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게 역사 인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
군에게 역사 인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
  • 이정훈 동아일보 기자
  • 승인 2018.07.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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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 군인과 역사, 그리고 헌법

‘군인의 명령과 역사적 책임’ 참으로 묵직하고 진지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진즉부터 다뤘어야 할, 그러나 여간해서는 다루지 않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것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였다. 이 소설에는 ‘이순신은 두 칼끝 사이에 서 있었다. 선조가 겨누는 칼과 왜적이 겨누는 칼이었다. 언젠가는 두 칼 중 하나에 목숨을 잃으리라…. 이순신은 죽을 자리를 찾고 다녔다. 그는 적의 칼날에 죽기를 원했다’란 대목이 있다. 이어 ‘선조는 이순신을 잡아들였다. 죽일 수가 없었다. 바다 건너에서 왜군이 또 다시 쳐들어 온 것이다. 이순신은 살아도 죽어도, 선조의 적이었다’란 대목도 있다.

이순신은 적어도 선조와 조정에 대해서는 불복종을 더 많이 한 군인이었다(칠천량해전 기피). 그러나 국가와 백성(그때는 국민이 아니었다)에는 충성을 다했기에 선조는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선조는 삼도수군통제사영이 있는 통영에 사당(忠烈祠)을 지어 전사한 이순신을 추모하게 했다. 인조 때는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그에게 내려졌고, 효종 때는 노량(忠烈祀), 숙종 때는 그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아산(顯忠祠)에도 사당을 짓게 했고, 정조 때는 그에게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순신은 불복종 문제를 지우며 국가적으로 예우도 받게 된 ‘운 좋은’ 군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을 쳐야 할 때 칠 수 있는 기계화 매뉴얼 필요

이종찬 육군총장과 김영환 공군 대령 건 말고도 우리 군에는 명령 복종과 불복종을 놓고 숱한 역사를 만들어왔다. 10·26 때 명령을 수행한 中情 파견 군인들은 총살됐고, 중정 요원들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5·18 때 명령을 수행한 군인들은 처음에는 포상을 받았다가 그 후엔 그것을 박탈당했다. 5·16은 분명 명령 불복종이다. 그러나 불복종 권역에서 명령을 수행한 군인들은 그 후 상당수가 영전되었다. 역시 불복종 권역으로 봐야 하는 12·12 참여 군인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2·12에 참여 군인들은 5·18 때문인지 그 후 성과에 대해서는 양론이 있다. 하지만 5·16 참여 군인들은 그 후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가 원수가 갖는 최고 권한은 군 통수권이다. 이는 군사력이 국가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평시라면 경찰과 검찰을 통한 수사력과 기소력(起訴力)도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다. 수사력과 기소력을 군사력처럼 국가원수가 바로 장악할 수 있는 행정부에 넣어놓은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두 분야(군사력과 수사기소력)는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을 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보(security)와 안전(safety)은 신속을 요구한다.

안보와 안전은 순식간에 위협 당하는 것이기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다수가 합의하는 식의 합리적인 답을 찾기 보다는 즉응(卽應)으로 대응해야 한다. 전문가들로 하여금 안보와 안전 분야에서 예상되는 위기를 상상해 그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놓고 연습까지 해놓게 하고, 사태가 벌어지면 그중 한 방안을 선택해 바로 대응하게 한다. 그래서 두 분야만큼은 행정부를 장악할 수 있는 국가원수에게 전권을 위임해 놓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력이 악용되는 경우다. 그리고 위임에서 발생하는 오남용이다.

군사력은 위임을 통해 대위가 맡는 최하급 지휘관에게까지 전해진다. 작전에 들어간다면 임무 수행을 하는 소대장과 분대장에게도 일부 위임이 이뤄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항상 예상을 벗어난다. Think the Unthinkable을 강조해도 젊은 지휘관과 지휘자에게까지 역사의식과 도덕의식까지 갖춰 Imagine the Unimaginable을 해서 슬기롭게 대처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이러한 대응은 국가원수 자신도 하지 못한다. 핵무기를 개발한 김정은과 북한 핵을 억제해야 하는 트럼프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결심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역사가 만들어지는데, 성패 여부는 누구도 예언할 수 없다. 대부분의 기계화를 시도한다. 미군은 적의 도발 징후 목록을 만들어 놓고 그 목록으로 평가한 지수가 일정치를 넘으면 도발이 있다고 보고 즉응 팀을 대응시키고 있다. 그러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이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면 기계화를 해놓은 대응도 결국은 무용지물이 된다. 동맹국이 먼저 대응을 해줌으로써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을 때 하는 대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홀로 내려야 하는 결정은 어떠한 참모와 프로그램이 있어도 고독하기 그지없다.

무관은 무관만의 판단이 필요

우리 군의 문제점은 싸우는 훈련만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성숙하면 작전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주력해 왔다. 그리고 끝내 못한 것이 군사력을 일으켜야 할 때와 적을 치는 시기를 선택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계속 국가 통치자나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 영역으로 보고 미뤄 놓았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죽임을 당하기 위해 도살장 안으로 들어온 소를 죽여서 해체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갑자기 맞닥트리게 되는 소 가운데 어느 것을 사냥감으로 삼고 어떻게 사냥해야 하는지는 거의 연습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역사의식과 도덕의식으로 해결하라고 하니 이는 실컷 집단교육을 시키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개인 판단 혹은 가정교육에 근거한 것에 맡기겠다는 격이다.

우리는 이순신이 문과에 3번 낙제한 것을 강조한다. 이순신이 문과 집안 출신이라는 것도 반복해서 거론한다. 이는 무관이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는, 다시 말하면 역사의식이 적거나 없다는 암시다. 이순신은 실제로 역성혁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정몽주까지도 한때 매료시켰던 전형적인 무관이고, 고려가 무너지게 되는 데 일부 개입을 한 최영은 문관 출신이라는 것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도 무관 출신이다.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내용 없는 행사였다. 김정은은 시진핑과 더불어 쏟아지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고 트럼프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트럼프가 재임이 되는 일을 막는 공작에 노력할 것이다. 트럼프는 포르노 배우 건 등 숱한 스캔들을 덮기 위해 이 회담에 임한 측면이 있다. 때문에 합의문을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합의문 때문에 남북한과 북중은 한 단계 더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미북이 합의를 했으니 남북관계와 북중관계도 개선돼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는 6·25전쟁 이후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북한이 급변을 맞는 게 아니라 우리가 급변을 맞게 되는 것이다. 우리 중에 보수로 분류되는 세력은 분명 급변을 맞는다. 보수의 중추인 군부 인사들이 급변을 맞은 것이다. 이를 수용할 것인가의 여부가 이들에게는 문제가 될 것이다. 수용한다면 이들은 군부의 기득권을 내려놓은 일을 해야 한다. 그때 문제가 되는 것이 북한 핵의 처리 여부인데, 북한이 시간을 끈다면 우리 사회는 심각한 내홍을 겪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막강한 군부가 있었는데도 패망으로 간 나라는 베트남을 위시해 수없이 많다. 송나라는 악비를, 백제는 계백을 품었지만 패망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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