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선전쟁실록...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신간] 조선전쟁실록...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5.2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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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영규는 역사 대중화의 기수. 200만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한 이후 《한 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에서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까지 아홉 권의 '한 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를 22년 동안 펴냈다. 

지금은 《조선명저기행》을 시작으로 새로운 눈으로 보는 조선 주제사를 선보이고 있다. 《조선반역실록》《조선붕당실록》《환관과 궁녀》《춘추전국사》 등의 역사서, 역사문화 에세이 《특별한 한국인》, 동서양철학사 《생각 박물관》, 불교 선담집 《깨침의 순간》 등의 사상서를 펴냈다. 1998년 중편소설 《식물도감 만드는 시간》으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고 소설가로 등단했으며, 대하소설 《책략》과 《그 남자의 물고기》《길 위의 황제》를 썼다.


위태로운 동아시아 삼국의 정세 속에서 1392년 조선은 건국됐다. 그 후 500년간 대내외적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나갔다. 뛰어난 통찰로 영토 확장에 성공하기도 하고, 패배가 명백해 보이는 전쟁에서도 빼어난 전술로 승리를 쟁취했으며, 왕이 망명 직전의 상황에서도 끈질긴 투쟁으로 결국에는 주권을 회복했다. 《조선전쟁실록》은 이러한 모진 세파에도 국가의 명운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낸 조선과 조선인의 생존 투쟁사이다. 때로는 글로 때로는 칼로 이루어낸 조선의 문명과 외교적 전략을 한 권으로 압축한 역작이다. 
책에는 300만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를 집필한 실록사가 박영규의 조선사에 관한 탁월한 식견과 통찰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저자는 조선의 길을 바꾸고 명운을 가른 여섯 개의 전쟁을 우리가 지금 읽어야 하는 역사로 되살린다. 

위태로운 동아시아 삼국 관계부터 조선의 대외 정책과 외교 전략, 나날이 발전한 전쟁 전략과 전술, 장수와 병력 운용, 총과 대포와 폭탄을 활용한 조중일 삼국의 무기 체계에 이르기까지, 정치ㆍ외교ㆍ군사ㆍ기술의 측면에서 조선사를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조선이 500년이라는 유례없는 기간 동안 전란과 평화를 거치며 국가의 명운을 유지한 국내 정책과 외교 전략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15세기 초 신생국 조선이 각기 세 차례에 걸쳐 대마도와 만주 정벌에 나선 이유, 조선이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전략과 전술, 선조가 의주까지 달아나지 않았다면 조선이 겪었을 미래 그리고 인조가 실리외교 정책을 버리고 패배가 명백한 병자호란을 자초한 원인, 19세기 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조선이 거둔 승리의 참된 의미까지 조선사의 틈에 숨은 흥미진진한 물음에 대한 대답과 함께 전쟁의 배경과 원인, 경과, 국내외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담고 있다. 

저자는 “선조는 어떻게 백성을 버려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갈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에 “선조가 달아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라고 되물은 다음 이렇게 단언한다. 만약 선조가 한성을 버리고 달아나지 않았다면,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100년의 전란으로 단련된 16만 대군에 포위되어 일찌감치 패배했을 것이고 한반도는 중국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 500년 일찍 일본의 지배 아래 놓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주권이 왕 한 사람에게 있는 왕정 국가에서 왕이 적의 포로가 되고 영토가 모두 점령당하는 순간, 국가는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저자가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찾은 전쟁의 원칙은 이것이다. “전쟁을 앞두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당연히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 나보다 훨씬 강한 상대가 머리를 숙이고 상국으로 섬길 것을 요구한다면 머리를 숙이는 것이 옳고, 영토를 빼앗고 백성을 차지하려고 한다면 죽기살기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싸움을 할 것인지도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 싸움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5~6쪽) 

국가가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임진왜란 종전 38년 뒤에 일어난 병자호란(1636~1637년)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인조를 비판하는 대목은, 단 한 사람의 주권자로서 국가의 적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머리 숙이고 조공하면 되었을 일에 명분만 앞세워 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 왕족과 백성이 무작정 타국으로 끌려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반면 선조는 원망과 비난을 감수하고 도주를 택했고 자존심을 버리고 명에 도움을 요청해 전쟁에 승리했다.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 작전 

조선의 남쪽에 일본이 있고 북쪽에 여진이 있었다. 여기에 동아시아의 제국 명이 조선에 관여했다. 이 구도는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흡사하다. 명의 자리에 세계 유일의 제국 미국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오늘날 독자들은 위태로운 삼국 관계 속에서 조선이 항상 침략에 시달리며 방어에 전념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음 단어를 듣는 순간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 작전을 떠올릴 것이다. 바로 세종의 ‘6진 개척’이다. 

6진 개척은 조선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공을 가능케 한 전략과 전술에서 더욱 빛이 난다. 6진 개척은 조선이 벌인 세 차례의 여진 토벌 중 첫 번째 토벌과 관계 있다. 1432년(세종 14년) 여진 기병 400여 명이 조선 영토를 약탈하자 세종은 1433년 무장 최윤덕에게 1만 4,962명의 대군을 이끌고 토벌(파저강 정벌)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여진인 170명의 목을 베고 236명을 포로로 잡아 토벌대 규모에 비해 비교적 작은 성과를 거두고 토벌을 마무리했다. 여기까지는 뒤이은 토벌들과 다른 점이 없다. 

차이점은 바로 여진의 국내 정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세종의 혜안이다. 그해 말 여진 부족 두 곳 사이에 조선과 무관한 소규모 분쟁이 일어났다. 이때 조선 역사에서 이례적으로 조선이 대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433년 12월 세종은 김종서를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하고 북방 개척을 지시했다. 

김종서는 1445년 한양으로 돌아올 때까지 무려 12년 동안 북방에 머물렀으며,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기복(忌服)을 명받고 계속 머물러야 했다. 세종은 국제 정세를 통찰하고 조선에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유능하고 충직한 신하에게 과감하게 일을 맡길 줄 아는 지도자였다. 토벌에 유례없는 영토 개척까지 이어지자 여진 부족들은 조선을 몹시 두려워했다. 

조선 수군 연전연승의 비밀, 판옥선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일본군에 연승한 배경에는 조선의 주력 전선 판옥선이 있었다. 판옥선은 일본군의 것과 비교해 기술적으로 훨씬 우수한 함선이었다. 조선 초기까지 조선의 배는 전선과 조운선 겸용으로 쓰인 맹선(猛船)이 주종이었다. 

단층 구조의 맹선에서 노를 젓는 격군과 병사는 같은 층에 승선했는데 그 결과 병사들이 선상 백병전에서 제대로 싸울 수 없었고, 백병전에 능한 일본군이 선상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을 장치도 없었다. 

삼포왜란(1510년), 사량진왜변(1544년), 을묘왜변(1555년) 때 맹선의 문제점을 깨닫고 조선이 새로 제작한 배가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의 가장 큰 특징은 2층 구조에 있었다. 

1층에 격군을 배치해 노를 젓게 하고 2층 선상에 병사를 배치한 결과, 격군의 수를 늘려 속도를 높이고 격군을 전투에서 보호할 수 있었으며 병사가 싸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배가 높고 규모가 커서 함포 발사 시 반동 흡수력이 뛰어났고 적이 선상으로 넘어오는 것도 방지했다. 

실제 전투에서 판옥선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자 일본군은 가급적 해전을 피하고 뭍으로 유인해 육상전을 벌이거나 수군이 정박 중일 때 기습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순신은 절대 뭍으로 따라 올라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지 않았으며 적과 가까운 곳에 정박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단 한 번도 패전하지 않은 이순신의 철칙이었다. 이처럼 《조선전쟁실록》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연승할 수 있었던 승전 요인과 기술적 배경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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