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에서 본 3.1운동과 21세기 의미에 대한 논찬
기독교사에서 본 3.1운동과 21세기 의미에 대한 논찬
  • 연규홍 한신대학교 총장
  • 승인 2018.05.2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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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홍 한신대학교 총장

김권정 박사의 논문은 3.1운동에 대한 그동안의 교회사적 연구를 종합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글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현실에서 3.1운동의 21세기적 의미 즉, 하나님의 뜻을 큰 시각에서 묻는 대안적 제시가 부족하다.

논찬자는 김박사의 글을 보완하는 뜻에서, 오래전 발표한 “3.1운동과 제3의 길”을 덧붙이고자 한다.

Ⅰ. 경제위기와 한국 교회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지난 한 세기를 되돌아 볼 때 한국 민족사 가운데 세계적인 사건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첫째로, 우리는 3·1운동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우리는 하나 된 이상과 힘으로 민족의 독립과 자주를 외쳤다. 이것은 우리민족운동사에 정점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피압박 민족들에게 새로운 민족운동의 이상과 방향을 제시하였다.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반식민지 독립운도까지 3·1운동은 크게 영향을 끼쳤다.

둘째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주어진 8·15광복이다. 비록 우리의 힘만으로 얻어진 해방은 아니었을지라도 이것은 한국 현대사에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셋째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6·25전쟁이다. 이 전쟁은 한반도에서 동족 간에 벌어진 전쟁이었지만 그 성격은 국지적인 차원을 훨씬 넘어 미소를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리전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넷째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88올림픽 이다. 세계평화의 제전으로서 올림픽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마지막 분단국인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다. 88올림픽은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민족의 경제적 성장을 상징하는 축제였다.

다섯째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IMF체제이다. ‘국제통화기금’의 약칭으로 불려지는 IMF는 우리가 중고교시절 교과서에서나 보았지 그것이 삶의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지난 한 해, 2,000여 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300만 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IMF는 ‘구조조정’이란 명복으로 한국 사회 전반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뒤바꾸고 있다. 실직과 빈곤, 자살과 이혼 등 숱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방생시키며 오늘 우리는 불안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올림픽을 치른 나라로 WTO와 OECD에 가입하고 ‘세계화’(Globalization)의 구호를 외치며 선진국 대역에 서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라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 속에서 우리 자신과 한국 교회에 대한 물음도 포함된다. 한국 교회는 지난 한 세기31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과 근대화 작업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쳐 온 집단이다. 오늘 한국 사회의 상황은 그 동안 한국 교회가 실천해 온 선교이념과 정책, 그리고 운동의 성과를 한국 교회에 묻는다.

이 글은 근대민족운동의 정점인 3·1운동이 갖는 성찰적 근대화의 차원에서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의 문제를 뒤집어 보며, 앞으로 한국 교회가 나아갈 제3의 길의 가능성을 논구하고자 한다.

Ⅱ. 3·1운동과 ‘성찰적 근대화’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의 개념은 『제3의 길』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와 울리히 벡(Ulich Beck), 스콧 래시(Scott Lash)가 함께 펴낸 책에서 말하는 개념이다. 저자들이 ‘성찰적’이란 단어를 근대화 앞에 붙인 이유는 근대화가 전통적 가치와 무조건 결별하고 발전, 성장, 번영이란 단순과정을 거치는 것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는 현실과 미래를 연결 지어 전통을 재창조하고 근대성을 재인식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필자는 성찰적 근대화의 개념으로 3·1운동을 보며 이에 기여한 한국교회의 가치요소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일제는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근대화 작업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단통치(武斷統治)를 통해 민족운동의 맥을 끊고 민족의식을 말살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의 군국주의적 식민문화권 안에 한국인의 전통적 가치체계를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3·1운동은 민족 내부의 주체적인 근대화 역량을 총 집약하여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응한 근대적 민족운동이다.

그 이유는 첫째, 3·1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되는 민족자결주의 세계상황을 예민하게 감지하여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세계국가들과의 평화적 연대를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일제 식민주의는 또 하나의 세계화의 논리이다. 그들은 ‘개화’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피식민지 국가를 중주국에 통합하고 그들을 지배할 합법성을 강조하였다. 3·1운동은 일제의 종속적 근대화론을 거부한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근대화의 요소로서 민족자결과 독립을 말한다.

둘째, 3·1운동은 근대민족운동 초기부터 두 갈래로 발생한 ‘반봉건 개화’의 엘리트 중심의 민족운동 노선과 ‘반식민 독립’의 민중중심의 민족운동 노선을 결합하여 통일전선을 이루었다. 즉, 3·1운동은 엘리트들의 지도력과 민중의 운동력을 조직화한 통일전선을 구축함으로 근대민족운동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셋째, 3·1운동은 일류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자유·평화·인도주의를 주장하며 비폭력, 무저항주의 노선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3·1운동에 민족구성원들을 지속적, 거국적으로 참여케 하여 운동의 폭과 역량을 확대시킨 것이었다. 3·1운동은 단순히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한민족의 독립과 자주를 넘어서 인류보편의 근대화적 가치를 지향하는 민족운동으로서의 사상적 기반을 갖는 것이다. 이와 같이 3·1운동은 일제 식민지하의 ‘단순근대화론’에 쐐기를 박고 근대적 가치와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찰적 근대화과정으로 3·1운동을 볼 때 한국교회가 이에 기여한 바가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그 답을 우리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한국 교회가 민족사 속에 잠재한 근대화 역량과 가치를 동원하여 민족운동을 활성화하였다는 점이다. 일제의 식민지화와 동시적으로 한국 사회에 종교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당시 민족 운동가들과 민중의 도피처와 위안처가 되었다. 일제의 무단 통치 하에서 한국 교회는 나라를 잃은 슬픔과 좌절에 빠진 이들에게 성서를 통해 메시아적인 정치의식과 종말론적 역사인식을 불어넣었다. 그것이 1907년부터 한민족의 심령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성령부흥운동이다. 이 성령부흥운동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말할 수 있다. 혹자는 이것을 식민지 현실로부터 한국 민족의 독립에 대한 관심을 영적 차원으로 돌리려는 일제의 간교한 계책이라거나, 또한 이것을 한국 교회를 ‘비정치화’하려는 것이라고 평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볼 때 성령부흥운동은 한민족 안에 내재된 독립의 열망과 힘을 종교적으로 내면화하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승화시켜 축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석할 수가 있다. 1907년 한국 교회의 성령부흥운동은 민중의 잠재력을 동원하여 3·1운동에 커다란 운동력을 제공하였다. 한국 교회가 식민지 탄압과 고난의 과정 속에서도 교회의 정체성으로 굳게 지키고 도덕적, 윤리적 공동체로 공신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특히, ‘3·1독립선언서’에서 3·1운동의 이념과 가치로 자유, 평화, 정의, 사랑 등의 ‘메시아적 언어구조’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신앙에서 근거한 것이다.

둘째로 성찰적 근대화 과정으로서 3·1운동에 한국 교회가 기여한 바는 다양한 기독교 학교를 통해 민족운동의 지도력을 양성하였다는 점이다. 1910년 합병당시 한국에 있는 사립학교 총수가 2,250개 가운데 장로교 501교, 감리교 158교를 비롯한 신·구교 합해서 796개교가 한국 교회의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통계는 한국 교회가 학교교육을 통해 근대화운동의 지도력과 주체형성을 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3·1운동에 많은 기독교지도자들이 참여하여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1910년대 한국 교회가 실시한 교육적 성과라 할 수 있다.

셋째로 성찰적 근대화 과정으로서의 3·1운동에 한국 교회가 기여한 것은 대중운동과 다양한 조직운동을 통해 민족운동의 방법론을 다양하게 제시한 점이다. 당시 의병투쟁의 패배는 한국 민족운동의 새로운 조직과 방법론을 필요로 하였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신민회운동 등이 한국 교회의 대안적 민족운동으로 실험한 것들이었다. 경제주권을 되찾기 위한 국채보상운동이나 국권회복을 꾀하였던 비밀결사체 운동으로서의 신민회운동 등은 31운동에까지 한국 민족운동의 맥을 이어주었던 것이다.

Ⅲ. 3·1운동 이후 한국 교회의 근대화론

3·1운동은 그 이전의 민족운동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일제 식민지하의 근대화과정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근대민족운동의 분기점이 되었다. 3.1운동 이후 한국 사회의 근대화과정은 일제의 문화통치(文化統治)라는 고도의 기만적인 제국주의 논리 속에서 파행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쳤다. 일제는 출판, 집회,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한국 사회 내부에 여론과 사상을 분열시켜 놓고 한국 사회의 후발적 전근대성을 강조하였다. 한국 민족운동 역시도 이와 같은 일제의 문화정책에 동조하면서 민족개조론적인 개량적인 노선을 지향하였다.

그런데 이 때 일제의 후발적 전근대성을 통한 한국 사회의 식민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새로운 성찰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정하며 사회주의에 근거한 반제·반봉건 민중혁명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당시 한국 민족운동이 이데올로기적 분열 사왕에서 이를 통합할 제3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농촌계몽사업과 물산장려운동 등의 자본주의적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개량적 노선만을 고수하였다.

한국교회 근대화론의 현실 고착적 현상은 해방 후 미·소의 분할점령으로 말미암아 한반도에 이데올로기 지형이 확연히 구획되며 더욱 심화되었다. 해방 공간에서 통일된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지 못한 한국 사회는 남북이 분단되어 궁극에는 6·25전쟁이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1953년 종전되지 않고 계속해서 남북의 체제 대결로 바뀌었다. 따라서 근대화과정도 미·소의 냉전체제의 의존하는 불균형한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한사회는 미국의 원조 경제의 물적 토대 위에서 계획경제를 통한 근대화의 과정을 추진 중에 있었다. 당시 한국 교회는 이러한 미국 주도의 남한 사회에 있어서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을 후원하였다. 특히 주체사상에 의한 북한 사회주의의 근대화과정을 반대하는 이들(그들 중에 다수는 월남 기독교인들)은 철저히 반공 친미적인 선교 노선을 견지하였다.

더욱이 한국 교회는 1962년부터 시작되는 외자(外資)에 의한 남한사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정·교 분리적 신학노선을 갖고 근대화작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방기하였다. 한국 교회는 세속화 신학 논쟁과 정치신학토론을 통해 이를 어느 정도 수렴하려 하였지만 이미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근거한 근대화과정을 진행하고 있던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정지선을 그을 수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급기야 경제개발정책에 의한 근대화론의 모순은 노동자들의 상품화와 산업화에서의 인간소외, 그리고 전통적 가지의 붕괴와 개발을 위한 환경파괴 등의 문제를 야기하였다. 특히 수출 주도의 경제제일주의를 국가목표로 하였던 박정희 정권은 발전과 성장을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제약하고 유린하는 권위적 통치구조를 수립하였다.

한국교회는 이와 같은 때에 성장논리를 가지고 이에 부응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순복음교회의 급성장을 들 수 있다. 3박자 구원과 축복의 논리에서는 어찌되었건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교회의 재정이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징표이다. 그렇지 못한 것은 저주이다. 복음과 성령의 논리가 아닌 자본과 실용주의 논리를 앞세우는 한국 교회는 ‘시장인간’(Marketman)을 지향하며 성서의 말씀보다 노만 V.필의 적극적 사고방식과 기업경영원리를 더 많이 설교하였다. 또한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수용하는 근대화, 즉 서구화의 도식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전통적인 가치와 타종교에 대해서는 전투적인 근본주의(Ultra Fundanmentalism)입장에 서 있었다. 전통적 가치를 서구적인 것에 비교해 미신적인 것, 또는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고 타종교화의 대화 교류에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러면서 자체 교파 안에서 끊임없이 배재와 독점이라는 시장경제 원리를 적용하여 지방색과 교권, 그리고 신학이념에 따라 교회분열을 거듭하였다.

오늘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근대화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이념과 가치체계를 작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기초한 근대화(서구화)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 자기모순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선교노선의 방향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Ⅳ. 한국 교회의 개혁과 제3의 길

88올림픽 이후 선진국 대열에 마치 금방이라도 들어갈 것 같은 세계화의 구호는 1997년 IMF 구제 금융을 받음으로써 돌변하였다. 오늘 우리 사회는 IMF 체제 이후 경제위기 상황에서 어려운 숙제를 풀고 있다. 한국 사회의 구조조정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단순근대화론의 개념에서 보면 이것은 우선 일차적으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시장경제체제로 한국 경제와 사회구조를 변형하고 조절하는 과정이다. 구조조정은 그 동안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한 근대화 과정을 밟아왔으면서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도 탈피하지 못한 전근대성에 대한 수정을 요구한다. 그것은 대표적인 예가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재벌과 세습경영체제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이란 국제자본을 통해 시장자유경제 원리로 한국의 산업구조를 변형하고 세계시장을 이곳에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사회 제반문제들을 성찰적 근대화의 개념에서 볼 때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먼저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근대화론을 지원하고 호응해온 이데올로기와 가치체계로서 종교, 특히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포함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현사회가 지향할 근대화론이 아닌 제3의 길로서 한국사회의 대안은 무엇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필자는 앞서 살핀 성찰적 근대화과정으로서의 3.1운동차원에서 한국 교회의 선교과제를 제3의 길의 가치와 연관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3·1운동은 전통을 창조하고 근대적 가치를 재인식함을 통해 비서구(非西歐)적 대중사회운동을 창조적으로 전개하였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우리는 한국의 내재적 근대화의 동력과 전통가치를 다시 복구해야 한다. 그래서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 과정 속에서 31운동이 했던 것처럼 근대화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주체적인 근대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것은 특히 남한의 자본주의 근대화론의 결점을 보충할 수 있는 북한의 사회주의 근대화론을 통합하는 통일운동으로 전개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통일운동은 자본주의적 흡수통일의 운동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제3의 길의 가치인 민중주권이 보장되는 ‘평등적 가치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 민족의 통일운동을 교회의 선교적 소명운동으로 받아들이고 북한선교를 실지(失地) 회복적인 개념이 아닌 북한교회와의 상호 파트너십관계에서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은 세계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 속에서 신제국주의적 지배구조와 착취를 배격하는 평화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3·1운동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서 반봉건 개화운동과 반식민 독립운동이 통일전선을 형성하였다. 오늘 한국 사회는 1960년도 이루 계속 이어져 온 민중운동이 약화되고 대신 제3의 세력으로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결코 민중생존권과 이익을 위한 민중운동으로 대체되어서는 안된다. 두 운동은 서로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하나의 민족운동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제3의 길의 가치가 추구하듯이 ‘범세계적 다원주의’를 지향하며 계급과 성, 인종과 지역을 넘어서 인간의 보편 가치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결집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양한 부분 운동을 잇는 연대일 뿐이지 하나로 통합하여 수직적 조직과 통제방식을 설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각기 운동은 근대적 가치에 목표를 두고 지역상황과 운동주체의 역량에 맞게 실천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 역시 오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근거한 민족운동의 통일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개교회 중심적인 분파주의를 극복해야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 구조 속에서 한국교회는 서로 죽이는 경쟁 대상이 되고 있다. 문제는 서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함으로써 함께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대안적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히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거부하고 존재중심의 영성공동체적인 상생(相生)의 논리를 창출해야 한다.

셋째, 3·1운동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정의· 평화· 자유· 인도주의 등을 근대화의 지향점으로 삼고 비폭력 저항의 방법을 통해 거국적이고, 지속적인 운동을 펼쳤다. 오늘 한국교회도 구조조정과 경쟁력 제고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와 노동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며,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화가 가져온 생태계의 파괴와 더불어 생명가치를 상품화하는 현상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제3의 길의 가치로서 ‘자율성으로서의 자유’는 그 무엇보다도 성찰적 근대화의 궁극적 이념이며 가치이다. 지난날 6,70년대 경제발전의 산업화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인권이 무시되었다. 오늘날의 현실은 자본만이 자유롭다는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인간을 시장경제의 상품가치화하며 인간 스스로의 선택적 자유까지도 매수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 사회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인간을 조작하고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3.1운동은 개인의 영적, 신체적, 물적 자유를 신장하고 그것을 보호하는 사회복지 사회복지운동을 나아가야 한다. 한국 교회도 자본주의 시장경제 아래서 빈곤의 악순환을 경험하는 소외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의식 속에서 오늘 우리사회의 민중이라 할 수 있는 실업자, 외국인 노동자, 소년소녀 가정, 무의탁 노인들에 대한 복지 선교정책과 봉사활동을 다양하게 펼쳐나가야만 한다. 제3의 길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길이다.(Tertium non datur, Tertium datur!)

(한국기독교학술원 제52회 학술공개세미나 연규홍 박사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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