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어떻게 우리 운명의 일부가 되었나
교육은 어떻게 우리 운명의 일부가 되었나
  • 이정일 전 동국대 트랜스미디어세계문학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8.08.16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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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총합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 미국의 연방대법관을 지낸 올리버 웬델 홈스(Oliver Wendell Holmes)는 1906년 7월 23일 친구인 역사학자 루이스 아인스타인(Lewis Einstein)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홈스의 지적은 그의 시대뿐 아니라 지금의 시대에도 적절한 것 같다. 요즘 우리는 인생을 좁게 본다. 그래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삶을 큰 그림으로 보는 능력이 부족하다. 신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줬다. 그럼에도 시간에 쫓기듯 사는 것은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자각한다는 것

소설가 박민규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끈다. 벤 카슨(Ben Carson)은 보수논객이자 유명한 신경외과 전문의다. 하지만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 첫 흑인 각료로 주택 장관으로 있다. 가난에 찌들려 살던 그에게 결정적인 한방은 교육이었다. 그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히면서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배워가는 것이었다. 누구나 이것을 처음엔 집에서, 적령기가 되면 학교에서 배운다. 9년간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학교 밖 세상에서 배운다. 실제 우리 삶은 오픈 북 시험과도 같다. 대개는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들과 씨름해야 하기에, 선행학습은 종종 성공으로 가는 열쇠가 된다.

철이 일찍 드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은 삶이 힘겨울 때 떠오르기 마련이다. 카슨이 한때 빗나간 것도 그 때문이다. 미혼모였던 엄마는 생계를 꾸리느라 분주했다. 넘쳐나는 시간을 때울 방법은 길거리 밖에 없었다. 인생의 출발점은 다들 다르다. 카슨은 뒤처진 인생이었다. 후발주자가 자신의 열정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엔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은 교육뿐이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들 간에도 차이가 난다.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데도 어떤 이는 박사를 따기도 한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한끝이 다르다. 교육의 힘을 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도전한다. 오늘날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대부분 자수성가했다. 이들은 세상 모든 CEO가 묻는 질문의 해답을 알고 있다. 비즈니스에서 돈을 버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저가로 승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교육은 바로 후자의 폭을 넓혀준다.

결정적인 한 방은 간절할 때 나타난다. 절박해지면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결정적인 한 방은 간절할 때 나타난다. 절박해지면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한방

창조란 이미 알려져 있는 수많은 정보를 의미 있게 체계적으로 재정리하는 것이고, 교육은 흩어져 있는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 결집하면서 역량을 키우는 첫 걸음이다. 이것을 문학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낯설게 만들기’가 된다. 낯선 것은 익숙하게 익숙한 것은 낯설게 만들 때, 새로운 관점이 떠오른다.

결정적인 한 방은 간절할 때 나타난다. 절박해지면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새롭게 조합하기만 해도 독창성이 나타난다. 스티브 잡스가 그 예이다. 대학 자퇴 후 서예 수업을 청강한 덕분에, 잡스는 컴퓨터에 디자인 개념을 접목시키는 영감을 얻었다. 빌 게이츠도 유사하다. 그가 청소년 시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탐독했다. 이때의 경험은 게이츠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오피스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데 영향을 미쳤다. 게이츠에게 결정적인 한방은 백과사전이었다.

벤 카슨에게도 이런 결정적인 한 방이 있었다. 의대 시절 카슨은 성실한 학생이었다. 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들이파는 친구들과 달리 카슨은 시험에 안 나오는 문제도 공부했다. 그런 그를 친구들은 놀리곤 했다. 의대 졸업 후 수련의 과정을 밟을 때, 하루는 과장 선생님이 한 환자의 질병에 대해 물었다. 함께 회진을 돌던 레지던트들 가운데 그 병을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사소한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카슨은 그 질병의 징후와 처방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에게 결정적인 한 방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빈민들과 함께 해 온 의사

우리는 주어진 삶을 그저 살아간다. 하지만 소수는 다른 선택을 하곤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두 갈래 길은 선택이 주는 의미를 설명한다. 미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란 이름은 낯설 것이다. 20세기 미국의 시인이다. 그는 에즈라 파운드와는 평생 친구였고, 시를 “관념이 아니라 사물로 말하라”(say it, no ideas but in things)는 그의 모토였다. 그는 사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진 느낌으로 시를 썼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쉬운 시구로 표현하려 했다. 지금은 그를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그의 생업은 의술이었다. 그는 환자가 끊긴 짧은 시간에 처방전 뒤에 시를 썼다.

시집 <패터슨>을 보면 그가 보고 듣고 기억하고 기록해둔 것을 만날 수 있다. 다음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시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가난한 무정부주의,
새로 지은 벽돌 공동주택 사이에
움푹 들어가 있는 오래된 노란 목조 주택
혹은 이파리가 잔뜩 매달린
참나무 가지들이 보이는
주철 발코니.
온갖 궁핍과 습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밴
아이들의 옷과 잘 어울린다.
이 담장 없는 시대에
거의 둘러칠 것도 없는
목재와 철재 담장들, 지붕들, 굴뚝들
스웨터와 검은 중절모 차림으로
인도를 쓸고 있는 노인
고등교육과 그것의 배반

“가장 원대한 비현실을 붙드는 사람만이 가장 원대한 현실을 창조해낼 것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 <행간>의 서문에서 한 말이다. 아감벤 외에도 올리버 웬델 홈스, 루이스 아인스타인, 벤 카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모두 교육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 역시 교육에 관심이 많다. 수능시험과 입시요강은 국민적 관심사이다. 그래서 대학별 인기학과를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요즘 대세는 의예과이다. 전문대도 취업에 유리한 학과들에 학생들이 몰린다. 인생엔 리허설이 없고 두 번째 기회란 주어지지 않기에, 한 번의 선택은 더 중요하다.

인기학과의 서열은 취업률이 결정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전공 선택에 자유롭지 못하다. 인문학 전공자가 취업문을 뚫으려 공대 과목을 수강한다. 졸업 후 취직 때문이다.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전공은 적폐 대상으로 불린다. 오래된 영화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가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자신만의 신념이 없다. 교육의 가치는 아름답다. 기회는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을 때만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잠재력보다는 불확실한 미래가 우리의 선택을 대신한다. 한 번의 실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에, 실수를 배울 기회는 전혀 없다.

크리스천 작가 짐 월리스(Jim Wallis)의 책 <하나님의 정치>에 보면 챕터 별 제목들이 독특하다. 15장의 제목은 ‘이사야의 연단’이고 부제목은 ‘예산은 도덕적 문서다’이다. 예산은 한 가족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우리가 지금 가장 돌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수치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적인 깊이를 가진 사람과 똑똑한 사람은 다르지만, 우리는 그 차이를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가 삶이 아니라 관념으로만 머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는 <하나님의 모략>에서 설명한다.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집이 가난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해서도 학비를 벌기 위해 강의실을 청소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남학생 중 하나가 여학생을 놀리고 성희롱을 했다. 두 사람은 윤리학 과목을 두 번씩이나 함께 수강했다. 그 남학생은 매번 뛰어난 성적으로 A+를 받았다. 여학생은 끝내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그녀가 자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선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한 번도 읽힌 적이 없는 책

소말리아의 유목인 소녀가 있었다. 열네댓 살 때 강제 결혼을 피해 탈출했다. 무학이었던 소녀가 세계적인 슈퍼모델, 유엔 인권대사가 되었다. 그녀를 바꾼 것은 교육이었다. 와리스 다리(Waris Dirie)는 <사막의 꽃>에서 감동적인 삶을 토해낸다. 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지 못한 인생은 한 번도 읽힌 적이 없는 책으로 남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한 번도 읽힌 적이 없는 책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고삐를 풀고 싶은 한 떼의 야생마가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는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흑인 죄수는 이렇게 되뇐다. “처음엔 싫지만, 차츰 익숙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 없어. 그게 ‘길들여진다’는 거야.” 우리의 삶은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죄수와 참 많이 닮았다. 성숙은 불완전한 삶에 익숙해지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효율만을 중시하는 이 세상에서 시, 로맨스, 사랑이 왜 중요한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우린 바로 인간이니까…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알려고 애쓴다. 그래서 명문대 진학과 취직에 목숨을 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키팅 선생님은 ‘말과 언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야.” 교육은 어떤 아이디어든, 심지어 바보 같아 보이는 생각도 잠재적인 가능성의 씨앗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진짜 시는 숨을 쉬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한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을 만큼 시에 가까이 다가선 사람은 적다.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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