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 헤어지지 않기 위해 따로 살기로 한 우리
[신간] 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 헤어지지 않기 위해 따로 살기로 한 우리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6.02 0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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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주파수가 맞는 남자”와 불같은 연애 끝에 결혼했음에도, 가부장제는 그 사랑을 건사하지 못했다. 남편은 가정에 충실한 만점짜리 남편이고 아들보다 며느리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는 시어머니도 만났지만, 그 ‘복’이 주부와 아내와 엄마의 전통적인 의무를 물리쳐주는 건 아니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정해진 ‘아빠’ ‘엄마’ ‘자식’ 역할을 수행하는 가정에서 자란 남편과, 청소년기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해 살아온 저자의 가족관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끼니는 배고플 때만 때우면 된다고 여기는 저자와 삼시 세끼를 제 시간에 챙겨야 하는 남편의 생활 패턴이 어긋날 수밖에 없듯이.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자, 연애 시절 남편이 귀담아 들어주던 미래와 꿈을 여전히 말하는 것이 가족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반역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미래와 꿈을 열망하는 ‘나’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 간극에서 나는 파열음은 경찰까지 출동하는 부부 싸움으로 치달았다. 

아직 남편을 사랑했고, 네 살짜리 아들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필요했다. 하지만 오래전 예정된 모임에 대해 “남편이 출장 가는데 감히 여자가 술을 마시러 가?”(202쪽)라던 남편의 외침처럼, ‘나’를 지킨다는 것은 전통적인 가족상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갈수록 과격해지는 부부 싸움을 울며 말리던 아이가 어느새 엄마와 아빠가 싸우건 말건 잠들 정도로 무뎌지고 만 모습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타개책이 필요했다.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부부는 생활을 분리하는 ‘휴혼’을 결심했다. 재결합 이전의 휴혼인지 이혼 이전의 휴혼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싱글 시절에도 거들떠보지 않던 월세 2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아등바등 시작한 휴혼의 필수 조건은 ‘자립’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회로 떠밀려나온 기분에, 결혼 전 커리어가 있었음에도 저자는 자신이 없어 “‘연탄 자살’을 검색”25쪽할 정도로 막막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막상 사회로 발걸음을 내딛자 프리랜서로 일하던 강사 일을 더욱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친구들과 시작한 스타트업에서 결혼 이전의 사회적인 이름을 돌려받은 듯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도 잊어가던 내면의 자신감은 가족의 울타리를 부수고 나왔을 때 조우한 타인의 인정을 통해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동시에 남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시간이 되었다. 평일을 떨어져 지내는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 배가되었음은 물론이다. 처음에는 같이 살 수 없을 만큼 힘들어진 관계를 악화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표면을 걷”(60쪽)는 관계였지만,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느라 어쩔 수 없이 부딪히면서 서로의 상처와 요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남편이 담당하던 생계를 직접 꾸려나가면서 남편이 졌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편 또한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서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며, 연애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꿈 많은 ‘그녀’의 모습을 되새기게 된다. 

실시간으로 휴혼의 나날을 기록해가던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휴혼을 권하는 책이 아니”(16쪽)라고 했지만, 남편의 짐을 짐작하고 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마모돼가던 자신과 서로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이내 “휴혼을 권한다”(204쪽). 서로에게 지치는 싸움을 이어가거나 관계를 포기하는 대신 말이다. 휴혼이라는 공백은 저자에게도 남편에게도, 또 아들에게도 서로가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깨닫고 서로의 관계와 입장, 가정에서의 내 자리를 곱씹어볼 수 있게 했다. 

더불어 저자 부부의 휴혼은 전통적인 ‘아빠-엄마-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상을 강요하는 사회적 통념의 더께를 들춰보는 전복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휴혼 기간 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편모 가정”(209쪽) 혹은 ‘편부 가정’을 체험하면서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을 뒤집어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가족상이 있을 수 있음을 고민해보는 것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겨나는 요즘 우리 사회와 이웃을 더욱 풍요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하한 급진성 덕에 이 책은 브런치를 통해 출간 전 연재를 하는 동안 이슈가 되며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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