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고양이의 주인이 되어보았습니다... 꽃무늬 이불, 찢어진 벽지, 아리와 집사의 핏빛 동거
[신간] 고양이의 주인이 되어보았습니다... 꽃무늬 이불, 찢어진 벽지, 아리와 집사의 핏빛 동거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7.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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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아리 주인은 지구 태생, 인간이다. 8년 전 무엇에 홀린 듯 고양이를 입양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이후 인생의 큰 고통과 행복을 동시에 경험하며 살고 있다. 아리로부터 받는 고통을 예술작업으로 승화하는 삶을 사는 중. 그러나 아리에게 받는 고통만큼 실력은 늘지 않아, 스스로 괴로워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아리가 또 들들 볶아 고통을 체화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른 방법으로 즐거움을 찾으려 운동을 자주 한다.

불확실한 먼 미래보다는 “행복은 저금할 수 있는 게 아니야”라는 신념으로 저축은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 중. 무슨 짓을 해도 본인보다 유명한 고양이 아리로 인해 남기형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 웹상에서 아리 주인으로 통칭되고 있으며, 본인 빼고 모두 아리의 집사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망상증이 있어, 곳곳에 후원 및 기부로 다달이 아리 간식비용을 날리며 살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고양이 밥 안 굶기는 게 어디냐’라는 합리화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으나, 외면 중이다.

어느 날 새벽, 뭐에 홀린 듯 고양이 분양에 대해 검색하고, 바로 다음 날 부산 남포동역에서 주먹만 한 새끼고양이의 집사이자 주인이 된 한 남자. 이 고양이에 ‘아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난 8년간 동고동락하며, 결코 길지 않은 고양이와의 삶을 추억하고자 짧은 영상을 만들어 올려 인기 유튜버가 된 남자. 실상은 고양이 아리 님을 모시는 집사 주제에 늘 고양이의 주인이라 자처하며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채널 구독자들에게 비난과 꾸지람을 듣는 남자. 늘어나는 구독자 수만큼을 금액으로 환산해 종종 고양이협회에 기부하며 아리의 간식비를 탕진하는 남자. 

아리와 함께 여러 ‘쓸모없는’ 실험들을 하면서 마지막엔 늘 손을 갖다 바치며 예의 그, 비명으로 마무리하는 이 남자의 영상은 단순하고 같은 패턴이다. 그러나 ‘품종묘’도 아니고, ‘개냥이’는 더욱 아닌 흔하고 평범한 ‘코리안 숏 헤어’ 길냥이 고양이와 평범한 듯 비범한 대한민국 싱글 남성의 일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넘는 무언가를 선물했다. 마치 트렌드처럼, 고양이를 기르지 않으면 나만 유행에 뒤쳐지기라도 하는 듯 고양이 집사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요즘, 이 남자는 사람들에게 고양이와 사는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 남자의 유튜브 영상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지독한 패러독스에 동감하며, 이 남자를 지지한다. 어쩌다 집사가 되어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생명체와 살고 있는 이 젊은 남자는 누구도 아닌 고양이 ‘아리’로 인해 동물에 대한 의식이 전보다 더욱 깊어졌으며,(=더 자주 물리며) 하고 싶지 않아도 인간과 동물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날마다 물리고 있다.) 

주인이라 자처하지만, 이제는 이 성질 나쁜 고양이와 친구가 되어버렸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고양이 집사들에게는 공감과 동감의 눈물을, 호시탐탐 고양이 님을 영접할 기회만을 기다리는 혹은 영접을 앞두고 있는 예비집사나 ‘랜선집사’들에게는 불난 집의 부채질이 되기를, 나아가 고양이에 대해 큰 호감을 느끼지 못한 이들에게조차 “나만 없어, 진짜 사람들 고양이 다 있고, 나만 없어!”를 외치게 만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고양이와 사람의 동거사同居史이다. 

찢어진 벽지, 꽃무늬 이불, 고양이털이 점령한 옷과 가방…. 그간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고양이 집사들과는 다르다. 인테리어 화보마냥 깔끔하고 세련된 집에서 ‘인테리어의 완성은 고양이’라도 되는 듯 아름다운 품종묘가 느긋하게 걸어오거나,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포즈와 표정으로 집사 무릎 위에 누워있는 풍경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 집 아니면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 집과 같은 느낌이다. 말리고 혼내고 읍소해봤자, 인간의 사정 따윈 안중에 없는 고양이가 친히 벽지에 남긴 발톱자국, 고양이가 들어가 누워있어도 그 현란한 무늬에 쉽게 찾을 수 없는 꽃이불, 고양이털이 앙심이라도 품은 듯 야무지게 박혀 있어 이제는 떼어낼 의지조차 없어진 실내복 등은 그냥 고양이와 함께 사는 우리 모두의 평범한 공간을 보는 듯, 보는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전생에 고양이에게 잡혀 먹힌 쥐라도 되는 양, 아리의 신경을 건드리고 못 살게 굴지만 결국 늘 크게 혼나고야 마는 아리 주인은 의외로 귀청소를 하면서 행여나 고양이가 다칠까 벌벌 떨고, 예민한 아리가 못견뎌할 것이 뻔해 그렇게 소원해마지 않는 둘째 입양도 고사하는, 천생 집사이다.(아리가 고양이별로 떠나면 두 마리를 한꺼번에 영접할 계획을 세워놓고 벌써부터 신이 나 있지만.) 

사람들에게 성우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평소 근사한 저음을 자랑하는 아리 주인의 목소리는 아리에게 손을 물어뜯길 때 예상치 못한 고음을 뽑아내며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영상의 백미이다. 또한 주인공이 아리임은 분명하나 평소 본인의 손과 팔, 상체 정도만을 노출하며 항상 등장하는 아리 주인의 정체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철저히 미스터리한 매력의 채널이기도 한다.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이 책의 작가, 아리 주인은 자신보다 유명한 고양이 아리에게 명예를 양보하고, 간신히 이 책 한 권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왜 고양이를 좋아할까? 고양이와 같이 살면 뭐가 좋을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세상에서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가능할까? 과연 종이 다른 고양이와 인간이 한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잘 지낼 수 있을까? 지금 내 곁에서 그르렁거리는 이 고양이는 나와 사는 것이 정말 좋을까? 정말 행복할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들은 잠시 거두자. 모든 집사들이 고양이와 살기 전 그리고 살면서 계속 품을 의문들에 대한 답은 이 남(자)집사가 특유의 유머와 고통을 겪으며 성찰로 갈무리해 책에 잘 버무려놓았으니 말이다. 당신은 그저 좋은 집사가 될 궁리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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