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탈북청소년 다큐제작 뒷이야기 “그들은 원하던 행복을 찾았을까?”
제3국 탈북청소년 다큐제작 뒷이야기 “그들은 원하던 행복을 찾았을까?”
  •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
  • 승인 2018.08.10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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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부터 제작했던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은 6월 중순까지 제작을 마치고 이미 두 번의 시사회와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어려움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나눠 왔다.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세이브NK가 찾아낸 부제는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이 ‘우린 원하던 행복을 찾았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경계에 선 아이들’을 다시 보면서도 장면 장면, 눈시울이 젖어들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야기는 탈북여성이 제3국에서 낳은 자녀들을 어머니가 한국 정착 후 한국으로 데려온 청소년들 이야기와 아직도 제3국에서 불안한 생활을 하는 탈북여성의 자녀들 이야기이다.

세이브NK는 2015년부터 북한 출생 탈북청소년보다 중국이나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이 많아졌고 그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어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로 했다.

다큐멘터리의 두 주인공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인 유나와 예림의 일상을 따라가며 2월부터 5월 초까지 16번의 촬영과 인터뷰를 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이 둘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촬영을 하고 이들 안에 있는 진솔한 꿈과 아픔을 나누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이외에도 유나와 예림이 다니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 탈북여성 문제 전문가, 북한인권 문제 전문가, 탈북 후 한국에 정착했지만 아직도 자녀를 중국에 두고 온 어머니, 자녀를 한국에 데리고 온 어머니 등을 인터뷰 했다.

이러한 진솔한 인터뷰가 가능했던 상황은 벌써 2년 전부터 매주 세이브NK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들을 만나고 함께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유나와 예림은 우리가 강남역 근처에 지나다니는 청소년들과 다르지 않다. 청소년 특유의 고집과 장난기가 섞여 나오는, 오히려 밝고 활기차고 예쁜 얼굴은 언제나 함께 하는 시간들을 즐거움으로 채워 줬다. 그렇지만, 막상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하고 인터뷰에 들어가면서 많은 부분에 갈등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탈북민보다 많아지는 중국 출생자들

가장 큰 일은 어머니인 탈북여성의 스토리와 그 자녀들인 예림과 유나를 데리고 고향인 중국으로 함께 찾아가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국제사회의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고 있었던 점이다.

우리는 중국 현지 촬영을 위한 준비를 하던 중 김정은의 중국 방문이 발표되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소용돌이가 치듯이 날로 변화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얻고자 하는 영상을 과연 촬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또 하나는 유나와 예림을 중국에 데리고 가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겠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고 말았다. 결국 이미 계획한 구성안을 대폭 수정해 세이브NK팀이 유나와 예림의 스토리를 따라 중국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서도 세이브NK팀의 탈북민 출신 백요셉 팀장은 안전의 문제로 함께 할 수 없었음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이브NK의 영상편집팀은 중국 현지 촬영을 위해 4월 17일부터 24일까지 대련, 단동, 연길, 장춘, 용정, 방천, 도문 지역들로 옮겨 다니며 중국 동북3성 지역 등을 영상에 담았다.

중국에서는 유나가 성장한 대련의 학교와 추억이 어린 바닷가, 많은 시간을 보낸 거주지역과 시내 등을 담았다. 대련은 오래 전과 별 다를 것이 없이 이미 발전된 도시였고 유나도 한국에 온지 2년 정도였기에 어려움 없이 유나의 추억을 찾아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림의 출생 지역인 왕청에서는 이미 그 지역 전체가 재개발로 인해 모든 가옥이 재정비되어 예림의 추억을 찾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중국으로 취재팀이 떠나기 전, 유나와 예림 학생의 기억을 노트에 적고 구글 맵을 이용해 지도에 표시를 하고 그 당시의 많은 지형 지물 등 기억의 단편들을 최대한 저장해 왔지만 이미 변해 버린 작은 마을의 한 귀퉁이는 퍼즐을 맞추기가 참으로 난감했었다.

작은 마을, 예림이가 설명해준 모든 지형이 맞는데 왜 이 작은 마을에 예림이와 예림이의 가족을 아는 사람이 없을까? 우리는 직접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예림에게 이 지역이 맞는지 다시 물어봤다. 지역은 맞게 찾아 왔다. 그렇다면 왜 현재 고모와 그 친척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 예림을 모를까? 잠시 스치는 생각이 예림이가 한국 입국 후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닐까?

예림이는 결국 중국에서 쓰던 이름이 옥매였음을 알려줬다. 드디어 이 지역에서 2007년 한국으로 떠난 탈북여성의 자녀 김예림의 추억을 찾았다. 예림의 어머니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상황을 소상히 들었다. 특히 살던 집은 이미 새롭게 지어져 추억의 단편들과 달라 보였으나 집 앞에 예림이가 아버지와 함께 만든 나무 벤치를 찾았을 때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추억을 찾은 듯 기쁘기도 했다.

한편, 현재 중국에 정착한 탈북여성들과 그의 자녀들을 취재하기 위해 중국의 A, C지역을 찾아가 그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기도 했다.

중국에서 만난 탈북여성들은 주로 고난의 행군 이후 아사의 위험을 넘어 왔던 경우가 많았고, 잠시 중국에서 일자리를 얻어 일하려 했으나 중국내에서 만나게 되는 브로커 등에 의해 팔려 가기도 하고 강제 결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들 했다.

특히, 결혼 후 어떤 탈북여성들은 한국으로 가고 싶으나 자녀를 버리고 갈 수 없어 중국에 남았다고 했다. 결혼 후에도 중국인 남편들이 탈북여성들에게 호구를 해주지 않아 아무런 법적 지위를 얻지 못해 문 밖 출입도 어렵고 경제 활동은 더더욱 힘들고 생활도 어려워 보였다. 이러한 탈북여성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작은 교회를 방문해 이들의 일상을 영상에 담았던 것은 무척 행운이었다.

중국에 남겨진 탈북여성들, 그리고 아이들

우리가 찾아간 작은 교회는 탈북여성(주로 이 지역에 팔려온)과 자녀들이 다니고 있었다. 한사람, 한사람 그들 안에 있는 기막힌 사연은 2000년대의 지구상에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일들일 것만 같았다. 그들의 거친 손과 깊은 한숨 속에 흐르고 있는 눈물을 망연히 바라보며,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될 수 밖에 없는지, 이들의 필요는 무엇인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탈북여성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걱정하며 한국에서의 교육의 기회를 바라고 있었다. 이들을 돌보고 있는 조선족 목사 부부는 이들의 어려움은 물론 이들을 위한 교회의 운영을 걱정했다. 목사 내외는 탈북여성이 버리고 간 자녀들을 10여 명 집에 데리고 살면서 자신의 자녀와 똑같이 키우고 있었다. 교회에는 할머니들도 많이 살았는데 탈북해 혼자 남은 나이든 여성들과 자신의 어머니를 똑같이 모시고 있었다. 이곳에서 교회는 탈북여성과 그 자녀들에게는 다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구원의 방주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만이 자신들의 깊은 이야기를, 어려움을, 두려움과 그 눈물을 쏟아 놓고,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전달 받으며, 이들에게는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모든 세상 정보의 중심지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중국의 사드 사태 이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운영의 어려움이 너무나 크다는 조선족 목사는 이들도 우리가 기억하고 돌봐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누누이 강변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만나고 영상에 담은 많은 얼굴은 아직도 불안하고 앞날을 기대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취재하는 내내 이들에게 더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여러 유형의 탈북여성과 자녀들의 일상을 영상에 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유나와 예림을 어머니들과 함께 만났다. 유나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유나는 엄마가 강제로 사랑하지 않는 아빠와 결혼해 자신을 낳아 엄마는 아빠를 미워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렇더라도 아빠와의 너무 좋은 추억이 많다고 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들을 수 없는 아픈 이야기들이 아직도 청소년인 이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일들인 것이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도 그 아픔이 전해왔다.

경계에 선 아이들에게 희망을

유나는 이야기한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엄마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고 엄마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를 느낀다고 했다. 본인도 이런 엄마가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며 엄마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예림은 엄마에게 왜 내가 짝퉁인지를 물었는데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조선족 아빠와 북한 엄마가 중국에서 낳아 지금 서울에 왔으니 짝퉁 한국 사람이지’라고 했다. 예림은 ‘엄마 말이 너무 내 상황과 맞아서 화가 나고 슬프다’고 우습지만 슬픈 이야기를 나눴다.

예림은 엄마가 자신을 중국에 버려두지 않고 데려와 한국에서 살게 해준 것이 가장 고맙다고 한다. 중국에 남아 있는 탈북여성의 자녀들과 유나와 예림처럼 한국에 정착한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현장을 다니며 깊이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예림 어머니는 임진각 독개다리 위에서 희망 리본을 작성해 북한이 바라보이는 높은 곳에 매달기도 했는데, 리본에는 ‘나 혼자 와서 미안하다’ ‘보고 싶다 통일이 빨리 되어 만나자’라고 쓰고 있었다. 얼굴엔 미소를 띠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북쪽을 향해 무엇인가 마음의 소리를 외쳤다.

5개월간의 제작 과정이 끝나갈 무렵, 유나와 예림은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행복을 찾았을까?” 다만 우리보다 늦게 오는 동생들은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당당하게 우리 엄마는 북한 사람이고 나는 중국에서 자랐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한국 사회가 더 변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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