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숲은 생각한다....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신간] 숲은 생각한다....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5.23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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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에두아르도 콘 Eduardo Kohn 는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인류학 교수이다.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코스타리카의 열대학연구원이 주관하는 열대생태학 과정을 수료하면서 생태학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쌓았다. 실제로 그는 아마존 강 유역에서 1,000여 개의 식물 표본, 600여 개의 동물 표본을 수집하였으며 이 표본들은 현재 에콰도르 국립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 『숲은 생각한다』는 아마존 강 유역에서 4년간에 걸친 인류학적 현장연구의 성과로서, 숲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밀착 연구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가져온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의 가장 기초적인 전제에 도전하는 책이다. 그의 작업은 새로운 인문학의 지평을 여는 대표적인 포스트휴머니즘 기획으로 평가받는다. 『숲은 생각한다』는 미국인류학회에서 수여하는 2014년 그레고리 베이트슨 상을 수상하면서 그해 인류학계의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으며,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나카자와 신이치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가장 창조적인 의미에서 사고의 도약을 이뤄낸 책”으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숲은 생각한다』는 캐나다의 인류학 교수인 저자 에두아르도 콘이 아마존 숲 속의 생활상을 4년간 관찰, 사색한 결과물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재규어에서부터 개미핥기, 대벌레와 솔개, 선인장과 고무나무에 이르기까지 숲 속 생물들의 흥미진진한 삶과 생존 전략이 인간들의 역사와 얽히고설키는 풍경을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언어가 없는 숲의 생물들도 사고를 하고 세상을 표상하며 그들만의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숲은 동식물의 다양한 생각과 갖가지의 의미로 가득한 매혹적인 세상이다. 저자는 아마존 숲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루나족에게서 이 점을 배운다. 빼어난 관찰과 심오한 인문학적 통찰을 엮어낸 이 책을 두고 세계적 사상가 브뤼노 라투르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는 법을 배운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숲은 생각한다』는 미국인류학회에서 수여하는 저명한 학술상인 그레고리 베이트슨 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최근 인문학계의 새로운 이론적 흐름인 ‘존재론적 전회(轉回)’를 이끄는 대표적인 저서로 평가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인간 중심의 기존 인식론적 견해를 넘어서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가를 묻는다. 우리는 숲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치밀한 탐색과 성찰이 그 속에 담겨 있다.

#1. 1980년대 후반, 에콰도르의 나포 강 상류에 있는 리오 블랑코 마을에서 젊은 인류학도 에두아르도 콘은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의 샤먼들은 주변 숲에서 ‘루나 푸마’라고 불리는 재규어-인간이 출몰한다고 했다. 재규어-인간은 일종의 늑대인간 같은 존재로 사람에서 재규어로 변신하여 가축이나 인간을 습격한다고 한다. 젊은 인류학도는 이 이야기에 이끌려 루나 푸마들이 모여 사는 아빌라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문명화된” 사람들이자 때로는 “포식자”이기도 한 기이한 원주민들과 만나게 된다. (본문 13~18쪽 참조)

사람이 재규어가 된다는 이 기묘한 이야기는 동화나 신화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오히려 이 이야기가 세상의 참모습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아마존 숲 속에서 재규어와 마주쳤을 때, 재규어가 우리를 자신과 같은 포식자로 보는가, 아니면 먹잇감으로 보는가는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이 만남 속에서 우리 자신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재규어에게 그와 동렬에 있는 포식자로 여겨진다면 우리는 말 그대로 ‘재규어-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개미핥기가 개미집 속으로 혀를 집어넣어 개미를 핥아먹고자 할 때, 개미핥기의 혀는 개미가 아무 의심 없이 올라탈 나뭇가지처럼 여겨져야 한다. 옥수수밭에 출몰하는 잉꼬를 겁주기 위해 루나족이 만드는 허수아비는 잉꼬의 관점에서 맹금류처럼 보여야 한다. 나무 꼭대기에 있는 양털원숭이를 잡으려면 야자나무를 쓰러뜨려서 원숭이를 깜짝 놀라게 해야 한다. 요컨대 숲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생존할 수 없다.

『숲은 생각한다』의 저자 에두아르도 콘이 아마존 숲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루나족에게서 배운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루나족의 애니미즘은 원시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탁월한 통찰이었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생물들의 관점을 인정하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려는 루나족의 시도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여기서 ‘숲은 생각한다’는 통찰이 나왔다. 숲이 생각한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나무와 동물은 정말로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가져온 사고와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너무나 협소했던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이해하려면 생각과 느낌의 정의 자체를 새롭게 해야 한다. 저자는 아빌라 루나족에 대한 4년간의 참여관찰 속에서 이 점을 배웠고, 기호학, 인류학, 생태학, 언어학, 철학 등을 넘나드는 학제적 탐구를 통해 ‘종을 횡단하는 소통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2. “자연을 다룬 글에서 모든 것을 생화학적 과정의 하나로 설명하고 과학적 분석만 중시한다면 동물과 식물은 유전자 정보가 프로그래밍된 바이오로봇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동물과 식물도 우리 인간처럼 고유한 감각을 갖고 있으며 활동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동식물의 세계도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우리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다른 것들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페터 볼레벤,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3. “숲이 생각한다. 공동의 생명에는 마음이 있다. 숲이 ‘생각’한다는 주장은 의인화가 아니다. 숲의 생각은 인간을 닮은 뇌에서가 아니라 관계의 살아있는 그물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숲의 지능은 많은 종류의 상호 연결된 생각 집합에서 생겨난다. 신경과 뇌는 숲의 마음을 이루는 한 부분이지만, ‘한’ 부분일 뿐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나무의 노래』)

#4. 아마존의 숲 속에서 한 그루의 야자나무가 쓰러졌다. 그 나무가 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하나의 ‘기호’로서 양털원숭이에게 위험을 알려준다. 원숭이는 그 굉음에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그곳에서 도망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숭이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한다면, 여기서 ‘생명’이란 기호 과정의 산물 혹은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원숭이는 이 기호를 해석해서 ‘사고’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원숭이는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정신을 가진 존재이자 하나의 ‘자기’이다. 

동물과 식물은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끼며 심지어 미래를 상상한다. 이것은 의인화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만이 생각과 느낌과 미래를 갖고 있다는 사고야말로 인간중심주의적 편견이다. 숲해설가들과 생태학자들과 아마존 원주민들이 알고 있듯이, 숲은 ‘생각’한다. 『숲은 생각한다』는 숲에 관한 책이자 ‘생각’에 관한 책이다. 숲이 생각한다면, 숲은 어떻게 생각할까? 숲의 사고와 인간의 사고가 가진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저자는 미국의 철학자 찰스 퍼스의 기호학 및 최신의 생물학적 생태학적 연구, 그리고 아마존 숲 속의 인간과 생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통해 모든 생명이 본질적으로 기호 과정 속에 있는 기호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요컨대 숲이든 인간이든, 생명은 기호를 해석하고 기호를 생산하고 기호를 통해 소통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기호는 인간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 있고 이 세상에 속해 있기에 모든 생명은 기호를 통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비인간적 창조물들과 공유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신체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호와 더불어 그리고 기호를 통해서 살아간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여러 방식으로 세계의 일부를 표상해주는 “지팡이”로서 기호를 사용한다. 그럼으로써 기호는 우리를 우리로서 존재하게 한다.” (본문 24~25쪽)

저자는 언어가 없는 숲의 생물들이 어떻게 사고를 하고 세상을 표상하며 그들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를 많은 사례와 일화를 통해 차근차근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의 상징적인 의사소통 너머의 세계에서 어떤 소통 방식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처럼 인간만의 제한된 관점을 넘어서게 되면, 표상, 관계, 목적, 생명, 죽음, 사고, 형식, 미래, 역사, 소통 등의 인문학적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바뀐다. 숲이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끼며 미래를 상상한다면, 인간만이 사고하고 미래를 갖고 있다고 말하던 기존 인문학적 관점과는 작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이 점에서 최근 인문학계의 새로운 이론적 흐름인 ‘존재론적 전회’를 이끄는 대표적인 저서로 평가된다. 존재론적 전회란 동시대 철학과 인류학을 필두로 하여 사회학과 생태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트렌드로서 생태위협, 생명공학 및 인공지능의 부상과 더불어 인간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려는 경향이다.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등의 대표 학자들은 과학기술, 반려동물, 다수의 자연 같은 주제를 탐구하면서 인간을 특별하고 구분되는 존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 다른 만물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획기적 관점 전환을 일으킨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처럼, ‘인간이 바라본 자연’이 아니라 ‘자연이 바라본 인간’이라는 전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과 타자, 문화와 자연이라는 구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됨은 당연하다.

이 측면에서 『숲은 생각한다』는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가를 새로운 방식으로 묻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숲을 관찰함으로써 오히려 인간 자신을 더욱 또렷이 보게 된다. 이 책은 숲 속에서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 이 기묘하고 낯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적 도구와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문명과 야생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숲과 인간, 자연사와 역사의 얽힘을 더욱 생생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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