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미디어 정책인가? 방송장악인가?
[논단] 미디어 정책인가? 방송장악인가?
  •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 승인 2018.05.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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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하반기 이후 오늘까지 여야가 입장을 바꿔가며 논란을 벌인 주제가 ‘방송장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입법을 추진한 방송법 개정안을 방송장악금지법이라고 불렀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을 적폐인사로 지목해 강제로 축출한 과정은 야당에 의해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이라고 비판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중 방송정책의 첫째 항목에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ㆍ제작ㆍ편성의 자유 보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면서, 종전의 방송법 개정안에 있는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 선임 방식과 편성위원회 설치의 두 가지 내용과 동일하다. 그러나 국정과제 제1번인 법무부가 수행하는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 과제 때문인지 모든 정책 과제는 적폐청산으로 대체된 듯하다.

방송법 개정 논의와 공영방송 이사와 경영자의 강제 교체

(1) 국회에서의 방송법 개정 논의

2016년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 선임 방식과 편성위원회 설치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언론노조는 방송법 개정안이 방송장악을 막는 방법이라면서 개정을 적극 요구했다.

(2)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방송법 개정 논의에서 적폐청산으로 전환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언론노조는 방송법 개정 요구를 중단하고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을 적폐인사로 지목하고 퇴진 운동을 했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개정 요구를 미루고 노조의 퇴진 운동에 동조하는 행세였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의 퇴진 운동을 기획했다는 소위 방송장악 문건이 드러나기도 했다.

7월경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는 위의 방송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ㆍ제작ㆍ편성의 자유가 들어가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다. 언론노조가 주도하는 공영방송 적폐인사 퇴진 운동이 전개되었다. 정부에서 임기가 남아 있는 공영방송 경영진에 대한 퇴진 요구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3)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의 강제 교체

KBS 사장은 2018년 10월까지, MBC 사장은 2020년 3월까지 각 임기가 남아 있지만 민노총산하 언론노조는 퇴진 운동을 벌였다. 2017년 8월말의 총파업을 전후해서 사장 선임권자인 KBS, MBC의 이사들이 퇴진 운동의 표적이 되었다. KBS, MBC의 이사들의 임기가 2018년 8월까지 남아 있음에도 언론노조는 과거 여권에서 추천된 이사들의 직장, 집 앞에서 시위하고 모욕을 주면서 사퇴를 요구했다.

압력에 못이긴 이사 일부가 사퇴하고 방통위에 의해서 해임이 되었는데, 방통위는 즉각 여권 추천의 보궐이사를 선임했고 이사진의 여야 구성비가 역전되었다. 이에 다수를 차지한 현 여권 추천 이사들에 의해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장이 물러나게 되고, KBS 이사 해임 후에 KBS 이사장이 사임했다. 이사진의 여야 구성비가 변경된 이후 이사회의 결의로 임기가 남아 있는 MBC와 KBS의 사장이 해임되었다.

(4) 방송장악의 논란

MBC의 경영진 교체후 소위 적폐청산이 진행되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인사, 감사팀에 의한 적폐청산을 이유로 한 광범위한 감사와 정상화위원회에 의한 과거 보도와 프로그램의 취재 및 제작 경위 조사 등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권 침해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에 대한 보복이라는 우려와 함께 새 경영진이 공영방송 MBC를 사유화한다는 비판이 있다. 인사가 확정된 KBS에서도 같은 일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논의와 그 한계

(1) 공영방송의 이사 및 사장 선출 방식

현행의 공영방송의 이사진과 사장 선출 방식은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다. KBS의 이사진은 방통위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여7 야4의 비율로 임명한 11인이,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은 방통위가 임명하는 여6 야3의 비율로 임명하는 9인으로 구성되고, 각 KBS와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이 재적 과반수의 의결로 각 KBS와 MBC의 사장을 선출한다.

2016년 발의된 방송법개정안은 공영방송 공히 여야 이사의 구성 비율을 여7 야6의 13인으로 하여 국회가 임명하고, 사장 선임 시에는 재적이사의 3분의 2 이상의 의결을 요하는 특별다수제를 채택함으로써 야권 추천 이사들과의 합의가 없는 한 사장 선임을 어렵게 만들었다. 특별다수제의 도입에 따라 여야 간에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는 사장 선임이 쉽지 않다. 정치적 대립이 있을 경우 이사진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져 관리 감독 기능이 정지될 우려가 있다.

개정안은 이사 임명시 정치권 추천을 오히려 명시하면서 여야 이사 비율만을 수정하고 있을 뿐인데, 개정안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방송의 공정성 구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이사진 운영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정치권 추천을 전제로 하고 구성비율의 조정을 통한 견제를 한다는 것은 기존법과 동일한 방식으로서 지배구조의 궁극적인 개선안이라고 할 수 없다.

(2) 모든 방송사에 편성위원회 설치·방송의 내적 지배구조 논의

방송법 개정안에서 핵심 내용이 편성위원회의 설치인데, 공영방송만이 아니라 모든 방송에 편성위원회 설치를 강제하는 것인데 방송사 내부의 지배구조 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현행 방송법상으로도 방송사에 방송편성책임자를 두고 자율적 편성을 보장하며 편성규약을 두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모든 방송사에 편성위원회를 두되 노사 동수로 구성하고 방송의 편성에 관한 전권을 편성위원회에 부여한다. 문재인 정부의 방송정책 과제중 ‘보도ㆍ제작ㆍ편성의 자유’라고 표현된 부분이 이와 동일한 취지로서 편성위원회와 편성규약을 중요한 내용으로 한다.
방송법 개정안에서 편성위원회의 지위는 막강하다. 편성위원회의 의결사항 준수 여부와 방송편성규약 준수 여부가 방송사 재허가의 요건이 되고, 편성규약 준수 위반이나 편성위원회의 의결을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형사 처벌이 있다.

어떤 방송을 보도하고 제작하며 송출하는가에 관해 방송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편성권이다. 현행법상 방송편성권의 주체인 편성권자는 방송사의 경영자이다. 개정안은 편성의 권한을 방송사의 종사자들이 들어가는 방송편성위원회로 이전한다는 의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방송 내용을 결정하는 편성위원회가 방송사의 최고기관이 되며, 편성위원회가 만드는 편성규약이 방송사의 최고 규범이 된다.

편성위원회 구성에 있어 노사동수로 구성할 경우 한국의 현실에서 노를 대표하는 위원은 노조에서 선임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방송노조는 민노총 산하의 산별노조인 전국언론노조로 조직되어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노조의 입김이 편성위원회를 통해 회사 경영에 작용하게 될 것이다. 언론노조와 방송사 경영진 간에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 차이로 분쟁이 생기면 방송 운영이 어려워지고 방송이 파행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편성위원회 논의는 2017년 12월 26일 방송사 재허가시에 방통위가 재허가 조건으로 부과함으로써 행정적으로 실현된 듯이 보인다. 하지만 대상이 재허가 대상 방송사에 한정되었고 임의적인 것이므로 법으로 강제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3) 기존 지배구조 논의의 한계인 배분의 관점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의 절차와 방식 및 편성위원회의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방송정책은 방송의 경영과 편성에 있어 입장이 다른 이해관계자 간의 지위의 배분만을 검토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누구에게 권한이 배분되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로써 당연히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세력이나 언론노조 모두 이해당사자이다. 정치개입과 마찬가지로 이익집단인 노조의 영향력 행사도 역시 방송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

특정한 정치세력이나 이해집단이 공정성의 유일한 담지자가 될 수 없다. 지배구조의 논의가 정치적 배려에 의한 힘을 행사하는 지위의 배분의 맥락으로 전개된다면 특정한 정치 진영이나 이해집단 간의 대립을 상례화하고 공정성의 구현은 요원하게 될 것이다.

(4) 책임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


지배구조의 논의는 책임에 대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방송 내용에 대한 편성위원회의 결정에 있어 잘못이 있을 경우 그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편성위원회의 의결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방송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포기하는 것이다. 위원회제도를 이용함으로써 방송에 대한 공적인 관리를 회피하는 결과가 된다. 편성위원회의 설치는 책임 소재에 있어 문제가 있다. 편성위원회가 공영방송은 물론 모든 방송에도 적용되는 것인데 방송으로 하여금 견제할 수 없는 권력이 되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미디어 정책에 국민 관심 가져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논하기 전에 할 것은 공영방송이라는 틀에 안주하면서 거대한 규모가 된 공영방송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지상파방송의 위기 상황을 해쳐나가기 위한 혁신 방안을 찾아 경쟁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다.  공영방송의 경우에는 구조개혁 논의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책임경영의 1차적 과제로서 자리매김해야 마땅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는 현실의 변화를 수용하고 원천적인 책임의 문제와 방송조직의 근본적인 구조 혁신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미디어 간의 플랫폼 경쟁의 상황에서 지상파방송의 개선 노력은 실효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열린 관점으로 시도되어야 한다.

미디어는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콘텐츠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마음을 형성한다. 생각하는 것이 사회를 만든다.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을 만들어 가는 미디어의 중요성으로 인해 미디어 정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18. 5. 3. 바른사회시민회의 문재인 정부   1년 정책평가 발제문 요약 )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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