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에 의사들이 뿔난 5가지 이유
문재인 케어에 의사들이 뿔난 5가지 이유
  •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 승인 2018.05.28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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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유 : 그나마 남은 선불제인 비급여마저 후불제로

국민건강보험의 개념은 국민이 건강보험공단에 돈을 맡겨 놓았다가 병이 생기면 환자가 진료비의 일부(5~30%)만 의료기관에 지불하고 나머지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기관에게 지불한다는 것으로 이른바 후불제다. 참고로 프랑스, 캐나다 등은 환자가 치료비 전액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은 후 건강보험공단에 환자가 보험금 청구를 요청해 지급 받는 시스템이다. 선불제라고 할 수 있다. 환자에겐 후불제가 편리하고 의료기관에게는 후불제가 불편한 제도다.

진료비 일부를 건강보험공단에 구하는 행위가 귀찮은 일이고, 의료기관이 요청하는 진료비를 건강보험공단에서 제대로 지급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후불제도는 의료기관의 진료비 요청을 건강보험공단이 성실하게 지불한다는 약속이 지켜져야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에 대한 의료기관들의 불신과 불만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사례를 보자. 어깨와 무릎 두 곳이 아파서 오신 할머니에게 두 곳에 대한 물리치료를 해드린 후 진료비를 청구하면 건강보험공단은 두 부위 중에서 한 곳의 치료비만 지불한다. 또 만일 허리가 아프신 할머니가 한 달에 30일을 동네의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아도 건강보험공단은 15~20일 치료비만 지불한다. 이렇게 건강보험공단이 줘야 할 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깎아 지불하는 것을 ‘삭감’이라고 한다. 의사들은 근거 없는 건강보험공단의 삭감에 크게 부당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급여는 모두 선불제다. 환자가 먼저 지불한다. 만일 환자가 의료실비보험에 가입했다면 영수증을 받아 청구할 수 있다. 선불제의 경우 의사는 금전적 손실을 입을 일이 없다. 그런데 비급여를 없앤다는 것은 곧 선불제를 없앤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둘째 이유 : 보장성 강화는 선택권의 축소를 의미, 의사에게는 최선의 치료 포기와 경제적 치료를 강요하고 결국 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져

의료행위 중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것을 ‘급여항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급여항목은 하나도 빠짐 없이 건강보험공단이 그 기준을 만든다. 즉 어떤 경우에 보험이 적용이 될지, 또는 보험을 적용하지 않을지를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그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매우 협소할 뿐더러 공개되지 않고 그때 그때 바뀌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공단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가 아닌 ‘돈이 적게 드는 치료’를 의료기관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치료를 해놓고 돈을 받을 수도 못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대병원은 2012년 9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폐암 환자 A씨에게 항암제를 19회 투여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 일부를 청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환자의 폐암이 뇌로 전이되는 등 질병이 진행됐는데도 항암제를 투여한 건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지불해야 할 진료비를 삭감했다. 병원 측은 “항암제 투여로 폐암 세포의 크기가 작아지는 등 치료 효과가 있었지만 이후 뇌로 전이된 것 뿐이다. 항암제 투여는 당초 의도했던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에 진료비를 삭감한 것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서울대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전이가 되었다면 어차피 죽을 환자인데 왜 항암제를 썼느냐”며 “어차피 죽을 환자에게 사용한 약제비는 줄 수 없다”라고 일방적으로 삭감한 것이고, 병원은 진료비를 제대로 받기 위해 소송까지 벌여야 했다. 이것이 의료기관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까지 비급여치료에는 건강보험공단이 이런 간섭을 하지 않았었고 환자와 의사가 치료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케어는 그 결정의 주체가 건강보험공단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적 치료’라는 미명의 ‘싸구려 의료’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비급여의료행위의 경우에는 더 비싸고 더 좋은 치료를 환자의 부담(의료실비를 가입한 경우 민간보험사의 부담)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급여가 급여로 바뀌게 되면, 그런 선택이 불가능해진다.

많은 국민이 문재인케어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있다. 문재인케어가 되어도 내 돈을 더 내면 좋은 치료나 받고 싶은 진료를 다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문재인케어가 시작되면 의사와 환자의 결정권 또는 선택권은 사라지고 오로지 건강보험공단의 선택권만 남게 된다. 의사들이 문재인케어를 반대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환자의 선택권과 의사의 치료방법 결정권이 없어지고 치료 방법에 제한을 받는 것 이것이 문재인케어에 의사들이 뿔난 가장 큰 이유다.

셋째 이유 : 건강보험재정이 바닥나게 될 것이고, 의사에게 싼값진료의 강요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을 우려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쌓아 놓은 약 20조 원이 넘는 건강보험의 흑자재정을 끌어 보장성 강화에 사용할 예정이다. 정부는 그것을 믿고, “추가적인 건강보험금 부담은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그런데 건강보험재정은 정부의 예상대로 흐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케어가 발표되기 한달 전인 2017년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공단이 2020년 한 해에만 19조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했다. 건강보험공단도 2019년부터 건강보험재정이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고, 2017년 정부는 2018년 건강보험의 적자가 시작되어 2023년에는 건강보험재정이 고갈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문재인케어를 직접 발표하기 전이다. 그런데 문재인케어가 발표되자마자 이런 적자 전망은 모두 쑥 들어가 버렸다. 건강보험재정의 지출을 크게 확대하는 문재인케어가 발표되기 전에도 큰 폭의 적자재정을 예상했던 정부기관들이 대통령의 발표 후 일제히 ‘재정이 버틸 수 있다’라고 입장을 바꿨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34개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고령화는 가파른 의료비 지출 증가를 필수적으로 가져온다. 여기에 더불어 보장성의 강화는 의료서비스 이용률을 크게 높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건강보험을 운영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소비자 행동 통제를 하지 않는다. 물론 정치적인 목적이다.) 빠른 고령화와 의료 이용률 증가로 인해 결국 수년 안에 건강보험재정은 펑크 나고, 진료비를 지급해야 하는 건강보험공단은 의사들을 더 옥죌 것이다. “줄 돈이 없으니 돈 안 드는 치료만 해!”라고. 건강보험재정파탄이 눈에 뻔히 보이고 싸구려 치료 강요가 더 거세질 것이니 문재인케어에 의사들이 어찌 뿔이 나지 않겠는가.

넷째 이유 : 문재인케어는 원가 이하의 진료 항목이 늘어남을 의미

현재 건강보험에 해당되는 의료행위, 즉 급여항목의 원가보전율은 69% 수준이다. 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항목의 원가보전율은 140% 내외다. 즉, 현재 의료기관은 급여진료를 통해 발생하는 손실을 비급여진료를 통해 극복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외치는 문재인케어에 찬성할 수 있을까? 정부는 건강보험수가의 현실화를 약속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그 약속을 믿지 않는다. 건강보험수가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료의 인상이 필수적인데, 정부는 국민에게는 “건강보험료의 추가 인상은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유 : 문재인케어의 최대 수혜자는 민간보험사, 최대 피해자는?

민간보험사의 의료실비보험에 가입한 국민은 3500만 명에 달한다. 가입자의 대부분이 비급여 의료비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의료실비보험에 가입했다. 의료실비보험은 비급여가 포함된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지급해준다. 그런데 정부가 비급여를 대폭 줄이고 본인부담금을 줄인다는 내용의 문재인케어를 발표했다. 그렇다면 민간보험사의 의료실비 지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 뻔히 예상된다. 민간보험사의 지출 감소로 인해 민간보험사의 이익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민간보험사의 부담으로 환자가 선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가 문재인케어로 인해 크게 줄어들고 의사는 싸구려의료를 강요받게 되는데 민간보험사의 이익만 늘어나는 셈이다. 이런 왜곡된 정책을 바라보고 있는 의사들이 문재인케어에 찬성한다면 그 의사는 올바른 정신을 가진 의사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문재인케어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문재인케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문재인케어가 지금처럼 졸속으로 서둘러 시행된다면 국민과 의료계 모두가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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