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북한 석탄 입항 몰랐나, 눈감았나
[심층분석] 북한 석탄 입항 몰랐나, 눈감았나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8.08.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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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VOA 보도 전까지 한국 정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 선박들 방치

7월 17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도한 내용이 한국을 시작으로 미국 등 세계를 뒤흔들었다.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 극동 홀름스크 항에서 러시아산 석탄으로 둔갑한 뒤 중국 화물선에 실려 한국에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VOA 보도→외교부 해명→추가 보도→정부 ‘당황’

VOA 측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수정 보고서를 인용해 “문제의 중국 선박은 2017년 10월 북한산 석탄 9000여 톤을 싣고 2017년 10월 2일 인천, 10월 11일 포항에 입항해 석탄을 하역했다”고 전했다. VOA는 “문제의 석탄이 환적돼 다른 나라로 팔려갔는지 아니면 한국 내에서 소비를 했는지는 아직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VOA의 보도가 나온 뒤 한국 언론들은 외교부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국 외교부는 “해당 선박들이 북한산 석탄을 싣고 온 것으로 추정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2017년 10월에는 중국 선박들을 강제로 억류·조사할 법률적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언론들과의 비공식 접촉에서는 “문제의 중국 화물선들이 우범 목록에 올라 있어 입항 당시 검색에서 별 다른 문제가 없어 억류나 압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7월 16일 북한 원산항을 촬영한 위성사진 / VOA 홈페이지

유엔 안보리는 2017년 8월 5일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결의안은 석탄을 비롯한 북한산 광물은 물론 북한산 원자재의 유엔 회원국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때 북한산 석탄 수출은 기존의 수출 상한선을 없애 아예 다른 나라에 팔 수 없도록 했다. 즉 문제의 화물선들이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 극동에서 싣고 왔다는 정황을 알았다면 즉각 억류와 조사를 할 근거가 있었다는 점이다.

VOA는 7월 18일과 19일 보도를 통해 한국 정부의 해명을 또 깨버렸다. 러시아 홀름스크 항에서 북한산 석탄을 싣고 한국 인천과 포항에 왔던 ‘리치 글로리’ 호와 ‘스카이 엔젤’ 호가 모두 중국 다롄 소재 업체 소유라는 사실과 함께 이 두 척의 선박이 2017년 10월 이후 7월 초까지 모두 22번이나 한국에 입항했다는 기록을 공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리치 글로리 호와 스카이 엔젤 호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위반한 뒤 2018년 2월 각각 인천항과 전라북도 군산항에서 안전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리치 글로리 호는 2017년 11월 14일 포항, 11월 16일 강원도 묵호항, 11월 26일 울산항, 12월 8일, 15일, 20일에는 부산항에 입항했다. 2018년 1월 1일에는 경기 평택항, 1월 27일 부산항, 2월 2일 경기 평택항, 2월 18일 인천항에 입항했다.

인천항에 입항한 리치 글로리 호는 2월 20일 인천항에서 아시아 태평양 항만국 통제위원회로부터 안전검사를 받은 뒤 출항했다. 그 뒤로 2018년 4월 1일과 6월 4일 경기 평택항, 6월 18일 인천항, 5월 22일과 7월 4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리치 글로리 호는 이렇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위반한 뒤에도 16번이나 한국에 입항했다. 스카이 엔젤 호 또한 2017년 11월 24일 부산항, 12월 25일에는 경남 옥포항, 2018년 들어서는 2월 23일과 5월 28일에 울산항, 6월 3일에, 6월 14일에 경기 평택항에 입항했다. 이상의 기록은 세계 각국 선박들의 위치와 국제해사기구(IMO) 등록 정보를 보여주는 ‘마린 트래픽’에서 찾아낸 기록이었다.

한국 정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 2017년 12월에 나온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는 “유엔 회원국은 대북제재를 위반했거나 그렇게 볼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선박의 입항을 거부해야 하며, 입항한 것을 알았을 경우에는 조사와 억류, 자산 몰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해당 선박을 억류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생긴 뒤여서 그냥 내버려둔 데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 정부는 “우리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가 충실히 이행되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한 협조 아래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관계 당국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모든 개인의 행동을 다 통제할 수가 없으며, 당시에는 해당 선박을 억류할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와 선박 통제 관련 부처들은 침묵했다.

VOA의 거듭된 폭로, 미 국무부의 경고

VOA는 중국 선박이 북한산 석탄을 한국으로 실어 나른 사실을 거듭 폭로했다. 7월 19일에는 미 재무부가 대북제재를 위반했다고 지적한 선박이 2017년 6월까지는 한국 선박이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한국 정부는 18일 “지난 1월 토고 선적 화물선 한 척을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억류해 조사 중”이라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 이행보고서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VOA는 이튿날 “한국 정부가 억류한 화물선은 중국에게 팔린 한국 선박”이라고 폭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억류한 선박은 토고 선적의 ‘탤런트 에이스’ 호로 2018년 초까지는 벨리즈 선적의 ‘신성 하이’ 호였다.

신성 하이 호는 2017년 7월 중국 다롄 소재 ‘리버티 쉬핑’이 인수했다. 인수 후 ‘한국선급’에서 임시 안전검사를 받고 운항을 시작했다. 해당 선박은 2017년 12월 미 재무부가 대북제재를 위반한 선박이라고 지목했다.

2018년 1월 20일 군산항은 한국선급에 긴급히 연락했다. 신성 하이 호와 같은 제원의 선박이 다른 이름을 달고 입항한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수상히 여긴 한국선급은 전문가를 현장으로 보내 조사했다. 확인 결과 이 배는 신성 하이 호가 맞았다. 선사가 IMO나 선적 등록 국가에 알리지도 않고 임의로 배 이름과 선적, IMO 등록 번호를 바꾼 것이었다. 쉽게 말해 ‘대포 선박’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선급과 군산항 관계자가 아니었다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위반한 신성 하이 호를 또 두 눈 벌겋게 뜨고도 놓칠 뻔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중국 화물선들을 감시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나자 국무부는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VOA가 “북한 석탄이 중국 화물선에 실려 한국에 유입된 사실이 있는데 논평을 해 달라”고 요청하자 국무부는 ‘한국’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하면서 북한 정권을 계속 지원하는 주체에게 우리는 ‘일방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정은 “석탄 100만 톤 수출 준비하라”

국무부는 “미국은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를 의무적으로 이행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미국은 모든 나라들이 유엔 안보리 제재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도록 각국 정부들과 계속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완벽하게 이행하기 위해 세계와 협력하고 있으며, 대북제재를 위반한 주체들에 대응하는 행동을 취하기 위해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전한 국무부의 논평은 “민족이건 특수 관계건 뭐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무시하고 김정은 정권의 외화벌이를 도와주는 것은 어느 누구든 제재를 할 것이며, 국제사회가 나서지 않는다면 미국 혼자서라도 제재할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됐다. 언론들은 미국이 사실상 한국 정부에 경고한 것이라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급히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러 미국에 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문재인 정부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 선박들이 입항해도 그냥 두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일각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이 대북제재를 피해 석탄을 수출할 것이라는 조짐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지난 4월 1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무역일꾼과 평안북도 소식통 등을 인용해 “김정은의 3월 방중 이후 중국의 대북제재가 빠르게 완화되는 분위기”라며 “김정은이 최근 노동당 중앙당 소속 무역회사에 100만 톤의 석탄을 중국에 수출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국 주재 북한 무역일꾼은 “오는 6월부터 대중 석탄 수출이 재개될 것”이라며 북한산 석탄의 중국 수출은 김정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논의한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이 북한 무역일꾼은 “북한에서 석탄 수출은 노동당 자금의 원천이자 인민 경제를 살리는 돈줄”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4월 초부터 대중 석탄 수출이 재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당 소속 무역회사들이 수출용 석탄 쿼터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김정은이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하기 전부터 노동당 39호실 산하 조선금강무역총회사를 비롯해 힘 있는 무역회사들이 석탄수출에 대비해 탄광용 벨트를 대량 수입했다”면서 “이들은 일찍부터 중앙의 의도를 파악하고 석탄 수출권 확보를 미리 준비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통은 “앞으로 대중 석탄 수출량이 더 늘어날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최근 북한군과 정부 소속 무역회사들도 곧 석탄 수출 쿼터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면서 “석탄 수출 전망이 밝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VOA는 민간 위성업체들이 지난 3월부터 촬영한 북한 남포항 일대 사진을 분석한 결과 석탄이 잔뜩 쌓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북한이 석탄 수출을 재개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순간부터 석탄 수출 준비를 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국도 북한산 석탄 수출의 공범인가?

북한산 석탄 수출의 주범은 분명 북한 김정은 정권이다. 그렇다면 핵심적인 공범은 어느 나라일까. 북한산 석탄의 환적과 원산지 위조를 도운 나라는 분명 러시아다. 러시아는 홀름스크 항뿐만 아니라 극동 곳곳에서 북한산 석탄이 다른 나라로 실려 나가는 데 장소를 제공했다. 러시아에 놔둔 석탄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주체는 역시 중국이다.

2017년 12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 채택 이전에 미 정부가 내놓은 불법환적 선박들, 일 해상자위대가 2018년 들어 계속 적발하고 있는 불법 환적 선박들은 탄자니아, 도미니카, 몰디브, 토고, 벨리즈 등으로 선적은 제각각이지만 배 이름은 대부분 중국식 발음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선사의 실제 연락처는 다롄, 홍콩, 상하이 등 거의 대부분이 중국에 있다.

한국은 러시아나 중국처럼 대놓고 북한산 석탄의 수출을 돕고 나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 선박들의 한국 출입항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석탄을 비롯해 대북제재로 거래가 금지된 품목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의 절대 다수가 중국 선사 소유인데 한국은 중국 선박들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중국 선사가 한국 선적이었던 배를 사들인 뒤 대북제재 위반행위에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항의를 않고 있다.

RFA는 7월 20일 “북한산 석탄 운반선 가운데 적지 않은 선박이 과거 한국 선적이었다”고 폭로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북한 선적 석탄운반선 가운데 ‘은봉2’ 호, ‘통산2’ 호, ‘을지봉6’ 호가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국 선적 화물선이었다고 한다. 은봉2 호는 2016년 초까지 한국 신성해운 소속 ‘천광’ 호였고, 통산2 호는 2013년 4월까지 한국 SM 리더 소속 ‘제네시스 웨이브’ 호였다고 한다. 을지봉6 호는 2011년 4월까지 한국 경양해운 소속 ‘판 호프’ 호였다는 것이다. 이 선박들이 북한의 손에 넘어가게 된 과정에서 중국 업체가 끼어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의 해명과 언론 대응에도 북한산 석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의 성향과도 관련이 깊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에 했던 말이 다시 부각되며 “현 대통령은 북한에 퍼주는 것 외에는 생각이 없느냐”는 비난도 온라인에 많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발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인 2017년 2월에 농촌을 살리자면서 했던 말 가운데 일부다. 당시 문 대통령은 경기 안성 보개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을 찾아 현지 농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쌀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법으로 다음 정부가 남북 문제를 반드시 풀어서, 북한을 통해서 (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북한에 쌀을 수출하고, 대신에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희토류 등의 광물 자원을 맞교환한다면, 우리는 쌀이 남는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희토류 등의 광물도 국제시세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산 석탄 논란 커지는 이유 중 하나 문재인 대통령 발언

2017년 2월 당시 국제사회는 이미 북한의 광물자원 수출을 제한하고 있었다. 한국도 유엔 회원국인데 제재 대상이 되는 북한산 광물을 수입하고 그 값으로 쌀을 수출한다는 생각은 대놓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위반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냐는 것이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지적이다.

미국 또한 중국·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소식도 있다.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7월 20일(현지시간) 니키 헤일리 미 대사와 마이크 폼페이 오 미 국무장관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폼페이오 장관과 헤일리 대사는 이 자리에서 “북한은 2018년 5월 말까지 대북제재를 위반하기 위한 불법 환적을 모두 89차례 저질렀다”면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강력한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헤일리 대사는 “문제는 우리 친구 가운데 누군가 편법을 쓰고 있다”면서 “89건의 선박 불법환적에 대한 증거 사진이 있고, 그 친구는 ‘북한 비핵화를 확실히 하기 위해 함께 갑시다’라고 말했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 친구’는 과연 누구일까. 혹자는 중국 또는 러시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친구’가 한국일 경우 미 정부 또한 북한산 석탄을 비롯한 대북제재의 구멍 문제에 매우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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