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라는 사법부의 유령
‘재판거래’라는 사법부의 유령
  • 김태훈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변 회장
  • 승인 2018.08.0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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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을 수사 중인 검찰이 7월 2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택과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처장이었던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하루 뒤인 22일엔 임 전 차장 사무실 여직원의 개인 가방에서 법원행정처 자료를 별도로 보관해 놓은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임 전 차장이 행정처 시절 작성하거나 보고받은 문건 다수가 포함되어 사법농단 수사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제 양승태의 사법농단 또는 사법적폐라고도 불리는 이번 사태는 지난해 초 한 판사가 법원행정처 간부로부터 들었다는 ‘동향 파악 의혹’에서 시작됐으나 특정 서클 출신 판사들에 의해 블랙리스트로 커졌다. 조사 결과 블랙리스트가 없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표적을 옮겨 2차, 3차 조사를 벌였고 그래도 블랙리스트가 나오지 않자 이번엔 재판거래 의혹 내지 사법농단 으로 타깃을 바꿨다. 합리적 의심과는 거리가 먼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서는 이를 조사한 대법원 특별조사단도 지난 5월 25일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 설득을 시도한 문건이 발견됐으나 (문건은) 실행되지 않아 형사처벌 할 사안은 아니다”고 밝혔고, 여기서 문건은 이미 나온 판결 중 당시 청와대 생각에 부합될 만한 사례를 추린 것이지 청와대 구미에 맞춰 판결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이 “고발도 고려하겠다”고 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판결 당사자들이 대법정을 점거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지만 김 대법원장은 “각계 의견을 듣겠다”며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법원은 “고발해야 한다”는 소장 판사들과 “고발은 안 된다”는 중견 판사들이 엇갈려 큰 내홍을 겪었다.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변 회장
김태훈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변 회장

대법원 특별조사단에 대해서는 김명수 대법원장 자신이 지난 2월 조사의 대상과 범위 방법 등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면서 의혹에 관한 철저한 조사 등을 지시했고,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이번 사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김 대법원장의 남은 임무는 특조단의 조사 결과를 신뢰하고, 제도 개선 등 법원의 자체적 역량으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해 가는 것이었다. 외부에 수사를 의뢰해 문제를 확대시키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법원장은 헌법기관인 대법관회의도 외면한 채 6월 15일 사실상 우회적으로 수사를 의뢰해 판단을 검찰 손에 넘겨버렸다. 그 직후 대법관 13명은 “재판 거래는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반박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향후 검찰은 전직 행정처의 간부들, 그리고 거론된 문제의 사건에 관여한 전현직 대법관들을 불러 추궁할 것이고, 재판의 합의 과정까지 들여다 볼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법원과 행정처의 컴퓨터를 압수해 이 잡듯 뒤지고 양 전 대법원장까지 포토라인 앞에 세운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해 봐야 재판거래는 혐의 없음으로 나올 것이고, 그럼에도 재조사의 요구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아직까지 재조사 주장이 계속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는 과정에서 사법부는 극도의 치욕과 신뢰상실로 침몰하면서 더 이상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금이라도 ‘정의의 판단자’로서의 사법부의 역할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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