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장기 휴식, 어떻게 볼까
문재인 대통령의 장기 휴식, 어떻게 볼까
  •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8.07.0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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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궁녀들과 희롱을 일삼는 현대의 드라마와 미디어 영향인지 몰라도 일반적인 편견과 다르게 ‘승정원일기’와 같은 역사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임금들 일상은 꽤 빡빡했다.

기상하자마자 의관을 정제한 후 왕실 웃어른에 대한 문안, 신하들과 학문토론을 하는 경연, 아침식사, 조회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고, 신하들이 왕실에 대한 문안을 마치고 나면 각 관서에서 올린 보고서 결재와 같은 본격적인 왕의 업무 처리가 이어졌다.

오전 업무처리가 끝나면 오후에는 낮 공부인 주강, 지방관 접견 및 각 지방에서 올라온 장계 처리 등이 이어진다. 저녁이 되면 저녁 공부인 석강에 참여한 후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왕실 웃어른에게 문안인사를 드린 후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저녁에도 왕의 업무 처리가 있기 때문에 승정원에 숙직을 하는 관원들은 항상 관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고 한다.

국사를 돌보던 조선시대 임금들 근로시간이 하루 21시간에 달할 정도로 빡셌다는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회자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위 세월호 7시간 행적 논란이 한창일 때였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벌어진 비극적 사고와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알려지지 않은 7시간 행적은 여론이 들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뒷날 검찰조사에 따라 허위로 밝혀진 호텔 밀회설이나 굿판, 미용시술설과 같은 루머들도 따지고 보면 박 전 대통령이 국사(국정)에 얼마나 소홀한 사람인가에 대한 의심의 발현이었다. 당시 이런 여론을 부추기는데 기폭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6년 11월 탄핵정국에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 긴박한 시간에, 그 긴박한 사고의 순간에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사고를 챙기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불을 지켰다.

문재인 대표, “국정 책임자가 자리 비웠다” 특검 요구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면 저는 특검이 규명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탄핵 사유”라고까지 했다.

필자가 과로에 시달렸던 조선시대 임금들 일상이나, ‘일 않고 그 시간에 뭘 했느냐’는 질책에 다름 아닌 박 전 대통령 세월호 7시간을 언급한 이유는 휴식에 대한 문 대통령의 안이한 생각과 판단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고 귀국한 다음날부터 사실상 일주일 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러시아 순방 등으로 피로가 누적돼 감기몸살에 걸린 대통령을 위해 정식 보고서는 물론 일체의 메모 형태로도 보고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대통령은 그 기간 동안 외부와는 일체 소통이 단절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국가위기관리와 직결된 문제는 예외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대통령의 일주일이 국정에서 완전히 실종된 이 기간이 대통령 유고 상태와 뭐가 다를까.

역대 대통령 중에 피로와 감기몸살에 걸렸다는 이유로 일주일이란 결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심지어 일체의 보고도 받지 않고 휴식을 취한 대통령이 있었나. 문 대통령이 평소 근로시간 단축과 휴식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잘 안다. 2017년 5월 9일 대선을 치른 이후 한 달 도 못된 그달 22일 경남 양산 사저에서 연차 1일을 사용한 이래로 문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주 휴가를 챙겼다.

그해 7월 말 8월 초 여름휴가를 다녀 온 이후에도 11월과 12월에도 연차를 썼다. 휴식에 대한 문 대통령의 철학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고작 피로와 감기몸살에 걸렸다는 이유로 무려 일주일 기간 동안 국정에서 손을 떼고, 국가를 대통령 유고 상태와 다름없는 상태에 처하도록 만든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지나친 특권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대통령이 휴가기간 외 장기간 국정 손 놓은 유례 드물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보다 무려 일곱 살이나 위다. 그런데도 그는 국정운영과 미국 중간선거 유세연설 같은 정치일정을 무난하게 소화한다. 그 뿐인가. 이란 핵협정 탈퇴사태, 북핵사태 등 세계의 대통령으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트럼프가 공식 휴가기간을 제외하고 감기몸살로 장기간 국정에서 손을 뗐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 세계 어느 민주 국가에서 국가수반이 피로하다고 일주일동안 보고서는 물론 일체의 메모도 받지 않고 쉬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 러시아 방문 일정이 병이 날 정도로 그렇게 무리해 보이지도 않는다. 주요일정이란 게 한러정상회담과 만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 면담, 러시아 하원 방문과 연설, 멕시코 월드컵 경기 관람 정도다. 멕시코에 참패해 낙담한 한국 선수들 라커룸까지 기어코 들어가 울고 있는 손흥민 선수에 강요하다시피 파이팅을 외친 일 말고 대통령의 방러 일정에서 무리하거나 특이했던 점이 있었던가.

워커홀릭 대통령은 오히려 참모들을 일하기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공무원 중 최고 공무원이다. 모범이 돼야 한다.

말단 공무원들조차 복무규정에 따라 긴급 연락이 가능하도록 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감기몸살을 이유로 휴식을 취하겠다며 일체의 보고서나 메모도 받지 않고 무려 일주일간 대통령 유고 상황이나 다름없는 국정공백기를 만든다는 건 무책임하다.

작년 한 구직사이트가 국민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이 아파도 참고 출근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상사, 회사 눈치를 봐야하는 탓에, 혹은 자기 대신 일할 사람이 없기에 아파도 꾹 참고 출근해 일한다는 것이다.

정조 때 문신 윤행임(尹行恁)은 ‘임금께서는 행여라도 조회에 늦으실까 봐/ 침실 동쪽에 장닭을 기르시네(宸心或恐朝儀晏 燕寢東頭養報鷄)’라는 춘첩(春帖)을 지어 올렸다. 조회에 늦을 것을 염려해 침실 근처에 횃대를 설치하고 닭을 길렀던 것이다. 집권2년차, 문 대통령은 아파도 참고 일하는 국민의 고달픈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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