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사진·정리 / 고성혁 미래한국 객원기자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증언집 <3층 서기실의 암호>가 서점가를 강타했다. 교보문고 및 영풍문고에 따르면 <3층 서기실의 암호>는 출간 즉시 5월 셋째 주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품귀 현상을 빗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금서(禁書)로 지정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SNS상에서 돌면서 젊은 독자층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월 16일 전날 태 공사의 국회 증언과 저서에 대해 암시하며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 놓고 있다”고 반응했고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했다.
<미래한국>은 5월 24일 태영호 공사의 증언을 출간한 도서출판 ‘기파랑’의 안병훈 대표와 박정자 주간을 만나 출간 뒷이야기 등에 대해 들어봤다. 안병훈 대표는 조선일보 대표이사 편집국장 출신으로 통일나눔재단의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고, 박정자 주간은 안 대표와 부부로 조선일보 및 경향신문 기자와 상명여대 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이날은 태영호 공사가 국정원 자문위원에서 사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책이 북한에서도 반응을 내놓을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북회담을 앞두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은데 이러한 시의성을 예상하고 이번에 책을 출간하셨습니까.
안병훈 = 작년 4월에 태 공사에게 책을 써보라고 제안했습니다. 태 공사는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책을 내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그가 책을 내본 적이 없고 특히 남쪽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말투에도 북한식 표현이 많기 때문에 글을 다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작년 말쯤 1차 정리가 끝났고 우리에게 원고가 넘어 온 것은 지난 2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태 공사가 국정원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매인 몸이었잖아요. 출간을 위해선 국정원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승인이 나지 않아 미뤄졌지요. 승인이 떨어진 것이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난 후 하루 뒤였어요. 그때 인쇄소에 보내어 윤전기를 급하게 돌렸고 5월 14일 아침에 책을 출간하고 기자간담회를 국회에서 열었던 겁니다.
책 안읽는 보수, 국정원을 놀라게 태영호 돌풍
- 그런데 태 공사의 국회강연과 기자간담회와 있은 바로 다음날 북한은 태 공사에 대해 비난 성명을 내면서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시켰죠.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이 어떻게 책을 승인했을까요. 국정원자이나 담당자의 실수(?)였을까요.
박정자 = 그래도 여기가 대한민국인데 우리가 출간계도 냈고 그 과정을 다 아는 그들인데 책을 아예 못 내게 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남북 정상회담 뒤에 국내외 분위기와 여론이 워낙 좋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런 책 하나 나가봐야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좀 방심을 했던 것 같아요. 원래 보수 성향 책은 잘 팔리지도 않고 또 보수들은 책도 많이 안 읽고 안사고 하니까 국정원에서 이번에 승인을 해줘도 별일 있겠느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내부 승인을 받기까지 태영호 공사의 출간 의지도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박 = 태 공사는 북한의 실상을 남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고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북한 실상에 대해 TV나 방송, 인터넷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고 눈감은 것을 이번에 쓴 책이 그대로 전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태영호 공사의 진실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 기파랑 출판사에는 책을 내면서 무슨 압력이나 협박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태 공사가 국정원 자문위원에서 사퇴했다는 보도가 오늘 나왔는데 알고 계셨나요.
안 = 협박까지는 아니더라고 뭐 이런 책을 내느냐 하는 전화는 많이 받았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태 공사의 사퇴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보도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태 공사가 그동안 일하면서 어려움은 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 개인적으로 저도 북한 문제를 근 20년 다뤄왔지만 태 공사의 책이 북한 체제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책을 출간하면서 호응을 어느 정도 예상하셨나요. 현재 서점가에 판매 1위에 올라왔습니다.
박 = 잘 팔리고 아니고의 문제를 떠나 준비하고 고생을 했는데 책이 못 나올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딱 맞게 된 것이죠.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태영호 공사가 쓴 책을 내면서도 기존의 경우를 볼 때 사실 이렇게 잘 팔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냈다는 경험에 기분은 좋습니다. 근현대사 관련 대안교과서를 낸 적이 있어요. 그때 신문광고는 요란했지만 실제로 많이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관련 책이 좀 팔리는 편입니다. <3층 서기실의 암호>는 현재 출고된 것이 5만 부인데 곧 추가 인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책 제목은 누가,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안 = 책 제목을 ‘평양 심장부’로 할지 ‘3층 서기실의 암호’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제 딸(안혜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원고를 다 보더니 단연 후자가 돼야 한다고 하더군요. 책 제목이 의외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면도 있지만 결국 현 시국이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 같습니다. 급변하는 남북관계가 잘 되어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국민들이 많이 읽고 북한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안병훈 대표님은 출판사뿐 아니라 언론사에 오래 계시면서 한반도 정세에 대해 나름 많은 경험과 생각을 가져오셨을 텐데 예정된 미북회담 등 남북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고 계십니까.
안 = 미국과 북한이 원칙에는 합의해서 요란하게 떠들겠지만 구체적 성과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태영호 공사 이야기에 의하면 3대 세습이 북한에서는 최고의 존엄인데 만약 미국이 핵시설을 사찰한다고 북한 전역을 휘젓고 다니면 결국 그것이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북한이 절대로 불가역적인 핵사찰과 핵폐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 태 공사는 저서에서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지요.
안 = 태 공사는 북한이 베트남이나 중국식 개혁개방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중국이나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통행의 자유는 있었어요. 그런데 북한이라는 사회는 통행의 자유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완전한 개혁개방으로 갈 수는 없다는 것이죠.
- 이번 4월 27일 판문점 공동선언 내용을 보면 과거 7.4 남북공동성명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지금보다 오히려 더 구체적인 점도 있지만 북한 측의 입장을 많이 반영한 점도 보입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계신지요?
안 = 네, 그때 이후락 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한테 아주 많이 혼났습니다. 북한이 불러주는 것을 그대로 베껴오다시피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미 합의를 하고 왔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요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서 과연 지금이 역사적 대전환기는 아닌지, 과거 고려나 조선이 망할 때의 상황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도 결국 조금 지나면 레임덕이 오고 보수 정권으로의 교체가 다시 이뤄질 것인지, 아니면 일각에서 우려하거나 혹은 촉진하고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주류 보수세력이 소위 적폐로 몰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체제 변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안 =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하에서 지금까지 왔는데 지금 보면 그것이 다 무너지고 있어요. 사실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은 이미 망했다고 봅니다. 신영복을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든가 윤이상을 위대한 음악가라고 하는데, 그 양반들이 평양에 봉사한 것이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국민들의 의식에 혼돈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 너무 심하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 대한민국이 버티고 있는 것은 되는 것은 그동안 축적된 국력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봐요.
대한민국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
박 = 저는 그보다는 조금 낙관적으로 봅니다. 어느 나라든지 전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요. 프랑스는 좌파적인 나라인데 마크롱이 집권하면서 바로잡았거든요. 온 세계의 흐름은 좌파로 가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면서 갈 수는 없다는 것이죠.
제 생각에는 그런 낙관주의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재벌이나 언론에도 비슷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재벌은 좌우를 초월하고 있잖습니까. 아무리 좌파가 집권해도 자신들은 살아남는다는 생각인 것이죠. 요즘 보수 언론도 그런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기업이나 언론의 그러한 생각이 상당히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 안 이사장님은 통일나눔재단도 이끌고 계시지요. 국가와 언론, 출판계의 원로로서 앞으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어떤 과제가 있겠습니까.
통일나눔재단은 설립된 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내가 역할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봉사로 하고 있지만 사실 쉬운 것이 없습니다. 재단이 관심을 많이 받다보니 불만도 많은데 관련 사업을 잘 해내가야겠지요. 그리고 출판사에서는 책을 잘 만들어 팔아야죠. 이번에 태영호 공사 책이 잘 팔리고 북한이라는 존재를 잘 알려지게 돼서 고맙습니다.
- 한반도 정세가 전환기에 있는데 정작 정치가 죽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보수 정치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 = 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공무원 계층이 정당에 가입해야 된다고 봅니다. 전 세계에서 공무원이 정당에 가입하지 못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뿐 아닌가 싶어요. 공무원은 물론 정치적으로 중립을 해야죠.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에 가입해서 후보로 선출되고 이런 사람들이 국정에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공무원을 다 배제하면 이런 연장선상에서 엘리트 계층이 자신은 정치를 하지 않으면서 정치를 전부다 폄하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합니다. 앉아서 손가락질만 하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박 = 보수 야당을 하나로만 몰아주면 대부분 보수 성향 사람들은 한곳으로 투표하기 마련이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죠. 국회의원에 나오는 사람들이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지금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파를 보면 좌우 갈등보다 세대 갈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젊은 보수는 오히려 좌파하고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노인에 대한 혐오가 굉장해요. 그 노인들도 다 투표하는 유권자인데 너무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노인들이 태극기부대에 참여한 것도 그렇게 조롱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또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 = 저는 사실 낙관론자이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인데 문재인 정부가 움직이며 하나하나 조치들을 내놓는 것을 볼 때마다 ‘아! 이사람들 간단히 볼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보면 북한보다 우리가 먼저 무너질 것 같은데 남-북 국력을 비교하면 48대 1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갈등도 있고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내용을 봐도 절망적인데, 이번 태 공사 책이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잘 팔리는 것을 보면 또 그렇게 절망적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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