한국에서의 교육기회는 앞으로 다가올 통일을 위해 큰 일꾼으로 성장 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중국 도문시에서 탈북방지용 철조망 너머로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이 보인다.
중국 도문시에서 탈북방지용 철조망 너머로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이 보인다.

우리는 이들을 떠나면서 과연 이들이 처한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참으로 어려운 질문 속에 갇히게 되었다.

용정에서 만난 공안과 윤동주 생가

이제 다시 연길로 돌아와 서울에서부터 연락이 된 탈북민의 조카인 P공안을 만났다. 잠시 현재 국경 주변의 탈북민 상황 등을 듣고자 했으나 공안 경찰국으로 우리 팀을 데리고 들어가 이야기하자는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인민 공안이라 붉게 쓴 경찰국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의 영상 장비 때문에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는 가운데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P공안은 “북한 사람이 무단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이들을 잡으러 다니지는 않는다.

다만 이들이 중국 내에서 싸움을 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되면 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수많은 탈북민들이 국경을 넘어 왔지만 요새는 그 수가 적다고 하면서 사실 연길은 조선족 자치주이므로 같은 조선 사람들이 넘어 오는 것을 불쌍히 여긴다고도 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공안의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떠나기 전 우리는 해란강을 바라보며 그 옛 시절의 독립투사들의 어려움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최초에 지구가 만들어졌을 때는 ‘길’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단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보니 길이 생겨나고 그곳으로 더 많은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고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중국 도문지역에서 두만강 너머로 바라본 북한 온성군 남양노동자구
중국 도문지역에서 두만강 너머로 바라본 북한 온성군 남양노동자구

우리가 지금하고 있는 일들이 이러한 탈북여성과 꿈을 이뤄 가야 할 탈북 청소년들, 특히 더 복잡하고 그 길이 보이지도 않는 것 같은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들의 실상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되기를 바라면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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