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보수세력의 위기인가, 궤멸인가? (2) - 상식의 정치
한국사회, 보수세력의 위기인가, 궤멸인가? (2) - 상식의 정치
  •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윤민재
  • 승인 2018.06.2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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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정치

현 상황은 궤멸이 아니다. 보수주의의 위기일 뿐이며 궤멸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보수적인 정치세력, 정당일 뿐이다.

◆ 20대 총선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승리와 19대 대선에서의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더불어민주당 및 문재인 후보의 경쟁률 상승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보수 정당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및 후보 지지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싫어하는 후보를 막기 위해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간접투표 행위자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은 19대 대선 후보자는 문재인후보로 나타나, 탄핵 및 최순실 게이트의 최대수혜자는 문재인후보임을 시사하고 있다.

◆ 정치학자 니스벳(R.A.Nisbet)은 공동체, 자유주의, 개별성, 민주주의를 중시하였다.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 19세기 토크빌은 지역자유, 결사체, 물질의 추구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였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힘을 결사체 활동, 타운미팅 등 자치와 참여, 기독교정신, 사법제도 등을 들었다.

커크(Russell Kirk)는 “보수주의자들에게서 보이는 관습, 일반적 합의, 법률과 규범은 건강한 시민사회 질서의 근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관습과 규범은 앞에서 말한 마음의 습속의 중요한 부분이다. 미국과 유럽의 18-19세기 정치질서, 그리고 보수주의를 보면 자유, 시민덕성을 매우 중시했고 실제로 그것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는 자유와 시민덕성을 지키고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그들에게 시민덕성이 존재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정치는 투명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정치이다. 이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예측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정치다. 특정 권력자와 세력에 의해 보수정치가 독점된다면 이는 카르텔 정치이고 야합이다. 국민들의 정치적 효능감, 만족감, 헌신성은 예측 가능한 정치 상황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베버는 말년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의 마지막 문장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래와 같이 외친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도 불가능한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 중략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최근 선거와 그 결과, 각 신문의 논평을 간단히 보자.

◆ “정부 정책에 문제의식을 가진 국민조차 야당을 외면했다. 선거 결과는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고 6·13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특이한 것은 당이 이렇게 망가지는데도 소속 국회의원 중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고 개혁하고자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113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이 단 한 명 예외 없이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는지 놀라울 지경이다”(조선)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하면 다음 총선에서 우리에게 살길이 생긴다’는 얘기가 나왔다. 불과 8일 전 '궤멸적 패배'를 당하고도 자기반성과 혁신은커녕 '남 탓'하며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당이 보여온 무능과 무책임, 무대책 정당의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당이 이런 상황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정당이 된다면 2년 뒤 총선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조선)

“한국의 보수가 살아나려면 '박근혜 문제'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보수가 2년이 넘도록, 그리고 선거에서 지고도 '박근혜'로 여전히 치열하게 치받고 싸우는 한, 보수의 미래는 없다. 그것이 누구 잘못이든, 무엇이 발단이었든 '박근혜'는 이제 한국 정치에서 과거다. 거기에 매달린다고 박 전 대통령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친박이 다시 득세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주말 열린 태극기 집회는 시간 착오적이다.”(조선)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말들이 많다. 보수의 몰락이라고도 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도 한다. 한마디로 다 틀린 말이다. 보수의 몰락은 무슨! 자유한국당이 몰락했을 뿐이다. 새로운 시대도 무슨! 새 시대는 이미 오래전 열려 있었다. 한국당만 몰랐던 거다. 그러니 망하는 게 당연하다. 망해도 싸다. 누구나 예상한 참패였다. 선거 당일 개표 결과를 기다리며 미리 써놓았던 사설에서 몇 자 고칠 것도 없었다. 공란으로 남겨뒀던 최종 투표율만 채웠을 정도였다. 한국당도 예상했을 터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한국당은 시대만 모른 게 아니었다. 자기가 누군지부터 몰랐다. 스스로 보수라 착각한 것이다. 천만에! 대한민국 보수 유권자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당이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믿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학자 출신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일찌감치 분류한 정의가 있다.급진주의자는 너무 멀리 간 사람이고, 보수주의자는 충분히 가지 않은 사람이며, 반동주의자는 아예 가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한국당이 어디 속할지는 분명하다. 반동주의자 말고는 없다.”(중앙)

“19세기 영국 보수당은 ‘멍청한 당(stupid party)’으로 조롱받았다. 이때 디즈레일리는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며 당이 불평등과 빈부격차 해소에 나서도록 했다. 침체했던 영국의 귀족정당 보수당이 혁신을 통해 세계 최장수 정당이 됐다는 박지향(서양사) 서울대 교수의 조언은 설득력이 있다. 기득권에 안주해 온 자유한국당이 과연 이런 치열함을 갖출 수 있을까.

이번 선거의 승자는 보수 유권자다. 스스로의 힘으로 ‘북한이 화해 불가능한 적(敵)’이라는 수구냉전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불태우고 합리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보수의 판단력은 건강하게 작동한 것이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에 몸을 맡겼지만 기대에 못 미치면 언제든지 박차고 나갈 것이다.

정당이 제대로 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처절하게 버림받는 시대가 열렸다. 수구를 혼내준 보수 유권자의 멋진 승리가 구제불능의 낡은 정치판을 제대로 갈아엎기를 바란다.”(중앙)

“문제는 보수 야당의 몰락이 한국 정치에 재앙이란 사실이다. 정부와 집권당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진보와 보수, 좌우 양쪽의 날개로 나는 정치가 건강하다.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입법·사법·행정부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권력 독점과 부패를 막아야 한다. 똑같은 논리로 야당은 권력을 쥔 여당의 독주를 막고 정책 실행과 법 집행의 공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강력하고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여당과 청와대, 정부가 긴장한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보수의 침몰은 좋은 정치가 나올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보수 재건은 처절한 반성과 자기희생이 출발점이다. 책임과 희생이야말로 보수의 최대 가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과거의 책임과 잘못된 체질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부패한 기득권에 집착하는 박근혜식 보수는 이미 국민들로부터 탄핵당했다. 반성과 변신의 노력이 없는 기득권 세력은 가려내야 한다. 그 자리에 건전한 보수 가치관을 지닌 젊은 인재들을 영입해 당에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되살리고 명실상부한 정통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중앙)

“한국당을 비롯한 주요 야당들은 어떠냐? 보수적 대안이든 중도적 대안이든 대안을 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해 빈정거린다. 인권을 이야기하면 ‘안보’가 어쩌고 하고, 상생을 이야기하면 ‘성장’ 운운한다. 왜 이 가치들이 같이 가지 못한다는 말인가.

국민 입장에서는 이 빈정거림이 싫다. 정부여당의 잘못된 국정운영 프레임과 정책적 무능보다 더 싫고, 그래서 더 먼저, 더 크게 보인다. 결국 이 빈정거림이 정부여당의 잘못을 가려주는 가림막이 되어 준다. 한국당과 그 대표가 없으면 대통령과 여당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조크도 그래서 나온다.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야당은 물론이고, 그 가림막 뒤에 안주할 정부여당까지 실패한다. 결국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 야당의 변화에 온 국민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인적 쇄신’,‘당 조직 개편’,‘당 해체’ 등 변화를 위한 방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는 데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반영하는 새로운 깃발과 기치를 세우고 그에 상응하는 정책 역량을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단언컨대 이것 없이는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다.”(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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