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권력’ 본질 회피한 네이버의 가면극
‘편집권력’ 본질 회피한 네이버의 가면극
  •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8.05.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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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입·퇴출 심사는 뉴스 편집의 시작, 이것부터 없애야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우리는 편집권이 없다. 우리는 언론이 아니다. 단순히 정보를 거르는 거름막이자 유통자일 뿐이다.” 2006년 당시 네이버 미디어 담당 이사가 한 말이다. 2018년에도 “우리는 언론이 아닌 ‘플랫폼 사업자’일뿐”이란 네이버의 핑계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주 국회에서 열린 ‘포털의 기사 배열과 댓글’ 주제 정책토론회는 의미 있는 많은 지적이 나왔음에도 여전히 핵심을 간과했다. 네이버가 “다 내려놨다”며 심한 엄살을 편 개편안은 조삼모사에 불과한데다 네이버 권력의 8할인 뉴스편집권이란 본질은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이날 그동안 국민을 상대로 해온 거짓말을 시인했다.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를 시작한 뒤로 제기됐던 숱한 비판이 “뉴스편집을 하는 네이버는 언론” 아니었던가. 그러한 비판에 공적 책임을 피하려던 네이버가 오랫동안 해온 변명이 바로 “우리는 언론이 아닌 뉴스서비스 사업자, 플랫폼 사업자”였다.

그런데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올해 3분기 이후부터 네이버는 더 이상 뉴스 편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달리 말하면 네이버는 그동안 뉴스편집을 해온 언론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언론으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고의적으로 언론의 역할을 부정해왔다는 뜻이다. 지난 토론회에서는 바로 네이버의 이 자백을 거론하고 법적 책임을 논의했었어야 했다는 얘기다. 기성 언론들을 비롯해 네이버 회원사인 인터넷 매체들은 마치 기사 아웃링크제가 네이버 뉴스 기사 배열과 댓글조작의 문제들을 해결할 만능키인 것처럼 떠들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기사 아웃링크가 아니라 네이버가 뉴스편집권을 언론사에 돌려주든 아니든 여전히 막강한 뉴스 편집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카오도 물론이지만 네이버는 언론과 기사를 평가하고 벌점을 부과하며 포털 입점과 퇴출을 결정하는 언론 자정, 감독기구 역할까지 한다.

네이버 뉴스 개편안은 뉴스 카테고리 강화

기사에 전화번호,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를 써라 마라 간섭하고 통제한다. 언론사들은 이걸 어기면 벌점 등 제재를 받고 심하면 포털에서 퇴출당하고 기사 검색에서 빠진다. 기사에 무엇을 쓰든 말든 이건 궁극적으로 뉴스소비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 아닌가. 포털의 이 행위 자체가 뉴스 편집이자 동시에 언론 검열이다. 다시 얘기하면 포털이 어떤 언론사를 네이버에 넣을지 말지, 뺄지 말지 심사하는 것 자체에서부터 뉴스 편집 행위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네이버 뉴스로 국한해도 네이버의 개선책이란 게 얼마나 황당한 말인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게 된다. 네이버는 뉴스판 등으로 생기는 광고 수익을 언론사에 돌려준다고 하지만, 결국은 뉴스를 네이버 안으로 일단 가지고 들어와 장사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존에 하던 것과 도대체 뭐가 다른가.

구글은 언론사와 뉴스서비스 계약을 별도로 하거나 뉴스를 자기들의 편집기준으로 선별하지 않는다. 구글은 수익분배 과정도 유저들의 몫으로 돌리지 않나. 그에 반해 네이버는 언론사를 심사하고 뉴스서비스도 지금처럼 다 하며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붙이긴 하지만 기사도 통제한다. 광고 수익을 언론사에 돌려주겠다지만, 개선안처럼 한다고 지금처럼 네이버에 붙는 기업광고가 떨어져나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네이버가 뉴스를 상품화하는 것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어떤 면에선 자기들 상품인 뉴스 카테고리를 더 강화시켜주는 결과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기사 아웃링크만 해도 네이버는 자기들 회원사에 할지 말지 묻고 실행하겠다고 한다. 그게 오로지 회원사들의 편의를 위한 것인가. 자기들이 만든 가두리 안에서 언론사들이 빠져나가지 못할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회원사에 묻는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짓 아닌가.

네이버 문제 본질 모르는 한국당의 아마추어리즘

필자 주장은 간단하다. 네이버는 뉴스에서 일체 손을 떼라는 것이다. 네이버가 자신들 이익 극대화를 위해 만든 현재 시스템에서는 어떤 개선책도 임시방편이고 근본적으로 무용지물이다. 네이버가 진정 공정성을 의식하고 그걸 바라는 국민을 존중한다면 백지상태에서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자유한국당도 네이버에 우익매체를 넣니 빼니 문제만 가지고 따질 게 아니다. 네이버가 언론을 심사하면서 편집기능, 언론권력을 그대로 움켜쥐어 조삼모사로 국민을 우습게 보는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우익 언론사 한 둘 더 네이버에 입점한다고 네이버 뉴스 불공정 문제나 댓글조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에 입점하는 우익 언론이 몇 더 늘어난다고 드루킹과 같은 뉴스 댓글조작 사건이 근절될 수 있나. 전혀 아니다. 한국당은 아웃링크를 하니 마니 이 문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무엇이 본질인지 문제의식부터 정확히 가져야 한다. 근원적인 문제는 네이버가 언론을 심사해 입점과 퇴출을 결정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정치권은 드루킹 사건을 보고도 네이버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관대하다. 국정원, 기무사 직원이 댓글 썼다고 정권이 피바람을 일으키며 수사한 마당에, 뉴스편집 조작이나 댓글조작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거짓말로 밝혀졌는데도 네이버는 짧은 사과 한마디로 끝나는 분위기 아닌가. 한국당은 네이버 태세전환에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가는 수준이다. 강조컨대 네이버의 기사 아웃링크 문제는 2차적 문제다. 이건 네이버의 언론심사부터 없앤 뒤 논의할 문제다. 네이버는 언론심사를 없애지 못하겠다면, 지금 평가 기구와 잣대를 없애고 언론 입·퇴출 심사를 공정하게 할 수 있는 대안부터 내놓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뉴스서비스를 위한 언론심사 기구를 정치권 여야 동수로 꾸리든 좌우 시민단체를 집어넣든 공정성과 신뢰를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의 고질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사회 전반의 방향을 가르는 이슈나 올바른 정보 전달이 차단되거나 네이버의 가두리 안에서 왜곡되고 담합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네이버가 내놓은 개편안은 필자가 지적한 근원적인 개선책과는 거리가 멀다. 네이버가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당의 포털 개혁도 이점을 분명히 알고 프로답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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