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신간]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8.3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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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페터 비에리 Peter Bieri 는 1944년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났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버클리대학, 하버드대학, 베를린 자유대학 등 여러 곳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마그데부르크대학 철학사 교수 및 베를린 자유대학 언어철학 교수를 역임했다. 2014년 트락타투스상을 수상한 《삶의 격》과 《자기 결정》 《자유의 기술》 등 다수의 철학서를 저술했다. 문학 창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비롯, 《페를만의 침묵》 《피아노 조율사》 《레아》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현재 인간의 정신세계, 철학적 인식의 문제, 언어철학 등 폭넓은 인문학 분야를 아우르며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독일의 저명 철학자이자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인 페터 비에리 교수의 신작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은행나무 刊)이 출간되었다. 전작 《삶의 격》 《자기 결정》 《자유의 기술》을 통해 인간다운 삶과 존엄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해왔던 그가 이번에는 “교양인의 삶이란 무엇인가”란 화두를 가지고 돌아왔다. 교양인의 삶을 정의한다는 것은 교양의 가치를 질문한다는 것.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 의지와 그 방법에 대한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더불어 인간이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 안에서 언어를 통해 이뤄지는 다양한 이해를 살펴보는 강연도 함께 수록했다. 

뜨뜻미지근한 건 질색,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읽은 만큼 변화하고,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적은 없는가. 삶의 방향성, 깨어 있음, 자아 인식, 상상력, 자기 결정, 내적 자유, 도덕적 감수성, 예술, 행복. 이 모두를 다 갖춘 사람을 우리는 흔히 교양인이라고 부른다. 

교양인은 배운 자와 어떻게 다를까? 교육은 쓰임의 목적을 가지고 타인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지만 교양은 오직 자신을 위해 혼자 힘으로 쌓는 것이다.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식과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교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교양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이 험한 세상에서 희생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살기 위함이다. 또한 문학을 통해 영혼의 언어를 익히고, 자신을 말하고 쓸 줄 알게 되고, 무엇보다 자신의 미완성성과 부실함을 여유 있는 자세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유로움의 한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쯤이면 인간으로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 바로 교양이라 말해도 무관하겠다.

알아야 할 것, 이해해야 할 것의 양은 방대하기 짝이 없으며 심지어 매일 늘어만 가는데,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만도 급급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페터 비에리는 공부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느라 정신없이 허덕이는 것은 참된 배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탐구하고자 하는 것들의 대략적인 지도를 그리고 나서 그중 어느 지역을 더 깊게 배울 것인지 알아가는 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교양인이 되는 비법이다. 지구에 몇 개의 언어가 쓰이고 있는지 그 수를 정확하게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대략 40개보다는 4,000개에 더 가깝다는 비율적 관계는 알아야 한다는 식이다. 문명의 업적과 결과의 정확한 의미와 무게를 부여하고,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면 모든 것을 다 알지 않아도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또한 이 책에 의하면 아무 성찰 없이 굳어져 버린 사고방식과 말, 유행의 흐름, 개념 없는 동조 행위를 멀리하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거나, 존재 방식이 다른 사람보다 올바르다고 여기는 무식하고 거만한 자가 되어 타인의 인간다움을 해치지 않는 것 또한 교양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다. 언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내가 처한 역사적 우연성을 인식하는 자는 제국주의자나 강압적 종교 전파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 사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은 행복한 삶을 향한 여러 갈래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교양인이 되어야 하는 진짜 이유이다. 

페터 비에리에 의하면 교양을 쌓은 사람은 자연히 특정한 종류의 호기심을 품고 있다고 한다. 내가 만일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국가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질문을 소설적 상상력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어떠한 매개가 필요하다. 저자는 문학작품이 더할 나위 없이 가장 유용한 매개라 말한다. 쌓이는 독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언어로 서술할 수 있게 되고, 그 서술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 어디선가 주워들은 조각난 말과 생각의 찌꺼기들을 되풀이하는 자괴감의 일상에서 벗어나, 큰 관심과 넓은 시야로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즉 교양인이 된다. 자아의 고갱이에 도달하는 데는 끝이라는 지점이 있을 수 없기에, 이러한 작업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은 어쩌면 암담하고도 무료한 세상을 살아볼 만한 것, 탐구해볼 만한 가치 있고 흥미로운 것이라 말하는 따뜻한 격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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