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전 대법관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는 일”
이용우 전 대법관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는 일”
  • 인터뷰·사진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8.0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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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들이 소신과 용기 보여 줘야”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그런 법관의 세계에 판결이 아닌 정치 공방이 뜨겁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려 했다는 의혹이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만일 재판거래가 사실이라면 법은 권력의 시녀가 된다. 그런데 재판거래가 없었다면 이 문제를 제기한 법관들 때문에 법은 다시 권력의 시녀라는 질타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혼탁한 사법부의 현재를 근심으로 지켜보는 이용우 전 대법관을 <미래한국>이 만났다.
 

이용우 전 대법관
이용우 전 대법관

- 소위 ‘재판거래’란 무엇입니까?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당시 청와대로부터 사법부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제도의 도입을 얻어내기 위하여 청와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재판을 상고법원 설득에 이용하려 하였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재판을 설득에 이용하려 하였다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법원장이 대법원 재판에서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이 나오도록 담당 대법관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 재판 결과를 가지고 청와대를 설득하려 하였다는 의혹인데, 그런 의미의 ‘재판거래’가 의혹으로 떠오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애당초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의 조사를 하였는데 블랙리스트는 찾지 못하고 그 대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문건들을 발견했습니다. 즉 2015년 7~8월경에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요청하기 위해 대통령을 독대할 예정이었는데 그 독대를 앞두고 법원행정처 실무진들이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대법원장이 하실 말씀을 위한 소위 ‘말씀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자료’를 보니까 지난 수년간의 대법원 재판에서 청와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러 사건들 중 청와대의 의중에 부합하게 판결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사건의 목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 사건의 재판 결과를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설득자료로 삼으려고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죠.

그런데 특별조사단은 그 ‘말씀자료’가 대법원장에 의해 독대 과정에서 실제로 언급되었는지 여부까지는 밝혀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설사 실제로 대법원장이 그런 얘기를 했다 하더라도 몹시 부적절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로써 형사문제까지 될 사안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이미 정당하게 내려진 재판 결과를 가지고 사후에 설득을 위하여 과시했다고 하여 무슨 범죄가 될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었지요. 사실 그 당시 대법원 재판 중에서는 청와대의 의중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사건들도 많이 있었고 그로 인해 대법원은 청와대로부터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대법원이 청와대의 의중에 부합하는 판결들도 많이 내렸다고 과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언론에서는 그 특유의 비판적 시각을 발휘하여 어떻든 상고법원을 얻으려고 재판을 가지고 거래하려 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이를 ‘재판거래’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국민들을 흥분시키기에는 아주 좋은 ‘명명법’이죠. 언론에서 이렇게 보도하자 당장 목록에 오른 사건들의 패소 당사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KTX 여승무원 사건입니다. 그들의 패소 판결이 청와대와 거래한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대법원 법정을 점거하고 재심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어서 다른 패소 당사자들도 시위를 하면서 그들이 받은 재판의 무효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제 ‘재판거래’란 ‘정당하게 선고된 재판을 사후에 부당하게 이용한 것’이 아니라 ‘과거 재판당시에 벌써 대법원장이 재판을 담당한 대법관 등에게 특정 방향의 판결이 선고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의혹으로 ‘비화’되었습니다. 당초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와는 차원이 다른 의혹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그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법원장이 스스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헌법위반을 한 것이고 형사문제까지도 검토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지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널리 일컬어지는 ‘재판거래’란 용어는 바로 이러한 의혹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재판거래’ 논란은 보수적 판결을 무력화시키는 의도

- 특별조사단은 형사 고발을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어떻게 검찰 수사로까지 확대되게 되었나요?

특별조사단은 정당한 재판을 사후에 부당하게 이용하려 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형사고발까지 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 것인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후의 사태 전개 과정에서 과거 재판 당시에 벌써 대법원장이 특정 방향으로 판결이 나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의혹으로 발전되었고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헌법을 위반한 중대한 문제가 되므로 의혹의 사실 여부를 캐는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의미의 ‘재판거래’가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전혀 있을 수 없는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검찰이 대법원의 재판과정을 수사한다는 것은 재판의 합의과정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원조직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사법부를 파멸 수준에까지 이르게 하는 일이므로 근거 없는 상상으로 섣불리 검찰 수사를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지요.

- 그렇다면 실제로 ‘재판거래’는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재판거래’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절대로 없었다고 저는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심을 품는 것 자체가 대법원 재판에 있어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관계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코미디 같은 소리입니다. 대법원장이라고 해서 대법관들의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림도 없는 괴담입니다. 오랜 기간 법원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랜 재판 경험을 가진 고위 법관들은 모두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음을 밝히면서 검찰 수사에 반대하였지요. 서울고법부장판사회의나 전국법원장간담회의 일치된 의견이 그러하였고 대법관 전원(법원행정처장 포함)의 명의로 발표된 입장문도 같은 취지였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진행된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이 후보자는 의원들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실제로도 없었다”고 답변하였고,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국회 법사위에 출석하여 역시 ‘재판거래’가 없었다고 단언하였습니다.

- 그러나 법원 내부의 젊은 법관들은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일부 법원의 단독판사회의나 젊은 법관들이 주도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하여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발표하였지요. 그것은 재판 경험이 일천한 젊은 법관들이 대법원의 재판 과정에 대하여 사정을 잘 몰라서 대법원을 의심했을 수도 있고 사법부 개혁에 관한 집념이 지나친 나머지 수사로 빚어질 파국적인 결과를 가볍게 생각한 결과라고 봅니다.

- 그렇다면 대법원장은 어떤 입장인가요?

그 분도 오랜 재판 경험을 가진 분이어서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해명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의혹에 편승하고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그 분이 발표하는 담화문이나 취하고 있는 행정조치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재판거래’가 있었음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담화문 발표나 행정조치들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분이 왜 이런 행보를 하고 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판 ‘적폐청산’, 즉 사법부 주류세력 교체, 보수 궤멸 시도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사법부 주류세력의 교체라든가 보수 궤멸 시도라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사 이번 사태로 대법원이나 행정처 소속의 일부 법관들을 희생시킨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금까지 사법부의 주류세력이었다거나 보수의 중심세력이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관계되는 대법관들은 이미 임기 만료로 퇴임했거나 곧 퇴임이 예정된 사람들이고 행정처의 부장판사급 간부들은 능력이 우수하여 발탁되어 온 사람들이지 보수의 중심세력이어서 뽑혀온 사람이 아니지요. 사실 보수 성향의 법관들은 진보 성향의 법관들과는 달라서 무슨 학회니 하고 모임을 결성하지도 않고 이념적 목소리를 내지도 않습니다. 다만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김명수 대법원장이 스스로 ‘재판거래’가 있을 수 없음을 잘 알만 함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의혹에 대하여 해명을 하기는 커녕 도리어 이를 증폭시키는 행보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혹시나 정권 측으로부터 무슨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관한 증거는 없습니다.

- 그렇다면 소위 ‘재판거래’ 논란을 일으킨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양승태 대법원을 파문하고 그 시절에 있었던 보수적 판결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양 대법원장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대법원장을 지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대법원에서 진보세력이 보기에 몹시 못마땅한 보수적 판결들이 여러 건 나왔습니다. 특히 노조의 입장에서 보아 그 전의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보다 많이 퇴보했다고 비난하는 판결들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양승태 대법원은 노조 등 진보세력으로부터 많은 비판과 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이번 사태는 양승태 대법원에 대하여 그 동안 진보세력들이 가져왔던 불만을 폭발시켜 양승태 대법원을 파문하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를 통하여 문제의 ‘말씀자료’에 올라 온 판결들을 비롯한 보수적 판결들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KTX 여승무원 사건을 보세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권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승무원들을 복직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이석기에 대하여도 어떤 조치가 있을지 모르지요.

- 과거에 있었던 수차례 ‘사법부 파동’과 비교해볼 때 유사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의 기억에 과거 두 차례 사법파동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초반 정권이 판사들을 구속하려고 시도한 때였고, 다른 한 번은 1980년대 후반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려 한 때였지요. 모두가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법관들이 서명파동으로 들고 있어난 사건입니다. 외압에 항거한 성격이지요. 그러나 이번 사태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외압이 아니라 사법부 내부에서 현 대법원이 직전 대법원을 치는 겁니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진보적 성향의 법관들이 스스로 나서서 보수적 성향의 직전 대법원을 마치 악의 축처럼 몰아치는 것이지요. 과거의 사법파동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 연합

정치권 및 이념 세력의 큰 목소리에서 독립해야

- 향후 검찰 수사로 전개될 상황을 예측해 보신다면?

어떻든 이제 대법원장의 결단으로 이번 사태는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서 전 현직 대법관들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고 장시간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재판거래’ 의혹을 캐자면 자연히 재판의 합의 과정을 추궁하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합의의 비공개를 규정한 법원조직법 제65조와의 충돌이 문제될 것입니다. ‘재판거래’란 없었으니 수사가 검찰의 뜻대로 진척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검찰은 꿩 대신 닭이라도 잡으려고 ‘재판거래’와 관계없는 대법원의 다른 비리가 없는지 들여다보려 할 것입니다. 이미 그런 징후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재판거래’와는 관계가 없는 다른 많은 자료들의 제출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조사해봐야 ‘재판거래’ 의혹은 혐의 없음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부터 실체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그것으로 사태는 종결되나요? 결코 종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법원 협조의 부족을 탓하면서 계속 재조사 요구가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법부는 만신창이가 되고 문명국가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법부 치욕의 역사를 쓰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사법부는 더 이상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기능하기가 어려운 처지가 될 것입니다.

- 이번 사태를 보시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사법부를 파멸 수준으로 이끌어간 대법원장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건의 단초는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부적절 행사에서 나왔지만 이를 침소봉대하여 사건을 엄청나게 키우고 사법부를 오도된 여론 재판 앞에 세워 파멸의 위기로 몰고 간 것은 현 대법원장입니다. 언젠가 여기에 대한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를 들자면, 대법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그렇게나 고심한 상고심 개편 방안이나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지금 대법원 재판은 업무의 살인적인 과중으로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전 대법원장이 무리수를 쓰면서도 상고법원을 도입하려 했던 것도 상고심을 개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상고법원 도입은 이제 물 건너갔지만 현 대법원장은 지금부터라도 상고심 개편의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 끝으로 법관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저는 대법관을 퇴임하면서 후배 법관들에게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법부 독립의 과제는 정치권력은 물론 이념세력이나 각종 시민단체 이익단체의 큰 목소리로부터 독립하여 재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소신이 뚜렷하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념세력의 큰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양심과 정의의 선언을 움츠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소신과 용기를 보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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