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질서경제학회포럼 "자유주의 진영의 정치경제담론 회복을 기대하며"
한국질서경제학회포럼 "자유주의 진영의 정치경제담론 회복을 기대하며"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06.2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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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신도철 교수의 발제를 접하면서 도대체 헌법이란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음을 먼저 고백한다. 헌법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국가, 특히 정부로부터 시민들의 자유와 소유를 침범 받지 않기 위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헌법학자는 없을 것이다.

최초의 헌법을 마련한 미국의 경우도, 연방정부라는 기구가 과거 군주나 전제정권처럼 개인들의 자유와 소유를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 하에서 ‘국가로부터 자유와 소유를 방어할 시민의 권리’에 입각한 것이지, ‘국가의 권리’를 천명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는 헌법에서 ‘국가는 ~을 할 수 있다’와 같은 조항을 극도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헌법이 국가와 정부의 기구와 조직을 설정하는 이유도 결국 개인들의 자유와 소유를 보장하기 위해 기본권과 인권의 보호장치로서 그렇게 하는 것일 뿐, 국가의 자의성을 정당화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헌법의 존재 이유를 마치 ‘리바이어던의 권리’로 착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우리 국민들이 식민 통치 경험과 이후 분단과 6·25전쟁을 통한 반공적 근대성에서 국가를 모든 통합의 근거로 규정한 헤겔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문제는 개헌을 비롯해 우파 보수 진영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우리는 반공과 반공주의를 구별하지 못함으로 인해, 반공을 외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식 정책이나 입법에 둔감해 왔던 것이 사실임을 고백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주류를 담당한 보수의 정치철학, 경제철학의 빈곤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발제자 두 분의 발제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의 큰 방향이 경제 체제에서 ‘국가 개입의 강화로 귀결되고 있음’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겠다. 특히 발제자인 배진영 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개헌 안을 ‘국가사회주의’라고 규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며 또 적절하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는 히틀러의 나치당의 경우처럼, 좌도 우도 아닌 전체주의 속성을 가지며, 이는 피터 드러커의 1939년의 역작 <전체주의의 기원 : 경제인의 종말>에서 자세히 분석된 바 있다. 드러커는 나치의 파시즘을 분석하면서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모두 어떻게든 경제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려 들지만 국가사회주의 즉 파시즘은 비경제를 바탕으로 경제를 추구하기에 경제의 합리성을 축출해 버리고 마는 것이라 봤다.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이 국가사회주의라는 주장에 대하여

독일 나치즘의 국가사회주의의 등장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실패했다’는 인식 속에서 ‘기존의 질서는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는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 그 배경인 것으로 피터 드러커는 지적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에서 보이는 국가사회주의적 성격 역시, ‘경제성의 종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체제 인식이 그들 스스로 허위의식으로 갖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구조로 대한민국의 레짐 체인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독일이나 유럽의 사민주의는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그러한 사민주의와는 상당히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독일의 경우, 질서자유주의라는 바탕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는 사회주의적인 것과 자본주의적인 것을 혼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제 현실에 맞춰,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교대로 밟는 중용적, 혹은 중도적(Centerism) 경제운용방식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독일과 북유럽의 ‘사회적(Social)’이라는 의미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자발적 연대를 통해 형성하는 관계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나, 탈원전 정책이 정부의 일방적인 행정이 아니라, 사회 각 계층과 커뮤니티별로 오랜 공론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실이 말해준다. 즉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의 충분한 내면화와 동의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제도로서 보장된 사유재산을 법률로 제한할 수 있나?

신도철 교수의 발제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우리 경제의 낮은 성장률이 소득수준의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과거에 비해 인센티브가 줄어들어드는 제도와 정책에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는 대기업에 대한 엄청난 규제로 인해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려는 작금의 현실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발제문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사유재산제도와 계약자유의 원리를 기초로 작동하면서 나라를 발전과 번영으로 이끈다’고 주장하신 부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바로 사유재산에 관한 것이 ‘제도’라는 점에서다.

독일의 법철학자 칼 슈미트에 의하면 입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과 제도에 의해 보장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제도는 관습적인 것을 포함하고, ‘사물의 본성’에 맞게끔 이뤄지기 때문에 사유재산을 제도로 보장하는 것은 신체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제도로 보장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사유재산 제도’라는 것은 그 자체로 헌법이 등장하게 되는 이유이기에, 이는 ‘예외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법률로 제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에 대한 길항적 헤게모니로 ‘국가란 무엇인가’, ‘헌정이란 무엇인가’, ‘시민이란 누구인가’를 보다 튼튼한 정치철학적 성찰을 통해 많은 국민들에게 깨우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에는 국민은 있어도 시민은 없는 상황임)

결국 이번 세미나를 통해 자유주의 진영은 순수한 시장경제론에서 Good Society를 위한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할 수 있었고, 그러한 점에서 적지 않은 소득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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