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보이지 않는 경제학...누가 내 노동을 훔치는가?
[신간] 보이지 않는 경제학...누가 내 노동을 훔치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7.10 0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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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현재욱는 1960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석공(石工)이자 한학자(漢學者)인 부친에게서 한자를 배웠고, 불교 철학을 독학했다. 중앙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경제를 공부했다. 광고 카피라이터, 브랜드 기획자, 의류 소매업자, 일용직 노동자, 사료공장 공장장,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전북 진안고원 산골 마을에 정착했다. 2010년 현고진이라는 필명으로 장편 생태소설 『물과 돌의 기억들』을 발표했다. 현재 인터넷신문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로 활동 중이다. 경제학과 한자학을 평생 공부할 과제로 삼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 쓰는 생활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2016년 말~2017년 초, 촛불시위에 모인 사람들이 소리 높여 외친 구호 중 하나가 ‘재벌 개혁’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소수가 부(富)를 독점하는 지금의 경제상황이 부조리하다고 느끼고 있다. 노동은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자원은 낭비되고, 경제학은 사람을 배제하고 숫자에만 매달린다.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의 부를 합친 것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슈퍼리치 61명의 재산은 하위 50퍼센트의 재산과 같다.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부의 원천이 노동(勞動, labour)이라고 밝혔다. 그 말대로라면 일을 하면 부유해지고, 일을 안 하면 가난해진다. 그런데 현실은 그와 다르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도 임금이 다른 경우를 많이 본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노동 성과를 훔치는 것이다. 오늘날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이지 않는 경제학』에서는 국가의 부가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성장 지향의 경제에서 나눔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공유경제’나 ‘사회적 경제’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상위 1퍼센트가 아닌 나머지 99퍼센트를 위한 경제로 전환하면 내수시장이 살아나고 중소기업이 튼튼해진다. 중소기업이 살면 자영업이 살고, 자영업이 살면 중산층이 복원된다. 한국 경제는 커질 만큼 커졌으니, 이제는 양(量)이 아니라 질(質)을 따져야 한다. 

달러를 세계 유일의 금본위제 화폐로 만든 브레턴우즈 체제는 왜 무너졌나? 어떻게 달러는 그 후에도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나? 금본위제 시대가 일찌감치 끝났음에도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다량의 금을 비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왜 나는 세계적 수준에서 지금보다 더 가난해질까? 이 세상은 어떤 구조로 짜여 있고, 어떤 힘으로 움직이는가? 왜 이런 세상이 만들어졌는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세상사의 많은 부분이 경제적 기초 위에서 결정된다. 경제는 세상을 보는 창이다. ‘나와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경제를 알아야 한다. 

왜 경제학 교과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설명하지 못할까? 

‘경제’는 우리와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내가 카페라테를 마실지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선택하는 문제는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이고, 최저시급과 실업률의 상관관계를 따지고 들면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이다. 경제학이 다루는 문제는 한마디로 ‘인간의 일상생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경제학 교과서가 다루는 내용은 숫자와 그래프뿐이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은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 즉 유효수요(有效需要, effective demand)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아프리카 어린이의 배고픔과 갈증, 지구상에서 굶주리는 8억 인구의 삶은 다루지 않는다. 가난한 자의 필요와 욕구는 유효수요가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서 금융경제는 실물경제를 완벽하게 제압했기 때문이다. 원래 돈이란 상품과 상품의 교환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였다. 즉 산업이 목적이고 금융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팽창하면서 금융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이제 실물경제는 금융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다. 주주의 이익은 중시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시하다 보니,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 실적에 경영의 초점을 맞춘다. 기업사냥꾼은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팔기 위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회계장부의 당기순이익을 끌어올리는 수법을 즐겨 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금융시장을 이렇게 정의한다. “금융시장은 노동 없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끼리 경쟁하면서 실물산업이 생산한 부를 재분배하는 시장이다.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생상품과 시세차익이다.” 결국 분배구조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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