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연금사회주의 현실화되나 
스튜어드십 코드,  연금사회주의 현실화되나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09.0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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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지침) 도입이 ‘연금사회주의’를 현실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연금사회주의’란 민간기업의 주요 주주가 된 공적연기금이 정치권의 영향을 받아 경영에 관여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1976년 <보이지 않는 혁명-연금기금주의는 어떻게 미국에 왔는가>라는 책에서 “사회주의를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로 엄격히 정의한다면 미국이 지구상 최초의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다”라고 간파한 이후 연기금의 상장기업에 대한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 왔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지난 7월 23일에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안건을 통과시키는 것을 결정했다. 국민연금의 주요 기업들에 대한 본격적인 경영 개입이 예고된 셈이다. 6월 기준으로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299개, 10% 이상인 기업도 96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가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기에 기업들은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여의도연구원의 정책보고서에 의하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치수단으로 악용되어 ‘연금사회주의’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의 의사결정구조가 정부나 정치권에 휘둘리기 쉬운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복지부 장관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임명한다.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도 청와대가 검증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재벌 개혁이나 대기업 때리기 등의 관치 수단으로 변질되고 정부와 정치권이 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는 이른바 ‘연금사회주의’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해외 펀드들의 부당한 사익추구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사외이사 등 인사에 개입하고 주요 사업과 투자를 간섭할 경우 기업 경영 자율성이 훼손될 위험성은 누가 보더라도 명확하다. 궁극적으로 사기업을 공기업화해서 親정부 인사들이 기업의 핵심 위치를 차지하게 될 우려가 있다. 문제는 경영 실패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문제다. 당연히 잘못은 관치에 휘둘린 연기금이 저지르고 책임은 기업의 경영자가 져야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연금 스튜어드 코드십이 정치권을 움직이는 좌파 진보 시민단체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결정되어 기업이 이들에 예속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 결과는 우리 경제의 심각한 후퇴가 아닐 수 없게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여의도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창배 연구원에 따르면 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는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의 단기 이익 추구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투기자본의 기본적 행태는 단기 이익을 추구하며 기업 성장에 필요한 전략적 투자보다는 고배당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연기금, 뮤추얼펀드 등 장기 기관투자자의 경우도 단기 실적으로 평가받는 현실적 제약을 감안할 때 헤지펀드들이 행동하면 동조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실제로 최근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중단 사태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투기자본의 과도한 요구를 차단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연금 스튜어드 코드십은 기업들로 하여금 경영권에 비생산적 방어 비용 증가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실제로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를 틈타 투기자본들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각종 경영 간섭을 시도한 사례는 여러 차례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도 있지만, 투기자본에 휘둘리면서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나 인재 육성에 필요한 자금이 경영권 방어라는 비생산적인 부문에 소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기도 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경영권 방어 수단의 도입 여부와 함께 논의해야 할 성질의 것으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재벌의 존재, 정경유착 등을 이유로 새로운 방어 수단 도입에 매우 비판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어 수단 도입의 반대 요소로 작용했던 순환출자가 거의 해소된 만큼 경영권 방어에 대한 균형적 시각이 요구된다는 지적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대주주 전횡을 막는다는 취지도 좋지만 투기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 기업에 대한 방어 수단도 함께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상법 개정 과정에서 차등의결권 주식, 포이즌 필 제도 등 우리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도입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으로 하여금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의존도 확대와 부실 보고서 문제를 야기하는 문제도 있다. 

경영보다는 배당을 목적으로 한 기관투자가가 코드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안건 내용을 파악해야 하고, 이를 위해 기업과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이는 기관투자자들에게는 번거롭고 귀찮은 의무와 책임일 뿐이다. 과거에는 기업의 재무적 경영 성과만 분석하면 충분했으나 이제는 전략, 지배구조, 기업문화 전반을 추가로 파악해야 하는 부담이 주어지기 때문. 따라서 기관투자자들에게는 코드 원칙 미준수에 대한 해명의무와 함께 잘못된 판단으로 투자기업의 평가 및 이미지가 손상되면 법적·도덕적 책임도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전문성 없는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상장기업 투자 좌우할 것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로 기관투자자는 자문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게 되는데 기관투자자들은 전문성이나 경험이 부족한 국내자문사보다는 ISS, 글래스루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를 더 많이 활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과연 해외 의결권 자문자들에게 전문성, 공정성은 충분히 있을까. 

최대 의결권 자문사라고 하는 ISS의 경우 3~5명 정도의 인력이 1000개 한국 기업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문 서비스의 전문성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해외 자문사들의 경우 한국 사정을 제대로 모른 채 외국인 투자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우려도 존재하게 된다. 기업 평판 및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자문 서비스가 부실할 경우 주주가치의 훼손은 물론이고 기업의 장기적 발전도 저해되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연기금에 정부나 정치권의 외풍을 실질적으로 차단할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온다. 정치권에 휘둘릴 독립성 없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폐기가 마땅하다는 것. 그 방법으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구조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주권 행사를 외부 위탁운용사에 맡기거나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할 필요가 제기된다. 

현재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한 보건복지부의 행정지침안이 나왔으나 이는 조직 개편 방안에 불과한 꼼수로 실질적인 독립성 확보에는 미흡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수탁자책임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위원회는 상설기구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분야의 민간 전문가를 위원으로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금본부 내부의 책임투자팀을 수탁자책임팀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과 기금운용 일부를 민간운용사에게 위탁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안이 있다. 
 

연기금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 

실제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부나 정치권의 외풍을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해 독립성을 보장한다. 캐나다공적연금(CPP)의 경우 1998년 별도의 공사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를 설립해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은 2008년 민간 자회사인 자산운용공사(APG)를 설립해 기금 운용을 위임하고 있으며 스웨덴공적연금(AP)은 6가지 기금으로 분리,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정부는 회계감사기관을 통해 기금운용 결과만 보고 받는다.

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기금 투자와 관련해 경쟁적인 의결권 자문시장 구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자문사들이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해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 또한 자문사들이 담당하는 기관투자가 명단과 주요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결과, 이해 상충 이슈 등을 보고하는 등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광우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는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키기 위해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의 모델을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현재 기금운용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 부처 차관과 노동계 등 비전문가가 대부분인 20명의 위원으로 이뤄져 있어 그 자체가 정치권과 정부의 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의 전문가 6~7명이 금리를 결정하면서 권위를 인정받는 금통위처럼 바뀐다면 지금보다 신속하고 책임 있는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법도 제시된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경우 지난해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 한도를 5%로 제한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우리나라는 재벌의 존재, 정경유착 등을 이유로 새로운 방어 수단 도입에 매우 비판적인 상황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방어 수단 도입의 반대 요소로 작용했던 순환출자가 거의 해소된 만큼 경영권 방어에 대한 균형적 시각이 요구된다. 대주주 전황을 막는다는 취지도 좋지만 투기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 기업에 대한 방어 수단도 함께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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