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쇼크’ 통미봉남(通美封南) 시대, 무엇을 할까
‘트럼프 쇼크’ 통미봉남(通美封南) 시대, 무엇을 할까
  • 김운회 동양대 교수
  • 승인 2018.06.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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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전방위적인 형태의 통일전선 전술을 지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종북 세력에 의한, 친북에 대한 지도와 견인(牽引)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각종 종북 세력과 종북 종교단체 등의 화합과 평화공세 강화 등으로 구체화 될 것이다. 특히 남북 평화협정 서명 및 발효 또는 종전선언이 있은 후, 미군 철수를 위한 정치공세 강화 및 문화예술계의 전방위적 프로파간다 등이 심화될 것이다.

모든 평화협정은 휴지조각이 됐다 

‘트럼프 쇼크’로 망연자실한 상태다. 지난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서 적어준 대로 작성한 듯한 공동성명을 보고 상당수 좌파들도 경악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도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면서 김정은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최대 위기가 온 것이다.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은 말잔치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평화협정은 특정한 지위나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보장하는 목적을 가진 협정을 포괄적으로 말한다.

따라서 각종 형태의 평화조약, 평화선언, 평화의정서 등이나 평화협정을 위한 예비 기초협정, 보완적 이행협정 등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것은 평화협정의 실체가 매우 모호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것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1925년 독일과 프랑스는 불가침조약(로카르노조약)을 체결하고(조약의 당사자들 노벨평화상 수상), 이를 영국과 이탈리아가 보장했지만, 1936년 독일은 이를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1938년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이 맺었던 뮌헨협정은 히틀러가 체코를 위협하자 유화정책을 펴던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가 이 지역을 양보함으로써 전쟁을 막았다며 ‘평화 코스프레’로 큰 인기를 끌었던 협정이었으나, 6개월 후 독일은 체코를 점령했다.

1939년 극우의 나치 독일과 극좌 볼셰비키의 소련이 불가침조약(1939. 8. 23)을 맺었지만 2년도 안 돼 독일이 소련을 기습 침공했다. 1973년 남북베트남과 미국이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협상 당사자들은 노벨평화상을 수상), 2년 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무력 적화했다. 협정 체결 2개월 후 미군은 철수했고 북베트남의 기습적인 총공세로 전쟁 재발 55일 만에 사이공이 함락되었다(1975. 4. 30).

한반도의 정전협정도 평화협정에 속한다. 그러나 이 협정은 만신창이가 된 대표적 사례다. <2016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협정 이후 2016년 11월 30일까지 정전협정 위반사례는 43만 건이 넘으며, 1954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침투(1977건)와 국지도발(1117건)은 3094건에 달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2010. 3), 연평도 포격(2010. 11)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남북한 간에는 항시 일촉즉발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좌파 정권 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려는 북한 경비정의 공격(1999)으로 해전이 발발했고(제1연평해전) 3년 뒤에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한국의 참수리 357호정이 침몰했으며, 해군 병사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제2연평해전, 2002).

이와 같이 평화협정이나 불가침조약은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는 휴지조각에 불과할 수 있다. 특히 파리 평화협정(1973)은 북한 대남전략의 모델이다.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평화협정 체결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적화통일전략의 일환으로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것이다.

북한은 전략적으로 대남무력적화, 전술적으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 전쟁 놀음 중단,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 이에 따른 미군철수 등을 주장해 왔다. 이것의 기초가 되는 것은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미북 정상회담(2018)은 그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파리 평화협정에서는 종전(終戰)과 평화회복이 가장 중요한 의제로 남북베트남의 정전(제2조),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제10조), 평화적·단계적 통일 실현(제15조)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남베트남의 좌파들은 순진하게도 파리협정을 기초로 이른바 자율성을 가진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꿈꿨지만, 북베트남은 즉각적인 무력적화를 실시해 남베트남 좌파들을 무장해제하고 숙청 또는 재교육 캠프로 보냈다.

남베트남 좌파의 숙청 과정

베트콩(Viet Cong :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법무장관을 지냈던 튠뉴탄 씨의 증언<배반당한 베트남혁명>에 따르면, 평화협정(1973) 때와 사이공 함락(1975) 이후의 상황이 전혀 달랐다고 한다. 파리협정에서 남북베트남 좌파는 남베트남 인민의 자결권에 동의했지만, 사이공이 함락되면서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원래 베트콩은 남베트남을 기반으로 한 자생적 좌파로 하노이(북베트남 정권)와 다른 남베트남의 특성을 강조하고 외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하노이의 간섭도 인정하지 않았다.

베트콩은 기본적으로 남베트남을 5개의 자치지역으로 구성된 하나의 연방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투쟁해 왔다. 그러나 하노이는 베트콩을 바로 제압했다. 향후 나타날 수 있는 베트콩의 권력 분할 요구를 사전에 제거한 것이다.

베트콩이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은 북베트남 정규군이 이미 대부분 사이공 전역을 장악했으며 거미줄처럼 쳐진 공안 당국의 감시망도 모두 북베트남 출신자로 채워져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노이는 해방전선, 임시혁명정부 또는 평화세력연맹 등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베트콩의 조직들을 차례로 해체하여 무력화(無力化)했다.

하노이의 논리는 간단했다. 하노이는 해방전쟁의 승리에 베트콩의 역할은 없었고, 승리는 오직 하노이 공산당의 위대한 전략 전술의 승리인 점만 강조했다. 하노이는 베트콩 지도부를 정부와 당의 중요 요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한국 좌파는 평양 정권과 공립(共立)이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불가능하다. 한국 좌파의 주요 중심축의 대부분이 한국 전체소득의 상위 10%의 귀족 좌파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일성과 김정일은 “우리가 전쟁에 지면 지구를 깨버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것이 핵개발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북한 핵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이 생각하는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고 김일성은 “남조선 정부가 없어지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했다. 일찌감치 김정일도 “남한민중은 더 이상 아우르고 갈 대상이 아니고 핵무기 등으로 한국자체를 쓸어버려야 북한의 영원한 생존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북한의 새로운 통일전략은 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자유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

평양(북한 정권)의 시각에서 보면, 설령 한국에서는 극심한 종북 좌파라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에 오염된 세력일 뿐이고 백두혈통에 대한 신앙적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좌파는 외형적일지라도 자유와 민주 등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성장해왔기 때문에 평양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평양의 요구에 순응해 그대로 정권을 이양하지는 않을 것이고 일정한 단계의 공립 기간(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과 같은 형식)을 요구하고 나아가 한국에 대한 지분(권력분할)을 요구할 것이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협정 기간 동안 평양은 핵그림자 전략(Nuclear Shadow strategy)으로 정치적 주종관계를 형성하려 할 것이다. 좌파 정권 하에서도 재래식 군사도발과 갈등이 쉽게 나타날 수 있고 이를 계기로 전격전(기동전)을 수행하여 일거에 한국을 소탕할 수도 있다(3일이면 한국 점령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평양의 세습 체제 유지에 방해되는 모든 세력의 제거가 이뤄질 것이다. 이 경우 종북 세력의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보수 정당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대부분 인사들은 처형 또는 강제수용소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알아두는 것은 북한 정권으로부터 문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좌파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한국 좌파는 걸핏하면 ‘냉전논리’라고 매도하지만 현재의 평양 정권은 과거 냉전체제 하의 그 어떤 좌파 정권보다 더 혹독하다. 한국 좌파는 그들이 꿈꾸는 장래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하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장성택의 숙청과 김정남의 암살 등을 보면서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사태를 낙관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과거 남로당의 경우 여성들을 제외하고는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안에 대부분의 주요 인사들이 처형되었다. 지난 2012년 이후, 김정은은 140명에 이르는 당-정-군 고위간부들을 숙청했다.

여기에는 리영호 총참모장, 장성택과 추종자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최영건 내각부총리, 김용건 내각부총리 등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권력의 실세들이었다. 따라서 한국 좌파도 그들이 꿈꾸는 한국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평양의 간섭이나 무력 침공에 대항할 수 있는 물리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전개될 한국 상황에서 최악을 가정하고 향후 역사적 진행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경로를 밟을 수 있다(이미 상당 부분은 진행 중).

① 보수 우파 정당 및 국정원의 무력화(無力化) → 5만여 명(황장엽 추정)의 고정간첩들의 자유로운 활동 가능 ②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 시민 단체 등의 통일전선 강화 ③ 자유시장 경제적 구조를 약화시키는 각종 포퓰리즘 정책 시행(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 의료 등) ④ 노골적인 친중 사대 정책 강화 ⑤ 개성공단 재개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각 분야별로 북한 정권 퍼주기 ⑥ 전시작전권 전환 공식화 → 자주국방의 명분 아래 북한의 전격전에 대한 무방비 ⑦ 다양한 형태의 한미간의 이간 책동 ⑧ 북한 정권에 대해 미화 또는 간접적으로 옹호하려는 문화예술계의 광범위한 시도 ⑨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광범위한 선전 선동 ⑩ 군대의 사상적 오염 강화 및 무력화(無力化) 시도 ⑪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유사한 통일방안의 구체적 전개(낮은 단계의 연방제)

이와 함께 평양은 전방위적인 형태의 통일전선 전술을 지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종북 세력에 의한, 친북에 대한 지도와 견인(牽引)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각종 종북 세력과 종북 종교단체 등의 화합과 평화공세 강화 등으로 구체화 될 것이다.

특히 남북 평화협정 서명 및 발효 또는 종전선언이 있은 후, 미군 철수를 위한 정치공세 강화 및 문화예술계의 전방위적 프로파간다 등이 심화될 것이다. 이와 함께 ① 친북 교육 강화 ② 민족의 화합과 평화를 강조하는 광범위한 문화예술 책동 ③ 종북 세력의 기동전 준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위와 같은 통일전선 전술이 수행되는 단계에서 유의할 점은 각 과정이 단계별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감시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지속적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자유 한국 구하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미북 회담(2018. 6. 12) 후, 트럼프의 기자회견은 공동성명보다 더 위험한 것이었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한다는 것은 역으로 한국이 누리는 체제 보장 즉 정전체제하에서, 유엔군사령부(UNC), 한미연합사령부(CFC), 북방한계선(NLL) 등 준전시상태에서 북한의 도발을 막는 제도적 법적 테두리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미군사훈련 중단도 심각한 사안이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전 세계를 상대로 작전을 하는 미군은 현장에 있는 한국군과는 달리 한 두 해라도 훈련을 하지 않으면, 전쟁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미군은 훈련을 시키지 않고 작전에 투입하지 않는다. 이 경우 미군 주둔은 의미가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한미동맹도 의미가 상실된다. 이제 자유 대한민국은 생사의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자유 한국 구하기’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우파의 역할이 중요하다. 만약 좌파 정권이 안보 문제에서 크게 실패할 경우 그에 대한 완충세력이나 대체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파는 내적으로는 투쟁성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깊이 파악해 즉각 대처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우파 지식층은 망연자실하지 말고 좌파의 논리에 대한 대응 논리를 적극 개발해 대처해야 한다. 각 단계별로 또는 동시에 친북 세력들의 공세를 방어해야 하는데 하나의 단계를 철저히 막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쉽게 전이(轉移)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해 ‘자유 한국 구하기’의 우파 진지들을 요소요소에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보수는 모두 구대동존소이(求大同存小異)의 정신으로 통합해 역량 강화에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친박, 친이, 애국 등 정치색을 배제하고 ‘자유 한국 구하기’라는 대의를 위해 대동단결하지 않으면 ‘한국의 위기’를 넘어갈 수 없다. ‘자유 한국 구하기’라는 용광로에 다 녹일 수 있어야 한다. 좌우를 떠나서 현재 한국 상황을 위기라고 인식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야 한다.

무엇보다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 모두가 인지할 수 있도록 이제 막 시작된 평화협정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또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을 재개하더라도 더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억제해야 한다.

다음으로 전시작전권 전환 - 한미연합사 해체 - 한미동맹 해체·주한미군 철수 책동 등에 이르는 과정을 최대한 저지해야 한다. 나아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노골화될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좌파도 설득해야 한다. 베트남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 과정은 결국 한국 전체는 물론 ‘한국 좌파의 무덤’으로 직행하는 과정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이것도 실패하면 최종적으로는 북한 또는 한국내의 극좌 세력에 의한 기동전과 평양 정권의 적화를 저지할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김운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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